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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282화 (282/858)

제282화

정안후부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문을 지키는 하인들은 한쪽에 놓인 나무 걸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앞 대로는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곳곳에 노점을 편 상인과 물건을 파는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근처의 한 혼돈餛飩 노점상. 다리가 낮은 네모난 식탁이 놓여 있고 혼돈을 먹는 백성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어제 엽씨 가문에서 정실부인을 집으로 데려온 일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혼례식 정말 성대하더라. 무슨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 같던데.”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억울하게 살았다잖나. 정실부인이 분명한데도 줄곧 밖에서 지내며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오해를 받았고 공연히 6년 동안 ‘외실’로 지냈잖아.”

“그 온씨라는 사람이 매몰차고 악독하대잖아. 분명 그 은씨가 정실부인인 걸 알고 먼저 선수를 쳐서 은씨를 이낭으로 들이려고 몰아붙였던 거지. 정실부인을 첩실로 만들고 평처인 자신이 정실부인이 되려고 말이야.”

이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탄식했다.

“다행히도 온씨 뜻대로 되진 않았네.”

그런데 이때, 키가 크고 건장하며 덥수룩한 수염이 난 중년 사내가 혼돈 노점상을 지나쳐 정안후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여봐라!”

그 사내는 고함을 쳤다. 큰 종을 친 양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고, 이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뭐야 저 사람?’

“정랑, 서야, 돌아오거라! 서야, 아버지가 돌아왔다! 정랑, 어떻게 그리 엽씨 가문으로 시집갈 수가 있는가!”

허대실이 대문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엽승덕, 이 빌어먹을 놈! 감히 내 처자식을 도둑질하다니! 넌 제 명에 못 죽을 게다! 어서 내 처자식을 내놓거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주위에 있던 백성들은 그 말을 듣더니 하나둘씩 주위로 모여들었다.

“저 사람이 방금 뭐라고 했지? 맞다. 어제 정안후부로 들어간 은씨가 은정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이 가문으로 입적된 아들이 허서라 했고. 그럼 엽승덕이 어제 그 신랑인 거네. 그런데 어떻게 저 사내의 아내와 아들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모두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한쪽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하인들은 이 상황을 보더니 낯빛이 확 변했다. 그들은 서둘러 허대실에게 다가가 그를 밀치며 욕했다.

“넌 어디서 굴러온 개잡것이냐! 감히 우리 정안후부를 기만하려 들다니.”

그런데 허대실이 누군가! 십 년을 병졸로 지내 온 거친 사내 아닌가! 그가 가슴을 탁 내밀자 도리어 두 하인이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정랑, 서야. 내가 너희들을 데리러 왔다! 어서 밖으로 나오너라!”

허대실이 다시 왁왁 고함을 치자 힘으로 그를 당해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하인들은 하는 수 없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그 시각, 안녕당에 모인 이들은 식사 중이었다. 묘씨, 둘째 내외, 셋째 내외, 엽영교 그리고 엽승덕과 은정랑 모자까지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다.

“정랑이 우리 집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식사이니 당연히 함께 먹어야 말이 되죠.”

엽승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엽영교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으니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엽영교는 속으로 엽승덕을 한껏 비웃었다. 전에는 아무리 함께 밥을 먹자고 해도 밥 한 끼를 집에서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라고 해 봐야 단지 온씨와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 천한 여편네를 위해 함께 식사하며 생색까지 내고 있다니!

그런데 이때, 허서의 시동이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허서를 불렀다.

“큰도련님.”

허서는 저를 보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사람을 시켜 남몰래 허대실을 찾아보라고 분부를 내렸으니 아마 거기에 관련된 소식을 가져온 성싶었다. 허서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전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허서는 위자와 함께 걸어 나갔고 밖으로 나온 후에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됐느냐? 허대실을 찾았느냐?”

그 말에 위자는 치통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으… 예, 찾았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허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묻더니 갑자기 손사래를 쳤다.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어서 가서 그자를 해치우거라. 아니다, 내가 직접 가는 편이 낫겠구나.”

그는 그리 말하며 매서운 눈빛을 번득였다. 직접 가서 해치우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 그게, 지금 대문 밖에 있습니다…….”

위자의 목소리는 갈수록 기어들어 갔다.

“대문 밖에 있다고?”

허서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어째서 그자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냐! 우릴 죽이고 싶은 게냐?”

“제, 제가 데려온 게 아니라 그자가 제 발로 찾아온 겁니다. 지금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어요.”

위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자기 탓이 아님을 강조했다.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다고?”

그 말에 허서는 두 눈을 부릅떴으나 도리어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이때, 한 하인이 황급히 뜰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그들 옆을 쌩 스쳐 곧장 방 안으로 달려갔다.

“주인마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큰일?”

묘씨가 담담한 목소리로 묻자 하인은 엽승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엽승덕이 다정히 함께 앉아 은정랑에게 ‘내 안에 당신이 있소.’ 하며 달콤한 말을 건네는 양을 보더니 눈썹을 추켜세우며 고했다.

