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00화 (300/858)

제300화

한편, 묘씨와 나씨는 엽이채의 처소에서 나와 조용한 서화원西華園으로 향했다.

“방금 전에 그 등씨가 연채의 남편에게 부탁해 진사를 찾아보라고 했지? 가만 보니 괜찮은 생각 같구나.”

“맞습니다.”

나씨는 묘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연채의 부군도 관리가 되었잖아요. 비록 신참이긴 하지만 장원 급제를 했고 황제 폐하 앞에서 관직을 하사받은 분이죠. 그분이 중매를 서면 정말로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묘씨는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래.”

잠시 후, 묘씨 일행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상은 연극 무대 근처에 차려져 있었다. 엽연채와 엽영교도 그곳에 도착해 묘씨 등과 한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마치자 나씨는 핑계를 대며 엽영교를 그 자리에서 떠나게 했고 묘씨는 그제야 엽연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고모는 이제 나이가 적지 않단다. 네 부군이 관리로 지내고 있으니 같이 진사로 붙은 사람들 중 적당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부탁 좀 해 보거라. 좀 가난해도 괜찮고 한미한 출신이어도 괜찮다. 등수도 상관없단다. 그저 인품만 훌륭하면 된다.”

묘씨가 속으로 궁리해 보니 이번 과거 시험에서 진사로 합격한 젊은이는 적어도 너무 적었기에 인품이 좋은 사람만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또, 일반적으로 그런 동진사들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소관밖에 될 수 없었다. 엽씨 가문은 비록 몰락하긴 했지만 어쨌든 여전히 귀족이라 인맥도 좀 있고 돈도 좀 있었다. 그러니 그런 진사들은 이 혼사를 원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장원 급제자인 주운환이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엽연채에 비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딸 역시 손꼽히는 미인이니 어쩌면 바로 승낙할지도 몰랐다.

“네. 제가 부군에게 신경을 많이 써 달라고 부탁할게요.”

엽연채는 엽영교의 짝을 찾아 달라는 소리를 듣자 평소보다 더욱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들은 잠시 더 앉아 있다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 * *

정국백부. 궁명헌으로 돌아온 엽연채는 주운환을 찾아가 이 이야기를 바로 하고 싶었지만 그는 외출한 상태였다.

엽연채는 답답한 마음으로 주운환을 기다리다가 결국 먼저 잠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주운환은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런데도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또 문을 나서 관아로 향했다.

나한상에 앉아 있는 엽연채는 울상을 지었다.

“아가씨, 왜 이렇게 초조해하세요?”

추길이 차를 들고 다가왔다.

“어떻게 초조하지 않을 수가 있니?”

엽연채는 옅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젊은 진사는 많지 않잖아.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 진사로 합격한 사람이 있다면 이제 진사란 신분이 생겼으니 혼인 상대를 물색하고 있을 게다. 그러니 우리도 최대한 빨리 손을 써야 해. 음, 가서 여양을 불러오렴.”

“예.”

추길은 돌아서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양이 들어오자 엽연채는 그에게 분부를 내렸고, 그는 곧장 문을 나섰다.

* * *

한림원은 궁 안에 있기에 모든 관원들은 하인을 한 명만 데리고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상전이 업무를 보는 동안 하인들은 한림원 밖에서 쉬고 있다가 소식을 전할 일이 생기면 특별히 마련된 통로를 쓰곤 했다.

한림원 안. 주운환은 앉아 상주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운환아.”

이때 진지항이 조그만 찬합을 손에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가 찬합을 열자 이상한 냄새가 풍겨 와 주운환이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우리 어머니께서 만든 삭힌 두부를 넣은 모과 절임이야. 먹어 볼래? 형님도 드셔 보실래요?”

진지항은 그리 말하며 근처에 앉아 있는 조범수를 쳐다봤다. 그러나 주운환과 조범수는 얼른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

“음… 알겠어요. 저 혼자 먹죠, 뭐. 저도 별로 나눠 주고 싶지 않았어요.”

진지항은 ‘흥’ 콧방귀를 뀌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주운환은 붓을 들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여한이 걸어와 작은 목소리로 알렸다.

“도련님.”

“그래.”

주운환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전에 두 가지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하나는 양왕 전하의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셋째 마님의 소식입니다. 어떤 걸 들으실래요?”

주운환이 여한을 쏘아보며 되물었다.

“둘 다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고를 게 뭐가 있어? 어서 말하거라!”

“양왕 전하께서 요리가 곧 정리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쪽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낭중 자리가 비게 된다고 하셨어요. 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저희 쪽엔 사람이 부족하니 도련님께서 유능한 사람을 구할 방법을 강구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다음.”

“셋째 마님께서 영교 소저가 혼사 문제로 속을 썩이고 계시니 도련님께 이번 과거 시험에 합격한 진사들 중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조건은 딱 두 가지뿐입니다. 인품 좋고 인물 훤한 사람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마친 여한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주운환은 검은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번 과거 시험의 탐화가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모과 절임을 쳐다보며 실없이 웃고 있었다. 그를 보고 주운환도 씩 미소를 지었다.

진지항은 모과 절임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주운환이 갑자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왜? 너도 먹을래?”

주운환은 붉은 입술을 씩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말에 진지항은 대단히 기뻐했다. 마침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모과 절임을 맛보겠다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는 바로 찬합을 들고 주운환에게 다가갔다.

