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02화 (302/858)

제302화

추길은 주운환의 솔직한 대답에 낯빛이 확 변했다. 그러나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픽 웃고 말았다.

“다른 사내들은 기루에 갔다 돌아오면 분 냄새를 묻혀 오는데 공자님은 참 대단해요. 모과 절임의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잖아요!”

주운환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아, 저녁 내내 모과 절임을 먹었거든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엽연채는 하품을 하더니 돌아서서 침실로 걸어갔다.

“전 자러 갈게요.”

주운환은 돌아서지 않고 그녀를 따라 침실로 들어섰다. 엽연채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다가 그제야 주운환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 잘 건데 안 가고 뭐 해요?”

“정말로 모과 절임만 먹었습니다.”

“아,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전 잘 거예요!”

엽연채는 대꾸와 동시에 이불을 위로 쓱 잡아당겨 머리마저 이불 속으로 숨어 버렸다.

주운환은 번데기처럼 스스로를 이불로 감싼 엽연채의 모습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안 답답합니까?”

그리 말하며 이불을 잡아당기자 엽연채의 조그만 얼굴이 이불 밖으로 나왔다.

“안 답답하거든요.”

엽연채는 짜증을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잘 거예요!”

“알겠습니다, 주무세요.”

주운환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추길은 주운환이 침실에서 나와 궁명헌 밖으로 나간 다음 대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는 이미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가씨, 셋째 공자께서 가셨어요…….”

엽연채는 하품을 하며 대수롭잖게 답했다.

“응.”

추길은 더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애만 태울 뿐이었다.

* * *

엽영교가 맹흠을 넘봤다는 소문은 크게 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

소문의 주인공인 맹흠은 엽이채 아들의 만월연이 있던 날,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일부러 그 자리를 피했기 때문이다.

맹흠은 주운환과 동문으로, 평소 몰락한 가문의 서자인 주운환을 업신여겼고 다른 동문들과 그를 따돌리고 비웃었던 적이 적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주운환이 향시에 급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향시에 급제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는데, 심지어 그는 그 뒤로 춘시에서도 전시에서도 장원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서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주운환의 스승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날마다 학생들에게 품서재에서도 장원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떠들었다. 주운환 덕분에 품서재는 이번 분기에 절반가량의 학생을 더 모집할 수 있었고, 주운환은 서원의 전설이 되어 아직도 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맹흠은 아니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만월연 날에 일부러 동문 몇 명과 교외 나들이 약속을 잡아 참석을 피했던 것이다. 분명 주운환이 올 것이었고, 그는 주운환이 떵떵거리며 거들먹거리는 꼴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본인이 그 자리를 피했는데도 말썽이, 그것도 그런 종류의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맹흠은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아주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맹흠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쿵쿵거리며 등씨의 처소로 걸어갔다. 그녀는 집안의 지출 내역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아, 돌아왔구나.”

“어머니, 포 부인께서 제게 혼담을 꺼내셨다고요?”

맹흠은 등씨의 맞은편에 앉더니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흥! 그쪽도 참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더구나. 걱정 말거라. 이 어미가 거절했단다.”

등씨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왜 거절하셨어요?”

맹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장박원의 정혼녀가 선녀처럼 아름다운 미인인 걸 부러워했었다. 자신은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고 조금 덜한 미인만 찾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엽영교도 그 조건에 맞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인이라 눈독을 들였는데, 안타깝게도 엽영교에게는 이미 두베 공자라는 엄청난 정혼자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엽영교가 묘기화와 불미스럽게 파혼하면서 그도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가 자신에게 엽영교와의 혼담을 꺼냈다고 하니 전에 품었던 욕심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

등씨는 깜짝 놀라며 손에 든 붓을 내려놓았다.

“그 아이를 아내로 맞고 싶은 건 아니겠지? 하하.”

등씨는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노기 어린 웃음을 지었으나 맹흠도 지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아니란 말인가? 어디 가서 그런 미인을 또 찾는단 말인가?

진심이 가득한 아들의 얼굴을 보자 등씨는 목구멍에 피가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이었다면… 우리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엽씨 가문은 몰락한 가문이 되어 버렸잖으냐.”

예전이었다면 이쪽에서 원해도 엽영교를 며느리로 맞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등씨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맹흠은 미간을 점점 더 심하게 찌푸렸다. 엽영교가 미인이기는 하지만 모친의 말에 지금 평판이 너무 안 좋다는 생각이 다시 드니 아무래도 좀 달갑지는 않았다. 마음이 답답해진 그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 * *

맹흠과 엽영교의 소문은 이틀, 사흘이 지나도 가라앉기는커녕 되레 점점 더 심해졌다. 심지어 엽영교가 옷을 벗고 맹흠을 꼬시려고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맹흠은 밖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등씨를 찾아가 말했다.

