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사람들은 우당탕 넘어지면서 ‘아얏’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렇게 혼수를 들고 가던 사람들이 전부 벌렁 나자빠지며, 혼수 상자들이 바닥을 굴렀다.
진귀한 보석들이 우르르 쏟아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진홍색 혼수 상자에서는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바닥에 쫙 깔린 돌멩이 하나가 구경꾼 사이로 굴러가 한 아낙네의 발을 찧고 말았다.
사람들은 눈앞에 가득한 돌덩이들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사람들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세상에, 지금 내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담!’
“아이고, 내 발이야! 으아악!! 아오, 아파 죽겠네! 혼수 상자에 돌덩이를 집어넣는 집구석이 대체 어디 있어, 앙? 사람 잡을 뻔했잖아! 보상해! 보상하라고!”
돌덩이에 발을 다친 아낙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사람들의 정신이 돌아왔다. 곧이어 ‘푸하하’ 하고 요란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안후부 대문 앞에 서서 신랑신부를 배웅하던 친족들과 손님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앞에서 걸어가던 신부 맞이 행렬 또한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고, 흥겨운 음악 소리도 일순간 뚝 끊기고 말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잇달아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십리홍장은 다 어디 간 거야?”
“십리홍장은 무슨. 십 리에 깔린 돌덩이들이지! 돌덩이로 혼수를 해 갈 생각을 한 거야? 정말 대단하네!”
“납폐로 엄청난 거금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장씨 가문에서 엽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귀히 여긴다고 하지 않았어? 엽씨 가문도 딸을 시집보내는 데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잖아? 이게 무슨……! 쯧쯧, 앞에 있는 세 개 빼고 뒤에 있는 건 전부 다 돌덩이인 거잖아!”
돌덩이에 발을 찧은 아낙네는 화가 나 씩씩거리며 목청을 높였다.
“소문처럼 엽씨 가문 둘째 아가씨가 혼사를 가로챈 거 아니야? 장씨 가문과 엽씨 가문은 체면 때문에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잘못 쓴 거라고 둘러대며 마지못해 이 혼사를 승낙한 거고. 그러니 혼수가 이 모양인 게지.”
구경꾼들은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일이야 커지든 말든 별의별 소리를 다 해 댔다.
”나도 원래 청첩장을 잘못 썼다는 소리는 보기 좋게 꾸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장씨 가문에서 계속 혼사를 밀고 나가고 납폐로 거금을 보내며 신부를 귀히 여긴다고 하길래 설마 했지.
거기다 십리홍장이니 엽씨 가문에서 재산을 쏟아부어 딸을 시집보내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다 큰아가씨의 혼례식보다 더 성대하게 치르니, 그 보기 좋게 꾸민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게 된 거지! 그런데 쯧쯧, 그게 다 거짓이라니.”
“엽 노후작이 참 공평하고 청렴한 분이시네. 둘째 아가씨가 큰아가씨의 혼사를 가로채니 혼수를 마련해 주지 않으신 거잖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부가 준비한 십리홍장으로 한껏 체면이 서고 이만하면 더없이 으리으리하다고 생각했던 장박원은 갑자기 쏟아져 버린 혼수가 전부 돌덩이인 걸 보고는 화가 나 몸을 휘청거리다가 하마터면 낙마할 뻔했다. 장박원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부끄럽고 무안한 나머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파 또한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에나!’
수십 년간 매파 생활을 해왔지만 이처럼 낯부끄럽고 우스운 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참아야만 했다. 자신은 직업의식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니까.
매파는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음악! 음악이 멈춰서야 되겠느냐! 어서 풍악을 울려라!”
악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음악을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있는 힘껏 피리를 불고 징을 쳤지만 사람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를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자!”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의 눈빛을 견딜 수가 없었던 장박원은 말 엉덩이에 채찍을 갈겼다. 그 뒤를 이어 신부 맞이 행렬이 헐레벌떡 앞으로 달려 나갔고, 혼수를 들고 가는 하인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돌덩이를 주워 상자에 담아야 좋을지 아니면 줍지 않는 게 좋을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 대열의 앞쪽 사람들이 헐레벌떡 앞으로 뛰어나갔다. 뒤에 있던 하인들은 돌덩이를 주워 담고 싶어도 그럴 새가 없어져, 빈 상자를 들고 신부 맞이 행렬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푸하하’ 연신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중 입이 거친 한 사람이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따, 왜 도망가는 거래? 돌덩이 혼수는 필요 없나 보지?”
꽃가마에 타고 있던 엽이채는 밖에서 들리는 기척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알게 되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엽이채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때 꽃가마가 휘청거리더니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엽이채는 물론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가마 벽을 꽉 부여잡은 그녀는 엄청난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꽃가마를 타고 천천히 길 위를 지나가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이 될 테니까. 그런데 이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엽이채는 눈시울을 붉히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늘의 이 수모는 열 배, 스무 배로 반드시 대갚음해 주고 말 것이다! 훗날 엽연채 이 빌어먹을 계집애를 무참히 짓밟아 버릴 것이다!’
