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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34화 (34/858)

제34화

그 시각 옥리원.

손씨는 혼수 단자를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엽이채와 엽승신은 그 옆 권의에 앉아 있었다.

“영교 아가씨의 혼수 절반과 엽미채의 삼천 냥, 나씨가 조금 보태준 것을 합쳐도 일만 냥이 안 됩니다. 여기에 집안 공동 재산에서 삼천 냥 정도 가져오고, 아버님께서 따로 일천 냥을 보태 주신 것에다 저희가 따로 갖고 있는 일천 냥을 합쳐도 일만 오천 냥이 안 되고요!”

액수를 들은 엽이채는 그래도 기분이 좀 좋아졌다. 예전에 그녀가 준비해 둔 혼수는 고작 사천 냥밖에 안 됐는데 지금은 그래도 족히 두 배는 넘었기 때문이다.

엽연채의 혼수가 떠오르자 손씨는 한층 분노가 치밀었다.

“그 빌어먹을 계집애는 원래 준비해 놓은 혼수도 일만 냥 정도나 되었는데, 장씨 가문에서 혼인 성립의 증표로 보낸 금품으로 마련한 혼수도 일만 이천 냥이나 되었죠. 거기다 우리 연채 것도 강탈해 갔으니 합치면 족히 삼만 냥은 될 것입니다. 어떤 가문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데 혼수를 삼만 냥이나 들려 보낸단 말이에요!”

장씨 가문에서 보낸 예물은 원래 엽이채의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엽연채가 빼앗아 갔으니 손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울화가 치밀었다.

“일만 오천 냥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소. 우리 같은 중류 계층은 적장녀도 거의 이 정도로 준비해 간다오.”

엽승신이 좋게 손씨를 달랬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어마어마한 혼수에는 한참 못 미치죠!”

“지금 성을 내 봤자 아무 소용 없잖소? 혼례식 날짜가 다가오고 있으니 서둘러 물건들을 빠짐없이 마련하시오. 사들여야 할 건 사들이고 추가로 구입해야 할 것도 구입하시오. 알맞게 준비해서 시집보내는 것이야말로 반듯하고 올바른 방법이라오. 이채가 장씨 가문에서 자리 좀 잡고 나면 그때 가서 좀 더 해 주면 될 것이오.”

엽승신이 마지막 말을 덧붙이자 손씨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오후에 혼수품을 구입하러 나가 보겠습니다!”

엽이채는 혼례를 앞둔 몸이라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 곤란했기 때문에 모든 물건은 집안사람들이 준비해 주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손씨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여종들과 짐을 들고 다닐 어멈 몇 명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자수 상점에서 엽이채가 입을 혼례복을 예약한 후 손씨는 여설의 부축을 받으며 상점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여설이 갑자기 한 곳을 가리켰다.

“마님, 저기 주씨 가문 사람이 아닙니까?”

손씨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니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보석상에서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녹색 옷을 입은 여종이 상점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구나. 주씨 가문 안주인인 진씨의 몸종인 것 같구나.”

손씨가 깔보는 얼굴로 그 여종을 쳐다보며 말했다.

엽이채가 주운환과 정혼했을 때, 손씨는 진씨가 갑자기 찾아와 두 사람의 혼례를 진행하고자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그동안 진씨의 일거수일투족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 탓에, 자연히 진씨의 몸종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번에 그 빌어먹을 계집애가 돌아왔을 때 하나도 수척해 보이지 않던데, 대체 주씨 가문은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손씨는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다. 보석상에 있던 여종은 바로 녹지였다. 손씨를 본 그녀의 낯빛이 말이 아니었다. 엽이채가 도망쳐서 혼인을 물리는 바람에 엽연채가 주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고, 그 때문에 진씨의 신경은 날로 날카로워졌다. 그 덕에 애꿎은 진씨의 종들만 살기가 더욱 고달파졌던 것이다.

녹지는 계산대 앞에 서 있었고, 그 위에는 검정 목재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손씨가 다가가서 보니 안에는 평범하게 생긴 매화 금잠이 들어 있었는데, 이런 금잠은 여설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손씨가 깔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넌 주 부인을 모시는 여종이 아니더냐? 이 잠은 부인의 것이냐?”

그녀가 자기 상전을 깔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녹지는 속으로 화가 났지만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제 것입니다.”

그러자 손씨는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얘, 됐다. 네 머리에 꽂고 있는 것이나 보고 그리 말하거라!”

손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녹지의 머리를 쓱 쳐다봤다. 새까만 쪽 진 머리 위에는 면화로 만든 꽃 모양 머리장신구와 가매진 은잠이 꽂혀 있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녹지가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 하자 손씨가 재차 찬웃음을 띠며 말했다.

“너희 셋째 부인은 혼수를 바리바리 들고 갔는데 어째서 시어머니께 효를 다하지 않는 것이냐?”

“네?”

녹지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엽연채가 마차 세 대에 물건을 가득 싣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군침을 삼켰었다. 지금 손씨가 하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껑충껑충 뛰었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셋째 부인께 무슨 좋은 물건이 있답니까? 집안사람들을 볶아쳐서 어렵사리 가져온 것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손씨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 그랬던 거구나. 주씨 가문에 풍랑이 일지 않고 이리 고요했던 건 온 집안사람들이 엽연채가 얼마나 혼수를 어마어마하게 챙겼는지 여태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어!’

