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화
그러자 주위의 백성들이 일제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엽씨 가문 같은데! 이젠 이혼까지 할 지경인가 봐!”
“형님, 왜 이혼을 하시려는 거예요.”
나씨가 진심 어린 말로 온씨를 설득했다.
“이제 은정랑이 벌인 추접한 일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됐잖아요. 그런데 그 여인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겠어요?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는 계집이에요!
우리가 이겼는데 왜 형님은 굳이 이혼을 하시려는 거예요? 그렇게 고생스럽게 싸우다가 이제서야 이기게 됐는데, 이혼을 해 버리면 저 여인 좋은 일만 해 주는 것 아니겠어요? 어서 집으로 돌아오세요. 전처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이 맞다!”
엽학문도 눈을 부릅뜨고 동조했다. 그러나 온씨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금 전에 저 사람이 이혼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큰애가 이혼하려고 해도 우리가 그 애의 뜻을 따라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묘씨가 다급히 말했다.
“큰애가 어떻게 천리天理를 저버리고 말썽을 부릴 수 있겠느냐? 넌 우리 가문에서 중매인을 통해 정식으로 맞이한 며느리다. 큰애가 이혼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이혼할 수 있겠느냐?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걱정 말거라!”
“그럼 할머니와 숙모는 어쩌고 싶으신 건데요?”
엽연채가 돌아서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혼하지 않으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저희 어머니는 예전처럼 외롭게 영귀원을 지키고 엽승덕은 밖에서 첩실을 끼고 살며 온 마음을 그 첩실에게 바치겠네요. 예전처럼 말이죠?”
“그게…….”
묘씨와 나씨는 순간 멍해졌다.
“저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온씨의 눈가는 벌겋게 부어 있었다.
“분명 잘못한 사람은 저 사람인데 결국 제가 매일 저쪽의 눈치를 보며 모욕을 당하겠죠. 그리고 저 사람이 제 자식을 해칠까 봐 전전긍긍하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겁니다!
지금 저 사람은 아내와 자식을 죽인 것과 다름없는 짓을 저질렀는데, 이렇게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다시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라고요?”
온씨의 말에 묘씨와 나씨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다 같은 여인이니 온씨의 심중을 어찌 모르랴. 자신이 온씨였어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집안이 이 꼴이 되어 버려 이미 만신창이이니, 더 이상 소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온씨와 지내는 데 이미 익숙해졌으니 다른 사람이 그녀의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밖에 있던 은정랑과 허서는 온씨의 말을 듣더니 낯빛이 확 변했고 눈빛엔 두려움이 어리었다.
은정랑은 얼른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승덕… 아니…….”
말을 하던 은정랑은 엽승덕을 부를 수는 없어 온씨를 불렀다.
“형님, 전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엽씨 가문으로 들어가 첩실이 되겠습니다! 형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차를 올리겠습니다.”
“하!”
온씨는 냉소를 지었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넌 스스로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넌 파렴치하고 천박한 년이다! 네 주제에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차를 올리며 날 형님으로 부르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 내 눈과 귀를 더럽히지 말거라.”
은정랑은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퉷! 퉤! 퉷!”
주위의 나이 든 노파와 부인들은 은정랑을 향해 일제히 침을 뱉었다. 개중 팔십 대로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한 노파는 목구멍에서 ‘칵’ 소리를 길게 내더니 누렇게 농익은 가래를 은정랑의 얼굴에 뱉었다.
은정랑이 얼굴에 찐득찐득 들러붙은 가래침을 손으로 닦아 보니 역겹고 끈적이는 누런 침이 묻어났다.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가래에 그녀는 몸이 굳어지더니 이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그녀는 구역질이 나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어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허서는 놀라 그저 멍하니 있는데 그 팔십 대 노파가 또 ‘칵칵’ 소리를 내며 그를 쳐다보고 가래침을 만들자 그 역시 ‘으악!’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은정랑을 쫓아 도망가 버렸다.
엽연채와 온씨, 온사월은 그 광경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부윤도 기가 막혀 얼굴 근육을 떨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 나, 역겨워서 웃음밖에 안 나오는구나!’
“정랑!”
엽승덕도 역겨움에 몸서리를 치며 은정랑을 불렀다.
“부윤 대인!”
이때, 엽연채가 정 부윤을 불렀다.
“크흠, 말해 보거라.”
정 부윤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제 판결하실 수 있나요?”
엽연채가 물었다.
“이, 이혼은 안 된다!”
엽학문은 여전히 큰소리를 치며 온씨에게 말했다.
“이혼을 하면 연채는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저 아이가 어떻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겠느냐? 어미가 이혼을 하면 사람들은 얼씨구나 하고 연채를 비웃을 것이다.”
“아버님, 절 평처로 만드실 때는 어째서 연채가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연채가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에게 어떤 비웃음을 당할지 생각하지 않으신 겁니까?”
온씨는 엽학문을 쏘아보며 냉소를 지었고, 엽학문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제가 아버님께 말씀해 드리죠!”
