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10화 (10/858)

제10화

“형님,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연채가 주씨 가문에 갔던 건 정말 개의치 않는 거예요?”

엽연채는 깜짝 놀랐다. 엽이채를 주씨 가문에 보내겠다니,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맹씨답구나.’

게다가 시집갈 사람을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자꾸 바꾸면 주씨 가문에서는 과연 가만히 있을까?

맹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시 길일을 잡은 후 연채를 맞이하러 오겠네.”

맹씨의 생각에는 염치도 모르는 서출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할 바에야 당연히 엽연채가 더 나았다. 밖에서 떠도는 소문이야 사실 별것도 아니었다. 당사자인 이쪽에서 엽연채를 며느리로 맞이하면 그만이었다. 안 좋은 소문이야 얼마 안 가 알아서 잠잠해질 터.

또 순결에 관해서라면 엽연채를 믿었다. 어엿한 후부의 적녀가 몰락한 집안의 서자에게 시집을 갔으니, 죽으며 죽었지 절대로 동침에 응했을 리가 없었다. 주씨 가문에서도 그런 짓을 할 배짱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시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온씨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망설였다.

“하지만 박원이가…….”

“걱정 마시게. 그 아이가 잠시 분별없는 짓을 하는 게지. 사내들은 다들 한 번쯤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가? 아우, 보시게나. 우리 연채가 출신이나 외모, 자태를 봐도 그 서출 자식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혼례만 올리면 박원이도 연채가 더 나은 배필이란 걸 알게 될 거라네.”

그 말을 들은 온씨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딸이 어디를 봐도 서출 딸보다 백 배 천 배 나았다. 게다가 그녀도 장박원이라는 좋은 사윗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맹씨는 고개를 돌려 엽연채를 쳐다봤다. 그녀는 엽연채가 감격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엽연채는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맹씨는 그녀가 기쁜 나머지 어리둥절한 모양이라고 짐작하고는 그녀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연채야, 걱정 말거라. 양가의 혼사는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때가 되면 성대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집안이 너를 맞이하러 갈 거고, 네가 부당한 일을 겪을 일은 결단코 없을 거란다. 난 이만 양가 어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보러 가마.”

엽씨 가문에는 안주인 묘씨가 있었지만 그녀는 줄곧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맹씨와 온씨가 합의하면 그걸로 결론이 난 셈이었다.

채 마마는 맹씨를 배웅한 후, 다시 안으로 들어와 감격해 마지않은 얼굴로 말했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이걸로 다 해결되었네요.”

감격한 온씨가 엽연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연채야, 좋은 시어머니를 두었으니 시집가면 잘 모셔야 한다.”

그러자 엽연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머니, 정말 절 장씨 가문에 시집보내실 생각이세요?”

“연채야, 그게 무슨 어리석은 말이냐?”

온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가씨…….”

혜연과 추길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마님 말씀이 맞아요.”

추길이 말했다. 맹씨가 오기 전, 온씨뿐만 아니라 혜연과 추길도 엽연채가 장씨 가문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찌 됐든 그들 눈에 주씨 가문 서자는 말도 안 되는 배필이었고 당연히 장씨 가문으로 다시 시집가는 편이 훨씬 나았다.

모두의 눈빛을 읽은 엽연채는 그들을 이해했다. 다만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서 전생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과거로 되돌아오지 않았다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전생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면 자신 또한 맹씨의 의견에 찬성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당당히, 기세등등하게 엽이채를 찾아가 그녀의 뺨을 때린 후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가 아무리 용을 써 봤자 결국 장씨 가문에 시집가는 건 나다! 네 주제에 내 사내를 빼앗겠다고?”

하지만 이미 인생을 한 번 살아 본 엽연채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지면 어떻고 또 이기면 어떤가? 이런 쓰레기 같은 사내 때문에 내 인생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온씨가 말했다.

“이 어미도 다 안다. 네가 장박원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게지.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야. 탓하려면 그 염치도 모르는 계집애를 탓해야지. 이런 일을 겪었으니 장씨 가문에서 장박원을 잘 가르칠 게다.”

이 시대는 늘 사내에게 관대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잘못한 쪽은 늘 여인이었다.

온씨는 그래도 장씨 가문이 괜찮은 혼처라고 생각했다. 가풍이 바르고, 또 맹씨는 방금 보여 주었듯이 도량이 넓으며 자신과 교분도 두터우니, 절대 자신의 딸을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장씨 가문은 지금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존귀한 집안이었다. 그에 반해 정안후부는 가세가 기울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면 장씨 가문보다 더 좋은 혼처를 구할 수 없을 것이었다.

딸이 아무 말도 없자 온씨는 다시금 좋게 달랬다.

“박원이는 재능이 비범하고 성품이 온화하고 예의가 바른 사내로 성장했다. 여러 면에서 훌륭한 사내인데 이번에 딱 한 번 실수한 것뿐이다. 앞으론 안 그럴 게다.”

“어머니. 만약에 또 그러면요? 내기하실래요?”

엽연채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온씨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또 그런다고?”

