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191화 (191/858)

제191화

추길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도련님들을 뵈러 갔지. 그런데 둘째 도련님이 시험에서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자 혜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 사람이 붙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그런데… 셋째 도련님은 붙으셨어.”

추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뭐? 셋째 도련님이 시험에 붙으셨다고?”

혜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와 추길은 주운환에게 별다른 희망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니까! 이상하지? 셋째 도련님은 여태껏 제대로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수업 시간에는 졸기만 해서 둘째 도련님만도 못하다고 들었는데. 벼락치기를 해서 시험에 붙다니. 운이 너무 좋은 거 아냐?”

추길의 의아함 가득한 말에 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게. 운이 정말 좋았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엽연채는 두 눈을 살짝 깜빡였다.

‘운이 좋다? 벼락치기를 했다? 그럴 리가 있나. 공자께서 진금부도眞金不鍍(진정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는 뜻)한 분이기에 모두 그 가치를 몰랐던 것이지!’

주운환은 양왕이 공들여 키운 장기짝으로, 그의 능력은 모두 양왕이 키워 준 것이었다. 금琴 연주, 바둑 두기, 글씨 쓰기, 그림 그리기, 사서오경 공부부터 군대를 부리는 책략까지 다 가르쳤는데, 그깟 거인도 못되면 그동안의 가르침에 너무 부끄럽지 않겠는가?

* * *

주운환이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금세 일상원으로도 전해졌다. 주 백야가 동쪽 측문부터 서과원까지 가는 동안 저택 곳곳을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외쳐댔으니,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여종 하나가 곧장 일상원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녹지에게 알렸다. 그러자 녹지의 낯빛이 확 변하더니 그녀는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진씨에게 아뢰었다.

“마님, 지금 들은 소식인데… 셋째 도련님께서 과거 시험에 붙으신 것 같습니다.”

태자부 일로 진씨에게 여전히 눈물로 하소연하고 있던 주묘서는 울음을 뚝 그쳤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떡 벌린 채 녹지를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진씨 역시 깜짝 놀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시험에 합격할 수가 있단 말이냐? 잠시만. 방금 누구라고 했느냐? 둘째 아님 셋째?”

“셋째 도련님입니다.”

재차 고하는 녹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어떻게 셋째가 합격했다는 말이냐?”

진씨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설령 진짜 붙었다 하더라도 둘째여야 하지 않느냐? 어떻게 셋째가 합격했다는 말이냐?”

진씨는 주종과의 자질로는 향시에 붙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조상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수재秀才로 합격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정말로 붙는다면 그저 억세게 좋은 운 덕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 엄청난 운을 등에 업고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그녀가 깔보던 주종과가 아니었다. 주종과만도 못한 주운환인 것이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좌에 있던 백 이낭도 순간 멍해졌으나 이내 수긍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주운환은 됨됨이와 기개가 주종과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그가 합격했다는 소리가 의외이기는 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님.”

이때, 강심설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셋째 서방님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심설은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자신은 가뜩이나 엽연채를 꺼려했는데 이젠 주운환이 과거 시험까지 합격해 버린 것이다. 처지가 날로 좋아지는 엽연채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속에서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

“진짜인지 아닌지 아직 모른다. 와전되었을 수도 있다!”

기분을 잡친 진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신은 전에는 주운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그를 상대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러나 그가 엽연채를 아내로 맞이하고 나서부터는 몹시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했다니…….

“녹지야, 가서 제대로 물어보고 오너라.”

진씨가 싸한 목소리로 분부했다.

녹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진씨와 마찬가지로 줄곧 엽연채와 주운환을 적대시해 왔다. 그러나 그녀는 진씨와는 달리 주운환이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을 거의 믿고 있었다. 그러니 엽연채가 잘나가는 모습을 절대로 보러 가고 싶지 않았으나 분부를 따르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일상원 대문을 나선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모퉁이를 돌아 주종과의 처소로 달려갔다. 녹지가 주종과의 처소로 달려가는데 멀리서 비 이낭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내 밖에서 쉴 새 없이 문을 두들겨 대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종과야, 종과야! 문 좀 열어 보거라!”

비 이낭이 문을 두들기며 큰 소리로 외쳤다.

“붙은 게지? 종과야, 대답 좀 해 보라니까?”

녹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비 이낭, 둘째 도련님께서 시험에 합격하셨나요?”

그러자 비 이낭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홱 쏘아보더니 다시 문을 두들기며 목청을 돋웠다.

“종과야! 종과야, 좀 나와 보거라!”

