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211화 (211/858)

제211화

“저리 비켜!”

이때, 그 가난한 부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갑자기 달려들더니 어멈을 바닥으로 밀치고는 냅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가 앞장서서 들어가자 용감한 백성들도 그 뒤를 따라 집 안에 발을 들였다. 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아이를 찾다가 그 집의 본채에 당도했다.

그곳엔 젊은 남녀 한 쌍이 있었다.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내는 영민하고 준수한 용모가 꼭 신선을 닮았고 은근한 매력을 풍기는 아리따운 여인은 병에 걸린 사람처럼 다소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갑자기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 얼른 묘기화의 뒤로 몸을 숨겼고,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보호해 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묘기화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인신매매범은 어디 있소? 아니면 당신들이 인신매매범이오?”

백성들이 거칠게 물었다.

“인신매매범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긴 내 집이니 빨리 나가거라!”

묘기화가 소름 끼치도록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여기가 당신들 집이라는 겁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못 들어오게 막았소? 당신 부부 정말 수상하군.”

한 중년 사내가 의심스러워하자 묘기화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나가거라! 안 그러면 관아에 고발하겠다!”

“고발하는 건 별일 아니에요. 그런데 낯짝이 있으면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보시죠. 두 사람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누군가가 아리따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묘기화는 순간 멍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엽영교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묘기화의 안색이 확 변했다.

“너…….”

“내가 뭐요? 내가 오면 안 되는 자리인가요?”

엽영교는 매서운 눈빛을 번뜩이며 탄식했다.

“오호라……. 묘 공자, 당신 참 대단하네요. 난 지독히도 우둔해서 이제서야 알게 됐어요……. 당신이 매일 공연장에 가서 박수갈채를 보냈던 게 공연을 하는 화단에게 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는 걸 말이죠.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난 당신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그 ‘본처’가 될 생각이 없거든요. 그리고 당신의 짊어져야 할 책임이 될 생각도 없어요. 이 아가씨를 사모하는 거라면 그냥 계속 사모하세요!”

할 말을 마친 엽영교는 홱 돌아서서 가 버렸다.

엽영교가 떠나자 주위에 있던 백성들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인신매매범을 잡으러 왔는데 그쪽은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웬 사통하는 남녀만 잡게 될 줄이야!

이때, 묘씨와 엽학문도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묘기화가 미인을 감싸 주며 창백한 얼굴로 그곳에 서 있는 모습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묘씨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앞이 아찔했다. 머릿속에서는 ‘꽈르릉’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묘기화에게 삿대질했다.

“너… 너 여기서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그래, 좋다! 이 혼사는 없던 걸로 하겠다! 파혼이다!”

말을 마친 묘씨는 꼴도 보기 싫어 그곳을 홱 떠났다.

엽학문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고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곁에 있던 유이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끌고 오너라!”

“이……!”

그 말에 묘기화의 잘생긴 얼굴이 확 굳었다. 그는 미인을 보호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엽학문은 꼴도 보기 싫어 옷소매를 확 뿌리치며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떴다.

유이는 남녀를 붙잡으려고 다가섰으나 하필 오늘 엽학문이 데리고 나온 하인은 자신 하나뿐이었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 주위에 있는 몇 명의 사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두 사람을 붙잡는 데 도움을 주실 분 계십니까? 인당 은화 한 냥을 드리겠습니다. 범법 행위도 아닙니다! 저분은 저희 가문 사위가 되실 분이거든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상황파악이 되었다. 후부侯府의 예비 사위가 낯선 여인과 이곳에 머물고 있는 걸 보니 딱 봐도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밖에 좋은 집을 마련한 뒤 미인을 숨겨 놓고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은화 한 냥도 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그들을 붙잡았다.

엽연채는 멀리서 그 모습을 힐끗한 후, 얼른 엽영교의 뒤를 쫓아갔다.

엽영교 일행이 문 앞에 도착하자 눈치 빠른 마부는 진작에 마차를 끌고 그쪽에 와 있었다. 묘씨는 전 마마에게 ‘묘씨 가문에 가서 사람을 불러오게.’라고 분부한 다음, 엽영교, 엽연채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마부가 말채찍을 가볍게 휘두르자 마차는 빠른 속도로 정안후부로 향했다. 마차는 흔들거리며 길 위를 빠르게 내달렸다. 가만히 앉아 있는 엽영교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넋이 나간 듯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알아차렸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대로한 묘씨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엽영교가 온씨와 똑같은 처지가 되기를 절대로,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이각쯤 지나 마차는 정안후부로 돌아왔고 묘씨는 엽영교를 데리고 안녕당으로 돌아갔다.

엽영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엽연채와 함께 의자에 앉을 뿐이었다.

“흥!”

