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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61화 (61/858)

제61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어느덧 엽이채의 혼례식 날이 되었다. 엽연채는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치장을 하고 있었다.

추길이 밖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 맞다. 아가씨, 셋째 공자님께서는 왜 아직 안 오시는 거예요?”

“내가 부르지 않았다. 엽이채의 혼사는 다들 내키지 않아 하고 있어. 거기다 공자님은 전 정혼자였으니 얼마나 불편하시겠니.”

엽연채가 탄식하며 말했다.

“하지만… 공자님께서 안 가시면 집안에서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추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라지, 뭐!”

엽연채는 다시금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지난번에 불경을 필사하고 그 이튿날, 여양이 와서 셋째 도련님이 요즘 바쁘셔서 함께 식사하시지 못할 거라고 전했다. 주운환은 난죽거에서 지내고 있는 데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야 돌아오니, 엽연채는 그가 무슨 일로 바쁜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여 그를 못 본 지도 거의 보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바쁘다고 하니 더더욱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자신이 벌인 일은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음속이 텅 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엽연채는 홍옥을 상감한 나비 장식을 머리 위에 꽂은 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말했다.

“고우니?”

“예, 곱습니다.”

추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엽연채는 미소를 짓더니 옷소매를 털며 일어섰다.

“가자!”

* * *

오늘은 봄바람이 따스하고 만물이 소생하는 사월 열사흘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화창해도 혼례식을 올리기에 적절한 때는 아니었다. 사월에 혼례식을 올리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도 장씨 가문과 엽씨 가문이 굳이 이날을 고른 이유는, 그들의 상황을 아는 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간에 정안후부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았다. 초롱을 달고 오색 천으로 장식을 해 놓은 집안은 시끌벅적하기 그지없었다.

물푸레나무가 서 있는 물가 옆 정자는 하객으로 온 여인들을 맞는 공간이었다.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꽃구경을 하거나 함께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오늘 혼사에 관한 것이었다.

정자에는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등황색 능라綾羅 치마를 입은 어여쁜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

“사월에 혼례식을 치르는 가문이 어디 있어. 정을 통해도 벌써 통했을걸!”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노란 옷의 귀여운 아가씨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거리했다.

“온 소저, 교양 없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엽연채가 아무리 아가씨의 사촌 여동생이더라도 그런 입에 담기 민망한 말로 신부를 욕하시면 안 되죠!”

그 말에 온남아의 표정이 확 굳었다. 노란 옷을 입은 소저의 이름은 포기이고 장국후부의 여덟째 아가씨였다.

장국후부와 정안후부는 전부터 친분이 있어 포기와 엽연채도 서로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엽연채의 외모가 포기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이유로 포기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엽연채가 서자에게 시집을 갔을 때 당연히 뛸 듯이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포기가 말을 이었다.

“장 공자께서는 열세 살에 수재가 된 청년 준걸이에요. 그런 분이 설마 일자무식인 사람이나 하는 짓을 했겠어요? 그분이 서녀를 아내로 맞이할지언정 적장녀를 마다하는 걸 보니 큰소저의 품행에 문제가 있는 거겠죠.”

“뭐라고요!”

화가 난 온남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만!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주위에 있던 귀족 아가씨들이 잇따라 둘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래요.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죠.”

이때, 일이야 커지든 말든 자기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던 한 아가씨가 말했다.

“오, 저기 연채 언니가 오네요! 연채 언니, 이쪽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과연, 한 소녀가 그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포기가 ‘풉’ 하고 웃으며 말했다.

“연채 언니는 무슨. 주씨 가문 셋째 부인이지.”

엽연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전에 알고 지내던 귀족 아가씨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 온남아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기는 조롱으로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엽연채가 그녀 곁으로 다가서는 순간 더는 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엽연채는 매화 암문이 들어간 수수한 항주산杭州産 비단 윗옷에 하늘거리는 암홍색 무늬 치마를 입고 있어 특별한 차림새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요염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절세미녀였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고 해 봤자 몸 뒤로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 모양을 쪽 진 머리로 바꾼 것뿐이었다.

엽연채가 아가씨들의 앞에 서자, 곱게 단장한 귀족 아가씨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묻혀 초라하게 느껴졌다.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온남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온남아가 엽연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방금 전 엽연채를 욕보인 포기 때문에 분통이 터질 뻔했다.

한편, 엽연채를 본 포기는 파리라도 삼킨 양 속이 뒤틀렸다. 엽연채가 몰락한 가문의 서자에게 시집을 갔으니 모진 고초를 겪어 비참하고 처참한 몰골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모습이 출가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으니 심사가 뒤틀리지 않을 수 있으랴.

포기가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주씨 가문 셋째 부인, 오늘 사촌 여동생의 혼례식인데 부군은 왜 함께 오지 않으셨나요?”

“이곳은 여인들을 맞이하는 장소잖아요. 사내들은 당연히 밖에 있죠.”

온남아가 말했다. 엽연채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으나 그녀는 사실대로 말을 꺼냈다.

