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2화 (42/858)

제42화

이에 손씨는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모두들 유 소저가 이긴다고 보고 있네요.”

그러나 엽승신은 더욱더 간사동에게 믿음이 갔다.

“난 그래도 농가 소녀에게 걸겠소. 많은 일들이 이런 식이라오. 처음에는 아무도 안 믿지만 결국에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지. 운 좋게도 내가 이제 그 소수 중 한 사람이 되는 거요!”

손씨는 잠시 망설이더니 여설을 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여설이 돌아서서 나가더니 잠시 후 오백 냥짜리 은표銀票를 가져와 엽승신에게 건넸다. 엽승신은 기뻐하며 받아 들었고 여설은 은화 다섯 냥을 꺼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리, 소인의 것도 걸어 주세요!”

“알겠다. 나중에 오십 냥으로 돌려주마. 부인, 날이 어두워졌으니 돈은 내일 가서 걸겠소!”

엽승신은 돈을 받은 후 자리를 떴다. 손씨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고양이가 할퀴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웠다.

‘우리가 돈을 건 쪽 선수가 이기게 되면 오백 냥은 사천 냥으로 불어날 것이다. 그런데 만약 판돈이 오백 냥에 그치지 않고 일만 냥이 된다면… 구만 냥을 벌게 되는데! 그럼 최대 구만 냥을 쥘 수도 있는데, 오백 냥만 걸면 손에 떨어질 돈은 고작 사천 냥 정도가 아닌가? 무려 팔만 냥 정도를 손해 보게 되는 거잖아, 팔만 냥을!’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리 큰돈을 만져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이번 생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쥐게 될 기회는 또다시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질 경우에는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모조리 잃게 된다. 하지만 오백 냥만 걸었는데 정말 이기게 된다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몰랐다.

* * *

이튿날, 아침이 밝자 엽승신은 서둘러 집안일을 마쳤다. 노름판에 가서 돈을 걸려는 참에 손씨가 소청에서 그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조금 뒤에 제 돈을 전부 가져올 것이니 그 돈도 거세요.”

“엥? 당신도 하려는 거요?”

엽승신이 물었다.

“얼마나 걸 것이오?”

“만 오천 냥이요.”

“뭐라고 했소?”

엽승신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당신 제정신이오?”

“만약 만 오천 냥을 걸게 되면 배당률이 1 대 3으로 떨어져도, 심지어 1 대 2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몇 만 냥은 벌 수 있을 겁니다. 기왕 걸 거 통 크게 걸어야죠!”

손씨가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만약 지게 되면?”

“어제 나리께서 확신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배짱으로 어디 성공하시겠습니까?”

손씨가 냉소를 지었다.

“제가 어제 급히 정월암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더니 그 농가 소녀가 정말로 정도 여승을 이겼답니다.”

“그게 참말이오?”

엽승신이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에게 들은 것이오?”

“암자에 계신 정방 여승에게서요.”

손씨가 웃음을 지었다. 정방은 정도 여승의 사매로 손씨와는 전부터 교분이 아주 두터웠다.

“정방 여승이 말하기를, 그 농가 소녀가 산에 올라와 자기 이름을 똑똑히 대며 도전해 왔답니다. 정도 여승은 마침 무료하던 참이라 바로 응하셨다고 하고요. 두 사람은 참선방에서 바둑을 두었는데 암자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뿐더러 지켜보기조차 귀찮아했다고 해요. 어차피 정도 여승이 이길 거라고들 확신했으니까요.

그런데 반 시진 후에 정도 여승이 모든 판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정도 여승은 암자의 주지스님이시고 바둑 실력으로 이름이 난 분이시니,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입을 닫고 쉬쉬했던 것이죠.”

“정방 여승이 직접 그리 말했단 말이오?”

엽승신은 벌게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물론이죠.”

손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했다. 이에 어제만 해도 농가 소녀를 8할 정도 믿던 엽승신은 지금은 절대적으로, 완전히 그녀를 믿게 되었다. 일만 오천 냥이면 배당률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큰돈을 쥐게 될 것이었다. 배당률이 1 대 2여도 넣은 만큼은 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엽승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할 거요?”

손씨가 이를 꽉 깨물고 답했다.

“이채의 혼례식은 열사흘이고 대결은 월초이니, 우선 혼수를 전당포에 맡기고 며칠 후에 돈을 따면 바로 대금을 치르고 다시 찾아오면 되죠. 그럼 이채에게 혼수로 일만 냥을 더 보태 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부부는 그렇게 마음을 정한 후, 사람을 시켜 엽이채의 혼수를 가져오라고 했다. 손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를 악물고는 자신의 값나가는 장신구도 더해 슬그머니 가지고 나갔다. 현재 손씨는 집안일을 관장하는 사람인 데다 득세까지 했으니,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데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부부는 함께 도성에서 가장 큰 전당포인 금외루金外樓에 갔다. 액수가 크고 사정이 급한지라 일만 오천 냥의 혼수로 일만 일천 냥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개의치 않았다. 진짜 파는 게 아니고 금방 대금을 치르고 다시 찾아올 것이니 아까울 리가 있는가.

두 사람은 바로 노름판으로 가 판돈을 걸면서 배당률을 물어봤다. 두 사람이 크게 판돈을 걸면서 배당률이 1 대 6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대답을 들었으나 그들은 조금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얼마인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손씨 내외가 금외루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경인은 곧장 정국백부로 달려가 이 사실을 엽연채에게 알렸다. 그들이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후, 추길은 기뻐서 연달아 손바닥을 마주쳤고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화본을 내려놓았다.

