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불쌍한 우리 종과 도련님!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을까! 저 빌어먹을 남녀가 한 쌍이 되면 되겠네요! 거리 여인의 짝으론 개가 딱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만고불변의 진리죠.”
비 이낭은 그리 말하며 설옥인을 방 공자 쪽으로 확 밀쳐 버렸다. 그러자 설옥인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 정말로 그런 적 없어요…….”
“불쌍한 우리 종과 도련님!”
비 이낭은 탄식하더니 갑자기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에게 달려가 그녀의 조그마한 손을 붙잡았다.
“우리 종과 도련님과 소저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개만도 못한 남녀에게 배신을 당했죠. 이제 저 둘이 한 쌍이 되었는데 제 아들과 소저의 혼례식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듣자 하니 노부인의 병세가 위중하여 혼례식으로 액막이를 한다고 하던데, 그럼 더 미룰 수도 없겠네요. 지금으로선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습니다. 저 빌어먹을 계집애가 소저의 정혼자를 빼앗아 갔으니 저 계집애에게 자기 정혼자를 내놓으라고 하는 수밖에는 없겠어요…….”
엽연채는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비 이낭은 정말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둘째 아들의 서녀인 설옥인이 첫째 아들의 적녀와 맺어진 정혼자를 꼬셨으니 그 둘을 연결해 주고,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는 급하게 혼례식을 치러야 하니 그녀는 설옥인의 정혼자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 수법, 어째 어디서 본 듯 익숙했다.
설 대부인은 화가 나 뒤로 나자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비 이낭에게 삿대질을 했다.
“넌 뭐 하는 물건이냐! 설령 방 공자가 정말로 설옥인과 그런 짓을 벌였다 하더라도 내 딸과 혼인하겠다는 훌륭한 사내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런데 뭣 하러 너희 가문 서자에게 시집을 가겠느냐! 네 아들에게 시집갈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아, 네 아들이어서 그러는구나!”
비 이낭은 얼굴이 화끈거려 ‘탁’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서자가 뭐 어때서요? 우리 가문 서자가 장원 급제를 했습니다! 그러니 다음은 우리 종과 도련님이십니다.”
주 백야는 너무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고 진씨는 피식하다가 하마터면 소리 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녀는 조그만 나무 걸상이라도 하나 가져와 그 위에 앉아서 이 엄청난 광경을 구경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엽연채는 화가 나면서도 비 이낭이 우습게 느껴졌다. 저 여인이 자신의 혼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따라 해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를 주종과에게 붙여 줄 생각이었다. 정말 징글맞은 사람 아닌가.
“둘째 형은 애정이 깊어 상심이 크겠습니다!”
주운환이 싸늘한 모습으로 주종과에게 다가섰다.
“부군.”
엽연채가 그에게 다가가자 주운환은 걱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제 부인이 시집왔을 때, 비 이낭이 아버지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설씨 가문과의 혼사를 물리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이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배필을 구하겠다고 했는데, 저희는 당연히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라면 작년 시월에 혼례식을 올렸어야 했는데 그 무렵 비 이낭이 병이 나 버렸고, 무당을 불러와 굿을 했더니 올해 사월 후로 혼례식을 미뤄야 한다고 했죠. 그런데 이제 사월이 다가오니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며 혼인 상대를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로 바꾸려고 하는군요.”
그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이 상황에서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세상에는 진실을 밝히는 데 증거가 필요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똑같은 서자인데 주운환은 얼떨결에 후부의 적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비 이낭은 이 불공평한 일을 견디지 못하고 설옥인과의 혼사를 물리고 싶었던 것이다. 주종과도 지체 높은 가문의 적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하필 예비 동서와 정혼녀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겠는가? 게다가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의 혼인 상대도 바꿔치기하려고 했다. 너무나도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났다.
“이런, 부덕婦德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구나. 어서 썩 꺼지지 못할까!”
주 백야가 아무리 성격이 무르다 하더라도 지금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됐습니다. 주씨 가문 둘째 공자가 옥인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모양인데, 그럼 파혼하시죠!”
설 대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자 되레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설씨 가문 둘째 부인을 보며 말했다.
“동서, 옥인이의 어머니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씨 가문 둘째 부인은 입을 삐죽거렸다. 솔직히 설옥인은 그녀의 친딸도 아니기에 그녀가 방에서 늙어 죽는다 해도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주씨 가문 둘째 공자가 이 혼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니 그럼 파혼하시죠.”
“당연히 파혼해야죠. 그런데…….”
자신의 계획이 들통 난 비 이낭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시 서녀인 설옥인을 며느리로 들여야 하게 된 줄 알았는데 설씨 가문에서 파혼을 하겠다고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 이낭은 일단 혼사를 물리게 돼서 무척 기뻤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좀 달갑지 않았다. 또 여전히 주종과가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를 손에 넣도록 돕고 싶었다.
