소설리스트

가유서부-325화 (325/858)

제325화

“서책을 읽어서 무슨 성과를 낸 게 있느냐? 무슨 결과를 얻은 게 있느냐?”

진씨는 더더욱 격노했다. 진씨의 질책에 낯빛이 더욱 나빠진 강심설은 몸을 웅크리며 아들을 더욱 품 안에 꼭 안았다.

주비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머니, 대체 뭘 원하시는 겁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열심히 공부하고 서책을 읽어 시험에서 성과를 낼 수는 없는 것이냐! 기녀의 소생인 셋째조차도 장원 급제를 했는데 적장자인 너는 왜 못 하는 것이냐?”

진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어머니와 누이동생 그리고 네 아들을 위해 좀 분발할 수는 없는 것이냐? 네가 모든 면에서 그 녀석에게 밀리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지금 네 누이동생은 혼사를 논하려 했다가 상대방에게 거절과 모욕을 당했다!”

진씨는 ‘아이고’ 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주묘서는 자신의 혼사가 깨졌다는 소리를 듣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넌 돌아가서 열심히 서책을 읽거라! 그리고 2년 뒤에 향시에 참가하거라.”

진씨의 이 말에 주비양은 무감정한 얼굴로 입도 뻥끗하지 않더니 그대로 그곳을 떠났다.

“저 녀석이!”

그가 떠난 방향을 쳐다보던 진씨는 화가 나 항탁 위에 엎드리더니 비난의 화살을 강심설에게 돌렸다.

“다 너 때문이다! 넌 평생 첫째에게 공부하라고 권하지를 않잖느냐.”

그 말에 강심설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어머님……. 솔직히 말해 제 부군이 몇 년을 공부했습니까? 붙을 수 있었으면 벌써 붙었겠죠.”

진씨는 벌컥 성을 냈다.

“자기 부군에게 그리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몇 년 공부하는 게 뭐 어떻다고. 칠팔십 고령이 되어서 붙는 이들도 허다하다! 아무튼 넌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큰애를 타이르거라.”

강심설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제가 공부하라고 타이른다고 되겠습니까? 부군께서 공부할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변변치 않은 것. 사내 하나 어르지 못하는 게냐? 예전에 그 애를 좀 봐 봐라. 산수화를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며칠 동안 밤을 새워 고생한 끝에 그림 한 폭을 그려 오지 않았더냐.”

진씨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심설은 진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심설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강심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뭘로 그분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어머님은 그 군주가 그렇게 마음에 드셨으면 애초에 그 군주를 며느리로 들이시지 그러셨어요! 왜 절 며느리로 들이셨나요?”

강심설은 눈물을 흘리더니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진씨는 큰아들 부부가 잇달아 떠나는 모습을 보더니 화가 나 이를 달며 말했다.

“저런 고얀 것, 감히 말대답을 해……?”

“어머니……. 혼사가… 깨진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주묘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분명 성사될 거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다 셋째 그 몹쓸 놈 때문이다. 다 엽씨 그 망할 것 때문이야!”

진씨는 싸늘한 목소리로 욕하고는 녹지를 불렀다.

“가서 그 망할 것이 돌아왔는지 확인해 보거라.”

녹지는 얼른 방을 나섰다.

엽연채는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굳은 얼굴로 걸어오는 녹지의 모습이 보였다.

“셋째 마님. 마님께서 부르십니다.”

엽연채는 두 눈을 살짝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러고는 혜연과 함께 녹지의 뒤를 따랐다. 딱 봐도 혼사가 성사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 생각을 하니 엽연채의 눈에는 조롱기가 스쳤다. 성사가 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진지항은 오점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인 데다가 탐화가 되었으니 그에겐 선택지가 많았다.

거기에 자신과 주운환도 주묘서를 돕지 않았다. 그러니 그쪽에서 왜 이런 뻔뻔스러운 여인을 집안으로 들이려 하겠는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말이다. 엽연채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사실 주묘서는 자신의 시누이이고 얼굴도 예쁘니 엽연채도 주묘서가 좋은 곳에 시집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주묘서는 너무 가식적이고 인품도 좋지 않아 어느 누구에게 소개해 줘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또 변변치 않은 사람을 그녀에게 소개해 주면 그녀를 얕본 것처럼 되어 버린다.

고로 주묘서가 자신들의 세를 이용하는 건 용납할 수 있지만, 자신들을 전면에 나서게 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이 일에 나서서 그녀의 혼사를 성사시킬 경우, 나중에 그녀가 시댁에서 못된 짓을 벌이면 끊임없이 그녀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고난을 자초하는 셈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엽연채는 이미 일상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굳은 표정을 한 진씨는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탑상에 앉아 있었고 주묘서는 그녀 옆에 바짝 붙어 하좌에 놓인 수돈에 앉아 있었다. 주묘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엽연채를 쏘아봤다.

“어머님, 큰아가씨.”

엽연채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진씨는 당장이라도 찻잔을 엽연채의 얼굴로 집어 던진 다음 주묘서의 혼사를 위해 나서 주지 않았다고 그녀에게 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진 부인이 했던 쓴소리가 적잖이 신경에 거슬렸다.

