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엽학문은 이렇게 재빨리 묘씨와 엽영교를 처소에 가둔 후, 묘씨 가문으로 가서 묘기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묘씨 가문 사람들은 묘기화 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묘기화 일이 드러났을 때 묘기전도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창피하면 할수록 더 집 밖으로 나가야 떳떳해 보이니 창피를 무릅써야 했다.
그런데 그저께 조정에 나가려고 하는데, 하필 뭘 잘못 먹었는지 설사와 구토가 계속됐다. 이러다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이에 묘기전은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남들 눈에는 그가 차마 사람들을 만날 면목이 없어 병가를 신청한 모양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묘기전의 병은 묘기화의 소문에 더욱 힘을 실어 주게 되었다.
묘씨 가문엔 먹장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아무리 걷어내려 해도 걷어지지가 않았다. 이 사태는 자신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태자에게도 위협이 되니 정말이지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이 일이 잠잠해진다더라도 태자에게 보복을 당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때, 엽학문이 희소식을 들고 그들을 찾아온 것이다.
엽학문과 묘씨 가문 사람들은 혼사에 대해 의논했다. 당연히 묘씨 가문 사람들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기화가 잠깐 실수한 거란 걸 나도 알고 있소. 영교도 말로는 파혼하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화를 사모하고 있소. 아버지로서 어떻게 여식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겠소? 두 아이가 혼례식을 올리면 기화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이오.”
엽학문의 이 말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으나, 그 일로 줄곧 시름에 잠겨 있던 팽씨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시누이보다 시매부가 더 현명하시군요. 다만… 기화 이 고얀 놈이…….”
말을 잇던 팽씨는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사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건 다 그 빌어먹을 녀석 때문이었다. 녀석이 거듭해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엽영교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고, 그 일이 들통나 묘기전의 벼슬길을 망치고 묘씨 가문 전체에 해를 끼칠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 둘째 그 고얀 놈은 신경 쓰지 마시죠. 그 녀석도 내심 이 혼사를 원할 겁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두 아이의 혼사를 잘 준비하시면 됩니다!”
묘기전이 두 눈을 살짝 깜빡이며 끼어들자 팽씨는 얼른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서둘러 청첩장을 받은 손님들에게 혼례식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라고 알리자꾸나.”
“잠시만요. 다시 알리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파혼이 없었던 셈 치면 됩니다. 다시 알리면 괜한 사족을 붙이는 거죠. 엽씨 가문에서 아직 보내지 않은 청첩장을 돌리기만 하면 사람들은 모두 혼례식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줄로 알 겁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어리석어…….”
묘기전의 말에 팽씨는 끄덕거리더니 엽학문을 바라보았다.
“그럼 매부께서 지금 돌아가셔서 청첩장을 보내시죠.”
“아닙니다. 내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묘기전이 재차 팽씨를 말렸다. 팽씨와 엽학문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묘기전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니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늦게 보내게 됐으니만큼 청첩장도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엽학문은 묘씨 가문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 마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 *
이튿날 아침, 엽학문은 사람을 시켜 청첩장을 쓰게 한 다음 하인들을 통해 여러 가문과 가까운 친지들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물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너희 엽 소저는 묘 공자와 이미 파혼하지 않았더냐? 외람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모두 묘 공자가… 단수라고 떠들고 있다.”
초대장을 전달하는 하인은 바로 잡아뗐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누가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퍼뜨리며 입을 제멋대로 놀린다는 말입니까? 저희 영교 소저께서 언제 묘 공자와 파혼을 했습니까? 묘씨 가문에서 청첩장을 거둬들인 걸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희 가문 어르신께서 사랑하는 여식의 청첩장을 직접 쓰시려고 하는데, 하필 최근에 손가락 관절염이 도지는 바람에 완성에 시일이 걸렸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서야 청첩장을 보내는 거고요.
저희도 최근 안 좋은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는 일일이 설명할 생각이 없습니다. 굳이 떠들지 않아도 결백한 자는 결백한 거니까요. 저희 엽씨 가문 사람들은 눈뜬장님이 아닙니다. 설마 여식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겠습니까?”
정안후부 하인들은 청첩장을 보내는 집마다 이리 해명했다.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대답했고, 묻지 않을 경우 먼저 말할 구실을 찾아 설명했다.
그렇게 서서히 도성 사람들은 전부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묘기화는 단수가 아니었으며, 그와 혼약을 맺은 지 오래된 정혼녀 또한 화가 나 혼사를 물린 적이 없었다.
거리에서도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소문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지. 현장을 포착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리 사람을 헐뜯을 수가 있을까? 묘씨 가문은 지금까지 발송한 청첩장을 거둬들이지 않았고 혼례식을 취소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잖아.
결국 알고 보니 정혼녀 집안에서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의 청첩장을 직접 써 주느라 기별이 며칠 늦춰진 것뿐이었잖아. 그런데 근거도 없는 함부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리다니. 이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짓이야!”
