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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252화 (252/858)

제252화

부인과 규수들은 그녀를 보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상관운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며 놀라워했는데, 그녀보다도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가 있을 줄이야.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띤 얼굴로 동조했다.

“정말 그렇군요!”

신양 공주는 엽연채를 당기며 자리에 앉힌 다음, 자신과 엽연채의 깊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쩌다가 자신의 별장에서 지내게 되었는지, 또 그녀가 어떻게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는지 등에 대해 알려 주며 자신들은 만나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친해졌다고 덧붙였다.

“그때 보자마자 복이 있는 아이라는 걸 알아봤죠. 역시나 그랬어요.”

신양 공주가 미소를 지으며 엽연채를 치켜세우자 태자비는 짜증이 나 고개를 들어 엽연채를 쳐다봤다.

수홍색 대금식 유군을 입은 엽연채는 날렵한 몸매에 곱고 아리따운 용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정자 안에 있던 봄꽃처럼 아리따운 규수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묻혀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엽연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붉은 입술을 씩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태자부에서 자신에게 보였던 구차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태자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엽연채는 원래 자신의 사냥감이며 태자를 꼬드길 미끼였다.

그런데 엽연채에게 이렇게 떵떵거릴 날이 올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에 그녀의 신분이 미천할 때는 영화와 부귀를 이용해 그녀를 유혹할 수 있었지만, 이제 남편이 장원 급제를 해서 앞날이 탄탄대로가 되었는데 그녀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고 싶어 하겠는가?

“마마.”

이때, 엽연채가 빙그레 웃으며 태자비 앞으로 다가와 예를 올렸다.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어머, 태자비 마마께서도 장원 급제자의 부인을 알고 계신 겁니까?”

태자비 옆에 앉아 있던 한 귀부인이 물었다. 짙은 남색 빛깔의 궁중 예복을 입은 그녀는 마흔 살 가까이 되어 보였는데 바로 노왕비魯王妃였다.

대제의 황자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는 네 명밖에 없었다. 첫째 황자가 노왕이었고, 셋째 황자가 바로 태자이며, 넷째 황자는 양왕, 다섯째 황자는 용왕이었다. 첫째, 셋째, 넷째 황자는 모두 장가를 갔고 용왕은 열일곱밖에 되지 않아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다.

지금 정선제의 세 며느리는 모두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태자비는 노왕비의 말을 듣고는 안색이 확 변했다. 원래도 매서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더욱 매섭게 변하자 노왕비는 깜짝 놀랐다.

‘설마 방금 전 내가 했던 말이 태자비의 약점을 건드리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노왕비는 내심 후회가 됐다.

노왕비가 자신이 한 말을 수습하려는 찰나, 항아리 문양이 들어간 장화 비단 배자를 입은 한 아리따운 소녀가 한발 빨리 입을 열었다.

“물론 알고 계십니다. 태자비 마마께서는 저와 작은 새언니가 차를 끓이고 말린 꽃을 만드는 손재주를 아주 좋아하세요. 작년에 자주 태자부로 부르셔서 저희가 마마와 태자 전하께 차를 끓여 드리곤 했습니다!”

주묘서는 그리 말하며 간절한 눈빛으로 태자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잔꾀를 부린 자신에게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지금 사람들 앞에서 태자비가 자신들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으니 앞으로 태자비가 태자부로 사람을 부를 때 저를 부르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귀부인들과 규수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고 신양 공주도 의아한 눈빛으로 태자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쨌든 제 처소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태자부로 부르시면서 왜 저에게는 알려 주지 않으셨어요? 좀 이상하네요.”

신양 공주는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나 태자비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놀라서 넋이 나가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꽃잎을 닦고 차를 끓였다는 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태자부는 최근 다사다난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묘기화 일도 아직 채 다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태자가 금족禁足을 당해 외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를 사내를 데리고 노는 남색가로 보고 있었다. 게다가 태자는 작년에는 백여언이라는 미인을 아내로 맞이해 태자부로 들였다.

사람들은 이 일련의 일들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보고는 결국 하나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바로 태자는 호색한인 데다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묘서가 뜻밖에도 자신이 엽연채와 그녀를 자주 태자부로 불렀다고 언급한 것이다. 주묘서만 불렀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하필이면 엽연채까지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엽연채는 뛰어난 외모를 가진 미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묘서는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태자 전하께 차를 끓여 드리곤 했습니다!”

태자비와 태자는 엽연채에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불순한 목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켕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주묘서가 그런 말을 꺼내고 신양 공주도 질문을 던지자 태자비의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마마…….”

