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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299화 (299/858)

제299화

장국후부 부인은 좋은 마음에 나섰다가 괜히 양쪽 모두에게 미움만 샀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했다. 그때 그녀의 뒤에 있던 어멈이 나무라듯 말했다.

“마님……. 마님이 제일 잘못하신 건… 바로 두 분 앞에서 혼담을 꺼내셨다는 거예요! 게다가 이렇게 많은 부인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성사되면 좋은 일이었겠지만 성사가 되지 않았으니, 이제 엽 소저는 어떻게 지내겠습니까?”

장국후부 부인은 그 말에 표정이 굳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보기엔 인품과 용모만 보면 영교는 흠이에게 정말 과분한 아이다. 엽씨 가문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고 우스운 일들이 이렇게 많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난 결코 영교를 흠이에게 소개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 게다.

난 두 아이가 좋은 부부의 인연을 맺을 거라고 생각했고,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면 언니와 묘씨가 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이야……. 요 입이 방정이지…….”

“마님, 앞으론 경솔하게 행동하시면 안 됩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어멈이 재차 당부했다. 장국후부 부인도 내심 후회가 되었고 자리에 머물러 있기엔 염치가 없어 얼른 그곳을 떠났다.

아래에 위치한 석가산 안에 있던 엽영교는 눈시울을 붉혔고 자리에 앉아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엽연채는 마음이 괴롭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모, 미안해요.”

“이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엽영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오라버니의 그 파렴치한 모자가 저지른 죄다. 그것들이 악행을 저지를 때부터 이미 난 추잡한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어. 그렇다고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참아 줄 수는 없잖아.”

“고모는 분명 좋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될 거예요.”

엽연채가 옅은 한숨을 쉬며 엽영교를 달랬다.

“좋은 부부의 연은 무슨.”

엽영교는 싱겁게 웃더니 눈시울이 더욱 붉어졌다.

“묘화 오라버니가 세상을 떠난 후론… 시집을 가고 싶단 생각이 안 들어. 게다가… 네 어머니 일을 보니 무서운 생각이 든단다. 나중에 나도 그런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떡해.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집에서 지내는 게 차라리 좋은 것 같아. 집안이 몰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고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잖아.”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고개를 돌리다가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걸요.”

엽영교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넌 지금 그 애가 마음에 드니?”

그 말에 엽연채는 순간 멍해지더니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고 이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뇨.”

엽영교는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엽연채가 성을 내며 부정하더니 얼른 화제를 돌렸다.

“고모, 우리 밖으로 나가요. 여긴 너무 덥고 답답하잖아요.”

그러나 엽영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 전에… 장국후부 부인이 사람들 앞에서 혼담을 꺼냈잖아. 정자 안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으니 좀 있으면 그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질 거야. 나가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

“알겠어요. 그럼 제가 같이 있어 드릴게요.”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 * *

녹취쾌원을 떠난 묘씨와 나씨, 엽미채는 연극 무대 쪽으로 가지 않았다. 부끄럽고 분해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엽이채의 처소로 향했다.

얼마쯤 걸어가니 엽이채의 처소에 도착했고 응접실에서 손씨가 아이를 안고 어르며 즐겁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손씨가 고개를 들어 묘씨를 발견하고는 이리 물었다.

“어머님과 동서는 밖에서 돌아다니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나씨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적당히 대꾸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지쳐서 이곳에 와서 앉아 있으려고요. 참, 이채는요?”

“밖에서 바람을 좀 쐬고 있네.”

손씨의 대꾸를 듣고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묘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고 나씨는 아이를 받아 안고 얼렀다.

이때, 밖에서 활짝 핀 꽃 문양이 들어간 방한용 문발이 걷히더니 뾰족한 얼굴의 엽이채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보기 좋게 살이 오른 미끈한 몸매를 갖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자 급속도로 살이 빠졌다.

주운환이 장원 급제를 한 후로, 그녀는 화가 나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살이 20근斤(한 근은 약 600g임)이 넘게 빠지면서 아이를 가지기 전보다도 더 마른 모습이었다. 본디 부드럽고 아름다운 계란형 얼굴은 살이 빠져서인지 아니면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잖이 까칠해 보였다.

엽이채가 쿵쿵거리며 안으로 걸어 들어와 보니 묘씨, 나씨, 엽미채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들을 본 엽이채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어떻게 소문이 퍼진 건진 모르겠는데 고모가 맹씨 가문 공자를 넘보려 했대요. 그리고 우리 엽씨 가문은 관직과 작위도 빼앗겼고 무슨 정실이 첩실이 되고 첩실은 정실이 됐다고 했어요. 또 기루에 퍼진 사내 꼬시는 기술도 말하던데,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는지 아세요!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엽이채는 그리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늘은 자기 아들의 만월연이니 자신에게 아주 영광스러운 날이어야 했고, 많은 별들이 달을 에워싸듯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그런데 장원 급제자의 부인인 엽연채가 와서 이쪽이 응당 누려야 할 영광을 모두 빼앗아 갈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거기다 지금 또 엽영교의 일 때문에 사람들이 엽씨 가문에서 벌어진 추잡한 일을 언급하니 덩달아 체면을 구기게 됐다.

