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231화 (231/858)

제231화

엽연채, 혜연과 함께 골목에 숨어 있던 여한이 입을 열었다.

“이곳이 태자 전하의 서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에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외눈박이 고양이를 꺼내 작은 목소리로 녀석을 얼렀다.

“야옹아, 우리 놀이 하나 하자.”

그녀는 고양이를 땅에 내려놓더니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금패 하나를 꺼냈다. 그러곤 몸을 숙여 그 고양이를 향해 금패를 흔들었다. 고양이는 조그맣게 울음소리를 내며 홱 달려들더니 그 금패를 낚아채 입에 물었다. 녀석은 이곳저곳 냄새를 맡더니 이내 밖으로 뛰쳐나갔다.

캄캄한 밤, 작고 새까만 녀석이 큰 거리로 쏜살같이 달려가 태자부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엽연채는 자신이 발라 둔 액체의 냄새를 녀석이 정확하게 찾아내는 모습을 보더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여한이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 왔다.

“녀석이 물건을 제대로 넣을 수 있을까?”

“그럴 거야.”

혜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안심시켰다.

“저 도둑고양이는 물건을 훔치는 솜씨가 기가 막히거든. 그리고 그 물건을 자신의 오줌을 바른 곳에 숨겨 두는 걸 제일 좋아하고. 특히 서랍 같은 데 오줌을 싸는 걸 좋아해. 영역표시를 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아무튼, 그런 다음에 물건을 그 안에 숨겨 둬. 그리고 심지어 서랍을 잠글 줄도 알아!”

그 말에 여한이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감탄했다.

“보통 영리한 고양이가 아니네!”

“셋째 공자는 뭐 하러 가신 게냐? 이 금패는…….”

엽연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 계책으로 어떻게 태자 전하를 모함한다는 거니?”

“모함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분이 하신 일이죠.”

여한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내일이면 셋째 마님도 아시게 될 겁니다!”

엽연채는 그가 중요한 대목을 공개하지 않자 입을 삐죽거렸다.

세 사람이 그곳에서 대략 일각쯤 기다리니 검은 고양이가 도로 달려나왔다. 엽연채는 녀석이 그 패자 없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녀의 품으로 쏙 뛰어들었고, 세 사람은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 * *

엽연채는 곧 큰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이 밝자마자 혜연과 추길을 데리고 서둘러 도성 중심으로 가 천미루千味樓의 대당大堂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곳은 도성에서 가장 유명한 요릿집은 아니었지만, 소식이 가장 빨리 전달되는 곳이었다. 황궁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무슨 소식이 생기면 가장 먼저 전해졌다.

“듣자 하니 묘씨 가문과 엽씨 가문이 요란스럽게 혼례식을 준비한다고 하던데. 쯧쯧,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음)인 게지.”

창가에 놓인 탁자 앞에는 사십 대로 보이는 손님들끼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혼례식 당일에 묘 공자가 직접 신부를 맞이하러 간다고 하더군.”

그 말에 근처에 앉아 있던 엽연채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전에 묘 공자는 몇 번이나 파혼하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강요에 못 이겨 진짜로 혼례식을 올리려는 걸까요? 아니겠죠? 설마하니 직접 신부까지 맞이하러 오겠어요? 분명 잘못된 소문일 거예요!”

혜연이 작은 목소리로 엽연채에게 속삭였다.

“이런 소문이 퍼지는 걸 보니 잘못된 소문은 아닐 게다.”

그러나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부정했다.

“안 그러면 혼례식 당일에 묘 공자가 신부를 맞이하러 오지 않을 텐데 그럼 묘씨 가문이 스스로 제 뺨을 때리는 게 아니겠느냐?”

“그분이 이번에는 정말로 혼례식을 올리려나 보네요.”

혜연은 묘기화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황당하단 투로 말을 받았다.

* * *

그 시각 황궁.

묘기전은 희색만면한 얼굴로 조정에 나갔다. 최근 태자와 묘기화에 대한 풍설風說이 좋은 방향으로 변하면서 묘씨 가문도 공을 세워 속죄한 셈이 되었다.

태자도 기분이 좋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회에서 과거 시험에 대한 논의를 나누고 있었다.

“삼월 초하루에 회시 합격자 명단을 공포하시오. 또 이틀 후에 전시殿試가 있으니 예부와 국자감에서는 철저히 준비하시오.”

“예.”

예부상서禮部尙書와 국자감제주國子監祭酒(국자감의 고위 관리직)가 얼른 대답했다.

황제는 옥좌에 기대어 앉아 하품을 했다. 이에 머리에 쓴 면류관의 술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금룡金龍이 수놓인 황금색 포복袍服은 그에게 존귀한 분위기를 가져다주기는커녕 누렇게 뜬 그의 얼굴을 더욱 누르스름하게 보이게 했다.

정선제正宣帝는 이제 환갑을 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이가 되어도 신체가 강건하고 원기가 있었다. 특히 부귀한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곳에서 살며 인삼, 제비집 등으로 보양을 꾸준히 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주 젊어 보였다.

