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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67화 (67/858)

제67화

엽연채는 입가를 씰룩거렸다. 이건 진귀루에서 파는 떡이었다.

그녀가 매일 반찬을 사려고 경인을 진귀루에 보내니 어느새 그곳 단골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진귀루 주인은 매일같이 그녀에게 압자고를 두 개씩 보내 주었다. 그 덕에 한동안 거의 끼니때마다 압자고 두 개씩을 상에 올렸더니 자신이 압자고를 좋아한다고 주운환이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식탁 한가득 압자고를 깔아 놓은 건가?’

“왜 안 드십니까?”

주운환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자신의 공로를 치하해 달라는 듯한 그의 눈빛을 보자 엽연채는 차마 압자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네다섯 개쯤 먹으니 배가 차는 느낌이 들었다. 엽연채는 주운환에게도 젓가락을 건네며 권했다.

“공자도 드세요.”

“전 이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요.”

주운환이 말했다. 그 말에 엽연채는 말문이 막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그래도 아예 거절하기는 미안했는지, 주운환도 압자고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꽤 괜찮군요.”

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쩐지 맛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부부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압자고를 나눠 먹었다.

엽연채는 자신이 압자고를 몇 개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배가 너무 불렀다. 주운환이 나머지 네다섯 개를 그녀 앞에 놓자 좀 있다 먹겠다고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운환은 곧 난죽거로 돌아갔다.

나한상에 옆으로 누운 엽연채는 곧 자신이 압자고로 변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론 압자고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남은 건 어떻게 하지요?”

혜연이 미소를 지으며 물어오더니 곧 스스로 해결책을 떠올렸다.

“추길이가 압자고를 좋아하니 추길이에게 줄게요.”

그 말에 엽연채는 말문이 막혔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좀 있다가 내가 다시 먹을 거야!”

혜연은 입가를 씰룩거렸으나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그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엽연채는 저녁밥 대신 남아 있는 압자고를 먹고 배를 채웠다. 배가 불러오니 그대로 아무렇게나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아침이 밝자 엽연채는 주운환과 아침을 먹은 후 마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 * *

사월 열나흘은 엽이채가 친정으로 인사를 드리러 오는 날이었다. 원래 정안후부는 엽이채를 위해 이날을 성대하게 준비하려고 했었다. 엽이채 내외가 일가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날, 손씨의 친정 식구들과 이미 출가한 엽학문의 두 서녀, 가장 가까운 두 방계 친척집 식구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기에 원래라면 떠들썩하게 술판이 벌어질 참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런 소동이 벌어졌으니 엽학문은 시집간 여식이 친정으로 인사드리러 오는 이 의례가 없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니 어디 성대하게 치르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그리하여 다른 친척들은 하나도 부르지 않고 엽연채만 참석하게 함으로써 일가친척이 방문한 셈 치기로 했다. 연회는 정실부인이 거처하는 처소 중앙에 위치한 안녕당에서 열렸다.

손씨 부부는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친척들이 방문하지 않는 터라 바쁘게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부부는 자신들의 거처에 콕 박혀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리, 마님. 둘째 아가씨가 오셨어요!”

여설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차가 수화문에 멈춰 섰어요.”

“왔, 왔구나…….”

손씨가 경직된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엽승신을 불렀다.

“나리, 가요!”

엽승신은 아무 말 없이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의관을 정제할 뿐이었다. 부부가 문밖을 나서 잠시간 걸어가니 이내 안녕당에 도착했다. 서차간에 발을 들이자 나한상에 앉아 있는 엽학문과 묘씨 외에도 집안사람들 모두가 참석해 하좌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엽학문이 굳은 표정으로 손씨 내외를 쏘아보았다. 손씨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감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움직여 나씨 뒤로 가 섰다.

“둘째 아가씨 내외가 도착하셨습니다.”

밖에서 그들의 도착을 알리는 여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장박원도 왔단 말인가?’

어제 그런 소동이 벌어졌으니 장씨 가문 사람들은 엽이채를 업신여기고 들볶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한 엽씨 가문은 장씨 가문이 안면을 바꾸고 엽이채가 친정에 인사를 드리러 올 때 장박원을 함께 보내지 않으리라 여기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사람이 함께 왔던 것이다.

아마 장박원이 함께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모양이었다. 엽승신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장박원은 여전히 엽이채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저희가 왔습니다!”

엽이채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밖에서 울려 퍼졌다. 조롱박 문양과 ‘복福’ 자 문양이 들어간 발이 걷히자 붉은 사람 형상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엽이채는 머리 모양을 바꾼 상태였다. 앞머리는 전부 위로 넘겨 올리고 독특한 형태의 타마계墮馬髻(머리를 한쪽으로 틀어 올려 쪽 진 머리가 흘러내릴 듯 말 듯 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위에 꽂아 놓은 마노瑪瑙에 홍옥을 상감한 머리장신구는 그녀의 고귀함과 도도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황금색 연꽃을 수놓은 진홍색 장화妝花 배자와 자홍색 팔 폭 상군湘裙(호남성湖南省에서 짜서 만든 여성용 치마)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지체 높은 가문의 귀부인이었다. 여기에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태도까지 더해지니 조금도 장씨 가문에서 수모를 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생기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의아해했고, 엽학문과 묘씨는 엽이채가 눈물바람으로 친정에 오지 않은 걸 보고서야 낯빛이 한결 밝아졌다.