물론 엽연채를 무참히 짓밟는 건 사실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엽이채의 혼수를 몽땅 날려 버린 사람은 바로 그녀의 부모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상자에 돌덩이를 채워 넣은 것도 그들이 벌인 일이었다.
그래도 엽이채는 엽연채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맹세했다. 아무리 미워도 자신의 부모에게 복수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엽이채는 다분히 그녀다운 방식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엽연채가 내 혼수를 빼앗아 가는 바람에 우리 부모님도 노름을 하셨던 거야! 그러니 전부 엽연채 탓이지!’
신부 맞이 행렬은 서른여 장丈을 전속력으로, 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대문 앞에 서 있던 엽연채와 엽영교, 온남아와 포기 등 친척들과 손님들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돌덩이들을 쳐다보며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푸하하!”
온남아가 그만 참지 못하고 제일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엽영교도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십리홍장이라고? 아이고, 우스워죽겠네!”
온남아는 호들갑을 떨며 배를 부여잡고 웃어댔다.
“포 소저, 안 그렇습니까?”
그 말에 포기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녀는 방금 전 갖은 말로 엽이채를 칭찬했다. 성대한 혼례식에 혼수품도 어마어마하게 준비했다고 그녀를 추켜세우며 엽연채에게 치욕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십리홍장이 십 리에 깔린 돌덩어리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뺨을 철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포기는 부끄러운 마음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온남아를 뒤로한 채 돌아서서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온남아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
“소저, 제가 묻고 있잖아요. 뭘 도망을 가고 그래요?”
그러자 엽영교가 얼른 온남아를 꼬집었다.
“얘!”
온남아가 고개를 돌려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엽영교가 그녀를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손님들 앞에서 엽이채를 그리 깎아내리면 큰새언니가 우리 아버지에게 미운털이 박힌다고!”
온남아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지더니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 엽이채가 체면을 구기면 엽씨 가문도 체면을 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온씨의 친정 식구이니, 자신이 손님들 앞에서 엽씨 가문의 체면을 구겨 버리면 엽학문은 자연히 온씨를 원망할 것이었다.
온남아는 멋쩍어하며 고개를 돌렸다. 손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가리고 웃거나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대문 안으로 들어서더니 정청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추길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더니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엽연채의 뒤로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곧 엽연채의 눈빛에 웃음기가 어렸다. 그녀는 엽영교와 온남아에게 말했다.
“고모, 언니. 우리도 돌아가요!”
손님들은 전부 커다란 응접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엽학문과 묘씨는 물론 온씨와 다른 일가 식솔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손님들 일부는 여전히 정청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혼수가 아닌 돌덩어리들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님들의 얼굴에는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엽연채는 두 눈을 살짝 깜빡였다. 밖에서 벌어진 일을 하인들이 와서 보고한 게 분명했다. 엽학문 성정에 어디 낯부끄러워서 이곳에 남아 손님들을 대접할 수 있겠는가?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을 떠난 게 틀림없었다.
“우린 안녕당으로 가자.”
엽영교가 말했다. 이런 상황이면 십중팔구 안녕당에선 엽학문이 훈시를 늘어놓고 있을 것이었다.
엽연채 일행은 금세 안녕당 밖에 도착했다. 그런데 안녕당 안에서 할 이야기는 집안 망신에 관한 것이라, 엽씨 가문 사람이 아닌 온남아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온남아는 안녕당 가까이에 위치한 정자에서 두 아가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엽연채 일행이 안녕당 건물로 들어서자 안에선 역시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잘하는 짓이다, 혼수 상자에서 갑자기 돌덩어리가 굴러떨어지다니! 너희 때문에 우리 엽씨 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졌어!”
그러나 엽승신도 지지 않고 맞섰다.
“아버지, 저희가 은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아버지도 모르셨던 건 아니잖아요? 혼수 상자에 돌덩이를 채워 넣는 거 말고 뾰족한 수가 있었습니까?”
욕심이 대단했던 손씨는 노름에서 더 많은 돈을 딸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엽이채의 혼수와 마을뿐만 아니라 혼례식을 치르는 데 드는 은화마저 전부 판돈으로 걸었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이후 엽승신 부부는 혼례식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손씨는 돈을 빌리러 친정에 갔지만 그녀는 본래 서녀였고, 집안의 주인은 적출인 오라버니와 그의 아내였다. 그들은 엽이채가 좋은 가문에 시집가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고작해야 은화 오백 냥만 빌려 주었다.
엽승신도 여기저기서 돈을 긁어모아 오륙백 냥 정도를 마련했다. 엽승덕은 그들에게 몰래 이백 냥을 건네주었고, 장박원은 팔 수 있는 물건을 전부 팔고 친구에게도 돈을 빌려 팔백 냥을 마련했다. 그리고 손씨도 헌 옷 등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도합 이천 냥 좀 넘게 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