탓하는 듯한 엽이채의 말에 묘씨와 나씨는 안색이 확 변했고, 묘씨는 노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

“이채야, 화낼 게 뭐가 있니? 작년에 네가 저지른 일도 말도 못 하게 추잡했단다. 형부를 꾀어내 사랑의 도피를 하고 혼수 상자에 돌을 채웠을 때도 우리는 너에게 심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제대로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그 말에 엽이채와 손씨는 말문이 막혔고, 엽이채는 조그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으흠’ 헛기침을 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저… 전 그저 그 사람들이 고모를 흉보는 게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던 것뿐이에요.”

그러자 묘씨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나도 화가 나 견딜 수가 없구나. 너도 이제 시집간 아이니 친정집 체면이 깎이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았겠지?”

엽이채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탑상으로 걸어가 앉았다. 묘씨의 말이 맞았다. 친정집은 자신이 기댈 곳인데, 지금 친정집이 폭삭 주저앉았으니 고개를 들 수 없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너도 이제 집안의 안주인이 된 셈이니 앞으로 자주 밖으로 돌아다니며 네 고모에게 신경 좀 쓰거라. 네 고모를 도와 좋은 혼처도 찾아보고 말이다. 그리해야 네 체면도 좀 살지 않겠느냐?”

묘씨의 눈빛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이런 일은 원래 맹씨에게 부탁해야 하는 것이지만 방금 전 맹씨의 친정 새언니와 한바탕했고, 또 엽이채 입에서 엽영교가 맹흠을 넘보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무리 낯짝이 두껍더라도 다시 맹씨에게 부탁하기는 곤란했다.

묘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또 이렇게 덧붙였다.

“넌 형제자매가 적고 네 고모는 너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잖니. 네 고모가 좋은 곳에 시집가면 서로 돕고 지낼 수 있을 게다.”

엽이채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묘씨는 그제야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이때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손씨는 얼른 아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

“배고픈가 보다.”

“제가 먹일게요! 가슴이 부풀어서 아프거든요.”

장씨 가문은 젖을 먹이는 유모를 고용했지만, 엽이채는 젖이 많이 나오는 편이라 젖몸살도 심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렇게 본인이 직접 먹이곤 했다. 엽이채는 아이를 안고 침실로 향했다.

“어머님, 영교 아가씨 일은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야기가 어떻게 이리 안 좋게 퍼지는 거예요?”

손씨가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궁금해했다. 묘씨가 어두운 낯빛을 보이자 그녀 뒤에 있던 전 마마가 대신 말했다.

“한 부인께서 중매를 서려고 하셨는데… 실수하셨는지 그 말을 모두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신 거예요. 그런 뒤 사람들이 멋대로 이야기를 퍼뜨린 거죠. 저희도 맹씨 가문과 사돈을 맺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 마마는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아 여기까지만 알려 주었다.

“아이고, 어떻게 그럴 수가…….”

손씨가 계속 물고 늘어질 모양이자 묘씨는 허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가서 찾아봐야겠다.”

그리 말하고선 나씨와 함께 엽미채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손씨는 그들이 나간 쪽을 쳐다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침실로 향했다. 가 보니 엽이채는 발보상拔步床에 앉아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쌀쌀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갔어요?”

“무슨 낯으로 오래 머물고 있겠니.”

손씨는 엽이채 맞은편에 놓인 수돈에 앉아 냉소를 지어 보였다.

“작년에 네 혼수…….”

말을 꺼내던 손씨는 낯빛이 새파래졌다. 혼수를 전부 날려 먹은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때 우리가 아버님 앞에서 소란을 피우며 네 고모에게 혼수를 빌리지 않았느냐?”

과거 일이 떠오르자 엽이채의 마음속 손씨에 대한 원망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 불행을 즐기는 듯한 눈빛을 내비쳤다.

“그때 우리는 네가 장씨 가문에 시집가면 나중에 네 고모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지. 그런데 네 고모가 어이없다는 듯 ‘흥’ 비웃으며 그렇게 말할 줄 누가 알았겠니. ‘나는 비렁뱅이에게 시집을 가나 보죠? 장씨 가문의 도움을 받아야 하게? 시집가서도 장씨 가문에 빌붙어야 하고요?’”

그녀는 가성假聲으로 엽영교가 당시 했던 말을 흉내 내더니 쯧쯧 혀를 찼다.

“그때 그 목소리가 얼마나 쟁쟁했니. 우리 도움은 필요 없다고 했지. 그런데 이젠 묘씨 가문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것보다 상황이 더 엉망이 되어 버렸구나. 아예 시집조차도 못 갔으니 말이다. 어디 두고 보자꾸나.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게다.”

엽이채는 그 말을 듣더니 그제야 경직된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맞아요. 저희를 짓밟았던 그 쓸모없고 뻔뻔한 것들은 분명 벌을 받게 될 거예요! 일단 고모부터…….”

그리고 그다음은 엽연채다! 그렇게 한 명씩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전에 엽영교의 혼사는 아주 안정적이었고, 훌륭한 정혼자를 두었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일이 터질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혼인 전에 서자를 낳는 것보다 훨씬 추잡한 일이었다.

이렇듯 삶은 늘 깜짝 놀랄 일들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엽이채는 마침내 질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와 희망의 불씨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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