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264화 (264/858)

제264화

엽연채와 채 마마는 온씨가 마음에 맺힌 울분을 다 쏟아내길 기다렸다가 그녀를 부축해 귀비의貴妃椅로 데려갔다.

“설령… 정말 이혼하신다 해도 이렇게 평처의 신분으로 떠나실 순 없잖습니까?”

채 마마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어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펑펑 쏟았다.

채 마마는 온씨의 유모로, 온씨는 그녀가 어릴 때부터 정성스럽게 보살펴 키운 적출 소저였다. 비록 온씨 가문이 지금 몰락한 상태라지만 당시만 해도 온씨는 학자 가문의 귀한 여식이었다. 엽승덕이 첩실을 끼고 사는 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 흉악하고 모진 마음을 품고선 온씨를 정실부인에서 평처로 끌어내릴 거라고는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 그 여인을 먼저 아내로 맞이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후야께서도 그 모자를 미워하셨던 걸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마음이 변하신 거겠죠. 그 여인이 정말로 정실부인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 지금 정안후부로 들인 그 손자가 공명을 얻었고 학문에 소질이 있으니 저리 아끼시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 거죠!”

채 마마는 말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이제… 마님의 사위께서 장원 급제를 하셨습니다. 아직 관직은 낮지만 황제 폐하께서 그분을 눈여겨보고 계시니 그 파렴치한 모자의 뒤를 파헤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분명 그것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 없을 거예요. 그것들은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이곳으로 온 거거든요.”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주의 깊고 치밀한 허서의 성격을 미루어 볼 때 그가 준비를 철저히 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마 진작에 관아와 이야기를 마쳤을 것이며 도성의 관아뿐만 아니라 상주의 관아와도 이미 이야기를 마쳐 신분 세탁을 했으니 대담하게 이런 연극을 벌였을 것이다.

일개 거인에 불과한 허서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뻔하지 않은가? 바로 태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엽연채는 엽영교의 일이 허서가 여러 차례 농간을 부린 결과라는 점을 잊지 않았고, 그가 복수하려 든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그 복수란 바로 태자의 힘을 빌려 자신이 엽씨 가문 적자로 입적되는 것이었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태자에게 이런 일 처리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테니 말이다.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채 마마는 그리 말하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마마, 걱정 말아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진실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어요.”

엽연채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제 이 집에선 더는 머무를 수 없습니다.”

채 마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멀쩡한 정실부인이 평처가 되어 버렸으니 은정랑 모자가 얼마나 거들먹거릴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하인들도 강자는 떠받들고 약자는 짓밟을 것이었다. 엽연채가 장원 급제자의 부인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녀는 시집간 여식이었다.

반면, 지금 허서의 상황을 보면 그는 정실부인이 낳은 적자인 데다가 장자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가 공명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전도가 유망할 것이니 후작의 지위와 가산은 당연히 그의 손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

“우선 저희 집에서 지내세요.”

엽연채가 이리 권하자 채 마마가 염교를 불렀다.

“염교야, 가서 마님이 입으실 옷 몇 벌을 준비하거라.”

염교와 다른 여종들은 얼른 옷을 준비하러 갔고, 잠시 후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엽연채와 채 마마는 온씨를 부축했고 추길과 다른 여종들은 준비한 물건들을 들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일행이 방을 나서니 엽영교가 황급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연채야, 큰새언니…….”

“그쪽은 어떻게 됐어요?”

엽연채가 물었다.

“뭐 어떻게 됐겠어.”

엽영교의 눈빛엔 싸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입적할 날짜가 정해졌어. 이번 달 스무…….”

엽영교는 온씨의 허약한 모습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말해 주세요.”

온씨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하고 엽연채도 고개를 끄덕이자 엽영교는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팔인대교를 타고 떵떵거리며 들어와야 한다고 했어요! 전에 초라한 혼례식을 올렸으니 이번에 만회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허서도 그날 입적될 거예요.”

온씨는 기가 막혀 헛웃음만 지었다.

“큰새언니, 지금은 밖에서 지내는 게 나을 거예요. 연채야, 큰새언니, 어서 가요!”

엽영교는 이리 말한 후 수화문을 향해 온씨 모녀와 함께 걸어갔다. 그런데 수화문을 나서기도 전에 엽학문, 엽승덕, 허서가 여종들을 데리고 다급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엽학문이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다가섰다. 엽연채 일행이 짐을 들고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본 한 여종이 얼른 가서 이 사실을 아뢰었던 것이다.

어쨌든 ‘죽었던’ 정실부인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돌아왔으니 이유가 불충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거기다 이혼하자고 평처를 몰아붙이거나 집안에서 머무를 수 없게 그녀를 압박하면 당연히 좋지 않은 소문이 나게 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둘째 치고 엽학문은 허서에게 조금의 오점도 남겨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온씨가 은정랑과 허서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모양새가 보기 좋은 것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엽승덕의 생각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은정랑이 드디어 기를 활짝 펴고 설욕하게 되었으니 그녀가 온씨를 짓밟고 못살게 굴며 실컷 괴롭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온씨가 가 버리면 그 재미를 볼 수 없지 않은가.

허서는 엽연채와 온씨가 짐을 들고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통쾌해 마지않았다. 이런 재미있는 광경을 자신이 어찌 놓칠쏘냐.

“방금 전에 저희가 안녕당에서 했던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이혼하신다고 했습니다!”

엽연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혼은 무슨!”

엽학문이 굳은 표정으로 단박에 반박했다.