온씨의 눈빛에서는 순간 처량함과 분노가 느껴졌다.
“저희 모녀가 추씨 가문에 숨어 있을 때 한 여종이 매일같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날마다 문밖에서 욕을 하며 저는 평처고 연채는 가짜 적녀라며 저희를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어떤 이는 심지어 추씨 가문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와 연채를 서녀라고 비웃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제 사위를 불효자라고 욕하며 최고의 학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위를 향한 탄핵 상소가 눈덩이처럼 쌓였죠!
그때 아버님께서는 왜 두 아이를 생각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상처들은 전부 아버님이 주신 겁니다!”
“무슨……!”
엽학문은 대번에 고함을 내지르며 정색했으나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대인, 이혼하라고 판결하실 것 아닌가요? 그럼 빨리 판결해 주십시오!”
엽승덕이 냉랭한 목소리로 정 부윤을 재촉했다.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지라 고통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엽학문은 이 불효자 때문에 화가 치밀어 또다시 피를 토할 뻔했다.
“그럼 이혼하도록 하라! 엽승덕과 엽씨 가문이 온씨에게 저지른 일은 이혼하기에 충분한 사유다.”
정 부윤이 말했다.
“그리고 제 아들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판결이 나자 온씨가 바로 이리 말했다.
“뭐라 했느냐? 균이는 우리 엽씨 가문 손자다. 네가 뭔데 그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것이냐?”
엽학문은 분노하며 결사반대했다.
“아버님은 균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그 아이를 도성 밖의 허물어진 절에 버리셨잖아요.”
온씨가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균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건… 그 아이도 다른 자의 다리를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버린 건… 너희들이 그 아이를 데려갈 줄 알아서 그리한 것이다. 영교가 너희들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았더냐? 내가 그리한 건… 그저 균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올 생각이었단 말이다.”
말 같잖은 변명에 엽연채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서가 여전히 할아버지의 귀한 손자였어도 오라버니를 집으로 데려가셨을 거예요?”
“다, 당연히… 그랬을 게다!”
엽학문이 목을 쳐들고 핏발을 세우며 헛소리를 늘어놓자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분명 엽학문이 엽균을 내버릴 때는 분명 어머니와 자신이 그를 데려갈 거라는 생각을 해 그렇게 모질게 행동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데려가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전생에서는 그의 다리를 부러뜨린 후 집 밖으로 영영 쫓아냈었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됐으니 엽균을 다시 데려가면 전생처럼 내쫓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는 자신과 어머니가 다 살아 있고, 또 자신은 장원 급제자의 부인이, 어머니는 평처 신세 정실부인이 됐으니 엽균을 쫓아내면 그 모양새가 지극히 나쁘지 않은가.
정 부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엽균은 이미 열여덟 살이니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겠다.”
어린아이였다면 할아버지가 다리를 부러뜨리고 내버렸으니 어머니가 데려가도록 판결했겠지만, 성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었다.
“맞습니다. 균이에게 물어봅시다! 그 애에게 물어보는 게 마땅하죠!”
엽학문은 콧방귀를 뀌며 응하더니 바로 엽균을 찾았다.
“균이는 어디 있느냐?”
“별장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사람을 보내 데려오라고 했으니 거의 도착했을 겁니다.”
온씨가 말했다. 엽연채는 엽학문이 이렇게 나오리라 이미 예상했기에 사람을 시켜 엽균을 데려오게 했다.
“그럼 기다려 보지.”
정 부윤이 말했다.
그렇게 대략 삼각 정도 지나자 마침내 하인들이 활간滑杆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활간 위에 앉은 엽균은 바짝 야위어 있었다. 전에 그의 피부는 옅은 누런빛을 띠었는데 집 안에 박혀 한동안 몸조리를 하니 피부가 아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몸이 쇄약해져 창백해진 것이었다.
엽균은 엽연채와 온씨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채 감히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엽균은 듣거라. 지금 네 부모가 이혼을 한다는데 너는 어찌할 것이냐?”
정 부윤이 하문하자 엽균은 낯빛이 더욱 하얘지더니 엽연채를 쳐다보며 이름을 불렀다.
“연채야…….”
그러나 엽연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볼 뿐이었다.
“엽씨 가문에 남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어머니를 따라갈 거면 엽씨 가문 족보에서 나오면 되고요.”
엽균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엽학문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제가 엽씨 가문에 남으면 가산을 저에게 주실 건가요?”
그 말에 엽학문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하, 안 주시겠다면 제가 뭣 하러 이 집안에 남아 있겠습니까?”
“네 이놈! 너처럼 말하는 녀석이 어디 있느냐? 입만 열었다 하면 가산 이야기냐? 효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게냐?”
엽학문은 성난 목소리로 엽균을 꾸짖고는 적당히 무마하려 했다.
“가산 같은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엽균이 새파란 얼굴로 외쳤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데 아주 진저리가 났으니, 주실 건지 아닌지 정확히 이야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