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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65화 (65/858)

제65화

하지만 겨우 이 정도 돈으로 혼례식을 치르고 혼수까지 마련하면 한없이 궁상맞고 초라해 보일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조롱당하고 모욕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가장 남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사람은 바로 엽이채였다. 그녀는 이렇게 초라한 혼례식을 치를 바에야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까지 말했다.

결국 엽승신 부부와 엽이채는 의논 끝에 어차피 혼수를 이렇게 조금밖에 준비할 수 없으니 차라리 없이 가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좋은 술을 준비하고 집안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혼례식을 성대하게 준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봉관과 혼례복은 노름으로 돈을 날려먹기 전에 맞춰 놓았기 때문에 잔금만 치르면 되었다. 혼수는 기왕 가짜로 준비하기로 했으니 아예 백스물여덟 개를 쌓아 놓아 으리으리해 보이도록 했다!

“이, 이놈이……!”

엽학문은 하좌에 앉아 있는 엽승신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더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엽승신도 요즘 혼수를 마련하겠다고 돈 문제로 시달릴 대로 시달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엽학문이 또다시 자신을 나무라자 그만 이성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소리를 질렀다.

“돈을 잃은 건 저희 잘못이 맞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저희 수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버지도 짐작하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혼례식을 치른다고 하니 아버지도 처음에는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셨잖아요! 그때 아무 말씀도 안 하셨고요! 설마 아버지께서 저희가 혼수로 무엇을 담았는지 짐작도 못 하셨다는 건 아니겠죠?”

엽학문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 그는 혼수 상자 안은 비어 있거나 쓸모없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으리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참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체면은 서겠다고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엽학문은 이 사실을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난 그저 네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 그 많은 돈을 다시 준비한 줄 알았다!”

“제가 그럴 수완이 있었으면 벌써 우쭐거리고 다녔겠죠!”

엽승신도 핏대를 세웠다. 자기 아들이 어느 정도 그릇인지 아버지가 정말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 적반하장에 엽학문은 하마터면 침상 위로 쓰러질 뻔했다.

“아버님, 내일 손녀사위가 처갓집으로 인사를 드리러 올 겁니다…….”

나씨가 입에 띤 미소를 가리려고 손수건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온씨의 눈빛에서도 고소해 죽겠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 뻔뻔스럽고 천박한 여편네야. 이걸 바로 인과응보라고 하는 것이다!’

손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이지 고민스럽고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딸이 위풍당당하게 친정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신부를 맞이하러 왔는데 이런 우스운 꼴이 벌어졌으니 장씨 가문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이채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며 그녀를 원망하고 있을 게 뻔했다. 딸은 이제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엽학문은 화가 났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뜨고 그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

이때 엽영교가 조카인 엽연채, 엽미채를 데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손씨와 엽승신은 엽연채를 보자마자 안색이 확 변했다. 그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손씨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엽연채 앞에서 우쭐거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젠 자신이 뺨을 연거푸 얻어맞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바깥 상황은 어떻더냐?”

엽학문이 맥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음…….”

엽영교가 입가를 씰룩이며 대답했다.

“밖에선 이채와 장박원을 비웃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버지는 공평하고 청렴한 분이라고 칭찬을 하고 있어요. 훌륭한 할아버지라고 말하더라고요. 이채가 연채의 혼사를 가로챘으니 아버지가 혼수를 마련해 주지 않으셨다는 거죠. 맑은 거울처럼 깨끗한 분이래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좋은 평판을 얻으셨어요!”

엽학문은 눈을 가린 채 팔꿈치를 항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좋은 평판을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던 엽학문은 갑자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따귀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에 엽연채와 온씨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엽이채에게 혼수를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엽연채의 혼수를 가져와 엽이채에게 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지금 자기를 공평하고 청렴하며 맑은 거울처럼 깨끗한 분이라고 칭송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얼떨떨할 따름이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흠, 밖에 아직 손님들이 많이 남아 계시니 너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손님들을 대접하거라!”

엽학문이 난처해하고 있음을 눈치챈 묘씨는 얼른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영교와 연채 너희들도 밖으로 나가 대접해야 할 소저들과 부인들이 있는지 살펴보거라.”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됐으니 말을 많이 해 봤자 득이 될 게 없었고, 보고 있으면 속만 시끄러우니 모두 다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온씨가 알겠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간 건 손씨와 엽승신이었다. 어찌나 쏜살같이 내뺐는지 금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온씨와 나씨는 그들이 꽁무니를 감추기 전까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풀이 죽은 그들 내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밖으로 나온 온씨는 그제야 화창한 날씨가 눈에 들어왔다. 살랑살랑 부는 따뜻한 봄바람과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을 느끼며 온씨는 상쾌하고 평온한 기분을 만끽했다.