혼사 이야기를 꺼내면 엽씨 이 망할 것이 진 부인에게 경위를 물어보러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당했던 모욕이 알려진다면 앞으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씨는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으니 어떻게든 엽연채를 괴롭히고 싶었다. 그 진 부인이 주씨 가문은 지금 기녀 소생인 천한 놈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친어머니도 아닌데 엽연채와 주운환을 어찌할 수 있겠냐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진씨는 자신이 적모라는 걸 똑똑히 보여 줄 요량이었다. 이것들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게끔 말이다.

진씨는 숨을 훅하고 내쉬더니 이마를 짚으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몸이 안 좋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니 사당에 가서 『지장경』을 서른 번 필사하거라!”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 몸 어디가 안 좋으신데요? 의원을 부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진씨는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의원을 불러도 소용없다. 전에 의원을 불러 봤지만 어떤 병도 진단해 내지 못했다. 머리는 여전히 아프고 몸도 편치 않았지. 그런데 나중에 셋째가 『지장경』을 필사하니 머리가 아프지 않았단다. 그러니 우리 주씨 가문의 법도에 따라 정성 들여 필사하거라!”

주씨 가문의 법도에 따라 필사를 하라는 건 무릎을 꿇고 필사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엽연채는 눈빛에 조롱기를 내비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셋째 마님. 마님께서 경문을 필사하라고 하시는데 안 가고 뭐 하세요? 어쩜 이리 불효를 하십니까!”

녹지가 두 눈을 부릅뜨고 채근했다.

“언제부터 네가 대화에 낄 수 있게 된 것이냐?”

엽연채는 싸늘한 눈빛으로 녹지를 쏘아보고는 다시 진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연히 효심을 다해야죠. 어머님의 두통이 경문을 필사해야 나아진다면 필사하겠습니다.”

“그럼 어서 가지 않고 뭐 하느냐!”

진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다그쳤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저희를 너무 편애하시네요.”

엽연채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왜 저희 부부에게만 효심을 다하라고 하십니까? 이러시면 사람들은 큰아주버님과 작은아주버님 그리고 아가씨들을 불효자라고 욕할 겁니다. 저희가 어떻게 모든 공을 다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아주버님들과 아가씨들이 불효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둘 수 있겠습니까? 효를 다해야 한다면 함께 해야죠.”

그러고는 돌아서서 녹지에게 일렀다.

“거기서 멍청하게 서서 뭐 하는 것이냐? 말뚝이라도 되려는 것이냐? 내 말을 못 들은 게야? 어서 가서 큰아주버님, 둘째 아주버님, 형님, 둘째 아가씨를 전부 모셔오너라! 우리 모두 함께 사당에 가서 어머님을 위해 경문을 필사할 것이다!”

“그게…….”

녹지는 순간 멍해졌고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다.

“감히!”

“어머님, 왜 그러시죠?”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셋째 마님이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녹지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문은 늘 셋째 도련님이 필사하셨어요. 다른 사람이 필사를 하면 효과가 없답니다. 이건 전에 한 대사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셋째 도련님의 명리命理가 마님을 위해 경문을 필사하는 데 적합하다고 하셨어요.”

“그래? 내 부군이 필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그럼 궁에 가서 부군을 모셔온 다음에 필사를 해야겠구나.”

진씨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엽연채에게 말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네가 필사해도 셋째가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명리라는 게 참 묘한 것입니다. 대사를 모셔와 제 명리도 어머님께 경문을 필사하는 데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한마디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형제는 동심同心이고 모자는 한마음이라는 말도 있는걸요.

만에 하나라도 제가 필사를 했는데 효과가 없으면 어찌합니까? 어떻게 어머님이 병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저희가 다 함께 한뜻으로 필사해야지요! 안 그러면 불효하는 겁니다! 큰아가씨, 사당으로 가시죠.”

그 말에 주묘서는 낯빛이 확 변했다.

“전… 전 머리가 어지러워요……. 아파요.”

“어디가 아픈데요? 아… 저도 머리가 어지럽네요. 아파요.”

엽연채는 이마를 짚으며 쓰러질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주묘서가 벌컥 화를 냈다.

“꾀병이잖아요!”

“무슨 근거로 꾀병이라고 하는 거죠? 저도 아가씨처럼 아프다고 말한 거예요. 어째서 아가씨가 아프다고 하는 건 진짜이고 제가 아프다고 하는 건 거짓인 겁니까? 정말 불공평하네요.”

엽연채는 돌아서서 혜연에게 말했다.

“가서 의원을 모셔오너라. 아가씨와 내가 함께 진찰을 받을 것이다.”

주묘서는 분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새언니!”

“내가 뭘요?”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하더니 진씨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어머님, 어째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거죠? 결국 저 혼자 가야 한다는 건가요? 어머님, 설마 저희 부부가 못마땅하신 겁니까?”

그러자 진씨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허튼소리 말거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

“그럼 역시 함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큰아가씨, 가시죠.”

엽연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주묘서를 쳐다봤다.

주묘서는 엽연채가 자신을 물고 늘어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엽연채에게 벌을 주며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건데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묘서는 입술을 꽉 물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가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연한 녹색 손수건을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