주묘서는 애절한 표정으로 태자비를 쳐다보며 작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려 했다.

“제가…….”

“그때는 한창 한가하게 지냈었죠!”

태자비는 허허 웃으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때 주 부인이 만든 말린 꽃이 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걸 보면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죠. 그래서 한두 번 태자부로 불러 말린 꽃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는 김에 차도 끓이게 했죠. 하나 지금은 바빠서 어디 한가하게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태자비 뒤에 서 있던 금슬이 얼른 주인을 도왔다.

“마마께서 소인에게 며칠 후에 주 부인의 저택에 가서 말린 꽃을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인즉, 태자비는 정말로 말린 꽃을 원했을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세요.”

금슬의 말에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반면, 태자비는 속에서 짜증이 치밀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투자했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게다가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엽연채를 보니 작년처럼 애타게 태자부에 찾아와 자신들에게 달라붙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태자비는 속이 답답해져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좋다. 배은망덕한 것. 대번에 안면몰수하다니! 전에는 그렇게 구차하게 굴더니 지금은 감히 내 앞에서 기고만장하게 구는구나.’

“요즘 태자비 마마께서 얼마나 바쁘신데요!”

노왕비는 태자비가 이 화제를 꺼리며 피하려 하는 것을 보더니 얼른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오늘은 어마마마를 도와 전시 합격자들을 위한 연회를 준비하셨고, 이 달 중순에는 강왕 전하께서 오시는데 이번에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시니 환영회를 준비하셔야 하죠. 또 집안에 잡다한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으니…….

다행히도 태자비 마마께서 수완이 좋으신 분이니 망정이지요. 이 모든 일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다 노왕비 마마 덕분이에요. 모두들 준비하느라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죠.”

태자비는 노왕비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화살을 양왕비에게 돌렸다.

“모두가 넷째 동서처럼 한가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죠. 궁 안의 일은 고사하고 집안일마저도 측비가 대신 돌보고 있잖아요.”

정자 안의 귀부인들과 규수들은 조용히 웃으며 멸시 어린 눈빛으로 조앵기를 쳐다봤다. 여기서 허수아비 왕비는 오직 그녀 하나뿐이었다.

조앵기는 입을 비쭉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숙이고 반쯤 먹은 사과를 움켜쥘 따름이었다. 그녀는 이런 모욕에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공주 마마, 전 옷을 갈아입으러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때, 엽연채가 작은 목소리로 고했다.

“오, 그럼 그만 가 보시게나!”

신양 공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공주 마마.”

엽연채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자비와 노왕비 등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 자리를 떴다. 그녀가 정자 밖으로 나와 옥난간이 달린 아치형 돌다리를 지나가는데 조앵기가 치마를 들고 그녀를 쫓아왔다.

“어디 가요?”

엽연채는 고개를 돌려 미소와 함께 답했다.

“저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답답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려고 합니다.”

“아, 나도 그래요.”

조앵기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나도 저 사람들하고 안면을 좀 트려고 온 거라 저곳이 아니면 딱히 갈 데도 없어요. 그쪽이 왔으니 함께 돌아다니면 되겠네요.”

“그런데 마마께서는 이런 곳에 잘 안 오시지 않았습니까?”

동행하자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던 엽연채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에 무슨 연회가 있으면 모두 육 측비가 참석하며 조앵기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일부에는 참석해야 돼요.”

조앵기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황제 폐하의 생신 축하연이나 이런 중요한 자리들, 또는 나라에서 주최하는 국빈을 위한 연회 같은 게 있을 경우 양왕 전하께서는 육 측비가 날 대신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세요. 내가 직접 참석해야 하죠.”

그러자 엽연채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겁니까?”

“네.”

조앵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황제 폐하께서… 제가 아무것도 모르니 이런 연회가 있으면 육 측비가 절 대신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양왕 전하께서 그리 못 하게 하세요. 그분은 규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 집안에서도 지켜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반찬 하나 더 집는 것마저도 못 하게 하신다니까요.”

엽연채는 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반찬 하나 더 집는 것도 안 된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그분과 함께 있는 거예요. 다행히도 그분에겐 첩실이 아주 많아서 규율에 따라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에만 절 찾아오시죠. 그런데 식사는 매일같이 그분과 함께 해야 해요.”

조앵기는 그리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엽연채는 불현듯 지난번 어계루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이 양왕에게 같이 식사하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 그가 먹지 않겠다고 답했던 것, 그를 모시던 마마媽媽가 양왕은 항상 집에서 식사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양왕이라는 사람이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저 조앵기가 불쌍할 따름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인간한테 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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