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진지항이 넋 놓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어느덧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반죽은 전부 다 완성되었다. 엽영교는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산약고 경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 했다. 연채 너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엽연채를 쳐다보니 엽연채가 하나를 빚으면 주운환이 그 경단을 집어 들어 예쁘게 다듬은 후 다시 내려놓고 있었고, 둘이 함께하는데도 아직 조그만 반죽이 두 개 더 남아 있었다.
진지항 쪽에는 조그만 반죽이 네다섯 개가 남아 있었는데 빚어 낸 경단이라곤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못생겼다.
“여태 뭐 하고 있었어요? 이리 줘요.”
엽영교는 진지항을 흘겨보더니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조그만 반죽을 홱 가져갔다.
진지항은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엽영교는 자리에 앉지 않고 조그만 반죽들을 집어 들어 단숨에 경단을 완성했는데 손놀림이 아주 야무졌다. 때마침 엽연채 쪽도 경단을 모두 빚어냈다.
그러자 엽영교는 산약고 경단을 하나하나 찜기 위에 올린 다음, 찜기를 옆에 있는 찜솥에 넣었다. 옥패가 뛰어와 얼른 불을 피웠다.
엽영교는 다시 탁자로 돌아가더니 또 분주히 밀가루 반죽을 주물럭댔다.
“소롱포小籠包도 만들 수 있으십니까?”
“그럼.”
놀라워하는 주운환에게 간단히 대답한 엽영교는 밀가루 반죽을 두 덩이로 나누었다. 절반은 교자를 만들기 위해 남겨 뒀고 나머지 절반은 커다란 사발 안에 넣어 발효시켰다. 이 반죽은 소롱포를 만들기 위해 남겨 둔 것이었다.
그녀는 먼저 교자 만두피를 만들었는데 몸에선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소롱포를 만드는 데 쓰일 밀반죽 덩어리가 남아 있었다. 이 반죽을 치대는 것이 바로 힘이 가장 많이 드는 일이었다.
진지항은 지쳐 보이는 그녀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보니 엽연채와 주운환은 한쪽에 앉아 물끄러미 쳐다볼 뿐, 도와줄 기미는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에 진지항이 여종들을 찾았다.
“참, 여종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엽연채는 눈알을 굴리며 둘러댔다.
“저희 어머니한테 불려갔어요……. 무슨 일을 하시는 데 손이 더 필요하시다고요. 그리고 저흰 지금 먹을 걸 만들며 놀고 있으니 그 아이들은 없어도 돼요.”
그 말에 진지항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없어도 된다고? 저 소저가 저렇게 지쳤는데? 게다가 교자도 만들고 소롱포도 만들 건데, 두 사람은 뭘 믿고 자기들이 잘 만들 거라고 믿는 거야? 방금 전에 만든 산약고 경단도 엄청 볼품없던데.’
엽영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밀방망이를 집어 들더니 작은 반죽 덩어리를 하나하나 눌러 교자 만두피를 만들었다. 만두피들은 전부 가운데가 우묵하게 들어가 있었고 모양이 균일해 아주 귀여웠다.
진지항은 혀를 내둘렀다. 엽영교의 노련한 솜씨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운환 부부가 너무 양심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으니 말이다.
어느새 교자 만두피는 스무 개 정도 만들어졌고 저쪽에 놔뒀던 밀반죽 덩어리도 발효가 끝났다. 엽영교는 그 반죽 덩어리를 꺼낸 다음 치대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한 반죽 덩어리를 힘껏 치대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가늘고 새하얀 두 손목이 부러질 것처럼 보였다.
진지항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찔한 느낌이 들었고, 결국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멈춰 보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할 수 있겠어요?”
엽영교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못 할 게 뭐가 있어요. 힘껏 치대면 되는 거죠?”
진지항은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밀반죽 덩어리를 홱 낚아챘다. 진이 다 빠진 엽영교는 굳이 도로 빼앗지 않고 그저 고개를 돌려 엽연채를 쏘아봤다.
“요 먹보가. 날 지쳐 죽게 할 셈이냐?”
그 말에 엽연채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모처럼 고모가 음식을 만들어 주는데 당연히 실컷 먹어야죠.”
“고모님, 교자 몇 개 더 만들어 주시지요.”
주운환이 거들고 나서자 엽영교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왕 한 김에 몇 개 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쪽에 아직 작은 교자 반죽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다시 만두피를 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엽영교는 만두피를 밀고 진지항은 반죽을 치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엽연채는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설레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이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리네. 공자는 반죽을 문지르고 고모는 만두피를 밀고. 후후, 정말 보는 재미가 있는걸!’
엽영교가 만두피를 다 밀고 나니 진지항이 치대던 밀반죽도 완성되었다.
진지항은 너무 힘들어 온몸에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저 밀반죽을 좀 치댄 것뿐인데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다.
진지항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데 갑자기 머리카락이 확 당겨졌다.
“아이고, 내 머리!”
“앗, 내 머리!”
엽영교도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진지항이 고개를 돌려 보니 자신의 머리카락 한 움큼이 엽영교의 머리카락과 언제인지 모르게 달라붙어 있었다.
“으윽!”
