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온씨는 주운환이 들어올 때부터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녀는 사위가 출신도 안 좋고 용모도 볼품없어 밖에 데리고 다니기 창피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딸이 왜 한 번도 그를 데리고 집으로 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사위는 뜻밖에도 그저 단정한 수준이 아니라 세상에 몇 없을 만한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온씨는 삼십여 년을 살면서 주운환보다 더 잘생긴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내가 딸과 함께 서 있으니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다른 것은 우선 제쳐두고, 적어도 외모만 놓고 보면 체면이 서고도 남았다.
“연채가 남편을 데리고 오지 않으려고 했던 게 용모가 너무 준수해서 누가 낚아채 갈까 봐 걱정돼서 그랬나 보네?”
엽영교가 엽연채를 놀리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녀는 속으로 ‘우리 사촌 오라버니보다 더 잘생겼잖아!’라고 생각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의 말에 온씨와 나씨 부부, 묘씨와 엽학문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억지웃음을 짓는 손씨는 속으로 아니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엽연채 이 아리따운 꽃이 똥물에 빠진 꼴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똥물은커녕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단지에 들어가다니, 그래서야 더욱 곱고 아름답게 보일 뿐 아닌가.
“이쪽은 고모예요.”
엽연채는 이어서 엽영교를 소개해 주었다.
“고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주운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조카사위는 예의도 참 바르구나.”
엽영교가 연장자의 모습으로 입을 살짝 오므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권의에 앉아 있던 엽이채와 장박원은 몸이 경직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금 전 자신들은 안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호칭을 부르거나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 자리에 털썩 앉은 후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아부하고 비위를 맞춰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단 생각에 한껏 의기양양해했다.
그런데 지금 엽연채 부부가 예를 갖춰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으니 교양 없고 예의 없게 행동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았다.
장씨 가문에서 보낸 두 하인도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들은 장박원이 실례를 범할까 염려되어 함께 온 것이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마치 예언이 들어맞은 양 장박원이 실례를 범하고 만 것이다.
엽이채는 주운환을 쳐다보며 마음이 심란했다. 엽이채와 손씨 부부는 이전에 주운환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엽이채와 주운환의 혼약을 맺었던 건 증조할아버지였고, 손씨는 그 혼약을 죽자 살자 반대했었다. 하지만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독단적으로 사주단자와 증표를 교환한 후 그들의 정혼을 강행했다.
이것만으로도 속이 터지는데 주씨 가문 서자인 셋째 공자는 한 번도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엽이채와 손씨는 이 혼사는 반드시 물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에 그를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진짜 주운환의 모습을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씨 가문 셋째 공자가 이렇게나 잘생겼을 줄이야. 엽이채는 기분이 완전히 바닥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잘생기면 뭐 하겠는가. 그래 봤자 몰락한 가문의 서자에 불과했다. 그뿐만 아니라 장박원도 인물이라면 빠지지 않았다. 엽이채는 그렇게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장박원을 쳐다봤다. 하지만 주운환과 비교하니 장박원의 인물이 그렇게 빼어나 보이지 않았다.
장박원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엽연채 부부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차를 마시는 척했다. 그들의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겉으로는 평온한 태도를 가장했으나 속은 온통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에 자신은 엽연채 앞에만 서면 빛을 잃고 초라한 모습이 되어 버리고는 했다. 나중에는 그녀가 지나치게 화려하게 생겨 그럴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주운환이 그녀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장박원은 속이 더욱 뒤틀렸다.
엽연채가 주운환에게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는데, 손씨가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입을 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사위들이 시장하겠어요!”
그러자 엽학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밥상을 차리거라.”
대제의 도성에서는 혼인하고 이틀째에 신부가 신랑과 함께 친정집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관례가 있었다. 그리고 친정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부부는 처음으로 한 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됐다. 절대로 떨어져서 먹지 않기에 연회장에는 남녀가 앉는 식탁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멈들은 안녕당의 응접실에서 상을 두 개 차리고 있었다.
손님인 엽연채 부부와 엽이채 부부는 엽학문 부부와 엽승덕 부부, 그리고 엽승신 부부와 함께 같은 상에 자리했다. 엽승강 부부는 엽영교, 엽미채, 엽균, 엽영과 함께 다른 상에 착석했다.
이렇게 앉으니 엽연채가 자리한 상 앞에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자리 배치를 다르게 바꿀 방법이 없었다. 풍습에 따르면 엽승덕 부부와 엽승신 부부는 사위와 함께 앉아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엽학문 부부가 비좁게 앉는 수밖에 없었다.
여종들이 예쁜 찬합을 하나씩 들고 와 상 위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먹자꾸나!”
“두 손주사위도 편히 먹거라.”
