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23화 (323/858)

제323화

분위기가 좀 어색하다고 느낀 온씨는 하는 수 없이 먼저 말을 붙였다.

“듣자 하니 법화사에서 탑 하나를 새로 더 세웠다고 하더군요.”

“네, 그랬다고 하더군요.”

진 부인은 얼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저께 법화사에 가서 봤는데 정말 웅장하더라고요.”

이렇게 두 여인은 사찰의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다음 법화사의 경문經文에 대해, 이어 또 다른 사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둘 다 불법佛法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진작에 서로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한쪽에 앉아 있던 진씨와 백 이낭은 그저 허허 웃으며 이따금씩 맞장구를 쳤다. 진씨도 자주 사찰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올렸지만 지금은 이런 한담을 나누는 데 관심이 일절 없었다. 관심의 초점은 오로지 주묘서의 혼사에 있었다.

“서운사 태하 스님의 경전 해설도 좋지만 그래도 법화사만큼 함축적이고 깊이가 있진 않죠.”

“맞아요.”

진 부인의 말에 온씨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흠흠…….”

진씨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온씨에게 눈짓을 하며 헛기침을 했다.

온씨는 신호를 보내는 진씨를 보더니 순간 짜증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할 말이 있으면 본인이 하면 되지, 자긴 말할 줄 모르나? 사람을 시켜 먹을 줄만 아는구나.’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말을 꺼내기는 해야 했다. 게다가 전에 자신이 중매인 노릇을 했으니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도리에 맞기도 했다.

온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서운사에서 인연을 찾게 해 달라고 빌면 그렇게 잘 이뤄진다고 하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작년에 제가 진 공자와 주 대소저의 중매인 역할을 했었죠.”

그들이 온 목적을 이미 알고 있던 진 부인의 눈빛에는 조롱기가 스쳤다. 전에는 사람을 업신여겼으면서 이제 자신의 아들이 탐화가 되니 함부로 혀를 놀리려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속내를 감추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랬었죠.”

“그때…….”

온씨는 이런 뻔뻔한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어 말을 멈추고 백 이낭을 쳐다봤다.

진씨는 온씨가 말을 하다 말고 딱 멈추자 속으로 화가 났지만 이제 운을 뗐으니 멈출 수 없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이야기를 또 꺼낼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진씨도 백 이낭을 쳐다봤다.

백 이낭은 속으로는 상스러운 욕을 뱉었지만 겉으로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진 부인, 작년에 사돈 부인께서 저희 가문에 오셔서 혼담을 꺼내지 않으셨습니까? 저희가 잘 생각해 봤습니다.”

“잘 생각해 보다니요?”

진 부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허허’ 냉소를 지었다.

“그때 주 부인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셨나요?”

“저희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백 이낭은 그리 말하고는 온씨를 쳐다보며 동조를 구했다.

“그렇죠, 사돈 부인?”

온씨는 좀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나 별수 없이 수긍했다.

“생각해 보신다고 했죠. 진 부인…….”

진 부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 말이 기억이 났다.

“그랬죠. 그때 온 부인께서 그리 전해 주셨죠.”

“그래서 저희가 생각을…….”

백 이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 부인은 손사래를 치며 냉소했다.

“주 소저께서는 태자부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인데 저희 가문이 어찌 어울리겠습니까? 그냥 없던 일로 하시죠!”

그 말에 진씨는 안색이 확 변했다. 주묘서는 진지항에게 저 말을 뱉은 바로 다음 날 혼자 태자부에 갔다가 그곳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진씨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때 저희가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을 때 부인께서 기다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기다리지 않겠다고 결정하였으면 어째서 사람을 보내 저희에게 알리지 않으신 겁니까? 그 바람에 저희는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백 이낭은 슬그머니 진씨를 잡아당기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 부인. 그때는 오해가 있었던 겁니다. 대소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때 태자부에 드나들며 태자비 마마께 차를 올린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날은 태자부로 가져가야 할 찻잎을 사러 가야 해서 바쁜 참이었는데 마침 진 공자가 찾아왔던 겁니다. 그 바람에 대소저는 내일 태자부에 가야 하니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말의 속뜻은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고 짬이 나면 바로 회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진 부인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대꾸했다.

“생각을 참 오래 하셨네요! 작년 칠팔월부터 올해 오월이 다 될 때까지 생각을 했으니 거의 일 년이 다 되었군요.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매파를 찾아 여기저기 혼처를 구하기도 하셨다죠.”

그러자 진씨와 백 이낭의 표정이 굳었고, 온씨는 난처해하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고소해했다. 오늘 함께 왔으니 망정이지, 그들을 대신해 홀로 말을 전하러 왔다면 이 난처함을 겪는 사람은 자신 혼자였을 것 아닌가.

