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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294화 (294/858)

제294화

지난번에 혼례식을 올릴 때 그들은 귀중품을 전부 엽씨 가문으로 옮겨 놓아 송화 골목의 영존거에는 옷 몇 벌과 가구, 주방용품 등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어제 은정랑은 엽승덕을 부추겨 진 마마를 데리고 엽씨 가문으로 돌아가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유이가 뛰쳐나오더니 ‘퉤’ 침을 뱉었다.

“우리 가문 물건 중 당신들 것이 어디 있어? 어?”

“다른 건 필요 없다. 하지만 우리 옷가지 같은 개인 물품은 우리에게 돌려줘야지.”

진 마마가 새파란 얼굴로 대꾸했다.

“흥! 당신들 옷은 말할 것도 없고 해진 양말 한 짝도 다 우리 엽씨 가문 돈으로 구입한 거잖아.”

유이는 성난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더 이상 소란스럽게 굴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전부 벗겨 버려 도로 가져가겠어. 그 옷도 우리 엽씨 가문 것이니까.”

진 마마와 엽승덕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여기에 엽승덕은 몸져눕기까지 했다. 은정랑은 엽승덕이 몸에 차고 있던 옥패를 저당 잡아 은화 칠십 냥을 구한 다음 열이 끓는 엽승덕을 위해 의원을 불러 치료하고 약을 지었다.

지금 엽승덕이 저를 또 부르니 은정랑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본채의 침실로 들어갔다.

엽승덕은 상처 부위에 염증이 생겨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정랑… 물…….”

통증에 이를 악물면서도 엽승덕은 지금 가슴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난하고 초라하면 뭐 어떤가? 이런 때야말로 고난 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볼 수 있고 동고동락할 수 있는 법이었다.

이 시기를 견뎌 내고 한 발씩 위로 올라가 다시 날아오르게 됐을 때, 자신들은 지금 이 괴롭고도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하게 될 것이었다.

잠시 후, 은정랑은 식사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준비된 음식은 흰죽 한 사발과 짠지뿐이었다.

엽승덕은 그 음식을 보더니 감회가 새로워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이런 음식을 먹을 때가 있군. 그래도 담백하니 지금 내게 딱 알맞은 음식이오.”

“맞아요. 나리께서는 지금 아프시잖아요.”

은정랑은 하하 웃었다. 전에 그가 몸이 아플 땐 제비집과 고깃죽을 먹였지만 지금은 이런 신세였다.

엽승덕이 식사를 마치자 은정랑은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다음 허서의 방으로 들어갈 때는 세 가지 반찬과 탕 하나를 들고 갔다. 삶은 닭, 생선조림, 채소볶음 그리고 제비집 두 그릇이었다.

은정랑도 지금은 절약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도저히 욕구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변변치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전에 누렸던 부귀한 생활이 떠올라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가난하게 지내야 하지? 어째서 이 지경까지 됐지?’

그래서 은정랑은 욕망을 분출하듯 전처럼 제비집을 샀고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돈이 한정적이니 좋은 음식은 자신과 허서만 먹었다.

‘엽승덕은 지금 병이 났으니 좀 가볍고 담백한 걸 먹여야 해!’

그렇게 모자는 방에 숨어 몰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허서가 닭다리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어머니, 이렇게 지내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엽씨 가문은 죽어도 저희를 받아 주지 않을 거예요. 도성에서는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됐으니 어서 여기를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용모라면 어쩌면 재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뛰어나게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꽤 곱고 우아한 자태를 갖고 있는 편이었다. 또 자신은 학식이 있고 총명하니 도성을 떠나면 어쩌면 또 엽승덕 같은 호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 돈만 생기면 신분을 바꾼 뒤 반드시 과거 시험을 다시 볼 것이다. 그래서 박살을 내 줄 것이다. 저를 짓밟았던 사람들을 모조리 발아래에 놓고 짓밟아 줄 것이다.

“지금 수중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리 말하는 은정랑의 속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돈을 더 구한 다음에야 그리할 수 있어.”

“지금 가장 값이 나가는 건 이 집이에요.”

허서가 모질게 말했다.

“집문서를 찾아내 팔면 은화 수천 냥은 될 거예요.”

은정랑은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집문서도 엽승덕이 엽씨 가문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엽씨 가문에서는 아직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집문서를 찾아냈다면 분명 자신들을 쫓아내려고 했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 * *

온씨의 일은 공정하게 처리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진씨는 치미는 화를 꾹꾹 눌렀다. 온씨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것이다. 그녀는 평처가 아니고 어엿한 정실부인이었다. 지금 이혼을 했다 하더라도 잘못은 엽승덕에게 있었다.

진씨가 들고 있던 청자 찻잔을 항탁 위에 ‘탁’ 하고 내려놓자 낭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뭐 어떻게 되는 것이냐? 앞으로 우리 주씨 가문이 온씨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냐?”

진씨가 냉소를 짓자 하좌에 앉아 있던 백 이낭은 순간 어이가 없었으나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분은 큰언니 댁에서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진씨는 한층 언짢았다. 엽연채가 온씨가 지낼 거처를 따로 마련해 주었다면 이때다 싶어 화를 냈을 텐데, 온씨가 큰언니 집에서 지낸다고 하니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했다.

“뒤로 몰래 얼마나 갖다 안길지는 모를 일이지.”

진씨가 냉랭한 목소리를 내자 백 이낭은 입꼬리를 비죽거렸다. 엽연채가 얼마를 갖다 안기든 간에 그건 엽연채의 혼수였다. 진씨가 셋째 내외에게 한 푼이라도 쥐여 줬던 적이 있는가?

