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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121화 (121/858)

제121화

장씨 가문에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저녁밥은 맹씨 거처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것이었다.

장씨 가문은 식구가 적었다. 출신이 한미한 장찬은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두 명의 첩을 들였지만 그들에게서 자식을 보지 못했다. 장굉 대에 이르러 그는 첩과 통방 서넛을 들였지만, 맹씨에게서만 아들 하나를 보았고 이낭들은 딸만 낳았다. 장만만에게는 서녀인 언니가 셋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시집을 가 집안 식구는 더욱 줄어든 후였다.

장찬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던 따뜻하고 정겨웠던 분위기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올라 널찍한 집에 살고 있는 지금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저녁밥을 먹도록 했다.

장만만과 엽이채가 방 안으로 들어서니 장찬, 장굉, 맹씨 그리고 장박원은 이미 자리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부인, 왔소?”

장박원은 엽이채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엽이채는 자신을 애지중지하는 그 상황을 즐기며 허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맹씨는 응석을 부리는 엽이채를 쳐다보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묘씨의 생일 축하연에 다녀온 후로 엽이채가 더욱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씨는 그날 하루 종일 엽이채와 장씨 가문을 들먹이며 으스댔고, 벼락부자처럼 행동하는 그 부끄러운 꼴을 보고 있으려니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그리고 엽이채의 남동생인 엽영 역시 참 대단한 인물이었다. 전에 장박원과 엽연채가 정혼했을 때 맹씨는 엽연채의 오라비인 엽균이 한량인 게 마음에 걸렸는데, 엽영이 하는 짓은 그보다 더 가관이었다. 비록 서출이지만 그래도 후부의 공자인데 어떻게 아직도 콧물이나 질질 흘리고 다닌다는 말인가. 심지어 생일 축하연 자리에서 엽영이 코딱지를 파서 먹는 모습까지도 보고 말았다.

맹씨는 그 생각을 하니 다시금 몸서리가 쳐졌다. 정말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천박한 사람들이었다. 거기다 엽이채의 가식적인 행동을 또 눈앞에서 보고 있으려니 맹씨는 정말이지 어젯밤에 먹었던 밥을 게워낼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딸의 무탈한 혼사를 위해 그저 모르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만만아, 어떻게 네 새언니와 함께 오는 것이냐? 둘이 함께 외출했던 게냐? 어디를 갔었느냐?”

맹씨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그러나 장만만은 굳은 표정으로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냥 밖을 돌아다녔어요.”

“네 새언니는 몸이 약한 사람이다. 날도 이리 더운데 돌아다니면 금방 지쳐 버려.”

장박원의 말속에는 엽이채를 향한 애정과 장만만에 대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장만만은 기가 막혀 싸늘한 눈빛으로 장박원을 쏘아봤으나 대꾸는 하지 않고 꾹 참았다.

그러나 장만만의 여종 소진은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 못 됐다.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반박했다.

“큰공자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 큰마님께서 아가씨를 데리고 외출하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맹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잖아도 이런 사소한 일로 아들이 방금 동생을 나무랐는데도 엽이채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게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소진이 또 입을 열었다.

“큰마님께서 아가씨를 데리고 주씨 가문 셋째 부인을 찾아뵈신 겁니다.”

맹씨는 엽이채가 장만만을 데리고 엽연채를 찾아갔다는 소리에 화가 나 낯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 천박한 것이 그 아이를 찾아가 우쭐거리며 우월감을 느끼려 했던 모양이구나!’

맹씨는 분이 치밀어 눈빛이 싸늘해졌으나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소진이 또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는 주씨 가문 셋째 부인과 사이가 좋으셨잖아요. 그런데…….”

그녀는 장박원과 엽이채를 힐끗 쳐다봤다.

“공자님 혼사 때문에 아가씨는 줄곧 주 부인께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셨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분께 보상해 드리려고 하셨죠. 그런데 어제 황후 마마께서 복을 가져다주는 부적을 아가씨에게 하사하셨잖아요? 큰마님께서 글쎄…….”

“얘!”

엽이채는 소진의 말을 막기 위해 호통을 쳤지만 소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큰마님께서 글쎄 그 부적을 주 부인께 선물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주 부인께서 거절하시면서 아가씨는 귀인이 될 몸이며 이는 아가씨에게 주어진 복인데 어떻게 남에게 선물할 수 있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선물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씨와 장찬, 장굉 모두 놀라서 온몸을 떨었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뭐라 했느냐?”

맹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호통을 치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엽이채를 쏘아보며 말했다.

“무슨 속셈으로 만만이를 꼬드겨 부적을 선물하게 한 것이냐?”

“어머님…….”

엽이채는 몹시도 억울했다. 자신이 제안한 건 사실이지만 결국 선물하겠다고 결정한 건 장만만 본인이었다.

“어머니, 뭐 하시는 겁니까?”

장박원이 얼른 엽이채를 감싸고 나섰다.

“장박원, 이!”

맹씨는 엽이채만 감싸고 도는 장박원 때문에 울화통이 터져 명치끝이 아파 왔다.

“이건 만만이에게 주어진 복이다! 복을 선물했다가 만일…….”

“그만하거라!”