“이혼하려면 관아에 고발하거라. 하나 관아에서도 감히 판결하지 못할 것이다!”

“저리 비키라고요!”

엽연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차갑고 어두운 표정으로 외쳤다.

“이것이!”

엽학문은 엽연채가 감히 자신에게 하대하듯 말하자 낯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연채야, 집에서 며칠 머무르다 가렴.”

허서가 앞으로 다가서더니 온화하고 품위 있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어머니가 요 며칠 몸이 편찮으셨거든. 네가 남아서 병시중 좀 들어야지. 아, 우리 어머니는 널 난처하게 하시지는 않을 게다. 그저 말동무가 필요하신 것뿐이야.”

그 말에 엽연채와 온씨의 낯빛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런데 이때, 유이가 갑자기 그들 쪽으로 걸어와 아뢰었다.

“후야, 큰아가씨의 부군께서 오셨습니다.”

그 말에 엽학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로 주운환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관복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도 청수하면서도 화려한 외모를 가진 그가 관복까지 입고 있으니 제법 위엄이 느껴졌다.

“운환이가 왔구나.”

온씨는 주운환을 보더니 얼굴에 약간의 희색이 돌았다.

“장모님. 어제 이 사람이 저에게 가족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친정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정에서 나오자마자 저희 집으로 모셔가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겁니다. 어서 가시지요.”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엽연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그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허서는 주운환이 엽연채의 손을 잡는 모습을 보게 되자 멀끔한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매부는 아마 모르나 본데…….”

“그쪽은 누구요?”

주운환은 고개를 돌리더니 곱디고운 눈동자로 그를 힐끗 쳐다봤다. 눈빛엔 경멸이 가득했다. 허서는 주운환이 그런 말투로 자신에게 말하자 기가 찬다는 듯 냉소를 지으며 되받아쳤다.

“오늘 가족 회의는 내 일을 논하기 위해 열렸소. 내 어머니가 정실부인이고 나는 엽씨 가문의 적장자요.”

주운환은 ‘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더니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기뻐하는군요. 그럼 며칠 더 그 자리를 누리시든지요.”

“그게 무슨 말이오?”

허서는 주운환의 말투와 태도에 몹시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주운환은 그를 상대도 하지 않고 쌀쌀맞은 눈빛으로 엽학문을 쳐다봤다. 엽학문은 관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그들을 난처하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록 6품인 편수직에 불과하지만 황제가 가장 아끼는 장원 급제자이며 앞길이 창창하다는 사실이 엽학문의 말문을 막았다.

“기다리시오!”

그러나 허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이제 자신은 엽씨 가문의 어엿한 적장자였다.

“연채야, 집에서 며칠 머무르다 가라니까! 우리 어머니가 요 며칠 몸이 안 좋으셔. 그러니 네가 남아서 병시중을 들어야지.”

“오늘 너무 설쳐 대는 바람에 병이 났나 봅니다?”

주운환은 냉소를 지으며 그리 말하고는 엽학문을 쳐다봤다.

“오늘 마침 의정醫正(태의太醫 관직 중 하나) 탕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가 참 잘 통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본인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도 된다고 하셨으니, 이참에 진찰을 받아 보면 되겠군요.”

그 말에 허서와 엽학문의 표정이 굳었다. 의정은 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은정랑은 이제 막 정실부인의 지위를 얻게 된 참이었다.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자마자 꾀병을 부려 평처가 낳은 딸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게다가 그 딸은 장원 급제자의 부인이기까지 했다.

“갑시다.”

주운환은 엽연채의 손을 잡고 온씨 등과 함께 그곳을 떠났고 허서는 그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래, 좀 더 설쳐 대거라! 이번은 내가 봐주마!”

어쨌든 승리를 거머쥔 쪽은 이쪽이었다. 자신은 엽씨 가문 적자가 되었고 자신의 어머니는 정실부인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대제에는 정실부인을 폐하는 것에 관한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여인 쪽에서 이혼을 원할 경우에는 조건이 더욱 엄격하고 까다로워졌다. 고로 남편이 천인공노할 대죄를 범하지 않는 한 이혼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지금 이 상황만 보더라도 온씨와 엽연채는 부아가 치밀어 화병으로 죽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온씨가 한평생 밖에서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그녀를 집으로 데려올 수도 있다. 그리되면 자신의 어머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차를 올리게 한 뒤 어머니의 시중을 들게 할 것이다.

아무리 엽연채라 하더라도 그녀 또한 친정으로 돌아와 자신들에게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춰야 했다. 허서는 주체 못 할 흥분에 휩싸였다.

주운환은 엽연채를 데리고 수화문 밖으로 나가 마차 위에 올랐다. 온씨는 마차 벽에 기대더니 고단했는지 두 눈을 감았다.

“어쨌든 정안후부에서 나왔네요.”

채 마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저들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저희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리 덧붙이며 눈물을 떨구었다.

“걱정 마세요. 저와 이 사람이 장모님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자들의 잘못이 밝혀지면 그땐 장모님께서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큰 선물?”

주운환의 예상치 못한 말에 온씨가 놀라 물었다.

“허대실이 이미 성 밖에 도착해 있습니다.”

주운환이 붉은 입술을 씩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에요?”

그 말에 엽연채는 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과 설렘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허대실이 누굽니까?”

채 마마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허씨 성을 가진 자라면…….”

온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어 말을 더듬거렸고 창백해진 얼굴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설마… 은정랑의…….”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예, 바로 그자의 ‘죽은 남편’이에요!”

엽연채는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곧 아내를 찾으러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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