설령 엽연채가 정말로 궁명헌에 있는 모든 물건을 추씨 가문으로 가져다 놓더라도 고작해야 낡아 빠진 탁자와 의자 따위뿐인데 은화 한 냥이나 될지 모를 일이었다.

“마님, 매파 고씨가 왔습니다.”

이때, 밖에서 녹엽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진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어서 들라 하거라!”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백 이낭에게 말했다.

“보거라. 그 어린 계집애에게 기대지 않으면 우리가 좋은 혼처를 못 구할 것 같으냐? 흥!”

“하하…….”

백 이낭은 얼굴 근육을 씰룩거렸다. 집안이 일어선 게 누구 덕인지는 왜 조금도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저렇게 엽연채를 어린 계집애라고 욕하면서도 그녀의 세를 이용해 혼담 이야기를 꺼내는데 속으로 껄끄럽지도 않은 걸까?

잠시 후, 둥그런 얼굴에 통통한 몸집을 가진 오십 대 초반 부인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오복봉수五福奉壽(다섯 마리 박쥐가 ‘수壽’ 자를 둘러싸고 있는 문양으로, 다복과 장수를 상징함) 문양이 들어간 갈색 조끼를 입고 있었고, 열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수수한 옷차림의 어린 여종이 그녀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매파 고씨가 미소를 지으며 진씨에게 예를 올렸다.

“부인, 평안하셨습니까?”

“일어나 앉으시게나.”

진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매파 고씨는 도성에서 아주 유명한 매파였다. 그녀의 주선 대상은 상류층 귀족뿐이었고, 또 신용이 아주 좋고 입도 무거워 매관보다 훨씬 믿음직했다. 전에는 매파 고씨를 부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는데, 이제는 진씨의 초대장을 받자마자 그녀가 오겠다고 답했던 것이다.

고씨가 자리에 앉자 녹지가 차를 내왔고 고씨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부인, 어떤 자제분의 혼처를 구하고 싶으신가요?”

그녀는 소식통이라 이미 주씨 가문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주씨 가문은 아들 하나와 딸 둘이 미혼인데, 서차남인 주종과는 파혼을 한 지 얼마 안 됐고 적장녀인 주묘서와 서차녀인 주묘화가 미혼이었다.

진씨가 고씨를 집으로 불러 이야기하려는 건 당연히 자신의 딸인 주묘서의 혼담이었다. 그리고 혼담을 논할 때는 일반적으로 매파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자녀가 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집안에 미혼인 자식이 셋이 있으니 당연히 셋 다 혼담을 꺼내야 하나, 차남은 과거 시험 준비로 바쁘니 합격한 후에 생각해 볼 것이오. 차녀는 아직 어리니 우선 장녀의 혼처를 먼저 구해야겠소.”

“소저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요?”

진씨의 대답에 고씨가 물었다.

“우리 큰아가씨는 올해 열다섯이고 이름은 묘서입니다. 용모도 꽤 고운 편이죠.”

백 이낭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고씨도 오는 길에 보았다며 반색했다.

“방금 전에 들어올 때 앞에 있는 팔각정자를 지나다가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소저가 놀고 계신 모습을 봤습니다. 한 소저는 녹색 배자를, 다른 소저는 앞섶이 교차하는 수홍색 유군을 입고 있었습니다. 두 분 중 어느 분입니까?”

“자네가 이미 보았다 하니 부르지 않아도 되겠구먼. 괜히 부끄러워만 하겠지. 수홍색 옷을 입은 아이네.”

“아유. 정말 어여쁘시던데요! 곱고 아리따운 따님이라 시집 걱정은 접어 두셔도 될 것 같던걸요.”

고씨가 진씨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부인께서는 어떤 집안을 혼처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진씨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우린 요구하는 게 그리 많지 않은 편이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집안 수준이 엇비슷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고말고요.”

고씨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기 전에 생각해 둔 혼처가 있었다.

“제가 혼인 상대로 알아본 괜찮은 청년들이 있는데 부인께서 생각하시기에 적합한 상대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말을 하는 사이 뒤에 있던 어린 여종이 두꺼운 선장본線裝本을 꺼냈다. 고씨는 선장본을 넘겨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한 곳에서 멈추었다.

“여기 국자감 학장의 적출인 막내아드님이 있습니다. 올해 열여덟 살이고 현재 국자감에서 학문을 익히고 있는데 학식이 아주 뛰어나지요.”

그러자 진씨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엔 급제했는가?”

“하하. 마님,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데 무슨 과거 급제입니까?”

고씨는 웃음을 지었고 진씨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겨우 열여덟 살에 무슨 과거 급제냐고? 주운환은 이미 장원 급제자가 되었잖는가.

고씨는 이 가문에 소년 장원 급제자가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나 멋쩍은 듯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가문의 자제가 다 그렇게 대단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 사람들이 모두 주씨 가문 셋째 공자께서 정말 신통하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씨가 주운환을 칭찬하자 진씨는 짜증이 치밀었지만 지금은 주운환의 체면을 깎아서는 안 되었기에 그저 ‘하하’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은 없는가?”

“있습니다.”

고씨는 다시 선장본을 뒤적이더니 다른 청년을 소개했다.

“영순후永順侯의 세자인데 현재 오성병마사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순후부永順侯府는 가세가 평범해 예전 엽씨 가문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였다. 가슴이 답답해진 진씨는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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