상석에 앉아 있던 장찬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허리를 끊었다. 그러자 맹씨와 장박원은 몸을 흠칫 떨었고 옥신각신하던 소리도 쏙 들어갔다.

둘둘 말아 놓은 책을 들고 있던 장찬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엽이채를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장만만에게로 향했다.

“그런 불가사의한 것들이 딱히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만, 황후 마마께서 하사하신 것이며 만만이 너에 대한 축복이 담겨 있는 물건이다.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씨 가문 셋째 부인이 전체적인 국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할아버지.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장만만은 부끄러움에 시선을 떨구었다.

엽이채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는데 억울한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주씨 가문 셋재 부인은 전체적인 국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장찬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가슴을 콕콕 쑤셨다.

“어멈아, 식사하자꾸나.”

장찬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맹씨를 쓱 쳐다보며 상황을 정리했다. 맹씨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그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며칠 안으로 딸의 혼사가 매듭지어지니 그때까지는 꾹 참아야 한다!’

맹씨는 얼른 여종을 불렀고 상 옆에 서서 함께 음식을 차렸다.

사람들이 먹는 둥 마는 둥 밥술을 뜨면서 식사는 일찍 끝났다. 식사를 마친 후 장만만은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엽이채도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배가 부르다고 말한 뒤 류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장박원도 엽이채와 함께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맹씨가 그를 잡아 세웠다. 맹씨는 엽이채가 뜰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장박원을 매섭게 노려보며 훈계했다.

“네 어리석은 안사람을… 잘 단속하거라. 만만이의 혼사를 망치지 않게 말이다!”

“어머니, 이건 공연히 생트집을 잡으시는 거 아닙니까? 이채가 뭘 어쨌다는 말씁이십니까? 그저 좋은 뜻에서 그랬던 겁니다. 거기다 저 사람은 제안만 했을 뿐 선물하겠다고 결정한 건 만만이입니다. 왜 만만이를 꾸짖지 않고 그 사람을 꾸짖는 겁니까?”

“내가 언제 만만이를 혼내지 않는다고 했느냐? 당연히 혼쭐을 낼 게다!”

맹씨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좋은 뜻에서 그리했다고? 그 애가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엽이채는 그저 엽연채를 찾아가 그 앞에서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장박원은 순간 말문이 막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맹씨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화가 나 명치끝이 또다시 아파 왔다.

상석에 앉아 있던 장찬은 천천히 눈길을 돌리며 엄히 말했다.

“소란 피우지 말거라! 만만이의 혼사가 칠월 전에 결정될 것이다. 며칠 안 남았다는 말이다.”

장만만의 혼사는 집안의 중대사였고 장찬이 어렵사리 구한 혼처였다. 태자의 지위는 태산같이 굳건하니 향후 제위에 오르면 장만만은 귀비의 신분이 될 것이었다. 그때 장만만이 아들이나 딸 하나만 낳아도 장씨 가문은 황자나 공주의 외가가 된다. 그 이상의 것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황족의 외척이 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맹씨와 장굉은 고분고분 알겠다고 대답했다. 장찬은 찻잔에 든 차를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갔다.

* * *

한편, 엽이채는 자신과 장박원이 지내는 처소로 돌아왔다. 장박원이 금방 돌아올 것이라 예상한 그녀는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장박원은 처소에 들어서다 그녀가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이 아팠지만 이렇게 흐느끼는 모습을 자주 본 터라 동시에 짜증도 좀 났다.

장박원은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달랬다.

“이채야, 울지 말거라. 그 일은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황후 마마께서 하사하신 물건을 어떻게 남에게 선물할 수가 있어.”

“전… 전 그냥 말 한마디 꺼낸 것뿐이에요. 아가씨가 아가씨 입으로 그 부적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써도 된다고 말하셨고요. 아가씨와 함께 그 부적을 받은 황후 마마의 조카딸께서 마마께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써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마마께서 그리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대요. 그런데 왜 갑자기 해선 안 되는 일이 되어 버린 거예요?”

엽이채는 숨을 헐떡이며 훌쩍거렸다.

“아가씨가 줄곧 연채 언니를 걱정하시기에… 아가씨의 바람을 이룰 수 있게 저도 좋은 뜻에서 한마디 꺼냈을 뿐이에요.”

장박원이 어떻게 더 그녀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는 적당히 엽이채의 편을 들었다.

“알겠으니 어서 눈물을 닦으렴. 이제 두 달 뒤면 과거 시험이 있으니 난 이만 가서 서책을 보련다.”

“아…….”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장박원은 이미 몸을 돌이킨 후였다. 엽이채는 입술을 깨물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엽연채를 전체적인 국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던 장찬의 그 말이 또다시 떠올랐다. 이건 자신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 버리는 말이 아닌가? 엽이채의 마음은 개미가 물어뜯기라도 하는 양 아려 왔다.

“큰마님, 앵두 드세요.”

이때 여종 하나가 수정으로 만든 과반果盤을 들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엽연채는 냉큼 새빨간 앵두 하나를 베어 문 후에 물었다.

“이것 참 맛있구나.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여종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큰마님 친정에서 보내 오신 것입니다. 백하촌白河村에서 큰 바구니로 몇 개나 되는 양을 정안후부로 보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커다란 바구니로 한 개 정도 되는 양을 큰마님께 보내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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