안에 있던 주종과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꽃문양이 새겨진 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 그럼에도 비 이낭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차단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다 어질어질해진 주종과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쾅’ 하고 나무 문을 발로 차 열었다. 그러곤 뛰쳐나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떨어졌어요. 됐죠! 바라시는 대로 됐네요! 이제 그만 좀 가 보세요!”

사실 비 이낭은 그가 떨어졌음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떨어진 사실을 인정하자 그녀는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다시 안을 향해 말했다.

“떨어졌으면 떨어진 거지, 뭐.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시험을 치면 그만이다.”

“둘째 도련님, 셋째 도련님은 붙으셨습니까?”

녹지가 안을 향해 소리쳤다.

낯빛이 확 변한 비 이낭이 고개를 돌려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게냐. 셋째 그 빌어먹을 종자가 어떻게 합격하겠느냐! 우리 종과도 떨어졌는데 셋째가 붙을 리가 있겠느냐?”

녹지는 냉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반박했다.

“제가 밖에서 들었거든요. 둘째 도련님은 떨어지고 셋째 도련님은 붙었다고 말이죠.”

그 말에 머리가 어찔어찔한 비 이낭이 새된 목소리로 부정했다.

“말 같잖은 소리 말거라.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종과도 떨어졌는데 셋째가 무슨 수로 붙는다는 말이냐?”

“둘째 도련님, 셋째 도련님께서는 붙으셨어요?”

녹지는 비 이낭을 무시하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주종과는 그 소리를 듣더니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주운환이 붙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어 방 안으로 돌아와 사정없이 물건을 던질 뿐이었다. 사서오경, 문방사우 등을 몽땅 밖으로 집어 던졌다.

주종과의 시동 통재는 밖에서 들려오는 녹지의 목소리를 듣더니 혼비백산하여 뛰쳐나가 대문을 열었다. 문이 갑자기 열리자 녹지는 하마터면 땅에 고꾸라질 뻔했다.

“둘째…….”

녹지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해!”

통재가 굳은 표정으로 다그쳤다.

“붙었는지 아닌지는 셋째 도련님을 찾아가 여쭤보면 되잖아? 왜 여기서 소란을 피워?”

“통재야, 셋째 도련님께서 정말 붙으신 거야?”

녹지는 체면이 한껏 선 셋째 도련님 내외를 결단코 보고 싶지 않았다. 통재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녀를 보더니 얼른 쫓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소리쳤다.

“붙었어, 붙었다고! 됐니? 그러니까 어서 가!”

“뭐라고?”

날벼락 같은 말에 비 이낭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빌어먹을 종자가 어떻게?”

“제발 소란 피우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서과원 쪽 분들이 한껏 체면이 섰으니 거기 가서 잘 보이세요. 여긴 오지 마시고요.”

통재는 그리 말하며 문을 쾅 닫았다.

녹지는 낯빛이 새파래졌다. 직접 합격자 명단을 본 사람이 인정했으니 이제 주운환의 합격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인 셈이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황급히 걸어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비 이낭은 정신이 아찔하고 머리가 빙빙 돌아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낭…….”

비 이낭의 어린 여종 소연이 얼른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그녀도 이미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둘째 도련님은 떨어졌는데 셋째 도련님은 붙은,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다니!

비 이낭은 화가 나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도저히 이 상황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주종과가 떨어졌으면 다 떨어져야만 한다. 주종과는 떨어졌는데 어째서 주운환은 붙었다는 말인가?

‘이건 불공평하다! 너무나도 불공평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비 이낭은 부아가 치밀었고 동시에 질투심과 분노가 용솟음쳤다. 결국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상스러운 욕을 퍼부어 댔다.

“아비만 있고 어미는 없는 종자 주제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종과보다 공부도 못하면서 대체 무슨 수를 써서 우리 종과의 공명을 가로챘느냐! 속이 시커먼 놈 같으니라고!

아, 알겠다. 중추절에 내가 달에 계신 상아 선녀님께 종과가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기도를 올렸는데 하늘이 실수해서 공명을 다른 사람에게 주셨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비 이낭은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여종들은 진작에 이곳에 모여 구경 중이었다. 비 이낭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욕지거리를 뱉는 모습을 보더니 다들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그녀를 비웃었다.

“이낭, 어서 가셔요!”

소연은 창피를 못 이겨 얼른 주인을 일으킨 다음 잰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녹지가 청석판이 깔린 길을 따라 황급히 일상원으로 돌아와 보니 진씨와 강심설 등이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녹지는 안으로 들어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둘째 도련님 처소에 가 보았는데, 통재에게서 둘째 도련님께서는 떨어지고 셋째 도련님께서는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씨는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이대로 손에 들고 있는 찻잔을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 차마 그리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옹졸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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