전생의 그녀는 장씨 가문으로 시집간 후 매일같이 울적해했다. 당시 추길과 혜연은 갖은 방법을 다 써 그런 그녀를 즐겁게 해 주려고 했다. 그러면서 추길이 정말 우스운 이야기를 한 가지 들려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러했다.

월초, 적성대에 한 농가 소녀가 찾아와 최고의 재녀인 유곡요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이 농가 소녀가 도전장을 내미는 것을 보고 분명 묘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농가 소녀는 숨은 고수여서 유곡요의 스승이었던 정도 여승도 이겼다는 말까지 돌았다. 하지만 결과는 유곡요의 승리였다.

* * *

3일 후, 사월 초하루.

엽연채는 이른 아침부터 단장을 마치고 일상원으로 향했다. 녹지가 발을 걷자 엽연채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진씨는 기다란 침상에 앉아 있었고 주묘서와 주묘화 자매는 오른쪽에 놓인 수돈 위에 앉아 있었다. 강심설은 싸늘한 냉기를 풍기며 한쪽에 서 있었고 백 이낭은 왼편에 놓인 권의에 앉아 있었다.

두 아가씨는 엽연채를 보자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새언니.”

엽연채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어머님, 두 아가씨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진씨가 미적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사는 됐고, 시간이 늦었구나. 오늘 외출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서 가 보거라!”

엽연채는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두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백 이낭이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큰아가씨와 둘째 아가씨의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세상 구경을 하며 경험을 쌓아야 할 때죠. 적성대는 젊은 소저들과 공자님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우리 큰아가씨께서는 용모가 빼어나시니 어쩌면 좋은 인연을 만날지도 모르죠.”

백 이낭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진씨의 차가운 표정이 누그러졌다.

올케와 시누이들이 함께 밖으로 나가 수화문에 도달하니 화려한 대형 마차가 서 있었다. 이 마차는 주씨 가문에서 가장 품위 있는 마차로, 여섯 명은 충분히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엽연채와 혜연, 주묘서와 그녀의 여종인 춘산, 주묘화와 그녀의 여종인 여의까지 여섯 명이 타자 마차 안은 꽉 들어찼다. 엽연채와 혜연, 여의가 같은 편에 앉고 주묘서 자매와 춘산이 맞은편에 앉았다.

주묘서가 말했다.

“새언니, 오늘 엄청 우아하게 입으셨네요.”

엽연채는 평범한 연남색 단의短衣와 하얀 바탕에 해당화 문양이 촘촘히 수놓인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에도 나비 모양 술이 달린 머리 장식 하나만 꽂고 있었다.

이와 다르게 주씨 가문 두 아가씨들은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특히 주묘서가 그러했다. 그녀는 상의로는 암화暗花 무늬가 들어간 분홍색 단자緞子(생사生絲 또는 연사練絲로 짠, 광택과 무늬가 있고 두꺼운 수자직의 비단)로 만든 둥근 깃 반소매 대금對襟을 입었고, 하의로는 붉은색 잔잔한 물결무늬와 함께 금색 실로 수놓은 자귀나무 꽃문양이 들어간 긴 치마를 입었다.

머리는 선녀 머리 모양으로 묶어 좌우 양쪽에 복숭아꽃 순금 장식과 묘안석이 상감된 두 개의 보요步瑤(걸을 때 흔들리는 떨새 따위를 붙인 머리 장신구)를 꽂았고, 미간에는 순금 화전花鈿(여성들이 미간에 그려 넣던 장식)을 그려 넣고 미심추眉心墜를 달아 늘어뜨렸다.

그녀의 치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허리춤에는 염낭 두 개와 향낭을 달았고, 보기 좋은 그물망 형태로 홍실도 둘렀다. 그에 더해 연한 황색 꽃신까지 진주로 장식했으니, 그야말로 치장에 엄청 공을 들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엽연채가 느끼기에는 그 모습이 그리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너무 과하게 주렁주렁 단 느낌이랄까. 집 안에 있는 온갖 장신구를 전부 다 몸에 달고 차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번쩍번쩍하는 장신구들이 제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고 서로 어울리지도 못했다.

보다 못한 엽연채는 좋은 마음으로 충고를 해 주었다.

“큰아가씨, 머리에는 보요 두 개만 달면 충분할 듯해요. 화전과 미심추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주묘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그녀는 오늘 치장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새언니는 전에 적성대에 자주 갔었어요?”

엽연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어요. 저희 어머니가 정말 엄하셨거든요. 잘 아는 친척이나 벗의 집에 놀러 가거나, 혹은 예불하러 가거나, 어머니와 함께 외출하는 게 아니면 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그 말을 들은 주묘서와 주묘화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제는 이제 상당히 개방적인 풍토를 갖춘지라 집 안에 틀어박혀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여인은 극히 드물었다. 견문이 좁으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뿐이었다.

‘이 새언니는 출신도 좋고 선녀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는데도 그렇게 갑갑하게 자랐다니!’

주묘서는 엽연채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못내 찝찝하여 작은 거울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머리에 달린 보요는 아름답고 역동적이었고, 미심추는 스스로를 더욱 고귀한 사람으로 보이게 해 줄 뿐이었다. 화장도 꼼꼼하게 잘된 상태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