복숭아꽃이 조각된 조그만 홍목 찬합 안엔 작은 백자 단지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엔 누르스름한 모과 절임이 들어 있었다. 아직 입 안으로 넣지 않았는데도 삭힌 냄새가 진하게 풍겨 왔다.

진지항이 기대하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자 주운환은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찬합 안에 들어 있는 대나무 이쑤시개를 집어 들고는 가장 작은 한 조각을 콕 찍어 입 안에 넣었다.

주운환은 놀라서 표정이 멍해졌다. 삭힌 두부와 모과가 섞여 있으니 그 맛이 정말로 이상했다. 이내 주운환은 낯빛이 새파랗게 변했고 우물우물하더니 제대로 씹지도 않고 모과 조각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다행히도 가장 작은 조각을 골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목이 메었을지도 몰랐다.

진지항은 괴로워하는 주운환의 표정을 보고는 몹시 실망했지만 그가 좋아하지 않으니 더 들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거 참, 이상하네. 난 여태껏 이렇게 절인 건 본 적이 없다.”

그 옆 붉은 배나무 책상에 앉아 있던 조범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가게가 한 군데 있는데 거기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땅콩 튀김, 오이 절임, 고추 무 절임 등등 맛이 일품이지. 소년 장원, 탐화. 이따 끝나면 함께 맛보러 가는 건 어떤가?”

그는 그리 말하며 아주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주운환은 짙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더니 미소를 지으며 응했다.

“좋습니다.”

“예, 함께 가요.”

진지항은 주운환이 대답하는 걸 보더니 자신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삼월 초에 한림원에 들어온 후로 지금까지 딱 한 달이 흘렀다. 이 한 달은 바로 자신들이 한림원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는데, 그 기간에 주운환의 집에선 또 추문이 생겼다. 그래도 이제는 그 일도 얼추 마무리된 셈이었고, 자신들도 한림원에 적응을 했으니 나가서 함께 밥 먹을 때가 된 것이었다.

“우리 전여傳臚도 부르자꾸나.”

조범수는 붓을 내려놓은 후 밖으로 걸어나갔다.

한림원의 편수직들은 두 곳에 나뉘어 업무를 보았는데 주운환과 조범수, 진지항이 한 방에서, 전여와 이갑 안에 든 두 명의 진사가 옆 방에서 근무했다.

“참, 듣자 하니 전여가 재상의 손녀인 유 소저와 혼인한다더라.”

진지항이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어쩐지. 지난번에 황제 폐하께서 전여에게 경서를 강독하라 하시고 또 장원학사掌院学士(한림원의 장長)직도 맡기시더라니.”

진지항은 말을 이어가며 좀 격분한 목소리를 냈다.

“이 직무는 원래 시독侍讀(천자에게 경학經學 등을 강의해 주는 학자) 대인께서 맡으시던 거였어. 시독 대인께서 이틀 휴가를 내신 동안은 네가 맡아야 하는 일이었고! 얼마 전에 너희 집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흥, 어쨌든 전여에게 차례가 갈 건 아니었지!”

전여 위로 장원, 방안, 탐화가 있었다. 그런데 일갑을 그냥 제치고 그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진지항은 배 아파했지만 그도 사정은 알고 있었다. 전여가 재상 집안의 손녀와 혼인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에게 차례가 돌아가지 않았을 것임을 말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조범수가 돌아와서 말했다.

“전여는 안 간다고 하니 우리 셋이 가세.”

그 말에 진지항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한 시진 후, 세 사람은 함께 관아를 나서서 조범수가 추천한 가게로 향했다.

셋이 붉은 칠을 한 울타리가 쳐진 2층 방 안에 앉아 있으니 예쁘게 생긴 여점원이 들어와 술과 안주를 올려놓은 후 바로 물러갔다.

진지항은 아래층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무희를 보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고개를 돌리니 조범수가 말했던 음식이 어느새 상 위에 차려져 있었다.

“이게 오이 절임이고 이건 땅콩 튀김이랑 고추 무 절임이야. 그리고 이게 모과 절임이지. 지항아, 어서 먹어 보렴.”

조범수는 헤헤 웃으며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형님, 여긴 기루잖아요!”

진지항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운환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진지항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기루라니! 우린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인데 어떻게 기루를 드나들 수 있겠니.”

조범수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반박했다.

“여긴 무방舞坊이다.”

그 말에 진지항은 다시금 입을 샐쭉거렸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었다. 한쪽은 공인된 기녀妓女이고 다른 한쪽은 사창私娼(관청의 허가 없이 비밀히 매음하는 창부)이니 말이다.

“어머, 나리께서 또 오셨군요.”

이때, 사십 대로 보이는 살짝 통통한 체형의 부인이 화려한 차림을 하고 걸어 들어왔다. 이 무방의 주인이었다.

무방의 주인은 주운환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고는 이어 미소를 띠어 보였다.

“방금 전에 저희 아이가 나리께서 잘생긴 공자님 두 분을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전 믿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 잘생기셨네요. 이분이 그 말로만 듣던 소년 장원 급제자인 거죠? 과연 명불허전이네요.”

거리 행진을 하던 날, 온 도성이 다 알게 되었다. 주씨 가문 셋째 공자의 잘생긴 외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대제 제일의 미남이라는 양왕에게서 그 칭호를 빼앗아 올 수 있을 만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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