“엽 노후작, 엽 노부인. 그리고 자리에 계신 모든 어르신들께 처음 인사 올립니다.”

오십 대로 보이는 두 어멈이 엽이채를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분홍색 비갑을 입은 그들은 선물을 들고서는 환하게 웃으며 예를 올렸다.

‘이 사람들은 맹씨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측근 마마들 아닌가?’

거기다 의복과 장신구가 꽤나 화려한 걸 보니 분명 장씨 가문에서 지위가 있는 하인들일 것이었다. 엽학문과 묘씨가 서로를 쳐다봤다.

먼저 묘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사는 그만하면 되었네.”

그러자 엽이채가 말했다.

“할머니, 여기 두 사람은 저희 시어머니를 곁에서 모시는 하인입니다.”

진 마마가 그 말을 받았다.

“저희 마님께서 ‘오늘 맏며느리가 친정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박원이 요놈의 자식이 실례라도 범하게 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라고 하시면서 이 늙은것들을 함께 보내셨습니다.”

장박원을 요놈의 자식이라고 부르며 농담 섞인 인사말을 건네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보가 터졌다. 엽학문과 묘씨 역시 웃는 얼굴로 두 하인이 들고 있는 선물을 살펴봤는데, 전부 귀중해 보이는 것들이라 얼굴에 점점 더 화색이 돌았다.

모두들 장씨 가문이 엽이채를 얕잡아 보고 무시하지 않았을뿐더러, 꽤나 영향력 있는 하인 둘에게 후한 선물을 들려 보내 그녀의 체면을 살려 주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제야 엽학문은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혼수 상자에서 돌덩어리가 굴러 나온 망신스러운 사건이 여전히 걸리기는 했지만, 추문이란 무릇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는 법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손녀가 장씨 가문으로 시집가 자리를 잡았단 것 아니겠는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기소침해 있던 손씨 부부는 금세 흥분해선 나부대기 시작했다.

“여기 앉아요.”

손씨가 나씨 옆으로 비집고 나와 미소를 지으며 권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여종에게 일렀다.

“두 사람이 앉을 걸상을 가지고 오너라.”

“괜찮습니다.”

두 하인은 얼른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여종이 이미 재빠르게 의자를 가지고 왔기에 두 사람은 웃으며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엽이채와 장박원도 엽학문 하좌에 놓인 권의에 앉았다.

온씨는 그 모습을 보자 속이 뒤틀렸다.

‘어제 그런 망신살 뻗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장씨 가문은 엽이채의 체면을 세워 준다는 말인가? 어째서 악인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거지?’

나씨 또한 웃으며 즐거운 체했으나, 속으로는 손씨가 의기양양해하는 꼴이 몹시 못마땅했다.

“아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는데 연채 아가씨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겁니까?”

손씨가 갑자기 온씨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참, 어제 조카사위도 데려오기로 했었죠!”

어제 그런 ‘개망신’을 당해 놓고도 오늘 자기 딸이 위풍당당하게 돌아오자 손씨는 엽연채에게 이 모습을 똑똑히 보여 주려고 했다. 불상사가 생겼음에도 장씨 가문은 여전히 엽이채를 귀히 여긴다는 걸 과시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 자리에 엽연채가 그 서자를 데려오면 아주 좋은 그림이 만들어질 터였다. 장박원이 그의 옆에 서면 천양지차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주게 되어 자신들은 더욱 체면이 설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온씨는 눈꺼풀이 떨렸다. 또 시작이었다. 손씨 이 역겹고 천박한 것이 어제 그런 수치스러운 짓거리를 벌였을 땐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입도 뻥끗 못 하더니, 장씨 가문이 엽이채를 귀히 여기는 것을 보자 또다시 소란을 피우려는 것이다. 거기다 매번 연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온씨는 되레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우리 연채가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니 좀 늦어지나 보네. 그리고 우리 사위는……. 아 참, 동서. 이채의 외삼촌 댁 식구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엽승신과 손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앙심을 품은 온씨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제 그런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는데 무슨 낯으로 친정 식구들을 부를 수 있겠는가. 다들 겉으로 말하지 않을 뿐,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데 온씨가 지금 그걸 굳이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손씨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거리했다.

“이채의 외숙부 내외가… 오늘 책력冊曆(일 년 동안의 월일,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를 날짜 순서대로 쓴 책으로, 운수 따위도 함께 실어둠)을 보더니 출타하기에 좋은 날이 아니라며 오지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되도 않는 변명이란 말인가. 그러나 손씨는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꺼내 놓고도 초조해하는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자 온씨는 냉소를 지어 보였다.

“아, 우리 사위도 오늘은 출타하기에 좋은 날이 아니라 못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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