“누가 아니래! 참, 내 고향에 성이 범씨인 지주地主가 있는데 그 지주의 시집간 여식이 이웃집 왕씨와 간통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고 어떤 자가 입을 함부로 놀렸었지. 안 그러면 배가 어찌 그리 볼록하냐면서 말이야.
범씨 가문은 여식이 병에 걸려 배가 부푼 거라며 그 말을 부인했어. 하지만 그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기어코 범씨의 여식이 파렴치한 짓을 했다고 소문을 퍼뜨렸지.
결국 범씨 집안의 딸은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강에 투신해서 목숨을 끊었어. 지주 범씨는 눈물을 흘리며 목놓아 울었고, 여식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가슴 아프지만 칼로 여식의 배를 갈랐어. 안엔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지.
의원도 나서서 정말로 병을 앓았던 것뿐이라고 진상을 규명해 줬어! 사람들은 그제야 다 오해였고 유언비어가 사람을 해쳤다는 걸 알게 되었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탄식했고 묘기화 일도 그와 같은 오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부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어쨌든 묘기화와 윤강부는 귀빈실에서 함께 오랫동안 머물렀고, 윤강부가 묘기화를 덮쳐서 굴러떨어졌을 때 윤강부의 바지는 벗겨져 있었다. 두 다리에 털이 북실북실 난 그 장면은 정말이지 보기 흉했다. 두 사람이 귀빈실 안에서 무슨 짓을 하지 않고서야 어찌 허리띠가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적어도 세간의 평엔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다.
정안후부 사람들은 밖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더니 뒤늦게 깜짝 놀라며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처소에 앉아 있던 손씨는 찻잔을 들고선 마구 비웃으며 조롱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그때 분명 파혼했는데. 묘기화는 그동안 지켜보니 조금도 혼인하고 싶어 하지 않던데. 단수임이 분명한 거지! 그것도 보통 단수가 아니야!”
손씨는 이 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일이 진실이길 바랐다. 엽영교 그 얄미운 계집애는 단수에게 시집가야 한다.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손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후련했다.
반면, 나씨는 그 소문을 듣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차마 앉아서 가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어멈 한 명을 몰래 안녕당으로 보냈다. 어멈은 돌멩이에 감싼 서찰을 담장에서 방 쪽으로 집어 던졌다.
묘씨와 전 마마 등은 며칠 동안 안에 갇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통 알 수 없으니 당연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탁’ 소리가 나며 뭔가가 안으로 던져졌다.
묘씨는 얼른 그 돌멩이를 집어 들어 서찰을 펼쳐보았고, 낯빛이 확 변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앞이 아찔해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마님!”
전 마마가 얼른 비틀대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그 서찰을 살펴보더니 역시 날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엽영교가 다시 묘씨 가문에 시집간다는 말인가? 왜 이리됐단 말인가? 엽학문이 이런 일에 동의를 했다니!
“날 내보내 주어라! 나리를 뵈어야겠다!”
묘씨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려고 했으나 문밖을 지키고 선 어멈들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죽기 살기로 그녀를 막아섰다.
안녕당 쪽은 난리가 났고 나씨도 소식을 듣더니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시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 문제가 생길 줄은 자신도 알았지만, 엽영교 일생의 행복이 걸린 문제이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씨는 묘씨가 묘안을 강구해 내기를 바랐지만, 솔직히 묘씨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나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여종을 시켜 주씨 가문으로 서찰을 보냈다. 희망을 품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씨는 서찰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엽연채는 이미 이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소문이 온 도성에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지만, 애초에 엽연채는 사람을 시켜 이 일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접했다.
“이렇게 파렴치하고 몰인정한 인간은 내 처음 본다!”
엽연채는 손으로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다.
경인은 문 입구의 계단에 앉아 보고를 올렸고, 한쪽에 서 있는 추길과 혜연도 화가 나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후야께서 어떻게 이런 일에 동의하실 수가 있죠?”
추길은 분개한 목소리로 엽학문을 비난했다.
“지금 밖에서는 사람들 중 절반이 모두 오해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이 단수라고 말하고 있어요. 후야의 성정이면 집안의 명예에 흠이 가는 일은 뭐든 원치 않으실 텐데, 지금은 왜…….”
엽연채는 냉소를 지었다. 안 봐도 뻔했다. 엽학문은 지금 태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엽영교를 팔아 벼슬을 되찾으려는 게 분명했다.
“셋째 공자님.”
이때 혜연이 갑자기 주운환을 불렀다.
엽연채가 고개를 들어 보니 주운환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구름 문양이 들어간 연청색 비단옷을 입은 그는 엽연채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혜연이 얼른 차를 내오자 주운환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우리도 손을 써야겠군요.”
엽연채는 그 말을 듣더니 두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운환은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