손씨는 바로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너희 셋째 부인에게 좋은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혼수만 족히 일만 냥은 된단다. 거기다 장씨 가문에서 보낸 금품으로 마련한 건 본래 부인의 것이 아닌데도 염치없이 친정에 와서 빼앗아 갔지. 우리 이채 혼수도 남김없이 몽땅 빼앗아 갔어!

우리 가문에서는 너희 셋째 부인이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시집을 갔으니 가여워서 시시콜콜 따지지 않고 자비심을 베풀기로 했단다. 전부 그녀에게 주었지. 삼만 냥은 족히 될 것이다. 못 믿겠으면 가서 확인해 보거라.”

“삼만 냥… 이라고요?”

녹지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과연, 그렇게 큰 마차가 세 대나 들어왔는데 좋은 물건이 없을 리가 없었다. 녹지는 손씨를 신경 쓸 틈도 없이 돌아서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녹지의 뒷모습을 보며 손씨는 독살스럽게 킥킥거렸다.

“엽연채, 이 망할 년. 어디 한번 실컷 당해 보거라!”

“마님은 어쩜 그리 총명하세요.”

흥분한 여설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많이 빼앗아 갔으면 뭐 합니까? 다른 사람 배에 채워 넣게 생겼는데요.”

손씨는 속이 후련하다 못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그만 가자꾸나. 가서 이채에게 줄 혼수품을 더 마련해야지!”

* * *

그 시각 일상원.

서차간에는 홍목紅木(마호가니)으로 만든 꽃무늬가 새겨진 크고 기다란 평상이 놓여 있었고, 조금 간격을 두고 좌우로 진씨와 강심설이 나란히 앉아서 실로 구럭을 뜨고 있었다.

주씨 가문이 몰락한 후로 다른 가문들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졌고, 진씨와 교분이 있던 귀부인들도 대부분 그녀와 만나기를 꺼려했다. 진씨는 마조馬弔(네 사람이 패를 8매씩 나누어 가진 뒤 나머지 8매를 뒤집어서 패를 맞추고, 강한 패가 약한 패를 이기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조차 함께 할 벗이 없어진 후로는, 할 일이 없을 때면 며느리와 방에서 자수를 놓거나 실로 구럭을 뜨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이때, 상서로운 구름 문양이 수놓아진 비단 발이 걷혔다. 녹지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서차간으로 들어오더니 검은 목재로 만든 작은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진씨가 상자 안에 든 머리 장식을 흘끗 쳐다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이따가 오래된 장신구 두 개를 더 골라내 함께 녹여서 학해에게 금 목걸이를 해 줘야겠다.”

강심설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녹지는 주씨 가문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금 목걸이 하나를 하려고 장신구를 녹여야 하는 데 반해 엽연채는 삼만 냥이나 되는 혼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곤 질투심이 타올랐다.

“셋째 부인께서 효도하시면 마님께서 장신구를 녹일 필요가 무에 있겠습니까!”

“녹지야, 그게 무슨 말이냐?”

강심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방금 전에 제가 보석상에 갔는데 그곳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셋째 부인의 혼수가 무려 삼만 냥이나 된다고 합니다!”

“뭐라? 삼, 삼만 냥이라 했느냐?”

그 말을 들은 강심설은 깜짝 놀랐고 이내 배가 아파 왔다.

“누가 그런 허튼소리를 하더냐?”

그녀는 엽연채에게 아무것도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가난하면 함께 가난해야 하는데, 또다시 그녀에게 밀리다니! 하지만 엽연채에게 그리 많은 혼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빼내 와야 마땅했다.

“정안후부의 둘째 마님인 손씨가 그리 말했습니다.”

녹지는 손씨와 마주쳤던 일을 소상히 털어놓고 이렇게 덧붙였다.

“정안후부에선 셋째 마님의 혼수를 가로채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배 가까이나 되는 혼수를 더 주었다고 합니다. 손씨 마님께서 안 믿기거든 셋째 마님의 혼수가 이곳에 있으니 가서 확인해 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씨는 이미 믿는 눈치였다. 그녀는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원래부터 엽연채를 꺼려했고, 괴롭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지독히 미워하기만 할 뿐, 눈에서 안 보이니 속이 뒤집힐 일도 없었고, 엽연채를 못살게 굴어야겠다는 마음도 전처럼 강하게 들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신도 좋고 미모도 뛰어난 엽연채가 혼수마저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진씨는 평정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자신의 장남은 이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못하고 하필 그 비천한 서자가 맞이했다는 말인가.

진씨가 노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엽씨를 내게 데려오너라!”

“예, 마님!”

명을 받은 녹지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흔들리는 발을 쳐다보던 진씨의 시선은 강심설에게 향했다. 그녀는 며느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들었다.

강심설은 자신을 위아래로 훑는 진씨의 시선을 느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분함과 억울함을 느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내가 아무리 못났어도 당신이 데려온 며느리입니다. 능력이 있으면 그때 혼사를 물렸던 군주를 데려오시든가요! 그럼 분명 엽연채가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테니!’

* * *

그 시각 궁명헌.

엽연채는 나한상 위에 옆으로 누워 화본을 보고 있었고, 추길과 혜연은 수를 놓고 있었다.

녹지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정원 밖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셋째 마님, 셋째 마님! 마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엽연채는 어리둥절해하며 들고 있던 화본을 내려놓았다. 추길이 자수품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계단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진씨의 여종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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