“부인할 생각은 마시지요. 우리 모두 도성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고 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다 거기서 거기죠. 그러니 주 부인께서 대소저를 데리고 여기저기 혼처를 구하러 다닌다는 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동안 이상적인 혼처를 찾았다면 시집을 보냈을 수도 있겠죠. 그럼 ‘생각’해 보는 일도 없었겠죠?”

진 부인은 냉소를 지었다.

진씨는 낯빛이 창백해졌고 부끄럽고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래도 낯짝 두꺼운 걸로 치자면 역시 백 이낭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반박에 나섰다.

“진 부인,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저희는 혼담을 꺼낸 단계였을 뿐인데 어느 누가 한 집안만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혼사는 한 여인의 인생이 걸린 대사입니다. 금이야 옥이야 곱게 키운 딸인데 당연히 여러 혼처를 구해 봐야죠.”

그 말에 온씨는 입꼬리를 삐죽거렸고 진 부인은 기가 차서 하하 웃었다.

“그쪽 따님은 금이야 옥이야 곱게 키웠고 내 아들은 잡초처럼 막 키웠다는 말입니까?”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백 이낭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됐어요.”

진 부인은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저에겐 아들이 하나뿐이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하며 귀하게 키웠습니다. 부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혼인은 한 사람의 일생이 걸린 대사입니다. 혼담을 꺼낸 단계에서 한 집안만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인들이 생각을 하시는 동안 저희도 생각을 했지요! 부인들이 다른 혼처를 찾아보는 동안 저희도 다른 혼처를 찾아봤습니다! 이제 저희 쪽도 생각을 마쳤습니다. 저흰 주 대소저가 적당한 배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 이낭은 말문이 막혔고 진씨는 더욱더 부끄럽고 화가 나 머리에서 김이 날 지경이었다.

잠시 후, 백 이낭이 어떻게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때 진씨 가문에서 먼저 혼담을 꺼내지 않았습니까……. 당시에는 두 집안 모두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결정을 못 내렸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진 공자가 이번 과거 시험에서 탐화가 되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요. 우리 셋째 공자도 장원 급제를 하였습니다.

지금 두 사람은 함께 한림원에 들어가 같은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고, 그저께에는 진 공자가 저희 가문으로 놀러 오기도 했죠. 하지만 동료로서 아무리 친하다 해도 어디 인척만 하겠습니까? 혼사를 맺으면 관리 생활을 할 때 서로 상부상조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 부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몹시 불쾌해했다.

“게다가 저희 셋째 도련님은 상서방에 자주 출입합니다. 다들 3년은 고생해야 비로소 이 자격을 얻지 않습니까? 전에도 이런 선례가 있긴 했지만 이번 시험에 붙은 사람들 중에는 저희 셋째 도련님만이 특별한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희 도련님께서 황제 폐하 앞에서 한마디 해 드리면 이 댁 공자께서도 상서방에 갈 수 있을지 모르죠.”

그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진씨의 얼굴은 툭 건드리면 바로 깨질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 천한 놈!’

그 천한 놈을 능력 있다고 말할수록 그녀는 속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딸의 혼사를 떠올리고는 ‘훅’ 숨을 내뱉었다.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한편, 말을 마친 백 이낭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가 방금 한 말은 단순히 진 부인을 구슬리며 호의를 표시하는 뜻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고도 담겨 있었다.

주운환이 진지항을 도와줄 수도 있지만, 반면에 심기를 거스르면 황제 앞에서 진지항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진지항은 아마도 평생 출셋길이 막힐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절부절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진 부인은 뜻밖에도 고개를 돌려 온씨에게 말했다.

“부인, 제가 주 부인과 속마음을 터놓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 부인께서는 자리를 좀 피해 주시겠습니까?”

온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 마마가 앞으로 다가왔다.

“부인, 이쪽으로 오시죠.”

두 사람은 앞뒤로 서서 대청 밖으로 나갔다.

진씨와 백 이낭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는 온씨와 우 마마를 쳐다보다가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진 부인을 쳐다봤다.

진 부인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진씨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저와 부인 사이의 일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중매를 해 준 온 부인을 난처하게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당사자들만 남았으니 저희도 숨기지 말고 솔직히 말씀드리기로 하죠.”

진씨는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고 백 이낭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 부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찻잔을 내려놓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 부인은 체면은 신경 안 쓰시나 봅니다?”

그 말에 진씨의 낯빛이 확 변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냐고요?”

진 부인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습니다. 숨기고 감출 게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생각은 무슨 생각입니까. 사실은 그때 제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제 아들이 탐화가 됐으니 초조한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지요!”

“이봐요!”

진씨는 격노했다. 자신들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둘러서 정중히 말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러니 진 부인이 이리 거침없이 말할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봐요’라니요. 지금 누구에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진 부인은 ‘픽’ 하고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 댁 밥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 댁이 주는 봉급으로 밥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부인 눈치를 봐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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