엽학문이 이어 찬 서리를 맞은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다. 굳은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였다. 그런데 그는 탑상에 앉지 않고 엽영교 앞으로 걸어가더니 나이가 들어 푹 꺼진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오늘 일은 네가 벌인 것이냐?”

그 말에 엽영교는 새파란 얼굴로 복숭아꽃 문양이 들어간 비단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나리!”

묘씨가 대화에 끼려고 하자 엽학문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형형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그 서슬 푸른 모습에 묘씨는 위축돼 말을 잃고 말았다.

엽학문은 계속해서 엽영교를 꾸짖었다.

“진작에 사람을 시켜 알아본 게지? 그런 다음 돈을 써서 이런 짓을 꾸민 거겠지. 아이를 유괴했다는 둥 인신매매범이라는 둥 그런 소리를 해 대며 일부러 우리를 그쪽으로 유인해 사통 현장을 목격하게 한 게지?

넌 정말이지……! 아둔하기 짝이 없구나! 그런 일을 눈치챘으면 우리에게 직접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 그래, 네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구나!”

엽영교는 그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손에 든 손수건은 하도 휘감아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엽연채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는 조롱기 어린 눈으로 엽학문을 쓱 쳐다봤다.

자기한테 미리 알려 줬어야 했다고? 혼례식 날짜가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엽영교가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면 그다음은 보나 마나 뻔했다. 혼례식 날짜를 거듭 변경했던 일로 체면이 상할 대로 상한 엽학문은 이 일을 아예 덮으려고 했을 것이다.

처첩을 여러 명 두고 살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냐며 기껏해야 그 여인을 집안으로 들이라고 하는 게 다였을 것이다. 자신의 고모는 엽학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때, 묘기화와 그 미인이 포박당한 채 유이와 어멈에게 끌려 들어왔다. 그들은 그 두 남녀를 힘껏 눌러 땅바닥에 무릎 꿇렸다. 고개를 숙인 묘기화는 새까만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었고, 싸늘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때, 손씨와 엽승신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이고,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손씨는 묘기화가 끌려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엽승신을 끌고 구경을 하러 왔다. 웃음거리가 된 엽영교의 모습을 볼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엽승신 내외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뒤를 따라 엽승덕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엽학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

엽연채는 엽승덕을 보더니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시점에 그가 송화 골목에서 은정랑과 함께 있지 않다니?

잠시 후, 엽승강 내외도 소식을 듣고 안녕당에 도착했다. 온씨만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 어제 그녀는 친정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러 간다고 짐을 꾸리고 집을 비운 참이었다. 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온 노부인은 정말로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저 멀리 사람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밖에 있던 여종이 묘씨에게 얼른 아뢰었다.

“마님, 묘씨 가문 분들이 오셨습니다.”

잠시 후, 활짝 핀 꽃 문양이 들어간 단단한 합판으로 만든 발이 걷히며 팽씨, 황씨, 묘기전이 찬 서리를 맞은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다.

묘씨 가문 사람들은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안색이 변했다.

팽씨와 그 일행이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묘씨는 새파란 얼굴로 운을 뗐다.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하좌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보시지요. 제가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데려가세요. 이 혼사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이걸로 끝입니다.”

“고모님, 분명 오해가 있을 겁니다.”

황씨는 눈꼬리가 올라간 두 눈으로 묘기화를 쓱 쳐다보더니 그제야 난처한 얼굴로 묘씨를 달랬다.

“오해라고 했는가? 현장을 포착했는데도 오해라고?”

묘씨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럴 리가……. 영교야, 우리 기화는 그런 애가 아니다.”

팽씨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묘기화 쪽으로 걸어가 그를 밀치며 말했다.

“어서 말해 보거라! 오해라고 네 입으로 분명히 말해.”

그러나 묘기화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팽씨가 자신을 밀치는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팽씨는 그가 입도 뻥긋하지 않자 초조하고 또 화가 치밀어 올라 그의 뺨을 팩 후려쳤다.

“이 뻔뻔한 놈. 어서 네 고모님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느냐!”

뺨을 얻어맞은 묘기화는 한쪽으로 휘청거렸으나 그래도 입술을 꽉 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가늘고 긴 아름다운 눈은 이상하리만치 싸늘하고 냉담한 빛만 띠었다. 꼭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맞은 양 말이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던 소저는 깜짝 놀라 덜덜 떨더니 흑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정말로 오해이십니다. 저희는… 저희는 그저 절친한 벗일 뿐입니다. 전… 전 정혼자도 있는 몸입니다…….”

“정혼자가 있는 몸이라고? 하하, 그것참 잘됐네! 딱 맞아떨어지잖아!”

엽영교의 쉰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웃음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연극 속 여주인공에게는 무방 주인의 덜떨어진 아들이 정혼자로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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