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240화 (240/858)

제240화

주 백야는 주운환의 등수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고,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주운환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주운환의 아내인 그녀라도 대신 보려는 것이었다.

“나리, 왜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진씨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녀 역시 주 백야가 왜 그러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비 이낭과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이때, 밖에서 녹엽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주렴이 흔들리더니 비 이낭과 주종과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들은 전에는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오지 않았고, 진씨도 이 모자가 눈에 거슬려 그러든 말든 트집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굳이 이곳에 함께 온 걸 보니 합격자 명단 공포일이 가까워지자 주 백야를 비웃으러 온 게 틀림없었다.

“요 며칠 나리께서 매일같이 한숨을 쉬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종과 도련님이 걱정이 되어 함께 나리를 뵈러 왔습니다.”

비 이낭이 비웃음을 날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주종과는 그동안 마음을 다잡아 마침내 원래 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는 주 백야에게 다가서며 속으로 주운환을 거듭 저주했다.

‘운 한번 억세게 좋은 그 빌어먹을 종자는 필시 떨어졌을 것이다! 분명 떨어졌겠지! 한평생 거인으로 남을 비천한 놈!’

주 백야는 비 이낭 모자를 쳐다봤다. 그는 그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비웃으려고 온 것이다.

그래도 주 백야는 모르는 척하고 엽연채를 쳐다보며 물었다.

“요 며칠 동안… 운환이는 어디에 간 게냐? 어째 그림자도 안 보이는 게야?”

엽연채가 강심설 곁에 앉자 추길이 그 뒤에 서서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 며칠 동안 아가씨께서 영교 아가씨 일로 바쁘셨잖아요. 주 백야께서 열 번 넘게 서과원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셨어요.”

그 말에 엽연채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열 번이나!’

“셋째 아가?”

주 백야는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엽연채를 불렀다.

“아, 그게……. 부군께서는 밖으로… 놀러 가셨습니다.”

엽연채는 아무 핑계나 댔다.

“에휴……. 이런 때에 놀러 다닐 마음이 있나 보구나.”

주 백야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진씨는 ‘풉’ 하고 비웃었는데, 그녀의 두 눈에는 조롱기가 비쳤다.

엽연채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 정확히는 기분 전환하러 간 겁니다.”

“그래, 기분 전환할 필요도 있지.”

주 백야는 그리 말하며 심호흡을 했고 엽연채는 좀 어이가 없어 그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만 가 보거라.”

진씨는 손짓을 하며 그녀를 물렸다.

“돌아가서 셋째에게 푹 쉬라 하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전하거라.”

엽연채의 뒤에서 주 백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과원으로 돌아온 엽연채는 난죽거를 지나치다 주운환을 발견했다. 그는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엽연채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공자, 이틀 뒤면 합격자 명단이 공포되는데 긴장되지는 않아요?”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긴장됩니다.”

“몇 등이나 할 것 같아요?”

엽연채가 긴장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지난번 향시에서는 삼십몇 등을 했잖아요. 이번에는…….”

“지난번 향시에서는 일부러 못 본 겁니다.”

주운환이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소저와 태자부의 관계가……. 태자비가 계속 소저를 바둑돌로 쓰려고 했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서 제가 두각을 드러냈다면 태자비는 소저가 미끼를 물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아마 절 억누르려고 했을 겁니다. 회시를 치를 때 분명 뒤에서 간사한 꾀를 썼겠죠.”

“정말요?”

그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엽연채는 깜짝 놀랐다.

“그럼 이번에는 몇 등을 할 것 같아요?”

“절 가르친 주 선생님께서 못해도 상위권에는 들 거라고 하셨습니다.”

주운환의 대꾸에 엽연채는 기쁜 목소리를 냈다.

“그럼 합격자 명단이 공포되는 날 우리 함께 일상원으로 가서 소식을 기다려요! 공자님이 안 가면 분명 시아버지께서 사람을 보내 일상원으로 오라고 재촉하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주운환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 * *

합격자 명단 공포일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도성 안은 공기에서조차 긴장감이 느껴졌다. 거인들은 도성 안에 머무른 지 벌써 한 달이 되어 초조해하고 있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이들은 여비도 거의 바닥이 나 있으니 여러 가지 압박을 받으며 춘시 결과 발표와 전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도성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내 삼월 초하루가 되었다. 꽃이 활짝 핀 따뜻한 봄날, 춘시 합격자 명단이 공포되었다.

이날 아침이 밝자마자 거인들이 정륭가로 모여들었다. 합격자 명단은 도성 곳곳에 붙지만, 그중에서도 정륭가는 황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심가인지라 관병官兵들이 제일 먼저 명단을 붙이러 들리기 마련이었다. 모두 제일 먼저 결과를 알고 싶어 하니 이곳은 매년 과거를 친 거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춘시에 참가한 가족이 있는 도성 사람들은 명단이 붙는 가까운 곳으로 하인을 보내 결과를 알아 오게 했다.

