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149화 (149/858)

제149화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서쪽 대로로 향했고 일각이 지나자 온씨 가문 동쪽 측문으로 들어섰다. 마차가 멈춰 서자 추길은 얼른 마차에 뛰어내려 등받이가 없는 네모난 작은 걸상을 내려놓았다.

엽연채와 부인이 차례로 마차에서 내리며 고개를 드니 잘생긴 젊은이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들은 엽연채를 보더니 나란히 걸어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 소개도 제대로 못 했구나.”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들을 한 명씩 가리켰다.

“이쪽은 네 사촌 오라비들이다. 둘째인 추경, 셋째인 추랑, 넷째인 추환, 다섯째인 추곡이다. 큰오라비와 새언니는 정성에서 집안 사업을 돌보느라 도성에 같이 오지 못했다.”

“연채야, 반갑다!”

공자 넷이 어깨를 맞대고 서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엽연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미모에 깜짝 놀란 남정네들의 눈빛을 수도 없이 봐 왔지만, 이렇게 많은 사내들이 갑자기 저를 둘러싸고 쳐다보니 엽연채는 수줍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엽연채가 물기를 머금은 듯 빛나는 눈으로 휘둘러보니 네 명의 오라비는 하나같이 훤칠하게 생겼다. 그리고 나이가 가장 어린 두 오라비는 쌍둥이라 얼굴이 똑같았다.

“오라버니들, 만나서 반가워요.”

엽연채가 그들에게 답례하자 추길이 헤헤 웃으며 부인에게 물었다.

“큰이모님, 전부 다 아가씨의 오라버니예요? 동생은 없어요?”

“가장 어린 넷째와 다섯째가 연채보다 두 달 빨리 태어났단다.”

“이모, 어서 가요!”

엽연채가 재촉하자 부인은 그러자고 대꾸하며 엽연채를 끌어당기려고 했으나 아들들이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순간 멍해진 엽연채는 하는 수 없이 추길과 먼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모자가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집안에 저리 고운 사촌 누이동생이 있는데 어째서 저희에게 말씀을 안 해 주신 겁니까?”

그러자 부인이 핀잔하듯 대답했다.

“내가 왜 말을 안 했겠느냐? 말했으면 반편이처럼 헤죽거릴 게 뻔하니 그랬지.”

그러자 한 공자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사촌 여동생이 저리 예쁜데 왜 며느리로 들일 생각을 안 하셨어요?”

엽연채는 얼굴이 달아오름과 동시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부인은 가볍게 꾸짖듯 대꾸했다.

“왜 생각을 안 해 봤겠느냐? 그러나 먼 곳으로 시집을 와 부모 형제와 이별하여 지내는 고통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어떻게 내 동생과 연채가 그런 고통을 겪게 할 수 있단 말이냐.”

그 말에 네 형제는 일제히 탄식했다.

“됐으니 어서 가자꾸나! 봐라, 연채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잖니.”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오더니 엽연채의 손을 맞잡았다.

“가자꾸나!”

그들은 서둘러 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안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큰아가씨께서 엽승덕이 외실을 끼고 산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대로해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가셨어요. 말리려 했지만 말릴 수가 없었죠.”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누군가가 이리 대꾸했다.

“큰언니는 변함이 없네요. 성질이 불같죠.”

목소리의 주인은 뜻밖에도 온씨였다.

“어머니.”

엽연채와 부인이 얼른 안으로 들어서니 온 노부인의 침실에서 네 사람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노부인은 잘 수 있는 의자에 누워 있었고, 그 옆으로 온씨와 엽연채의 외숙모 진씨가 앉아 있었으며 온남아도 자리에 함께 있었다.

“연채야……. 큰, 큰언니!”

온씨의 시선이 엽연채에게서 부인, 온사월에게로 향하더니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언니!”

“사우야.”

온사월이 그녀에게로 다가가자 이내 자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친정에서 보낸 서신을 받아 보니 언니가 도성에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곧장 언니를 보러 왔는데 언니는… 이미 밖으로 나간 후였어요.”

온사월은 엽승덕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분통이 터져 눈에 핏발이 섰으나 자세히 말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

“우리 다 잘 지내고 있으니… 그러니 그만 울자꾸나. 그리고 내가 지금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넌 여기에 있거라. 시간이 좀 걸릴 게다. 일을 다 보고 돌아올 테니 넌 얼마간 여기서 머무르렴. 간만에 자매끼리 회포나 풀자꾸나.”

“알겠어요.”

온씨가 얼른 대꾸했다.

“아이고, 큰아가씨, 어디 가시려고요? 설마 엽…….”

진씨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온사월이 진씨에게 눈을 흘겼다. 그 눈빛에 움찔한 진씨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 있어. 진상품인 과일주를 점검해 봐야 돼.”

추씨 가문은 정성에서 유명한 거상으로 양조釀造 사업을 하는 이름난 황상皇商이었다. 그런데 십 년 전 한 양조 상인이 두각을 드러내더니 추씨 가문보다 더 좋은 술을 만들어 추씨 가문은 그 상인에게 황상의 자격을 빼앗겼다.

그러나 몇 년 전, 온사월의 장자가 정식으로 가업을 물려받아 양조 기술을 개선하며 쇄신했고, 마침내 올해 황상의 자격을 도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번에 온사월과 그녀의 아들들이 도성에 방문한 건 조정에 진상할 술을 도성으로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그러는 김에 가족들도 보러 온 것이었다.

“아, 언니, 그럼 어서 가요. 집안 사업과 관련된 거면 중요한 일이잖아요.”