“대문 밖에서 한 사내가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고함을 치면 뭐? 쫓아내면 그만이지 않느냐!”

손씨가 콧방귀를 뀌며 그를 타박했다. 엽승덕과 은정랑 이 역겨운 인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누군가가 밖에서 소리를 지르는 일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성가시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 그 사내가 ‘정랑, 서야. 밖으로 나오너라! 아버지가 너희를 데리러 왔다!’ 하고 소리치고 있어요!”

하인은 고개를 젓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흉내 냈다.

은정랑은 그 말에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됐고 이어 안색이 확 변했다. 엽승덕도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망발을 하는 게냐! 그런 더러운 인간은 어서 내쫓아 버려라!”

“그 사람이 힘이 무지막지하게 세서 내쫓을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으로 못 쫓아내면 사람을 더 부르면 될 것 아니냐?”

엽승덕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써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 하인은 깜짝 놀라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엽영교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두 눈을 살짝 깜빡였다.

‘음, 이제 재미난 구경거리가 시작되려나 보구나!’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으나 어떤 상황인지 전연 모르는 척하며 묘씨를 흔들었다.

“어머니, 방금 전에 하인이 흉내 낸 말이… 아, 맞다. ‘정랑, 서야.’라고 했는데 이건 새로 들어온 큰새언니와… 조카의 이름이잖아요? 어머, 누가 두 사람을 데리러 왔나 보네요?”

“영교 너! 또 사람들을 부추겨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는구나!”

엽승덕이 버럭 화를 냈다. 그는 엽영교가 반박하며 자신과 말다툼을 벌이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차를 마실 뿐이었다. 입을 연 적도 없다는 양 태연자약한 모습에 엽승덕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엽영교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왔으니 이미 일은 되돌릴 수 없게 된 후였다.

‘이것들아,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은정랑은 사색이 된 얼굴로 바르게 앉아 있었다. 밖에 있던 허서도 얼굴이 흙빛이 된 채로 위자를 내보냈다.

“넌 어서 저 하인을 따라가 그자를 쫓아내거라!”

위자가 얼른 뛰어나가 문 앞에 도착해 보니 그곳엔 열 명이 넘는 하인들이 전부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모여 있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허대실은 여전히 그곳에 서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정랑, 서야. 아버지가 너와 어미를 데리러 왔단다!”

위자를 비롯한 하인들이 허대실에게 냅다 달려들더니 그에게 커다란 몽둥이를 휘둘러 댔다.

“썩 꺼지거라!”

허대실은 하인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위자가 손에 든 벽돌을 힘껏 휘둘러 허대실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갑자기 쳐든 손에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소스라치며 고개를 들어 보니 용맹스러워 보이는 한 장신의 사내가 범같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그를 살벌하게 노려보며 그의 손을 꽉 붙들고 있었다.

그는 바로 허 장군이었다!

“악!”

허 장군이 위자를 홱 내던지자 그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주위에 몰려들어 구경하던 백성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고 군장軍裝을 한 허 장군의 모습을 보더니 더욱 화들짝 놀랐다. 이 사람은 그 허 장군 아닌가?

“누가 감히 내 아우를 업신여기는 것이냐?”

허 장군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어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나더니 대여섯 명 정도 되는 병사들이 커다란 칼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허 장군이 노성을 내지르자 엽씨 가문 하인들은 다리가 다 풀렸다. 거기에 병사들이 들고 있는 번뜩이는 칼은 하도 눈이 부셔 보는 이의 눈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허 대장군이 손에 들고 있던 관우가 휘두를 법한 커다란 칼을 땅 위에 꽂자 ‘쿵’ 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 요란한 소리가 났다.

“싸우고 싶은 자는 앞으로 나오너라!”

열 명이 넘는 정안후부 하인들은 안색이 확 변하더니 모두 뒤로 물러섰다.

“썩 돌아가 네놈들 상전에게 알리거라. 아우의 뒤엔 내가 있다고 말이다! 또 우리가 거친 사람들이기는 하나 함부로 칼부림을 하진 않으니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정안후부 사람이 내 아우의 내자를 빼앗아 갔으니 나와서 시비를 가리라고 하거라.”

허 장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형님은 한쪽에 앉아 계세요. 이 일은 제가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래.”

허대실의 말에 허 장군은 바로 응했다. 허 장군은 본래부터 사소한 일로 시시콜콜 떠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위엄을 보여 분위기를 잡은 다음, 병사들을 데리고 맞은편에 있는 객줏집으로 들어가 대당大堂에 자리했다.

그런데 이 객줏집 2층 귀빈실에서 몇몇 사람이 창가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바로 엽연채, 온씨, 채 마마 그리고 혜연과 추길이었다.

“어머니, 어떠셔요. 구경거리가 볼 만하세요?”

엽연채가 온씨에게 차를 따라 주며 물었다. 그러자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온씨는 얼굴에 통쾌한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아주 재미있구나.”

“그런데 저쪽은 혼인 증서를 가지고 있잖습니까…….”

채 마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자 엽연채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진짜는 가짜가 될 수 없고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으니 기다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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