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무방의 주인은 주운환과 진지항을 쳐다보며 말했다.
“두 분 공자님도 각자 곡을 연주할 아가씨를 한 명 골라 보세요!”
곡을 연주하는 데 각자 아가씨를 한 명 골라야 한다? 각자 한 명씩? 그렇다. 이 말의 속뜻은 곁에서 시중을 들 아가씨를 고르라는 것이었다.
대제에는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는 기루에 드나들면 안 된다는 법률이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에선 그에 맞는 대책을 찾는 법이다. 고로 기루에 드나들지 못하면 무방과 가관歌館(가무와 공연을 하는 곳)에 가면 되었다.
무방과 가관에 가서 노래를 듣고 춤을 감상한다고 하지만 사실 무엇을 하는지는 다들 똑똑히 알고 있었고, 황제도 사내인지라 이 정도는 눈감아 주었다.
무방의 주인이 손뼉을 치자 용모와 자태가 각기 다른 다섯 명의 어여쁜 여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살이 비치는 반소매 옷을 입고 있었고 안에 입은 속옷을 드러낸 채였다.
여인들은 나란히 서서 세 사람을 향해 몸을 낮추며 예를 올렸다.
“소녀들이 세 분 나리께 인사드리옵니다.”
“하하. 그래.”
조범수는 그들을 쳐다보느라 눈도 깜빡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주운환과 진지항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자네들부터 골라 봐.”
진지항은 기가 막혀 두 다리를 덜덜 떨었고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는 그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형님, 형님이 고르세요. 저는 그냥 들려주는 대로 들을게요.”
진지항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스승에게 이해력이 뛰어나 글공부하기에 아주 훌륭한 인재라며 칭찬을 받았기에 그의 부모는 아들을 아주 엄하게 대했고 제멋대로 밖으로 나다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조범수는 어리둥절했다. 보아하니 진지항은 이런 쪽으론 문외한인 것 같아 그는 주운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골라 볼 텐가?”
그러자 가기歌妓들이 당장에 두 눈을 반짝였다. 이런 미남자라면 돈을 받지 않아도 접대하고 싶은 욕심이 절로 났다.
하지만 그들은 평소 훈련이 잘 되어 있었기에, 감히 다른 손님들 앞에서 추파를 던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미소를 지으며 교태를 부렸다.
꽃무늬가 조각된 배나무 원탁에 기대어 있던 주운환은 백자 잔을 쥔 채로 고개를 들더니 그 가기들을 쓱 훑었다. 그는 이내 천장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못생겼군요.”
그 말에 꽃과 옥처럼 빼어나게 아름다운 가기들은 표정이 확 굳으며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조범수와 진지항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 여인들은 아무리 봐도 하나같이 다 어여쁘고 아름다운데 못생겼다니? 기준을 하늘나라에 두기라도 했나? 잠깐…….’
두 사람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아……. 장원 급제한 공자께서 농도 참 잘하시네요.”
무방 주인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들은 저희 진주방珍珠坊에서 손꼽히는 미인들입니다. 우리 공자께서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도 원하시는가 봅니다?”
그러자 진지항이 ‘하하’ 크게 웃으며 대신 대꾸했다.
“자네는 이 사람이 장원 급제자인 건 알면서 어째 알아보지 않은 겐가? 이 사람의 내자는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외모가 아름답다네.”
그 말에 무방 주인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 보기는 했습니다만, 정말로 외모가 선녀처럼 아름다우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주인은 당연히 그 말이 과장이리라고 생각했다.
“정말이네.”
진지항과 조범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지난번 황제가 합격자에게 베푼 연회에서 견문을 크게 넓힌 셈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인들은 주운환의 아내와 비교해 보면 발톱의 때만도 못했으니 주운환이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조범수는 질질 끌지 않고 사랑스럽게 생긴 가기 한 명을 골랐고, 무방 주인이 나머지 가기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가기는 먼저 곡을 연주하더니 이어 술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주운환 곁에 앉고 싶었으나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가기는 안달이 난 조범수를 보더니 눈치껏 그 곁에 앉아 시시덕거리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마시고 또 마시다 보니 원탁엔 조범수와 그 가기만 남아 있었고, 주운환과 진지항은 구석에 놓인 둥근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모과 절임과 고추 무 절임을 먹고 있었다. 음식이 정말 맛있긴 했다.
결국 조범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술을 마셨고 그 가기와 서로 옷을 벗기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사내는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필요한 이들에게 방을 내주는 배려심을 발휘하며 밖으로 나갔다.
두 사내가 무방을 나와 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해시亥時(밤 9시~11시)의 절반이 지나 거리는 조용했다.
“저 늙다리 못쓰겠어. 앞으론 많이 어울리지 말자고!”
진지항의 말에 주운환이 웃으며 적당히 대꾸했다.