엽영교는 계속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지만 밀반죽 덩어리가 아주 찐득찐득하니 머리카락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당황한 엽영교는 쉴 새 없이 머리카락을 세게 당겼다.
진지항도 머리카락을 떼어 내고 싶었다. 그는 허둥거리다가 엽영교의 손에 손이 부딪히고 말았고 깜짝 놀라 바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고모, 앉아서 천천히 풀어요.”
보다 못한 엽연채가 이리 말했다.
“이게… 어쩌다 이렇게 된 거람.”
엽영교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역시 얼굴이 시뻘게진 진지항을 쏘아봤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엽영교의 머리카락이 왼쪽에 붙어 있어 이 각도에서는 떼어 내기가 영 힘들었다. 엽영교가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겼더니 진지항은 아파서 ‘아이고’ 소리를 냈고 그의 머리가 엽영교의 머리에 통 부딪혔다.
“이봐요!”
엽영교는 부끄럽고 화가 나 얼른 그를 밀쳤다. 그런데 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자 또 그녀의 머리카락이 당겨졌다. 엽영교는 두피에서 통증이 느껴져 이를 악물었다.
“가… 가위를 가져다줘.”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는데 어찌 자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또…….”
말을 하던 진지항은 얼굴이 한층 더 벌겋게 상기되었다. 결발부부結髮夫婦(신혼부부가 머리카락을 한 묶음 잘라서 상대방의 것과 같이 묶는 결발 의식을 치르는 일을 말함)도 아닌데 어찌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잘라서 잘 보관이라도 하려는 걸까?
“제가 머리카락을 풀겠습니다!”
진지항이 말했다.
엽영교는 부끄럽고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으나 돌아서서 그를 등지는 수밖에 없었다. 딱 좋은 각도를 찾은 진지항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집어 들고선 살살 풀기 시작했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녀의 새까만 긴 머리칼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은은한 향이 났으며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진지항은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다른 쪽 머리카락을 잡게 되었는데, 시원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고 흐르는 구름처럼 또 흘러가는 물처럼 그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진지항의 얼굴은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를 등지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있으니 몸이 조금 경직되었다. 그러고 보면 크는 동안 이렇게 여인과 가까이 붙어 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지항은 고개를 숙이고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푸는 데 집중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머리카락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진 공자, 물을 조금 묻혀 씻어 보세요.”
엽연채의 말에 저쪽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옥패가 얼른 가서 작은 대야에 물을 담아 왔다. 그녀는 ‘탁’ 소리를 내며 진지항 앞에 대야를 놓은 후 순식간에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진지항은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들고선 대야 안의 물을 쳐다봤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손수건 좀…….”
엽영교는 서둘러 이 곤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라 소매 안에서 손수건을 잡아 빼 뒤에 있는 그에게 던져 줬다.
진지항이 손수건을 건네받아 펼쳐 보니 복숭아꽃이 수놓인 옅은 분홍빛 비단 손수건이었다. 진지항은 저도 모르게 가만히 응시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손수건에 물을 묻혀 머리카락을 살살 문질렀다.
그렇게 이각 정도 고생을 하고 나니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마침내 떨어졌다.
엽영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홱 잡아 뺐다. 그러고는 터질 듯이 붉어진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크게 뜨고 엽연채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곁채에 가서 머리매무새를 가다듬고 오마.”
그리 말하고는 돌아서서 지난번에 자신이 머물렀던 방으로 향했다.
주운환도 진지항을 쳐다보며 권했다.
“형님도 머리매무새를 고치고 오시겠어요?”
진지항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에 아직 그녀의 머리에서 나던 향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운환이 물어보는 소리에 그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괜찮다, 난 여인도 아니니.”
그는 그리 말하며 물에 젖은 긴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겼다. 난처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이제 좀 있으면 교자와 소롱포 등이 완성되는데 먹지도 않고 가 버리면 오히려 더 어색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운을 뗐다.
“좀 더 하면 교자를 다 빚을 테니 잠시 후에 이것도 찔까요?”
“아… 네.”
엽연채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꾸했다. 교자는 못 빚지만 그래도 소롱포는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소를 넣고 둥글게 빚어 찌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소롱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주운환이 젊은 동료를 집으로 데리고 온 소식은 순식간에 집안에 퍼졌다.
동쪽 측문, 마차 한 대가 멈춰 서자 녹지가 얼른 나무 걸상을 내려놓은 후 진씨와 주묘서를 부축해 줬다.
진씨는 어둡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묘서와 함께 일상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동안후부東安侯府 노부인의 생일 축하연이 있는 날이었다. 주씨 가문은 장원 급제자가 나왔고, 또 지난번 합격자들에게 베푼 연회에서 황제가 여의를 하사했으니 여전히 가난하기는 하지만 명망이 높아졌다. 그래서 이젠 도성의 수많은 가문에서 연회와 경조사에 주씨 가문을 초대하려고 했다.
오늘 동안후부에서 생일 축하연이 있어 진씨는 엽연채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긴 했지만, 사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다행히 엽연채도 눈치가 있는 편이라 함께 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씨는 주묘서, 강심설을 데려갔고 특별히 강심설의 부모도 데려갔다. 옆에서 대신 혼사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