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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9화 (49/858)

제49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주묘화가 엽연채에게 물었다.

“새언니,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대로 괜찮네요.”

엽연채는 입꼬리를 올리며 수긍했다. 엽이채의 혼수를 전부 날렸으니 손씨는 분명 죽을힘을 다해 그 사실을 숨기려 할 것이고, 동시에 가족들에게서 다시 혼수를 뜯어 낼 생각을 할 것이었다.

엽연채는 이모저모로 궁리를 하다가 사람을 시켜 손씨가 노름으로 돈을 날려 먹었다는 사실을 엽학문에게 폭로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차를 빌리던 중 뜻밖에도 문방에 있는 유이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혜연에게 돈을 주며 불량배 하나를 사서 금외루의 심부름꾼으로 둔갑시킨 후 손씨가 혼수를 노름으로 날려 먹은 사실을 유이에게 알리도록 했다. 그 사실을 들은 유이는 예상대로 낯빛이 변하더니 황급히 돌아갔다.

‘지금쯤 정안후부는 분명 난장판이 되어 있겠지. 얼마나 볼 만할까!’

모퉁이를 돈 마차는 장승가에 다다랐고 잠시 후 정국백부의 동쪽 측문 밖에 멈춰 섰다. 엽연채 일행이 측문으로 들어가 수화문에 도착하자 진씨의 여종 녹지가 꽃밭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셋째 마님, 둘째 아가씨, 돌아오셨네요! 셋째 마님, 마님께서 얼른 일상원으로 오시랍니다.”

녹지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전했다. 그러자 낯빛이 새파래진 주묘화가 난초가 수놓인 비단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가요!”

엽연채는 발걸음을 옮겼고 주묘화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수화문을 지나 이윽고 일상원에 도착했다. 방 안으로 채 들어서기도 전에 주묘서가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엽은 엽연채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얼른 발을 걷어 올리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알렸다.

“마님, 셋째 마님과 둘째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씨는 기다란 침상 위에 앉아 있었고 주묘서는 바로 옆에 놓인 값나가 보이는 수돈에 앉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주묘서는 아까 입었던 알록달록한 옷을 벗고, 머리 위에 꽂았던 금빛 찬란한 보요와 이마에 드리운 미심추도 뗀 상태였다. 상·하의가 붙은 수수한 색의 긴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옥으로 된 머리꽂이 하나만 꽂았다. 강심설은 아들을 안은 채로 권의에 앉아 있었고, 백 이낭도 강심설 옆에 앉아 있었다.

엽연채와 주묘서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진씨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 너에게 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묘서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데 보고만 있었던 것이냐?”

엽연채의 눈에 비웃음이 어렸다. 주묘서가 자신이 억울한 부분만 골라 이야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설령 주묘서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도 진씨는 필시 모든 잘못을 엽연채의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엽연채의 생각이 맞았다. 주묘서는 자신이 억울한 부분만 이야기했지만 강심설이 춘산을 잡아당겨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춘산은 솔직한 아이라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씨에게 전했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들은 진씨는 엽연채가 딸을 곤경에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엽연채는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고 그저 한마디만 툭 꺼냈다.

“제가 혹시 뭐 잘못한 부분이 있을까요?”

그 말에 말문이 막힌 진씨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하겠다는 것이냐? 내 너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오라고 했는데 넌 이 아이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였군요. 큰아가씨께서 격에 맞지 않게 치장하신 데다 적성대에선 갑자기 금을 연주해 주위에 있던 규수들과 공자들이 모두 아가씨를 비웃었습니다. 제가 무슨 수로 그걸 막습니까? 다가가서 그 사람들의 입이라도 틀어막았어야 했다는 말씀이세요?”

화가 극에 달한 진씨가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묘서의 차림이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미리 귀띔해 주지 않아 그 수모를 당하게 내버려 둔 것이냐?”

“귀띔해 드렸습니다. 마차에서 두 번이나 충고해 드렸어요. 처음에는 보요 두 개면 충분하니 화전은 지우고 미심추는 빼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아가씨께서는 예쁘기만 하다면서 거절하셨죠.

저는 큰아가씨께 미움을 살 수도 있는데도 그런 치장은 너무 과하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아가씨께서는 두문불출하는 사람의 식견으로 무슨 다른 사람을 평가하느냐고 성을 내셨죠.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어요. 지금 주씨 가문이 몰락하기는 했지만 교양은 아직 남아 있어서 저처럼 식견이 없지는 않다고요. 주씨 가문에서는 그런 차림이 교양 있는 차림이라 하시니 제가 뭘 더 이야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진씨는 말문이 막히면서 얼굴이 새파래졌다. 엽연채가 그리 노골적으로 귀띔을 해 줬는데도 자기 딸이 귓등으로도 안 듣고 제 고집대로 행동한 것이니, 더는 엽연채를 탓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씨는 자신의 딸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원치 않았다. 잘못한 건 반드시 다른 사람이어야 했다.

