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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162화 (162/858)

제162화

주위에 있던 백성들이 모두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그중 한 사람이 이내 입을 열었다.

“나 저 사람 알아요. 그 이름도 유명한 엽씨 가문 세자 아닙니까!”

“누가 아니래요! 외실을 끼고 사느라고 자기 딸까지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에요. 저번에는 딸의 시동과 길거리에서 욕을 해 대며 싸웠고 지난번에는 부인의 큰언니한테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았어요. 근데 이게 또 무슨 일이래요? 정실의 혼수품을 외실에게 갖다 바쳐요?”

“이건 너무하잖아! 저런 인간은 나가 죽어야 돼!”

“맞아요. 죽어야 돼요!”

백성들은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아낙네들은 듣기 거북하다 싶은 욕이란 욕은 다 가져다 들이퍼부었다. 온사월의 표정은 후련해졌고 엽승덕과 은정랑의 낯빛은 계속해서 변했다.

“정숙하시오!”

정 부윤도 내심 엽승덕을 극도로 경멸하고 있었다. 외실을 데리고 사는 건 그냥 좀 방탕한 생활을 하는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정실부인의 혼수품에 손을 대고 그걸 외실에게 갖다 바치는 건 아무리 봐도 도가 지나친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이 실컷 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심리를 진행했다.

“현재 증인과 물증이 모두 확보되어 있는데, 할 말이라도 있는가?”

엽승덕은 밖에 있는 백성들의 욕지거리를 듣고는 이마에 핏발이 섰다.

‘저들이 뭘 안다는 말인가? 속인俗人들 주제에! 사랑은 잘못된 게 아니다. 위대하고 신성한 것이다. 저들은 평생 동안 이런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가련한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부윤 대인,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집은 제집이고 물건들 또한 정안후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저만이 두 집을 드나들 수 있으니 그 물건들은 제가 가져온 것입니다. 설령 정말…….”

엽승덕은 도저히 ‘절도’라는 두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어 이렇게 돌려 말했다.

“정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저 혼자 저지른 잘못이며 정랑은 이 일과 무관합니다.”

“뭐가 무관하다는 거냐!”

온사월은 상황이 영 마뜩잖았다. 그녀가 가장 처리해 버리고 싶은 사람이 바로 이 빌어먹을 여편네였는데, 엽승덕은 있는 힘껏 그녀의 죄명을 벗겨 주려고 했다. 그러니 이 상황이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당치 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억지를 쓰는 것 아니오.”

온사월을 쳐다보는 엽승덕의 눈빛에는 냉소가 어려 있었다.

“내 집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죄가 있다면 그럼 하인들도 죄가 있단 말이오? 옆집에 사는 이웃도 단죄해야 속이 시원하겠소?”

그 말에 온사월의 낯빛이 확 변했다.

“이!”

“부윤 대인,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별해 주십시오.”

엽승덕이 부윤을 향해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정 부윤은 경당목을 치며 수긍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오. 엽승덕이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니 말이오.”

“부윤 대인!”

온사월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정 부윤을 쳐다봤다. 그녀가 가장 두들겨 패 주고 싶은 사람은 저 외실이었다. 너덜너덜해지도록 때리고 싶었다.

“증인과 물증, 범행의 이유와 사건의 경위를 다 따져 보니 엽승덕이 혼자 벌인 짓이오.”

정 부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온사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제의 법규 판례에 따라 절도 사건의 경우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장 30대와 3개월의 옥살이에 처하오. 엽승덕은 처분에 따르겠소?”

“예, 부윤 대인.”

엽승덕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대답했다.

“승덕 나리…….”

은정랑은 엽승덕이 서슴없이 곤장을 맞겠다고 하자 감동이 밀려왔다. 그녀는 엽승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리, 왜…….”

“당신을 위한 것이니 가치 있는 일이오.”

그리 말하며 엽승덕은 은정랑의 손을 꼭 잡았다. 사랑하는 여인이 감동에 겨운 눈물로 자신의 애정에 화답하니 그는 진심으로 이 모든 게 다 가치 있는 희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승덕 나리, 나리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에요…….”

은정랑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도 그렇소. 난 당신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이오.”

엽승덕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밖에 있던 백성들은 어리둥절한 토끼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보고 있으니 꽤 감동적인데.”

“그러게 말이야! 괴로운 운명을 타고난 부부인 거야?”

백성들은 얼른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상상력으로 채워 나갔다. 특히 방탕한 사내들이 엽승덕과 은정랑의 절절한 사랑에 더욱 감동을 받았다. 양심 없는 사내였다면 일찌감치 책임을 전부 여인에게 전가했을 텐데, 엽승덕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 은정랑을 향한 그의 깊은 사랑이 한눈에 느껴졌다.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힘드셨죠. 언젠가는 하늘도 감동할 거예요.”

허서는 여론이 자신들 쪽으로 돌아서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엽승신과 손씨도 엽승덕과 그 외실이 역겨웠으나 엽연채의 싸늘한 얼굴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손씨가 눈꼬리 부분을 살며시 누르며 운을 뗐다.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네요!”

“큰형님은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게지.”

