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242화 (242/858)

제242화

장씨 가문 사람들은 ‘장원 급제’, ‘일등’이라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한 대 ‘쾅’ 쥐어박힌 듯,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앞이 아찔했다. 얼떨떨한 맹씨와 장굉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고 얼굴 근육만 달달 떨어 댔다.

“너, 너 뭐라고 했느냐……? 장원 급제라고?”

장박원은 순간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황급히 하인의 앞으로 다가섰다.

“너희들이 잘못 본 거겠지?”

하인은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같은 일을 거듭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 말은 벌써 네 번이나 물어봤다. 그는 앵무새처럼 아까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저희 네 명이 여덟 개의 눈으로…….”

장박원은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럴 리가. 그 몰락한 가문의 서자가……!”

손씨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전에 엽이채가 주운환과 정혼했을 때, 자신과 딸은 그를 끔찍이도 싫어하며 한사코 정혼을 무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갖가지 방법을 짜내 그를 떼어 내려 했고 결국 성공해 엽연채에게 붙여 줬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장원 급제를 한 것이다.

‘춘시에 일등으로 붙어 버리다니!’

엽승신의 낯빛 역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엽영만 멍한 얼굴로 코를 후비고 있었다.

“아악!”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엽이채가 낸 소리였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엽이채를 쳐다보니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배… 배가 너무 아파요……. 윽, 흐윽…….”

이내 ‘후드득’ 소리가 났다. 모두의 귀가 물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고 눈은 엽이채의 발치에 고인 물웅덩이를 발견했다.

“어… 아이가 나오려나 봅니다!”

손씨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어서 큰부인을 들거라!”

역시 깜짝 놀랐던 어멈들도 엽이채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그녀를 들고 나갔다.

“이채야, 무서워할 것 없다. 분명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낳을 게다.”

손씨는 그녀를 쫓아가며 다독였다.

사람들은 엽이채를 따라 우르르 걸어 나갔고 장만만마저도 그녀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한데 남편인 장박원만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달갑잖은 어두운 표정에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사나운 눈빛을 띠고 있었다.

* * *

그 시각, 송화 골목 쪽도 참담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엽승덕, 은정랑, 허서는 정원에 놓인 돌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엽학문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제, 제대로 본 게 맞느냐?”

엽학문은 고개를 돌려 유이를 쳐다봤다. 그의 나이 든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유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쭈뼛거렸다.

“똑똑히 봤습니다. 정말로 둘째 도련님의 성함은 없었습니다.”

엽학문은 탄식을 하더니 옷소매를 뿌리치며 돌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고, 엽승덕과 은정랑은 그의 낙담한 얼굴을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남녀가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허서의 품위 있는 훤한 얼굴 역시 잔뜩 굳은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

쾅쾅쾅!

이때, 밖에서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야! 정랑, 문 좀 열어 봐요! 문은 왜 걸어 잠근 거예요?”

엽균이었다. 그도 오늘 합격자 명단이 공포된다는 걸 알고 아침이 밝자마자 정륭가로 달려가 명단을 확인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데다가 명단에 허서의 이름도 보이지 않자 그는 언짢은 기분으로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고 또 찾았다.

결국 허서의 이름이 없다는 걸 확실히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이 실망스러운 소식을 알리러 송화 골목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그는 어떻게 허서를 위로할지 궁리했다.

엽학문은 엽균이 왔다는 소리에 낯빛이 변했다.

“저 속 썩이는 놈이 왔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숨으려고 하다가 긴 옷을 걷어 올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서 문을 열어라!”

그들은 요 며칠간 허서의 입적 준비를 마쳤다. 엽균도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 사실이니 엽학문은 그가 자신을 보는 게 더는 두렵지 않았다.

진 마마는 ‘예’ 하며 달려 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서야!”

엽균은 허서의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엽학문, 엽승덕, 은정랑 모자가 함께 정원 버드나무 아래에 모여 있으니, 이 뜻밖의 광경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왜…….”

“균이 공자께서 오셨군요.”

은정랑은 미소를 짓더니 얼른 몸을 일으켜 그에게 손짓을 했다.

“여기 앉으세요.”

“할아버지…….”

그러나 엽균은 두 다리를 덜덜 떨 뿐,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쭈뼛거리며 엽학문을 쳐다봤다.

“어서 와서 앉지 않고 뭐 하느냐? 네 아버지와 동생까지 오라고 해야 올 것이냐?”

엽학문이 뜨뜻미지근한 어조로 그를 독촉했다.