“또 뭘 어쩌고 싶은 게냐?”
분위기를 읽은 설 대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경계심을 표출했다. 이낭 따위를 무서워할 리는 없었으나 일개 이낭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을 벌이는 법이었다.
그리고 설 대부인은 비 이낭을 보자마자 그녀가 막무가내로 소란을 피우는 여인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런 대단한 사돈을 원치 않았다. 안 그러면 오늘 같은 이런 후안무치하고 추잡한 일이 반드시 또 생길 터였다.
“됐으니 그만하거라. 이득 좀 봤다고 우쭐대기는. 정말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를 주씨 가문 둘째 공자에게 시집오게끔 해야 일 좀 제대로 벌렸다고 만족하겠느냐?”
한 손님이 정말이지 더는 못 봐주겠는지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런 거라면 오늘 일은 비 이낭 당신이 꾸민 거겠네요? 설씨 가문 여섯째 소저를 노리고 그런 거겠죠!”
엽연채가 냉소와 함께 정곡을 찌르자 비 이낭은 낯빛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당장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주종과의 준수한 얼굴도 어둡게 변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조롱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니 그는 도무지 얼굴을 들고 있을 수 없어 콧방귀를 뀌더니 허겁지겁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엽연채는 주종과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정말이지 주묘서처럼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어떤 때는 두 사람이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설 소저, 뭐 하는 거예요!”
갑자기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이 든 엽연채가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설옥인이 근처의 석가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석가산에 머리를 부딪쳐 목숨이라도 끊으려는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여러 사람이 설옥인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엽연채가 얼른 다가가 그녀를 위로했다.
“옥인 소저, 저런 보잘것없는 사내 때문에 이럴 필요가 있습니까?”
“흑흑……. 이대로 죽어 버릴 거예요!”
설옥인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은 둘째 아들의 서녀이기 때문에 늘 첫째 내외의 눈치를 봐야 했고, 적모 밑에서 살길도 강구해야 했다. 여기에 할아버지까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상을 치르고 나니 이제 열아홉 살이 되었다. 이 나이에 파혼을 당하게 됐으니 안 죽고 살아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혼인 전에 상대가 저런 형편없는 사내인 걸 똑똑히 알게 되었으니 축하해야 할 일이에요.”
엽연채의 이 말에 설옥인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비 이낭에게 모함을 당해 하마터면 그녀의 평판이 엉망이 될 뻔했고 결국 파혼까지 당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는 말인가?
“소저는 혼인을 바라고 있는데 그걸 통해 뭘 얻고 싶은 겁니까? 단지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잖아요.”
엽연채는 홀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보세요. 주종과가 어떤 인간입니까? 비 이낭은 또 어떤 인간입니까?”
시집을 오기 전에도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정말로 이곳으로 시집을 오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게 뻔했다. 위로는 속 좁은 적모에 아래로는 비 이낭 같은 천박한 인간이 있으니 얼마 안 가서 그들 손에 놀아나다 죽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길 바라며 의지하고 싶은 건가?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단 말인가? 설마 나에게?’
엽연채는 불공평한 일을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렇게 나약하고 바보 같은, 매일같이 자신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서가 하나 생기는 건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가장 좋은 수는 애초에 그녀가 이곳에 시집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건 설옥인 본인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엽연채의 설득에 설옥인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녀는 오늘 비 이낭이 자신을 속여 방으로 데려간 다음 제 옷을 움켜잡고 이곳으로 끌고 왔고, 거기에 사람들 앞에서 옷까지 찢어 버린 일을 떠올리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비 이낭이 적모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정말로 액을 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뭐 하는 것이냐?”
이때, 설 대부인과 둘째 부인이 함께 그곳으로 걸어왔고 둘째 부인은 소름 끼치도록 싸늘한 눈빛으로 설옥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서 안 가고 뭐 하느냐? 이 정도 창피론 부족한 것이냐?”
설옥인은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설씨 가문 사람들도 더 머무르기가 민망해 엽연채에게 인사를 건넨 후 설옥인을 끌고 함께 그곳을 떠났다.
비 이낭, 주종과 두 인간이 벌인 소동 때문에 축하연 분위기가 영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 초대된 문인과 재자들이 눈치껏 시를 읊으며 대구對句를 만들기 시작하자 방금 전에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지워졌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손님들은 하나둘 정국백부를 떠났다. 일부 떠나고 싶지 않았던 문인들은 기어이 주운환에게 책론에 관해 가르침을 청했다.
결국 오후 신시申時(오후 3시~5시)가 다 되어서야 손님들을 모두 돌려보내게 되었다. 그 문인들이 주씨 가문 대문 밖으로 나가자 붉은 칠이 된 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대문 밖. 허서가 맞은편 자수 상점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흥겹고 떠들썩한 분위기로 가득한 주씨 가문 저택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
‘그리 즐거운 날도 며칠이면 끝이다! 곧 너희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질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