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235화 (235/858)

제235화

묘씨 가문은 원래 도성에서 가난하고 세력 없는 가문이었다. 그러니 젊고 아름다웠던 고모가 마흔이 넘는 후야의 후처로 시집을 간 것이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금琴을 타고 작곡하기를 좋아했지만, 팽씨는 그가 온종일 빈둥대며 시끄럽게 형의 공부를 방해한다고 자신을 나무랄 뿐이었다. 형은 장자이기 때문에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집안사람은 모두 그가 과거 시험에 합격해 두각을 드러내길 바랐다.

자신에게는 열 살 어린 남동생도 있었는데 늦둥이라 부모님이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했다. 자신은 중간에 낀 자식이고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아 항상 가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그런데 형은 늘 과거 시험에서 낙방했고 오랫동안 시험을 치고 나서야 겨우 수재로 합격했다. 반면 자신은 금 연주 솜씨로 ‘두베’라는 칭호를 얻어내며 이름을 날렸고, 이후 대제를 대표해 북연에서 온 사자와 대결을 펼쳤을 때 전력을 다해 그를 꺾어 버렸다.

이에 황제는 일순간 흥이 올라 자신을 관리로 임명하겠다고 했으나 자신은 관리가 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황제의 뜻을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자신의 뺨을 후려쳤고 궁으로 들어가 관직을 형에게 내려 달라고 황제께 간청을 드리라며 그를 압박했다.

이렇게 자신이 유명해지자 많은 권세가들이 집으로 초대해 서로 금 연주 솜씨를 연마하거나 금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강요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태자부에도 몇 번 가게 되었는데 태자와 말이 잘 통하고 마음도 잘 맞았다. 하나 태자가 자신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되었고 이에 반감이 들어 다시는 태자부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어머니와 형은 계속해서 자신을 부추겼고 태자도 몇 번이나 진심을 담아 자신을 초대하자 어쩔 수 없이 거듭해서 태자부로 갈 수밖에 없었다.

태자는 지위가 높고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은 몸과 마음을 모두 그에게 함락당해 스스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와 형은 이런 그를 깔보면서도 태자의 세력을 이용해 지금의 관직까지 오르게 되었다. 당시 자신은 가족들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었고 자신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태자가 점점 자신을 냉대하기 시작했고, 송초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묘 공자, 전하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공자뿐입니다. 그런데 하마터면 황제 폐하께서 이 일을 알게 되실 뻔했습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황제 폐하를 속이기 위해 공자를 냉대하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전하께서는 공자를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 공자는 이렇게 계실 겁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되오?”

“그거야 간단하죠. 전하는 태자 전하이십니다. 대제 전체를, 나라와 백성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며 차기 황제가 되실 분입니다. 그러니 전하와 공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태자 전하는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는 분이죠. 그러니 공자께서 앞으로도 전하 곁에 있으려 하신다면 그건 전하의 앞길을 망치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에 자신은 태자부로 돌아가 스스로 이별을 고했다. 태자는 헤어짐을 무척 아쉬워했다. 그는 영원히 자신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어디에 있든 간에 그의 마음은 항상 자신을 향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신분의 제약만 없었다면, 천하를 짊어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만 없었다면, 아내와 자식만 없었다면 자신과 저 멀리 도망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까지 했다.

태자는 그리 말하며 한사코 자신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자신은 그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스스로 물러났다.

자신은 태자와 정식으로 이별하고 나서야 언제 정해진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가 자신을 고모댁 사촌 여동생과 정혼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자신은 완전히 체념한 상태였기에, 혼자서 외롭게 지내든 아내를 얻어 자식을 낳든 앞으로의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실은 그가 다시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

사람은 때론 이럴 때가 있다. 스스로 헤어지자고 해 놓고도 상대방이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 주며 그 사람의 마음속에 여전히 자신이 자리하고 있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을 품을 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정혼했음에도 태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불안했다.

그래서 끝내 자신은 연극을 만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희곡으로 만들었는데, 이건 자신들의 추억과 사랑을 기념하는 극이었다. 자신은 이 사랑을 잊지 않을 것이었다. 태자도 본인의 입으로 말했듯 영원히 이 사랑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은 태자에게 연극을 보러 오라고 여러 번 그를 초대했지만, 그는 항상 갖가지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다. 혼례식 날짜가 점점 가까워지자 더욱 초조해져 태자를 한층 자주 초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이에 자신은 공연장에 오는 것이 불편하면 약란을 데리고 가 그에게 연극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때 벽수루에서 송초는 그리하겠다며 약란을 태자부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람에게 부딪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그분에게 속은 걸까?”

묘기화가 먹칠을 한 듯 캄캄한 아래층 무대를 쳐다보며 말했다.

“공자 생각에는 어떤 것 같으세요?”

엽연채가 옅은 한숨을 쉬며 되물었다. 이에 묘기화는 픽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는 영교와 잘 살아 보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영교에게도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파혼할 방법을 생각해 봤다.