엽학문이 권하자 묘씨도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엽학문이 찬을 하나 집어 들자 그제야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손씨는 주운환이 우아하게 젓가락을 드는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조카사위, 많이 드시게. 평소에는 이런 진수성찬은 먹지 못할 테니까.”
그녀는 주운환의 집안이 가난하다고 비꼬았다. 그 집안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서자 주운환이 이런 좋은 음식은 입에 대 보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씨의 말에 온씨는 표정이 확 어두워지더니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 청반압사淸伴鴨絲(익힌 오리고기를 채 썰어 조미료와 생강과 고추 등과 함께 볶은 요리)와 벽취육환碧翠肉丸(초록빛 채소를 곁들인 고기완자)이 맛이 꽤 괜찮구나.”
묘씨는 중간에서 얼른 두루뭉술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녀도 손씨의 기고만장한 꼴이 비위에 거슬렸지만, 장씨 가문에 밉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손씨를 적당히 치켜세워 줘야 했다.
주운환은 젓가락으로 청반압사를 한 점 집더니 엽연채의 밥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어리둥절한 엽연채가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자 그는 다시 벽취육환 한 개를 집어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드세요. 할머님께서 맛있다고 하셨어요.”
온씨는 주운환이 다정하게 엽연채에게 반찬을 집어 주는 모습을 보고는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장박원은 그 모습을 보고는 차갑게 웃었다.
“형님은 처형의 비위를 엄청 맞춰 드리네요! 하긴 저희 눈에야 이만저만한 분일지 몰라도 형님께는 하늘에서 떡이 뚝 떨어진 셈일 테니까요.”
듣기에 몹시 거슬리는 말이었다. 주운환의 출신이 미천하다고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차 버린 엽연채가 주운환에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떡과 같으니 엽연채의 비위를 맞춰 가며 그녀를 떠받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온씨는 화가 나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그녀는 전에 장박원을 점잖고 예의 바른 좋은 사내로 봤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속이 좁은 것이 딱 밴댕이 소갈머리였다.
분명 먼저 잘못한 쪽은 장박원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그가 엽연채를 버린 것을 그냥 넘어갔다. 그의 뜻대로 엽이채를 아내로 맞이하게도 내버려 뒀다. 그런데 지금 엽연채의 남편이 자기보다 좀 더 잘생겼을 뿐이라는 점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말인가.
‘과연 둘째네의 가족답구나! 악독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꼴을 보니!’
주운환을 조롱하며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면 앞으로 두 사람은 어떻게 지내라는 말인가? 대로한 와중에도 그런 염려가 들자 온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운환을 쳐다보았다. 손씨와 엽승신은 그 모습을 보며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운환은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어향가자魚香茄子(된장, 파, 생강 따위를 넣고 볶은 가지 요리)를 엽연채의 밥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기다란 속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수묵단청화 같은 청신한 두 눈동자로 장박원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러곤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공연한 사실 아닌가? 난 서자일세. 그런데도 연채 소저께서 나에게 의탁해 주셨으니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소저를 잘 보살펴 드려야지. 나는 뭐 동서처럼 지체 높은 가문의 적자도, 소년수재도 아니니 말일세. 동서는 서녀를… 아내로 맞이하기까지 했으니 뭐,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엽이채는 가만히 앉아 있다 날벼락을 맞았다. 장박원은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분을 못 이기고 손을 부들부들 떨던 그는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주운환의 말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꽂혔다.
장박원은 주운환의 출신이 미천하다고 그를 조롱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운환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오히려 장박원이 사람을 업신여기기나 하는 소인배로 보였다. 그리고 주운환이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엽이채의 가슴에 못질을 했다. 엽이채는 분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주운환은 미천한 신분이고 그의 아내는 신분이 높으니 보물단지 다루듯 그녀를 소중히 대한다는 것이었다. 즉, 장박원이 아내를 귀하고 소중히 대하지 않는 것은 엽이채가 미천한 신분이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그의 말을 되씹어 보던 손씨는 화가 나 탁자를 ‘쾅’ 하고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이, 이 서자 따위가……!”
“제 부군이 서자인 게 뭐 어때서 그러세요? 숙부 숙모와 같은 신분인 것뿐인데요, 뭐.”
엽연채의 당돌한 말에 손씨와 엽승신은 눈앞이 까매지더니 하마터면 바닥에 나동그라질 뻔했다. 엽연채는 조롱의 눈빛으로 손씨를 흘겨봤다. 걸핏하면 주운환에게 서자, 서자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들도 서자와 서녀이지 않은가.
“크흠, 밥 먹는데 말이 많다!”
보다 못한 엽학문이 헛기침을 하며 기 싸움을 정리했다. 엽승신 부부는 낯부끄러워 이만 부득부득 갈았다. 한 사람은 반찬을 집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밥을 입에 쓸어 넣었다.
온씨는 속이 다 후련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라 밥도 두 숟갈이나 더 먹었다. 사위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