엽승신이 ‘에휴’ 소리를 내며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큰형님’이라고 말하자 백성들은 의아해하더니 두 사람의 생김새를 보고는 그들이 친형제임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도 엽승덕이 핍박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정머리 없고 도량이 좁은 본처가 외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두 사람을 괴로운 운명을 타고난 부부로 만들어 버린 셈이었다.

여론의 흐름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저 개만도 못한 남녀를 편들자 온사월과 추랑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런데 이때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목청을 높였다.

“아, 핍박을 당한 거였어요? 핍박을 당해 정실부인의 혼수품을 훔쳐 외실에게 갖다 바쳤나 보죠? 핍박을 당해 청렴하고 공정한 부윤 대인께서 중형을 내렸나 보죠?”

그녀의 말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그들은 하마터면 정실부인의 혼수품을 훔쳐 외실에게 갖다 바쳤다는 사실을 깜빡할 뻔했다. 방금 전 감동적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내들이었다. 그러잖아도 일부 아낙네들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절절한 사랑이면 뭐? 그렇게 절절하면 자기가 직접 벌어 먹여 살리든가. 부인의 혼수품이나 훔치는 게 사람이 할 짓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설령 정실부인이 정말로 속이 좁아 외실을 못 받아들이는 거라고 해도 부인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게 말이나 돼요?”

“누가 아니래요. 쓸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밥을 못 먹어 굶어 죽는 형편도 아니잖아요. 저 화려한 차림새 좀 봐요. 부인의 혼수품에 손을 댄 건 그냥 외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런 거예요. 천박하고 파렴치하기는! 청렴하고 공정한 부윤 대인께서도 절도죄로 판결을 내리셨는데 더 따질 게 뭐가 있어요?”

허서와 엽승덕, 은정랑은 엽연채가 죽도록 미웠다. 방금 백성들의 동정을 얻는 데 거의 성공했다. 적어도 평판에 있어서 듣기 좋은 미담이 될 뻔했는데, 엽연채의 말 한마디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온사월은 하하 크게 웃었다. 그녀는 절절한 사랑을 보여 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정말이지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엽승덕과 은정랑이 깊은 애정을 보일수록 속이 더욱 메스꺼워졌다. 그런데 엽연채가 그들의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자 그녀는 기분이 확 좋아졌다.

엽균은 백성들이 엽승덕과 은정랑에게 온갖 조롱을 퍼붓는 모습을 보며 몹시 마음 아파했다. 특히 욕지거리를 들으며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은정랑이 너무나 가여웠다.

그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엽연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힐난했다.

“연채야, 어쨌든 간에 우리 아버지다! 그런데 너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행동을 하고 있어.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

엽연채는 냉담한 눈빛으로 그를 쓱 쳐다봤고 추경의 온화한 얼굴도 살짝 어두워졌다. 온사월은 너무 화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냅다 달려가 저 잡놈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지어 여동생이 초산 때 아이는 버리고 태만 키운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부윤 대인, 곤장을 치셔야죠!”

온사월이 화가 난 목소리로 재촉했다.

“곤장 칠 준비를 하거라!”

정 부윤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그러자 포졸 둘이 즉시 길쭉한 나무 걸상을 들고 와 땅에 내려놓은 뒤 커다란 곤장을 들고 양쪽으로 서며 말했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승덕 나리…….”

은정랑이 눈시울을 붉히며 엽승덕을 쳐다봤다.

“제가 맞을게요!”

“허튼소리 마시오. 난 살가죽이 두꺼워 이런 곤장쯤은 아무렇지도 않소. 게다가 당신은 나 대신 며칠이나 갇혀 있었는데 내 어찌 당신보고 또 고초를 겪으라고 할 수 있겠소.”

엽승덕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후였다. 그가 나무 걸상에 오르려고 하는 찰나, 엽균이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멈추세요. 제가 맞을게요!”

그 말에 엽연채의 낯빛이 새까매졌다.

‘엽균, 이 빌어먹을 놈!’

엽균은 법당으로 걸어 들어와 정 부윤에게 공수拱手하고서는 입을 열었다.

“부윤 대인, 아버지의 빚은 자식이 갚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자식으로서 어떻게 눈앞에서 아버지가 고초를 겪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곤장을 맞겠습니다!”

“엽균, 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아!”

온사월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녀가 달려들어 그를 두들겨 패려고 하자 양쪽에 서 있던 포졸들이 먼저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그녀를 제지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허서도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저도 아버지를 대신해 곤장을 맞겠습니다.”

“서야, 너는 돌아가거라!”

엽균이 얼른 그를 제지했다.

“넌 다음 달에 있을 향시를 봐야 하는데 곤장을 맞다가 몸이 상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게냐?”

“그렇지만 형님…….”

허서가 절박한 얼굴을 하자 엽균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네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효다.”

그 모습에 온사월과 추씨 가문 형제들은 분통이 터져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특히 추경은 정말이지 기겁하고 말았다. 다들 이 사촌 동생을 어리석은 놈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저런 멍청한 놈이 있나!’

엽균을 쳐다보는 엽연채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부윤 대인, 그리하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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