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148화 (148/858)

제148화

“됐으니 이제 그만하세요! 그만 때리세요!”

이때,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엽연채가 고개를 돌려보니 엽승강과 엽승신이 함께 오고 있었다. 분명 엽승덕의 하인이 정안후부로 가서 이 사실을 고했을 거고, 이를 알게 된 엽학문이 부인을 말리기 위해 엽승신 형제를 보냈을 터였다.

엽승신과 엽승강이 앞으로 달려와 보니 엽승덕은 얼굴이 붓고 코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엽승신은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엽승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거 너무 심하지 않은가!’

엽승강이 그 부인을 쳐다보니 온씨와 생김새가 적잖게 닮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온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엽승강이 그 부인을 쳐다보더니 그녀에게 읍하며 사과했다.

“저기… 저희 큰형수님의 큰언니이시죠. 저도 압니다……. 이 일로 큰형수님이 많이 억울하게 됐죠…….”

“내 동생이 억울한 건 아오? 그런데 왜 저 금수만도 못한 놈을 그냥 놔두는 거요?”

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비난했다.

엽승강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게… 저희도…….”

“허, 됐구려. 그쪽의 이런저런 변명은 듣고 싶지 않소.”

부인은 조금 전보다 더 짙은 냉소를 지었다.

“지금 내 동생이 억울함을 겪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내가 와서 두들겨 패는 것도 안 되오?”

“됩니다! 안 된다고 한 적 없어요…….”

엽승신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많이 때리시기도 했고 화도 분출했으니… 이렇게 하시죠! 정안후부로 오셔서 불미스러운 일을 함께 상의합시다!”

“흥!”

그 부인은 손에 든 몽둥이를 휙 내던지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그러자 잘생긴 공자들이 부인의 뒤를 따랐다. 전부 그녀의 아들들이었다.

“큰형님… 괜찮으세요?”

엽승강이 얼른 뛰어가 엽승덕을 부축하며 물었다.

엽승덕은 두들겨 맞아 온몸이 욱신거렸고 얼굴에는 검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은정랑에게 다가가 그녀를 걱정했다.

“정랑, 괜찮소?”

그러자 엽승강은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이런 상황에서도 저 외실부터 걱정하고 있다니!’

방금 전 부인의 매질이 너무 약했던 모양이었다.

그 부인은 공자들과 송화 골목에서 나와 맞은편 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차는 이내 그곳에서 멈추었다. 십 년 넘게 도성에 오지 않은 터라 길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행은 마차를 세워 둔 뒤 내려서 길을 찾으려고 했다.

“잠시만요…….”

이때,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과 아들들이 고개를 돌리자 장미꽃처럼 아리땁고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절세미녀가 그들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부인은 엽연채가 좀 낯이 익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그… 그쪽은?”

엽연채는 그녀를 보며 인사를 올렸다.

“큰이모, 저희 어머니를 위해 나서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러자 그 부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연채란 말이냐?”

“예.”

엽연채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채가 큰이모를 뵈어요.”

“얘는… 뭐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게냐.”

부인은 얼른 그녀의 손을 잡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마지막으로 널 봤을 땐 요만했었는데 이제 다 큰 처녀가 되었구나. 얼굴도 어쩜 이리 네 어미를 빼다 박았는지.”

옆에 서 있던 잘생긴 공자들은 일제히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얘가 저희 사촌 여동생이라고요? 우리 집안에 이런 예쁜 사촌 여동생이 있는데 어떻게 지금껏 몰랐지?”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혼인을 했네.”

그중 하나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자 그 옆에서는 탄식을 흘렸다. 엽연채는 입을 삐죽거렸으나 이내 그들에게 재차 깊은 감사를 표했다.

“큰이모, 오라버니들. 저희 어머니를 위해 나서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러곤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이렇게 못 했거든요…….”

“감사는 무슨.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게다. 그리고 이 녀석아, 그자는 네 아비인데 네가 매질을 했다가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정안후부로 가자꾸나. 내가 가서 네 어미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제대로 바로잡으마.”

이렇게 대꾸한 부인은 엽연채를 끌고 마차에 올랐다. 엽연채의 사촌 오라버니들 중 둘은 말을 타고 또 다른 두 명은 엽연채의 마차에 탔다. 부인은 마차 안에서 엽연채에게 온씨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눈물을 닦으며 엽승덕을 욕했다.

“그 짐승만도 못한 것! 내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다.”

“이모, 여쭤 볼 게 있어요.”

엽연채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 혼수 단자를 이모께서 가지고 계세요?”

부인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모께서 가지고 계세요?”

추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추길은 이전에는 같은 적녀임에도 온사월은 상인 가문에 시집을 갔으니 후부에 시집간 온씨에게 앙심을 품거나 질투를 느껴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혼수 단자를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온사월은 도성에 돌아오자마자 여동생을 위해 나섰고 엽승덕을 흠씬 두들겨 팼다.

그제야 추길은 자신이 소인배의 마음으로 그녀를 평가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엽연채의 이모는 좋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최고로 좋은 사람이었다.

“혼수 단자 말이지?”