“어머니가 방금 여러모로 훌륭한 사내로 성장했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 결과가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거예요. 혼례식 당일에 처제와 눈이 맞아 달아난 사위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으세요?

방금 전, 정청에서도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엽이채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이 설령 집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저를 아내로 맞이한다 한들 제가 잘살 수 있을까요? 시부모님이 아무리 좋으면 뭐 해요? 그 사람에게는 푸대접받으며 시부모님과 함께 지낼 게 뻔하잖아요?”

딸의 말을 들은 온씨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 자신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겠다는 맹씨의 말을 듣고 그녀는 아주 잘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장박원이 정말로 바뀌지 않는다면…….’

“만약 장박원이 바뀌지 않는다면, 저와 그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살게 될 거예요.”

엽연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쐐기를 박았다. 이 말을 들은 온씨는 눈앞이 깜깜해져 하마터면 또다시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온몸이 덜덜 떨려오더니 진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엽승덕이 첩을 끼고 산다는 건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첩실이 생긴 후부터 엽승덕의 온 마음은 그녀를 향했다. 엽승덕의 마음속에 본처의 자리는 눈곱만큼도 없었고, 심지어 다른 첩들도 총애는커녕 일말의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친자식들조차도 그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낯선 사람이 되어 버렸다.

추길과 혜연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만약 장박원이 엽승덕처럼 행동한다면 아가씨의 삶이 고통스러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주씨 가문 서자에게 시집가는 편이 나았다.

“마님.”

이때 밖에서 여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씨 가문에서 아들을 데리고 가신답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있었다. 잠시 후 온씨가 침묵을 깼다.

“알겠으니 가 보거라.”

여종이 물러가자 엽연채가 말했다.

“추길아, 둘째 숙모를 찾아가서 방금 전 맹씨 부인이 했던 말을 흘리거라.”

추길이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다. 엽연채가 온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아직도 망설이고 계시다면 장박원의 인품을 한번 시험해 보셔요.”

* * *

그 시각, 장박원과 엽이채는 여전히 정청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묘씨, 엽영교, 손씨 그리고 나씨는 이미 자리를 뜬 후였고 정청엔 엽학문과 엽승신, 엽승강만 남아 있었다.

손씨는 장박원이 나서서 엽이채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하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일은 이미 이렇게 정해졌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모시는 여종마저도 신바람이 난 듯 가볍게 걷고 있었다.

대야를 든 채 뜰을 지나고 있던 손씨의 몸종 여설은 정면에서 걸어오는 추길을 보았다. 예전만 하더라도 손씨의 여종이든 엽이채의 여종이든 엽연채의 여종을 보면 위축이 됐다. 하지만 오늘 여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슴을 폈다. 아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쯧쯧, 귀하디귀하신 적장녀면 뭐 해? 결국 둘째 아가씨에게 짓밟혀서는 몰락한 가문의 서자에게 시집갔잖아!’

득의양양하던 여설은 그만 추길과 부딪혀 물을 엎지르고 말았다. 여설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추길이 넌 눈뜬장님이니?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그러자 추길이 여설을 째려보더니 뺨을 냅다 후려갈기며 말했다.

“이런 죽일 년을 봤나. 평소엔 언니라 부르더니 오늘은 대야 좀 엎었다고 나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냐! 주인이 득세했다고 오만하게 설쳐대는 꼴 하고는!”

“이게!”

속마음을 들킨 여설은 부끄러움에 화를 냈다.

“우쭐대지 말거라!”

추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맹씨 부인께서 장씨 가문 며느리는 우리 큰아가씨라고 하셨다. 네 그 염치도 모르는 서출인 둘째 아가씨는… 큭큭, 좀 더 아껴 둬야겠다!”

말을 마친 추길은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얼굴빛이 확 바뀐 여설은 화낼 겨를도 없이 대야를 내팽개치고 급히 손씨에게 향했다.

손씨는 엽이채의 뜰에서 딸의 목욕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때 여설이 급히 달려오더니 그녀에게 방금 들은 소식을 전했다. 이를 들은 손씨는 머리가 어지러워 하마터면 땅바닥에 나동그라질 뻔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결국 장씨 가문에 시집가는 건 연채라니? 연채는 이미 주씨 가문에 시집을 갔는데……. 아니지, 어제 혼사는 엉망진창이 되어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고 있어. 이채가 급히 돌아온 건 아직 밖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만약 장씨 가문과 아버님께서 어제 시집간 아이가 연채가 아니라 이채라고 한다면? 연채가 순결한 몸이라면…….”

생각을 거듭할수록 손씨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더니 여설과 함께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갔다.

* * *

여전히 정청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박원과 엽이채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엽학문은 벌이 과한 감이 있지 않나 걱정이 되었지만, 체면이 깎일까 봐 차마 일어나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일어나라고 했다가는 장씨 가문 앞에서 그들보다 못났다는 것을 보이는 셈이었다. 그러면 장굉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손씨와 여설은 정청 앞에 도착했지만 감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먼발치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어떻게 장박원에게 알릴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