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163화 (163/858)

제163화

“뭐가 타당하지 않다는 게야!”

엽균은 엽연채가 또 농간을 부리려고 한단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난 효를 행하려는 게다. 전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아버지가 죄를 지었는데 아들은 아버지가 고초를 겪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아버지를 대신해 죄를 받았다. 부윤 대인께서도 동의하셨지.”

그러자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예전 그 사례는 부모님이 연로하여 곤장형을 감당할 수 없으니 아들이 대신 벌을 받는 걸 허했던 겁니다. 하지만 엽승덕은… 이제 마흔 살도 안 되었으니 사내로서 기운이 한창 왕성한 나이죠.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반편이 같은 아들을 두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해 주면 안 됩니다.”

“지금 누구보고 반편이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게냐?”

엽균이 목청을 높였으나 엽연채는 대수롭잖게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이 형벌을 받지 않으면 이번에는 물건을 훔쳤지만 다음번에는 방화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다른 사람이 대신 형벌을 받아 주리라 생각할 테니까요.”

이때, 허서가 경악한 표정으로 엽연채를 쳐다보더니 억장이 무너지는 얼굴로 말했다.

“연채야, 이분은 네 친아버지다. 딸이 되어서 아버지 대신 형벌을 받지는 않을지언정 어찌하여 나와 큰형님이 효를 행하는 것마저 방해하는 것이냐?”

허서가 이 말을 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엽연채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 아리따운 젊은 부인은 엽승덕의 딸 아닌가? 분명 엽승덕이 잘못했고 아주 파렴치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러는 건 아니지. 이건… 너무 냉정하고 몰인정하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어찌 됐든 저자의 친딸이잖아. 돕지는 않더라도 자빠진 놈 꼭뒤 차는 행동을 거듭해서는 안 되지. 이건 큰 불효야!”

온사월은 사람들이 엽연채에 대해 왈가왈부하자 크게 노했고 분한 마음에 이를 꽉 깨물었다.

“맞습니다. 넌 아버지에게 불효를 행해선 안 된다!”

엽균이 얼른 기회를 잡자 엽연채는 피식 냉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는 게 효이고 불효인지 전 잘 모르겠는데요? 난 우리 어머니가 저 두 사람 때문에 분을 못 이기고 각혈을 했다는 것만 압니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각혈을 한 게 별일 아니라고 했죠? 오라버니에게 묻고 싶네요. 이건 효입니까 불효입니까?”

그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한 아낙네가 엽균을 쳐다보며 닦아세웠다.

“이보게 젊은이, 당신이 사람이야? 친어머니가 각혈을 했는데 별일 아니라고 했다고?”

그 말에 엽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정말 별일 아니었고 지금은 펄펄 날아다니시잖아…….”

“그럼 아버지도 괜찮으실 겁니다. 매 좀 맞아도 펄펄 날아다닐 거니까요!”

엽연채가 차가운 조소를 날렸다.

“네 아버지이셔.”

분노한 엽균이 말했다.

“그럼 어머니는 오라버니 어머니가 아니에요?”

엽연채가 냉담한 눈빛으로 그를 흘기며 반박했다.

“앞으론 오라버니는 오라버니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난 우리 어머니에게 효도하면 되겠네요! 어때요?”

엽균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고 주위에 있던 백성들도 할 말을 잃었다. 이 아가씨가 분명 엽승덕에게 불효를 하고 있는 건 맞지만,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잖은가! 아버지에게 불효하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불효를 행하는 셈이었다.

엽연채 말대로 이제부턴 남매가 각자 한 명씩에게 효도하면 된다. 그 누구도 둘 중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방금 전 허서가 했던 말이 맞아요. 오라버니, 대신 맞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엽연채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고 이리 말했다.

“오라버니 말대로 전 오라버니가 효도하는 걸 막을 수 없어요!”

“형을 집행하라!”

정 부윤이 경당목을 치며 명하더니 엽균을 쳐다보며 물었다.

“엽 공자, 아버지를 대신해 형벌을 받겠소?”

“예!”

엽균은 앞으로 달려가 길쭉한 나무 걸상 위에 엎드렸다.

“균아…….”

엽승덕이 엽균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그저께 허리를 삐었으니 더 다치시면 안 됩니다.”

“균아, 넌 정말 좋은 아이다.”

엽승덕은 크게 감동한 얼굴로 칭찬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쳐라!”

엽균이 대답하자마자 정 부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눈앞에서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효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째서 오히려 역겨운 기분이 드는 걸까?

엽연채의 말대로 이 곤장형은 엽승덕이 받아야 한다. 하나 어쨌든 엽승덕은 정안후부의 세자이니 백성들 앞에서 호되게 두들겨 맞게 되면 이 낯부끄러운 일이 파다하게 퍼져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엽균이 대신 맞게 되면 그는 일단 젊은이이고 또 일이 밖으로 알려진다고 해도 적어도 효행이라는 말이 그의 체면을 살려 줄 것이다.