“연채야, 오늘 바람이 참 상쾌하게 부는구나.”

온씨는 엽연채의 손을 끌어당기더니 작게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역시 날씨는 사월이 최고다!”

엽연채는 ‘피식’ 웃더니 온씨의 팔짱을 끼고 안녕당을 나섰다. 온씨와 엽연채가 의기양양해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던 엽승덕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극도의 분노와 혐오감을 느꼈다.

‘이 악랄한 것들……! 박원이와 이채의 행복한 혼례식을 그 꼴로 만들어 놓고서는 고소해하며 웃고 있다니!’

* * *

그 시각, 장부張府.

장박원이 신부를 맞이하러 나간 후 시동은 수시로 들어와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신부는 맞이했는지 등의 상황을 장굉 내외에게 보고했다. 일을 의논하러 맹씨가 장굉의 서재로 들어갔을 때, 마침 시동 하나가 장굉의 하좌에 서서 침을 튀겨 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안후부에서 정말 으리으리하고 호화로운 혼례식을 준비했더라고요. 술은 금천만金泉彎에서 파는 채색 단지에 담은 고급 소흥화조주紹興花雕酒를 썼고, 초롱에는 금가루로 문구를 새겼으며 집안 곳곳에 초롱을 달고 오색 천으로 장식을 했더라고요. 혼수는 무려 백스물여덟 개나 된다고 합니다! 참석한 손님마다 칭찬 일색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장굉은 매우 흡족해했고, 마침 안으로 들어오는 맹씨를 보더니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인, 혼사가 정말 성대하게 치러지는구려. 아직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소?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 마시구려.”

맹씨는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뭘 그렇게 따졌다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뭘 어찌할 수 있겠어요?”

장굉은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시동에게 물었다.

“더 말할 게 있느냐?”

시동은 다시 침을 튀겨 가며 엽씨 가문이 얼마나 호화롭게 혼례식을 준비했는지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맹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리, 크, 큰일 났습니다!”

이때, 회색 옷을 입은 둥그런 얼굴의 시동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다 맹씨를 보더니 바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 마님.”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장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같이 경사스러운 날에 무슨 큰일이 났다는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낸다는 말인가.

“공자님이 신부를 맞이하러 가셨잖아요. 위풍당당하게 돌아오고 계시는데 백스물여덟 개의 혼, 혼수가…….”

시동이 머뭇머뭇하며 장굉을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혼수를 들고 가던 하인 하나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혼수 행렬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혼수 상자에 들어 있던 혼수품들이 굴러 나왔는데 그게 전부 돌덩어리였던 겁니다!”

“뭐라?”

맹씨는 깜짝 놀라 펄쩍 뛰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백스물여덟 개의 혼수가… 전부 돌덩어리였다고?”

“아닙니다. 세 개는 진짜 혼수였습니다!”

시동의 대답을 들은 맹씨는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게 그거지! 뭐가 다르단 말이냐?”

그러자 장굉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에서 굴러 나왔느냐? 집안에서 굴러 나왔느냐?”

만약 집 안에서 일이 벌어졌다면 그 장면을 목격한 이가 적을 테니 최대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돌덩어리를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은 후 혼례식을 계속 거행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장씨 가문은 남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게…….”

시동은 머뭇머뭇하며 고개를 들었다.

“신부가 꽃가마에 오른 후 가마가 출발하려고 할 때 그랬습니다. 대문 밖에 있던… 손님들과 백성들 앞에서 쏟아져 버린 겁니다!”

맹씨는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마님!”

곁에 있던 어멈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맹씨는 진짜로 기절을 했던 건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뿐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서녀인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사내와 사랑의 도피를 한 천박한 계집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이런 소란까지 피워 자신의 친정집 체면에까지 먹칠을 하게 만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 천박한 계집애를 절대 우리 가문으로 들일 수 없다!”

맹씨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여기서 떠드는 게 무슨 소용이오. 큰일이 벌어졌으니 속히 아버지께 알려 드려야지!”

장굉은 소매를 확 휘두르고는 잰걸음으로 서재를 나섰다. 낯빛이 창백해진 맹씨는 다리는 물론이고 전신에 힘이 빠져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마님.”

어멈이 조심스럽게 맹씨를 부축했다.

대리시경 장찬도 소식을 듣고는 얼른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서재로 돌아왔다. 야위어 뼈만 남은 장찬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아래턱에 난 염소수염은 살짝 위를 향해 있었고, 명주로 만든 갈색 도포는 무뚝뚝하고 진지한 그의 모습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그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긴 책상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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