“갑시다. 집에 가야지요.”
두 사람은 말에 오른 뒤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그 시각, 궁명헌.
엽연채는 나한상에 옆으로 기대어 화본을 보았고 혜연은 옆에 놓인 수돈에 앉아 수를 놓고 있었다.
추길은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했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셋째 공자께서는 어째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실까요?”
“기다려서 뭐 하려고? 난 이 단락만 다 읽으면 잘 거다.”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하품을 했다. 그러자 추길이 혜연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는…….”
추길은 어떻게 운을 떼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입을 삐쭉거리다 결국 이리 말했다.
“셋째 공자께서 벼슬길에 오르신 후론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와 코빼기도 안 보이시잖아요.”
추길은 엽연채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가씨는 여전히 이혼할 생각이신 걸까? 예전 같았으면 또 몰라도 이제 셋째 공자는 장원 급제자가 되었으니 앞길이 창창한데. 거기다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이런 수려하고 글재주도 뛰어난 장원 남편을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이야? 정말 이혼해 버리면 더 나은 사람은 절대 찾지 못할 텐데.’
그러나 부부로 지내지 않고 이혼하겠다는 건 주운환의 뜻이니 추길은 감히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운환은 서자의 신분일 때도 엽연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젠 장원 급제자가 되었으니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하겠는가? 그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니 어쩌면 자신이 좋은 성적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할 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부터 엽연채를 조심했던 것이다. 좋은 성적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한 뒤 자신에게 더 힘이 되어 줄 권신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듣자 하니 재상의 손녀인 유곡요가 이번 과거 시험에서 진사로 합격한 자에게 시집간다고 하던데.’
그런 생각이 들자 추길은 마음이 더더욱 울적해졌다.
“자야겠구나.”
엽연채가 하품을 하며 서책을 덮었다.
“아가씨,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추길은 입을 삐죽거리며 그녀를 말렸다.
“오늘 아가씨께서 여양을 시켜 영교 아가씨에게 알맞은 혼처가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공자님께 부탁하셨잖아요.”
이 말에 엽연채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알아봐 준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자기가 지내는 처소로 돌아갔겠지! 오밤중에 뭐 하러 이곳에 오겠니?”
추길은 말문이 막혔다. 그랬다, 셋째 공자가 지내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옆에 위치한 난죽거였다.
“제가 그쪽에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추길은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가 막 난죽거 문 앞에 도착하자 멀리서 여한이 등롱을 들고 앞에서 걸어오고 그 뒤를 따라오는 주운환의 모습이 보였다.
“셋째 공자!”
추길은 기뻐하며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주운환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가씨께서 아직 안 주무시고 계세요. 공자를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추길이 이리 전하자 주운환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바로 궁명헌으로 향했다.
엽연채는 이미 침상 위에 누운 후였는데 혜연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셋째 공자께서 오셨어요.”
엽연채는 짜증이 확 났다.
걸어 들어오던 주운환은 새까만 장발이 등 뒤로 풀어져 있고 몸에 외투를 걸치고 있는 엽연채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아리땁고 요염한 큰 눈으로 성이 난 듯 저를 째려보고 있었다.
주운환은 당장이라도 다가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가 다시 문질러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억누르고는 한 걸음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를 기다렸습니까?”
“아니요.”
엽연채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오늘 여양이 제 말을 공자님에게 전하던가요?”
“네. 전해 줬습니다.”
원하던 대답이 돌아오자 엽연채의 화는 구름 걷히듯 말끔히 사라졌다.
“그럼 공자와 함께 시험을 쳤던 진사들 중에 적당한 사람이 있어요?”
“네. 있습니다.”
주운환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예요?”
엽연채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어떻게 생겼어요? 나이와 출신은요?”
주운환은 그녀가 다른 사내의 이야기에 두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조금 답답하고 울적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한 건 아닙니다.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죠.”
그는 예전부터 양왕을 도와 사람들을 끌어들일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진지항은 전부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그를 자신의 고모부로 삼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저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사람이면 다른 부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엽영교에게 남편감으로 소개해 줘야 한다면, 엽영교는 엽연채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성격이나 취향, 인품도 유심히 살펴봐야 했다.
한편, 엽연채는 주운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신중하게 알아볼수록 좋았다.
“잘 좀 찾아 주세요. 출신은 깨끗하기만 하면 돼요. 제일 중요한 건 인품이에요!”
엽연채라고 엽영교가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걸 바라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엽영교의 나이와 배경으로는 욕심을 부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분이 높은 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꼭 좋은 일만도 아니었다. 신분만 좋지 인품은 나쁜 자에게 시집가면 인생이 더 꼬이기만 할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성격과 인품이었다.
“참, 어디 갔었어요?”
엽연채가 갑자기 콧물을 훌쩍거리며 물었다.
“기루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