아침이 밝자마자 손씨와 엽승신은 엽영까지 데리고 장씨 가문으로 향했고, 엽학문은 은밀히 송화 골목으로 향했다.

엽연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문안인사를 드리러 일상원으로 향했다. 문안으로 들어서자 거의 모든 사람이 와 있었다. 얼굴을 잘 비치지 않던 주비양마저도 강심설 곁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 보니 주 백야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시巳時(오전 9시~11시) 정각에 합격자 명단이 공포되니 지금 가면 딱 맞을 것이다.”

그러자 진씨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나리, 제가 나리께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합격자 명단 좀 공포하는 건데 뭐 이리 서두르시는 겁니까? 갔다가 사람들 사이에 끼여 다치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요.

지난번에 합격자 명단을 공포했을 때도 사망자가 발생했었죠. 서생 하나가 사람들 틈에 끼여서 밟혀 죽고 말았잖아요. 가엾게도 그 서생은 합격자였고요. 그러니 그냥 하인을 보내시지요.”

주 백야가 ‘에휴’ 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주운환 부부가 와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셋째 아들을 반겼다.

“운환아, 요 며칠 동안 잠은 푹 잤느냐?”

“예, 푹 잤습니다.”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부부는 이내 강심설 옆에 앉았다.

“합격자 명단이 공포되면 그다음 날이 전시이니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비축해야 한다.”

주 백야의 당부에 진씨는 코웃음을 쳤고 두 눈에는 비웃음이 어리었다.

“과연 전시도 보게 될까요?”

이 중 제일 구덕口德이 없는 비 이낭이 국화 문양이 들어간 둥글부채를 흔들며 진씨의 말에 동조했다.

“일단 붙고 난 뒤에 이야기하시죠!”

“운환아, 걱정 말거라. 다음번에 나와 함께 시험을 보자꾸나.”

주종과가 ‘하하’ 하고 냉소를 지으며 거들었다.

“일단 붙고 난 뒤 이야기하시지요.”

주운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 비 이낭이 했던 말을 그대로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주종과는 정곡을 찔려 말없이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했다.

주 백야는 식구들이 하나같이 주운환에게 빈정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답답했다. 반면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강심설은 입가에 냉소를 띠고 있었다.

“운환아.”

이때, 주비양이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주운환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정말로 붙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진씨, 강심설 그리고 비 이낭 모자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고, 특히 진씨와 강심설은 부아가 치밀었다.

‘저런 팔이 바깥으로 굽는 놈이 다 있나!’

주 백야는 그제야 속이 좀 편해졌다. 물론 그도 주운환의 결과에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단언하기 어려운 일도 있는 법이었다.

“아무튼… 어찌 됐든 간에 기다려 보자꾸나. 물론 붙으면 가장 좋은 일이고 못 붙어도 다음을 기약하면 되니……. 적어도 거인이지 않느냐.”

주 백야의 시동인 대복은 이미 정륭가로 보내진 후였다. 물시계가 사시巳時를 가리키자 주 백야는 더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벌써 사시 이각인데 어째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을꼬?”

주 백야가 애타는 목소리를 냈다.

“합격자 명단을 보려는 사람이 워낙 많겠지요. 붐빌 텐데 이렇게 빨리 돌아올 리가 있겠습니까?”

이리 다독이는 엽연채도 조금 긴장이 되어 주운환을 쳐다봤다.

그리고 또 이각이 흐르자 주 백야는 당장이라도 문밖을 나설 듯이 초조해했다. 반면, 진씨는 고개를 숙인 채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밖에서 녹엽이 소리쳤다.

“대복이가 돌아왔습니다!”

주 백야는 그 말을 듣더니 탑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떨다가 차를 마시다가 또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했는데, 대복이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자 오히려 차분해졌다.

주 백야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별안간 주운환이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기대감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맥이 다 빠지고 마음도 식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밖에서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녹엽이 발을 걷어 올리자 약간 뚱뚱한 체형의 시동 하나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와 숨을 몰아쉬었다.

“대복아…….”

주 백야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낙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진씨와 강심설은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주 백야를 쳐다봤고, 비 이낭은 씨앗을 까먹으며 ‘퉤’ 껍질을 뱉어 냈으며, 주종과는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대복아, 어찌 됐느냐?”

진씨는 유유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붙…….”

대복은 한숨을 돌린 후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붙으셨습니다! 셋째 도련님께서 붙으셨어요!”

“오, 붙었느냐?”

엽연채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원래 낭랑하고 부드러웠지만, 지금은 꼭 벼락이 내리치는 듯 쩌렁쩌렁했다.

비웃음 어린 냉소를 짓고 있던 진씨와 강심설의 얼굴이 일순간 확 굳어 버렸고, 비 이낭은 껍질이 목에 걸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연신 가슴을 두드려댔다.

“뭐라고? 붙었다고 했느냐?”

주 백야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대복에게 달려갔다.

“대복아, 네가 한 말이 참말이냐? 붙었다고?”

“예! 붙으셨습니다. 정말로 붙으셨어요!”

대복이 흥분한 목소리로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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