“제 부군은 오늘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어요.”

포기는 그 말을 듣고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난초 문양이 들어간 비단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정말 공교롭게도 그리됐나 보네요!”

포기는 일부러 의미심장한 말투를 써서 의심스럽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진짜 일이 있어서 못 오는 건지 아니면 창피해서 데려오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라는 식이었다. 엽연채를 쳐다보는 귀족 아가씨들 중에는 동정하는 이도 있었고 고소해하는 이도 있었다.

엽연채는 정말 불쌍하기 짝이 없는 신세였다. 어엿한 정안후부의 적녀가, 그것도 저리 고운 얼굴을 가지고 몰락한 가문의 서자에게 시집을 갔으니 당연히 남편을 데리고 나와 사람들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보나 마나 인물도 볼품없고 좀스럽게 생겼을 것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신부가 치장을 마쳤습니다.”

그 소리에 포기가 얼른 일어나더니 웃으며 말했다.

“신부의 치장이 끝났다고 하니 얼른 가서 구경합시다!”

그렇게 말하며 또 엽연채를 쳐다봤다.

“셋째 부인, 신부 화장은 평생에 한 번만 볼 수 있잖아요. 더군다나 사촌 여동생인데 당연히 가서 보실 거죠?”

신부가 평생에 한 번만 하는 화려한 치장을 마치면 손님으로 온 여인들에게 보여 주는 풍습이 있었다.

“가야죠. 왜 안 가겠어요!”

엽연채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했다. 여기서 가지 않으면 더욱더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었다.

포기는 속수무책으로 한껏 치장한 원수의 모습을 지켜보게 생긴 엽연채의 처지에 기뻐 죽을 것만 같았다. 포기가 앞장서서 일행들을 이끌고 옥리원으로 향했다. 뒤에서 따라가던 온남아는 엽연채를 꼬집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방금 전에 뭣 하러 그리 솔직하게 이야기했니, 네 부군은 밖에서 사내들과 함께 있다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설마 진짜로 거기 있는지 가서 들여다봤겠어?”

온남아는 사람들이 엽연채가 서자인 남편이 부끄러운 나머지 그를 데리고 나오지 않은 모양이라고 비웃어 대는 게 몹시 속상했다. 엽연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육친六親인 제가 그 자리에 빠질 수는 없는데, 어쨌든 부군께서는 오시지 않았잖아요. 둘째 숙부 내외가 분명 물어볼 텐데 그때 가서 안 왔다고 하면 더 난처하고 민망하지 않겠어요?”

온남아는 탄식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속으로 사촌 여동생의 남편을 얼마나 욕했는지 모른다. 진창에 빠진 아리따운 꽃 신세가 된 엽연채가 가여워 가슴이 다 저릿저릿했다.

사촌 여동생의 남편이 정말 남 앞에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를 데려오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그리 생각하니 차라리 데려오지 않은 게 더 낫겠다 싶기도 했다. 괜히 수모만 더 당할 테니 말이다.

그들은 물가를 따라 걸어가며 곳곳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저택을 구경했다.

붉은 비단이 건물을 휘감고 있었고, 그 위론 얇은 천과 비단을 묶어 만든 동그란 형태의 꽃이 달려 있었다. 금가루로 쌍희문囍을 새긴 커다란 홍등도 높이 매달려 있었다. 뜰마다 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붉은 비단과 조화造花 장식이 화려함을 뽐내니, 온 집에 호화스럽고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걸어가던 귀족 아가씨들은 저마다 쯧쯧 혀를 차며 탄식했다.

“이야, 확실히 장씨 가문에 시집가는 거라 다르긴 다르네. 저번 큰아가씨 혼례식 때보다 훨씬 성대하잖아!”

포기가 걸어가며 이리 평했다. 엽연채 곁에서 걷고 있던 혜연과 추길은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확 이지러졌다. 그러나 정작 모욕당한 엽연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엽이채와 장박원을 비웃을 뿐이었다. 그들의 혼사는 이미 사람들의 의혹을 사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더욱 웅장하고 화려한 혼례식을 치르고 싶었을 것이었다.

그들이 옥리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상태였다. 포기가 먼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말했다.

“와, 혼수가 엄청 많잖아. 저번 큰아가씨 혼례식 때 뜰에 내놓은 것보다 절반이나 더 많네!”

엽연채는 두 눈을 살짝 깜빡이더니 앞으로 다가가 흘끗 쳐다봤다. 정말로 커다란 붉은 나무 상자들이 백여 개는 되어 보였는데, 위에 놓인 대여섯 개는 열려 있는 상태였다. 안에는 옥기玉器와 머리 장신구,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병, 화려하고 귀해 보이는 비단과 공단이 들어 있었다.

한편, 손씨는 정방正房의 낭하廊下에서 귀부인 몇 명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살짝 통통한 귀부인이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 아가씨 혼수가 대체 얼마나 되는 거예요. 하도 많아서 다 셀 수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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