정 부윤은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이 정도 사정은 봐줄 요량이었다. 이러한 처세술도 없었으면 진작에 자리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양쪽에 서 있던 포졸들이 커다란 곤장을 집어 들더니 ‘퍽퍽’ 소리를 내며 엽균의 볼기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백성들은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두들겨 맞는 엽균을 지켜봤는데, 은정랑은 옆에서 목놓아 울고 허서는 눈물을 닦았다. 식구들끼리 고통을 나누고 합심하여 대처하는 모습을 보자 사람들은 또다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엽연채는 싸늘한 눈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았고 온사월은 그 모습에 분통이 터졌다. 추경이 눈알을 굴리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리 있으니 꼭 저들이 한 가족 같고 너는 남처럼 보이는구나! 사건도 해결됐으니 우리는 화를 못 이겨 각혈한 이모를 뵈러 가자꾸나. 이번에 우리가 도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너랑 네 어머니가 어떻게 살고 있었겠느냐?”

엽연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꼬리 부분을 지그시 누를 뿐이었다. 이어 고개를 든 그녀는 여전히 냉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추경의 말을 듣고 엽연채를 쳐다보니, 그녀의 꽃다운 얼굴에는 싸한 냉기만이 감돌아 슬픔도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도리어 더욱 가여워 보였다. 그간 얼마나 고통스러웠길래 이렇듯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거기다 그녀의 어머니는 화를 못 이기고 각혈까지 했다고 했다.

백성들은 곧장 침상에 누워 있는 부인이 피를 토해 내고 딸은 그 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 후 벌을 받는 자들을 쳐다보더니 역시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했다.

엽연채는 또 마음이 변한 백성들을 쳐다보며 속으로 가소로워했다.

‘쯧쯧, 누구는 감성팔이 못 하는 줄 알고!’

허서는 백성들의 멸시 어린 눈빛이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오자 엽연채와 추경이 죽도록 밉고 원망스러웠다. 특히 추경 저놈은 분명 형부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엽연채가 무슨 수를 썼는지 빼내 온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허서는 더더욱 분노했다.

곤장 서른 대를 다 맞고 나니 엽균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지경이었다. 엽승덕이 두 포졸에게 끌려가니 은정랑은 이곳에 더 남아 있을 면목이 없었다. 그녀는 추풍과 봉춘에게 엽균을 업으라고 분부하고 자신은 진 마마의 부축을 받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백성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재차 조롱하더니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가자꾸나!”

온사월은 엽승덕이 수감되는 모습을 보더니 마침내 분풀이를 했다는 듯 한숨을 돌렸다. 엽연채가 고개를 돌려보니 허서는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허서를 흘겨보고는 뒤돌아서 걸어갔고 허서는 멸시와 조롱이 섞인 그녀의 눈빛을 보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허서는 참지 못하고 그 뒤를 쫓아가 ‘하하’ 하고 냉소를 터트렸다.

“네가 무슨 수를 써서 추씨 가문 사람을 빼냈는지는 모르겠다만 앞으로 추씨 가문은 주조酒造 사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추씨 가문에서 만든 술 때문에 이미 궁 안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말이다!

나중에 주초낭중이 다른 음식을 잘못 먹어 그리된 거라고 말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궁의 특성상 다시는 추씨 가문 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황상 노릇을 할 수 없을 테니 꿈도 꾸지 마라!”

그러자 엽연채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사실 나도 인맥이 별로 없거든요. 근데 한 달 전쯤 다쳤을 때 공주 마마께서 날 구해 주셨어요. 물론 공주 마마께서 내 생명의 은인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는 사이가 된 셈이죠.

그래서 이번에 체면을 뒤로하고 공주 마마께 달려가 도움을 청했어요. 하지만 난 공주 마마께 낭중을 협박해 술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음식을 먹고 쓰러진 거라고 말하도록 부탁드리지는 않았어요.

공주 마마께서 내무부에 가서 추씨 가문이 만든 송무주를 친히 마시셨는데 아무 탈도 나지 않으셨죠. 그리고 우린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됐죠. 그 주초낭중이 추씨 가문과 원수를 진 사람한테서 돈을 받아 추씨 가문을 모함했다는 거였죠.

따라서 추씨 가문 술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황상을 할 수 있답니다! 게다가 그 원수 놈은 이미 제거했고요!”

허서는 표정이 확 굳어지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자신이 태자 전하께 내놓은 계책이었다. 추씨 가문이 사건을 철회하지 않으면 추씨 가문을 통째로 날려 버렸을 것이고, 사건을 철회한다 하더라도 황상 자격을 박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공들여 짠 계책을 이렇게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연채야, 가자.”

추경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불렀다.

“네, 오라버니.”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온사월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떴다.

허서는 엽연채가 다른 사내에게 찬연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눈에 몹시 거슬렸고 동시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관아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오고 가는 큰길이 보였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초가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따가운 햇볕이 사람을 바짝 말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연채야, 너 정말 대단하다. 형님도 구하고 우리 추씨 가문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다니.”

추랑이 대단히 기쁜 얼굴로 엽연채를 추켜세웠다. 이에 엽연채는 도리어 미안하다는 얼굴로 사과했다.

“대단할 게 뭐 있어요. 제가 이모와 오라버니들이 말려들게 만든 건데요. 정말 죄송해요.”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온사월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의 일을 해결할 수 없었다면 자신들은 결국 고발 건을 철회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여동생을 보호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온사월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근데 연채, 너 정말 똑똑하구나!”

“아니에요.”

엽연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제 부군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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