엽균은 엽학문이 자신을 나무라지도 쏘아보지도 않는 데 놀랐고, 또 그가 허서를 ‘동생’이라고 칭한 데 더욱 놀라워했다. ‘할아버지가 벌써 허서와 정랑을 받아들인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엽균이 보니 은정랑은 근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소를 짓고 있었고, 허서도 달갑잖은 표정을 지은 채였지만 할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들을 받아들인 게 틀림없었다.

엽균은 이 모든 게 자신의 공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쁜 마음에 얼른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허서가 시험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다시 들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야, 상심할 것 없다.”

허서는 그가 그렇게 말하자 짜증이 확 치밀었다.

“그런데… 그때 분명 시험을 잘 봤다고 했는데 어째서 떨어진 거지?”

엽균의 말투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허서는 그 말에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시험을 잘 못 봤다고 했으면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하필 자신은 실력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장담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게 무슨 망발이냐!”

엽학문은 그를 노려보며 얼른 허서를 위로했다.

“다음번에 또 보면 된다! 이 할아비도 몇 번이나 시험을 친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진사, 장원, 방안榜眼(전시에서 2등으로 합격한 사람), 탐화探花(전시에서 3등으로 합격한 사람)로 합격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건 그저 연극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예…….”

허서는 새파란 얼굴로 대답하면서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사실 그도 한 번에 진사로 합격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많은 일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난관에 부딪혔기에 이번 춘시는 더더욱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허서는 엽연채의 조롱 어린 아름다운 눈빛과 멸시 어린 요염한 미소, 청춘의 생기와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오기와 투지에 불이 붙었다.

‘전에도 엽연채 앞에서 큰소리를 땅땅 쳤다가 거듭 체면이 깎였었지. 그런데 지금 낙방해 버렸으니 또 얼마나 나를 비웃겠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허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니지,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이런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나고 만다. 다른 사람의 비웃음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 그럴 시간에 학문에 더 매진해야 한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니까!’

“참, 박원이는 붙었느냐?”

엽학문이 말머리를 돌려 유이에게 물었다. 그는 장박원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손자인 허서가 없었으면 그도 손녀사위인 장박원이 춘시에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도 덕을 볼 수 있을 터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허서가 생겼으니 장박원이 합격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손자가 낙방했으니 장찬 그 늙은이의 손자가 합격한 꼴을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또 장찬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

“아니요.”

유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러자 엽학문은 작게 ‘흥’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지었고 고개를 돌려 허서에게 말했다.

“봐라. 박원이도 떨어졌다. 회시가 그리 쉬울 리가 있겠느냐? 그러니 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거라. 3년 후에 또 보면 된다.”

유이는 그들이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자 두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입은 열었지만 말을 전해야 좋을지 아닐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은정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른 누군가를 언급했다.

“아 참, 연채 아가씨 부군도 시험을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애 이야기는 뭣 하러 꺼내는 것이냐?”

엽학문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이 손녀가 가장 미웠다. 소란 피우고 말썽 부리기 좋아하는, 온 집안을 시끄럽게 들쑤시는 계집애였다.

엽균도 엽연채 이야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에 대한 미움이 가득했다. 불효막심한 데다 악독하고 천박하기까지 했다. 엽균은 냉랭한 목소리로 비아냥댔다.

“그런 인품으로 어떻게 춘시에 붙겠습니까?”

은정랑의 눈빛에 웃음이 비쳤다. 엽균이 집에 온 후로 그녀는 쭉 엽균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그저 허서를 위로하려고만 했다. 그의 성격상 만약 엽연채의 남편이 붙었다면 꽤나 언짢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 지금처럼 거리낌 없이 말하고 행동했겠는가?

그녀는 이미 주운환의 시험 결과를 예상하고 일부러 그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사실 제가 미리 선물을 준비해 두었어요……. 그분이 춘시에 붙고 내일 진사로 합격하면 승덕 나리와 균이 공자 편에 선물을 보내드릴 생각이었어요. 어쨌든 연채 아가씨는 여식이고 여동생이시니까요…….”

“정랑, 그럴 것 없어요.”

엽균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보내 봤자 호의가 짓밟히기나 할 건데요. 걔는 정랑이 보낸 선물을 버리는 건 당연하고 정랑에게 욕설까지 퍼부을 거예요. 애초에 그 남편이 시험에 붙지도 않았을 거고요!”

이 말에 은정랑은 기다란 속눈썹을 아래로 떨구며 눈에 비친 조롱기를 감추었고 허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서자 놈도 못 붙었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이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는 엽균의 눈이 어떻게 된 건지 정말 알고 싶었다. 주운환은 분명히 붙었다. 게다가 그렇게 눈에 띄는 위치에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어찌 본인만 그걸 못보았다는 말인가.

‘눈이 삔 거 아닌가?’

그래, 눈이 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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