온사월은 ‘에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일부러 가져간 게 아니란다. 십 년 전에 내가 도성으로 돌아와 친척집을 방문했지. 그때는 너희 외할머니도 중풍에 걸리지 않았을 때라 내 짐을 정리해 주셨는데, 어찌 된 일인지 네 어미가 친정집에 놔둔 혼수 단자가 그만 내 답례품 사이에 넣어졌단다.

당시 답례품들은 진열품이라 방 안에 그냥 놔뒀지. 그래서 혼수 단자가 있는 줄 계속 몰랐단다. 나중에, 그러니까 몇 년 전에야 그 진열품들을 뒤적이다가 그제야 혼수 단자를 발견한 게지.

그때 곧장 혼수 단자가 여기에 있다는 내용의 서신을 적어 온씨 가문에 보냈단다. 그 서신을 받은 사람이 아마 네 외삼촌이었을 거다. 네 외삼촌이 이 일을 내 어머니께 전달해서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렸지.”

“그리되었던 거군요!”

추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몇 년 전에 마님께서 친정에 혼수 단자를 찾으러 갔을 땐 노마님께서 아무런 귀띔도 안 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그때는 노마님께서도 이모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걸 모르셨던 거네요. 나중에 이모님께서 서신을 보내 노마님께 알려드리고 나서야 알게 되신 거였군요.

얼마 전에 아가씨께서 이모님께 혼수 단자를 가지고 계시면 전해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셨어요. 그런데 서신을 받은 분이 이모님의 큰아드님이셨고 이모님께서 도성으로 가셨다고 답장해 주셨어요.”

“내가 마침 잘 왔구나.”

피식 웃으며 대꾸하던 부인은 이내 안색이 변했다.

“이번에 내가 도성에 오지 않았다면 내 동생이 이런 수모를 겪고 있는 걸 까맣게 몰랐겠구나!”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있는데 이모님이 수모를 당하는 걸 보고만 있겠습니까?”

밖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촌이 나서 주자 엽연채와 추길은 ‘풋’ 하고 기쁘게 웃음을 터트렸다.

“참, 네 어머니 혼수 단자는 왜 또 찾는 게냐?”

부인이 물었다.

“엽승덕이 제 어머니 물건을 그 외실에게 갖다 바쳤어요! 그런데 어머니 혼수 단자가 몇 년 전에 사라져 버려 그 사람을 손봐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엽연채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라고?”

부인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되물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지난번에 저희가 그 불결하고 추잡한 곳에 갔었는데 아가씨께서 다층 진열장에 놓인 마님의 물건을 보고 마신 거죠.”

추길이 씩씩거리며 대신 대답했다.

“이런 쓰레기만도 못한 놈. 외실을 데리고 사는 것까지는 봐준다 쳐, 그런데 내 동생의 물건을 그 더러운 여편네한테 갖다 바쳤단 말이냐!”

부인은 마차의 벽을 쾅쾅 두드렸다.

“멈추거라! 멈춰! 내 돌아가서 그놈을 다시 두들겨 패고 손모가지를 잘라 버릴 것이다.”

“어머니, 지금 가 봤자 없을 거예요! 방금 전에 저희가 한바탕 난리를 쳤으니 그 엽승덕의 두 동생이 집으로 데려갔을 겁니다. 지금 그 집에는 그 작자는 없고 그 여인만 남아 있을 거고요. 저희가 또 우르르 몰려가 그 여인한테 난리를 치면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기세로 밀어붙여 약한 사람을 괴롭힌다고 생각할 거예요.”

마차 밖에서 쾌활한 목소리의 공자가 모친을 좋게 말렸다. 이에 부인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조금 후에 사돈어른을 뵈면 혼수 단자를 가지고 그놈을 손봐 줄 것이다! 이런 뻔뻔한 짓을 저질러 놓고 어떻게 변명하는지 한번 보자꾸나.”

“그 정도 솜방망이 처벌로는 안 돼요!”

엽연채의 두 눈에선 순간 싸늘한 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혼수 단자를 가지고 직접 관아에 고발하러 가요.”

부인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대번에 동조했다.

“그래! 고발하는 게 좋겠다! 관아에 고발하자꾸나!”

혼수는 아내의 개인 소유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남편이라도 함부로 손대면 안 되었다. 제대로 따지고 들면 법적 처벌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보통 집안일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일을 시끄럽게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밖에 있던 공자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쯧쯧 혀를 찼다.이 사촌 여동생 정말 장난 아니구나!‘

“아……! 근데 이모님, 혼수 단자는 가져오셨나요?”

추길이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서신은 열흘 전에 보냈는데 그때 온사월 모자는 이미 정성을 떠나 도성으로 오는 길이었다.

“마침 가져왔단다. 혼수 단자를 발견했을 때는 그냥 보냈다가는 중간에 잃어버릴까 봐 걱정됐고, 거기다 네 어머니 쪽에도 단자가 있으니 크게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여태 보내지 않았다.

이번에 도성에 오면서 보름이나 준비를 했는데 가져갈 물건을 챙기느라 매일 정신이 없었고 뭐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스러웠어. 그러는 와중에 마침 그 혼수 단자가 생각이 난 게야. 그래서 함께 가지고 왔단다.”

그 말에 추길과 엽연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우선 단자를 가지러 외삼촌댁에 먼저 가요.”

밖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 그들은 온씨의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 주기 위해 정안후부로 가려고 했다.

“그래야겠구나.”

부인은 큰 소리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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