온씨는 큰언니와 떨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무엇이 더 우선인지 알고 있었다.

“넷째와 다섯째, 너희는 여기에 남아 외할머니와 이모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거라.”

“예, 어머니.”

온사월의 말에 나이가 가장 어린 쌍둥이 형제가 얼른 대꾸하더니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하며 곰살맞게 굴었다.

“어머니, 저는 이모를 따라가 추씨 가문 과일주를 보고 올게요. 맛있으면 두 주전자쯤 가져오고요.”

엽연채는 이 말만 남기고 온사월을 잡아당기며 얼른 바깥으로 나갔다.

“얘… 연채야……!”

온씨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엽연채는 온사월을 끌고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방 밖으로 나온 엽연채가 온사월에게 물었다.

“이모께서는 어디서 지내실 거예요?”

그러자 온사월이 엽연채를 데리고 정원을 나오며 말했다.

“옆에 있는 흔설원欣雪園에서 머무를 거란다. 원래는 네 외할머니 처소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거긴 짐이 너무 많아 곁채까지 몇 칸이나 차지하고 있더라. 그리고 생각해 보니 네 어머니를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니 아예 옆에 있는 뜰에서 지내는 편이 더 좋겠더구나. 그래서 휴대용 옷궤도 거기다 쌓아 두었단다! 올해는 이곳에서 지내고 춘절을 쇤 다음 원소절元宵節(정월 대보름) 후에 다시 정성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두 사람이 옆에 있는 흔설원으로 걸어가니 여종들은 한창 짐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참이었다. 그들 모두 온사월이 데려온 하인들이었다.

“어서 그 혼수 단자를 꺼내거라!”

온사월의 말에 의복을 잘 갖춰 입은 한 마마媽媽가 그리하겠다고 대답하더니, 잠시 후 한 옷궤에서 납작한 검은색 함을 꺼냈다. 온사월이 함을 열어 보니 안에는 누렇게 빛이 바랜 작은 책자가 한 권 놓여 있었다. 바로 온씨의 혼수 단자였다.

엽연채는 얼른 단자를 집어 들고서는 책장을 넘겨보았다.

“가자꾸나!”

온사월은 냉랭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크게 말하더니 엽연채와 두 아들을 데리고 문을 나섰다. 그들은 이내 수화문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고 온사월이 밖을 향해 말했다.

“마부에게 관아로 갈 거라고 전하거라!”

“예, 어머니!”

추랑이 시시덕거리며 대꾸했다.

* * *

마차는 관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이각쯤 지나 마차는 관아 앞에 멈춰 섰다. 한낮이라 관아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포졸 둘이 문밖을 지키고 서 있었고 그들 우측에는 신문고申聞鼓가 설치되어 있었다.

엽연채가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온사월이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그녀의 손에 든 혼수 단자를 낚아챘다.

“내가 하마. 넌 들어가지 말거라.”

“제가 할게요.”

엽연채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대하자 온사월은 왜 자신이 해야 하는지 조리 있게 설명해 주었다.

“이 맹추야! 넌 엽씨 가문 자손이며 엽승덕의 친딸이다. 네가 관아에 고발하고 거기다 고발 대상이 엽승덕이면 네가 고발한 건 제쳐 두고 우선 네 볼기부터 칠 것이다. 설령 아무 탈 없이 네가 고발을 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너를 불효녀라고 욕할 게다.

어디 그뿐이랴? 네 행동이 아무리 도리에 맞는 것이라 해도 엽승덕은 효를 들먹이며 너를 압박할 게다! 네가 불효녀라고 열변을 토해 가며 너를 짓뭉개겠지.”

추랑도 곁에서 거들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다. 이 일을 하기에 우리 어머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어디 또 있겠니. 사우 이모님께서는 네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내 이모님이기도 하잖으냐.”

온사월은 이미 북채를 들고 ‘쿵쿵’ 소리를 내며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포졸이 얼른 귀를 틀어막더니 달려와 그녀를 말렸다.

“치지 마세요. 비장 대인이 안에 계십니다!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바로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모든 사건은 우선 비장의 손을 거쳐야 하며 그가 가장 먼저 어떤 사건인지 파악해야만 했다.

엽연채 일행이 함께 관아의 문안으로 들어가니 관리가 공무를 보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는 사건 심리를 위한 길쭉하고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탁자 뒤로 ‘청천靑天’이라고 적힌 편액이 보였다. 왼쪽으로 돌자 후당後堂의 입구가 나왔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이 바로 비장이 공무를 보는 집무실이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 이곳에 왔소?”

비장은 염소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십 대 사내였다.

“물건을 훔쳐간 자를 고발하러 왔습니다.”

온사월이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제 여동생의 혼수품이 도둑맞았는데 그 도둑놈이 송화 골목에 위치한 작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한테 혼수 단자가 있으니 비장께서는 어서 저희와 함께 그곳으로 가 그 도둑놈을 체포해 주십시오.”

비장 모 씨가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 곱게 생긴 귀부인이 눈앞에 서 있었고 그녀 옆에는 장미처럼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비장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번뜩이며 엽연채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에 추랑이 앞으로 걸어와 탁자를 세게 쳤다.

“지금 뭘 보고 계시는 거요?”

모 비장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그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곤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절도 사건 때문에 오셨구먼. 알겠소. 지금 가서 물건들을 수색한 후 사실로 드러나면 바로 체포하겠소.”

모 비장은 사건 일지를 쓱쓱 쓰더니 직접 스무 명의 포졸을 데리고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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