그러나 정선제는 칠팔십은 먹은 얼굴이었다. 얼굴은 주름투성이고 눈꺼풀은 내려앉았으며 백발이 성성하고 눈빛은 흐릿해 한눈에 봐도 중병을 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신이 맑을 땐 여전히 조정에 나오려고 해서 태자가 대리청정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황제는 또다시 하품을 하며 태자가 아래에서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고드릴 일이 있사옵니다!”

이때, 밖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선제는 그 말에 축 늘어진 눈꺼풀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어디서 온 급보急報인 게냐?”

일반적으로 이런 때에 올리는 보고는 전부 급보였다.

밖에서 어린 환관 하나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접본摺本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으나 황제는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귀찮아 대충 분부했다.

“읽어 보거라!”

그러자 어린 환관이 고했다.

“칭주 지부知府(주州의 최고위 행정직)가 보낸 급보입니다. 정산定山의 어떤 곳에서 갑자기 토사 붕괴가 일어났는데, 그곳에 무려 백여 명이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뭐라?”

조정의 관리들은 모두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고, 이어 서로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환관이 이어서 고했다.

“그중 한 명이 도망쳐 나와 관청에 달려가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칭주 지부께서 포졸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급히 가 보니 토사 붕괴가 일어난 곳에…….”

태자는 칭주와 정산 두 곳의 지명을 듣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겉으로는 뜨뜻미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하나 순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회시와 전시에 대해 상의하고 있으니…….”

이 말에 조정에 나와 있는 관리들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양왕은 대놓고 냉소를 흘렸다.

“회시와 전시에 대해서는 이미 상의를 마쳤습니다. 게다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요.”

“맞습니다.”

어사가 굳은 표정으로 동조하며 말을 이었다.

“급보에 따르면 토사 붕괴로 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태자 전하는 어질고 너그러운 분이신데 설마 회시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당장이라도 태자를 탄핵하는 수많은 말을 쏟아내려는 기세였다. 태자의 표정이 확 굳었다.

“지부 대인의 말씀에 따르면 토사 붕괴가 일어난 곳이 천자의 제터(제사를 지내려고 마련한 터) 같다고 하셨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어린 환관이 마저 고했다.

“천자의 제터라고?”

조정의 대신들은 또다시 숨을 크게 들이켰고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태자에게 향했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옥좌에 앉아 있던 정선제는 그 말을 듣고 구부러진 등을 갑자기 확 피더니 흐릿한 눈동자로 태자를 싸늘하고 매섭게 노려보았다.

“어찌 된 일이냐?”

태자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파랗게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자가 아직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호부상서戶部尙書 전지신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천자의 제터라니? 어디서 허튼소리를 하느냐!”

이때, 어사가 다시 튀어나왔다.

“태자 전하께서 천자의 제터를 만드셨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극악무도한 마음을 먹으셨군요!”

대제는 황제들마다 자신만의 제터를 지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풍년을 기원했다. 물론 이건 그저 표면적인 부분이었고, 실제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자신의 황위가 굳건히 유지되고 장수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태자는 당연히 천자의 제터를 지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황위를 찬탈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또 태자가 미리 천자의 제터를 만들면 운세를 강화하고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풍문이 있었다. 즉, 제터를 짓는 행위에는 제위를 반드시 물려받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자가 천자의 제터를 만들면 현재 제위에 있는 천자에게 영향을 주며 심지어 천자의 운을 압도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었다. 태자가 천자의 제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선제는 당연히 크게 노했다. 그는 캑캑 기침을 하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며 태자에게 삿대질했다.

“이놈!”

“아바마마, 소자 억울하옵니다.”

태자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더니 얼른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기 무섭게 형부상서 요양성이 그의 편을 들었다.

“황제 폐하, 태자 전하는 효심이 가장 지극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셨겠습니까?”

이때, 태자의 형이자 장자인 노왕魯王이 걸어 나왔다. 그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중년 사내로, 말랐지만 외모가 준수했다.

“아바마마, 태자 전하께서 모함을 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한쪽에 서 있던 양왕은 가늘고 긴 매력적인 눈으로 노왕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그렇습니다, 소자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태자는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 폐하.”

오성병마사五城兵馬司의 총지휘관인 사장지도 태자를 변호했다.

“누군가가 제멋대로 외지에 천자의 제터를 만든 것인데, 증좌도 없이 태자 전하께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는 안 되옵니다.”

정선제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했다.

“콜록……. 상관수, 네가 가서 조사해 보거라!”

그리고 천자의 제터 말고도 그와 비슷한 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천자복환령’이었다. 역대 황제들은 이 물건을 황궁 안에 모셔 놓았으니, 태자는 당연히 그것을 태자부에 안치해 둬야 효과가 생기는 법이었다.

거칠어 보이는 외모에 얼굴에 수염이 가득 난 한 중년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금위군의 통령인 상관수였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잡겠사옵니다.”

상관수는 공수한 후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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