“어머니…….”

“알겠다!”

등씨는 아들의 속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가서 포 부인을 만나마.”

장국후부 부인은 밖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게 되자 자신을 자책했고, 양쪽 집안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내심 후회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씨가 찾아와 이 혼사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장국후부 부인은 기뻐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바로 여종을 시켜 내일 등씨와 함께 찾아가 혼사를 논하겠다는 서찰을 엽씨 가문으로 보냈다.

* * *

엽씨 가문, 안녕당.

묘씨는 손에 든 손수건을 비틀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마님, 지금 밖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영교 아가씨께서는 지금 시집가지 못하시면 더는 좋은 혼처를 구하지 못할 겁니다.”

전 마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날… 장국후부 부인께서 갑자기 혼담을 꺼내셨고 저희 가문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으니 맹씨 가문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영교 아가씨가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소문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입는 사람은 영교 아가씨이니 차마 아가씨가 상처 입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혼사에 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씨도 전 마마의 말을 거들었다.

묘씨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엽영교를 위해 혼사에 응한 거라면 마음씨가 좋은 사람인 것이지만, 어찌 됐든 간에 일단 먼저 만나 보고 다시 이야기해야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장국후부 부인과 등씨는 함께 엽씨 가문을 방문했다.

전 마마가 예의를 차려 직접 수화문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엽 노부인, 경사예요, 경사.”

장국후부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안녕당 안으로 들어왔다.

“아… 자리에 앉으시지요.”

묘씨의 심정은 매우 착잡했다. 고개를 들어 등씨를 쳐다보니 그녀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묘씨가 그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이어 여종이 차를 내오자 장국후부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날 제가 경솔했습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혼담을 꺼내는 바람에 두 분을 난처하게 만들었어요. 다행히도 맹 부인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후에 생각해 보니 영교 소저가 좋은 처자인 듯해, 저에게 말 좀 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두 집안이 사돈을 맺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 말에 묘씨의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그럼 맹 부인의 뜻은…….”

“우리 흠이가… 영교 소저를 아주 좋아한다고 하네요. 그러니 어미인 제가 그 아이의 뜻에 따르는 수밖에요.”

등씨의 대꾸에 묘씨는 어리둥절했다. 그 맹흠이 자신의 딸을 좋아한단 말인가? 맹흠이 자기 모친 앞에서 애를 쓴 모양 같으니 확실히 딸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묘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등씨가 맹흠을 위해 혼사에 동의했으니 엽영교에게 너무 모질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맹흠은 장박원의 사촌 형이니 이 혼사는 그렇게 나쁜 조건도 아니었다.

묘씨는 엽영교의 평판을 고려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응했다.

“맹 부인의 뜻이 그러하시다니 그럼 그리하는 걸로 하죠.”

장국후부 부인은 일이 성사되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음 단계를 논했다.

“양가에서 모두 혼사를 원하니 사주단자는 언제 교환하는 걸로 할까요?”

묘씨가 고개를 들어 등씨를 쳐다보는데 등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사주단자는 교환할 필요 없습니다. 사주단자를 교환하고 혼인 증서를 작성하는 건 정실부인이나 하는 거죠. 그뿐만 아니라 영교 소저는 일단 저희 가문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흠이가 정실부인을 맞은 후에 들어와야겠지요.”

그 말에 묘씨와 장국후부 부인은 낯빛이 확 변했고 묘씨는 화가 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영교를 이낭으로 들이겠다는 말입니까?”

등씨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댁 소저 평판이 좋지 않은데, 정실부인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우리 흠이가 좋아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 혼사를 원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묘씨는 그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어 분노가 극에 달하자 오히려 웃음이 났다.

“맹 부인께서 이 혼사를 원치 않으시니 그럼 우린 사돈이 될 수 없겠네요.”

장국후부 부인은 등씨에게 힘껏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그녀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자신은 등씨가 이 혼사를 원한다고만 생각했지, 엽영교를 첩실로 들이려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등씨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됐습니다. 그쪽에서 승낙하지 않은 것뿐이죠.”

그리 말하는 그녀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고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장국후부 부인은 화가 나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묘씨에게 말했다.

“부인…….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화가 날 대로 난 묘씨는 장국후부 부인에게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부인께서는 앞으로 중매를 설 때 제대로 물어본 다음 중매를 서시죠.”

장국후부 부인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손수건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저도 영교 소저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