“적성대로 들어간 후부터는 저도 한시도 빼놓지 않고 아가씨만 쳐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가 갑자기 금을 연주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연히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지요. 그 많은 이들이 면전에 대고 아가씨 흉을 보는데 제가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엽연채가 말했다. 그 말인즉슨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주묘서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파며 말려도 듣지를 않았고, 갑자기 금까지 뜯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진씨는 주묘서에게 책임을 돌리는 엽연채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단박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진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묘서는 적성대에 처음 간 것이니 뭘 몰라서 웃음거리가 된 것이라지만, 너는 새언니가 되어서 어찌 묘서를 도와줄 생각은 안 한 것이냐?”

“맞아요, 새언니는 절 도와줄 생각이 없었어요! 저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요!”

주묘서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절 비웃자 전 놀라서 금 연주를 멈췄어요. 그러고 나서 묘 공자께 함께 합주를 해 달라고 부탁했죠. 묘 공자는 적성대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까 그분이 저랑 합주만 해 주면 그 난감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묘 공자는 새언니의 표숙이자 고모부가 될 사람이니 우리 모두 한 가족이잖아요. 그런데 새언니와 묘 공자는 도와주기는커녕 절 비웃었어요. 묘 공자는 저보고 자기가 왜 합주를 해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흑…….”

그 말을 들은 진씨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친정 사람이 시댁 아가씨를 모욕하도록 내버려 두다니! 시댁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이 음흉한 것 같으니라고!’

진씨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러자 엽연채는 어두워진 낯빛으로 반박했다.

“묘 공자께서 제 표숙이기는 하나 저는 그분과 뵌 적이 거의 없어 잘 모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성격이 오만하여 천성적으로 가시 돋친 말을 잘하시는 분입니다.

아가씨께서도 묘 공자가 제 친척인 것을 아시는데 설마 묘 공자께서 아가씨가 제 시누이인 것을 몰랐겠어요? 저희 사이를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은 것은 제 체면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제가 친척 간의 정은 안중에도 없냐고 묘 공자께 따져야 할 판이에요!”

주묘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반박해야 좋을지 방법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자신을 탓하겠는가? 그녀가 생각하기에 어찌 됐든 잘못한 사람은 엽연채였다.

주묘서의 눈빛을 쳐다보던 엽연채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여전히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무덤은 저 스스로 파 놓고 말리지 않은 사람을 탓하다니.

엽연채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님과 아가씨께서 여전히 제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시면, 예, 제가 잘못을 인정하겠습니다.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시면 그렇게 할 것이고 때리셔도 다 맞겠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큰아가씨와는 절대 외출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씨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녀는 엽연채가 정안후부의 힘을 이용해 주묘서를 데리고 밖으로 돌아다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정안후부에 딸의 혼처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요량이었다.

그런 계산이 깔려 있었기에 진씨는 엽연채에게 심하게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지만, 또 체면 때문에 부드럽게 말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입은 벌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에이, 셋째 부인께서는 뭘 또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세요. 큰아가씨께서 그런 곳에 처음 가 봐서 긴장하시는 바람에 물색없는 행동을 하신 겁니다. 괜히 부끄러우니 셋째 부인께 화풀이하시는 거죠.”

백 이낭은 진씨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사람이라, 얼른 상황을 둥글게 수습했다. 백 이낭이 먼저 운을 떼 주니 진씨도 못 이기는 척 동조했다.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잘 상의하도록 하자꾸나.”

엽연채도 지금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볼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등장은 이미 주운환의 생활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여기서 끝장을 보면 집안은 더더욱 시끄러워질 것이고, 주운환도 편안히 지낼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가 양왕과 암암리에 모반을 꾸미는 일에도 차질이 생길 테고.

‘그럼 양왕은 내 목을 치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엽연채는 순순히 답했다.

“예, 어머님. 그럼 모두 오해가 풀린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엽연채가 떠나자 더 이상 남아 있기 부끄러웠던 주묘서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렸다. 강심설은 주묘서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아주 고소해했다.

자신은 전부터 주묘서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시누이는 여태 저를 가까이하지 않더니, 엽연채가 등장하자마자 그녀에게 들러붙었다. 그러니 지금 주묘서가 엽연채에게 굴욕을 당한 모습을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낀 것이었다.

‘어디 다음에도 저쪽에 들러붙나 보자!’

백 이낭은 권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해바라기씨를 까고 있었고, 주묘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행히도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될 뻔했다.

진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나 제대로 혼쭐을 내 주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셋째는 지금 어디 있느냐? 가서 셋째를 데려오너라!”

그 말을 들은 녹지는 순간 멍해졌다. 마님께서는 셋째 마님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셋째 도련님을 괴롭히려는 것이었다. 녹지는 얼른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녹지는 궁명헌 근처에 도착했으나 엽연채에게 셋째 도련님의 소재를 물어보기가 영 껄끄러웠다. 방금 전 진씨가 엽연채와 한바탕했는데 바로 주운환을 불러오라고 하니 보기에도 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난죽거로 걸음을 옮겨 근처에 있던 여종들을 잡고 물었다. 그런데 주운환은 외출한 후였다.

녹지는 일상원으로 돌아가 그 사실을 고했다. 진씨는 가슴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어린 여종에게 서쪽 측문에서 주운환이 귀가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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