당시 네 아버지가 여러 차례 소란을 일으키는 걸 보고는 나도 그 방법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고모께서 파혼 결정을 하시도록 고모의 손에 종이쪽지를 쥐여 드렸던 게다.

그런데 어머니와 형수님이… 혼인을 하지 않으면 내가 단수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하실 줄 누가 알았겠느냐? 그럼 사람들은 나와 친밀한 사이였던 태자 전하를 떠올릴 텐데, 난 그분이 조금이라도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분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혼 상태를 유지했다.

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 영교와 파혼을 했지. 그런데 태자 전하께서 나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자 송초가 나를 찾아와 태자 전하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내가 얌전히 혼인만 하면 태자 전하를 도울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내가 그리하면 영교에게 해를 입힌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은 그를 위해 뭐든 하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그저 연극을 보러 와 달라고 그를 초대했을 뿐이다.

오늘 미시未時(오후 1시~3시)에 자신은 공연장으로 그를 초대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를 기다렸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러자 진홍색 혼례복을 입은 약란이 무대 위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공자, 계속 같은 노래를 부르려니 너무 힘듭니다. 그분은… 오시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공자를 속인 거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에요. 그분에겐 처첩과 자식, 그리고 어깨에 짊어진 막중한 책임이 있으시죠. 그리고 그분은 두 분이 함께할 수 없음을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계셨어요.

정말로 공자를 아꼈다면 공자를 건드리시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은 그저 공자께서 금을 잘 타고 수려한 외모까지 가지고 있어 일시적으로 마음이 동해 데리고 노신 겁니다. 그러다가 질리니까 버리신 거고요.

그런데도 공자만 아직도 미련하게 그분을 기다리며 잊지 못하고 계신 거죠. 공자께서는 진심을 다해 그분에게 매달리고 있지만, 그분은 지금 불결하고 역겹다며 공자를 기피하고 계신다고요!

지난번에 벽수루에서 공자를 밀었던 사람이 바로 송초입니다! 제가 똑똑히 봤어요! 그때 주 부인께서 베개를 던져 머리를 받쳐 주지 않으셨다면 공자께서는 벌써 석조상에 부딪혀 목숨을 잃으셨을 거예요. 그분이 공자를 죽이려고 하셨다면 공자께서 그분의 속을 뒤집어 놓기 전에 벌써 공자님을 죽이셨을 거예요!

그분은 공자께서 뱀이나 전갈이라도 되는 양 피하고 계시고, 공자께서 품고 있는 그 감정에 혐오감을 느끼고 계세요. 그런데 일이 생기자 또 공자를 속이려 들고 계시죠. 공자를 아직도 사모하고 있다며 공자께 자신을 위해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르라고 압박하는 식으로요.

공자는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그분은 공연장에 와 달라는 부탁조차 들어주지 않고 갖가지 핑계만 대고 계세요. 이번에는 핑계를 대기도 쉬웠을 거예요. 황제 폐하께서 그분에게 문을 닫아걸고 잘못을 반성하라는 벌을 내리셨으니까요.

공자께서는 그분이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 가사에도 있잖아요. ‘당신이 이 세상 끝에 있더라도 난 당신 곁으로 바로 날아갈 거야.’ 그런데 공자께서 지금 이 세상 끝에 계시는 것도 아닌데 그분은 잇달아 변명만 늘어놓고 계시잖아요. 전에 했던 말도 안 지켰는데 그 감정이 어찌 믿을 만한 거겠어요?

지금 그분은 자신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공자를 속이고 계시는 거예요. 공자님이 한평생 누려야 할 행복과 목숨을 이용해 자신에게 묻은 오점을 지우려는 거예요! 오점 말이에요, 오점! 그분한테 공자는 오점인 거예요!

그분은 공자를 속이고 계시는 거예요. 공자의 피와 눈물은 짜내려고 하시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내놓고 싶지 않으신 거죠. 얼굴조차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하인 둘만 보내 공자의 뒤통수를 치시려는 거예요.

밖에서 비단으로 만든 꽃을 사려고 해도 동원銅圓(동으로 만든 보조 화폐) 두 개는 내야 되는데, 그분은 어떠시죠? 공자께 많은 걸 내놓으라고 하면서 얼굴 한번 보여 주려고 하지 않으시잖아요. 공자, 그분에게 공자의 진심은 이렇듯 값싸고 비천한 것에 불과해요. 동원 하나의 값어치만도 못한 거죠!”

묘기화는 약란이 뱉은 모든 말을 곱씹어 보며 두 눈을 꽉 감았다.

자신은 깊은 정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그가 모를까 봐, 그가 자신을 잊어버릴까 봐 두려운 마음에 그와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해 왔고 이 공연을 보러 오라고 그를 초대했다.

자신은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깊은 사랑에 기반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눈에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일로만 비쳤던 것이다.

묘기화는 지금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우습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이 모든 게… 사실이란 말인가?’

묘기화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캄캄한 밤이라 엽연채에게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