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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화 (7/858)

제7화

미소를 짓고 있던 교 마마는 조용히 물러났고, 세 사람은 간단한 몸치장만 한 후 서둘러 문을 나섰다. 마차는 정문이 아닌 궁명헌에서 가까운 서쪽 쪽문에 서 있었다.

엽연채의 눈에 푸른 덮개를 씌운 마차 한 대가 들어왔다. 한산한 골목에 세워진 그 마차 곁에는 각진 얼굴의 나이 든 여인이 하나 서 있었다. 검푸른 배자褙子(여인들이 웃옷 위에 덧입는 겉옷)를 입고 이마에 남색 장식용 머리띠를 두른 그 여인은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엽연채와 두 여종을 발견한 그녀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치며 다가왔다.

“큰아가씨!”

“채 마마!”

엽연채는 곧바로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이 사람은 온씨의 몸종인 채씨였다. 채씨를 본 추길과 혜연이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지할 사람을 찾으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된 모양이었다.

“아가씨, 괜찮으신 거죠? 난처한 일을 겪으신 건 아니죠?”

눈시울이 붉어진 채씨가 엽연채의 손을 꼭 잡으며 묻더니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쓱 훑어보았다.

추길이 대신 답했다.

“마마, 걱정 마세요. 아가씨는 아무 탈 없이 잘 계셨어요.”

그 말을 들은 채씨가 그제야 안도한 듯 얼굴을 폈다. 그러곤 장하다는 눈길로 추길과 혜연을 바라보며 칭찬했다.

“그래, 너희들이 곁에 있으니 아가씨도 아무 탈 없이 잘 계셨겠지. 아가씨, 마차에 오르시지요. 이야기는 가면서 해요.”

채씨가 마차 뒷부분에 등받이가 없는, 작고 네모난 걸상을 놓았다. 먼저 마차에 올라선 추길이 엽연채가 올라올 수 있도록 그녀를 부축했다. 네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마부의 채찍질에 맞춰 마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차는 금세 골목을 지나 큰길로 들어섰다.

엽연채가 먼저 입을 뗐다.

“어머니께서는 괜찮으신 거죠?”

“마님께서는 과로로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쓰러지시는 바람에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어젯밤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다가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깨어나셨습니다. 눈을 뜨시자마자 분부하신 일이 아가씨를 집으로 모셔오라는 것이었어요.”

모친이 의식을 찾았다는 소리에 엽연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의원이 뭐라고 하던가요?”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며칠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절대로 화를 내시면 안 된다고 했어요. 안 그러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리가 올 거라고…….”

엽연채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머니는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생에 화병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어머니의 이런 면을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체면을 목숨만큼 중요시하고 화를 잘 내니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생에 그런 식으로 몸져누워 미인박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비참한 말로를 맞지는 않았을 테니.

“어제 저희는 아가씨 걱정뿐이었습니다. 아가씨가 너무 급히 떠나셔야 했던 바람에 혼수며 짐이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셨으니까요. 쓸 만한 어멈들도 누구 하나 따라가지 못했고요.

제가 아가씨 시중을 들 사람이라도 몇 명 보내려 했는데 글쎄, 주인나리께서 주씨 가문에 시집갔으면 이제 주씨 가문 사람이니 더 이상 관여할 필요 없다며 공연히 말썽 피우지 말라고 하시지 뭡니까! 그러곤 대문을 걸어 잠그더니 명이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죠.”

채씨는 분통이 터지는 듯 성난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듣고 있던 추길과 혜연 역시 실망감에 마음이 크게 아팠다. 추길이 입술을 깨물며 말을 받았다.

“노태야께서는 어떻게 아가씨의 생사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실 수가 있지요? 그리고 세자께서는 또… 어휴!”

엽연채는 냉소를 지었다. 자신의 안위를 눈곱만큼이라도 걱정했다면 어제 혼례식을 취소했을 것이다. 체면 때문에 손녀를 아무 집에나 시집보낸 조부에게 무얼 바라겠는가. 그리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첩실 문제로 저희 모녀와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였다.

“둘째 아가씨는요? 둘째 아가씨는 찾았어요?”

추길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못 찾았다.”

채씨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대꾸했다.

“주인나리께서 유이에게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둘째 아가씨를 찾아보라고 하셨긴 해요. 하지만 제가 오늘 아침 문밖을 나설 때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추길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엽연채의 차분한 표정을 본 후 그 노기를 가슴속에 누르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화를 내면 그녀의 마음이 더 상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차 안의 누구도 더는 입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고요함 속에서 빠르게 나아가던 마차가 이각쯤 지나자 속도를 늦추더니 모퉁이 하나를 돌았다. 추길이 주렴을 걷어 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는 정안후부 동쪽 쪽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잠시 후 마차는 수화문垂花門(바깥뜰과 안뜰 사이를 연결하는 두 번째 문, 즉 중문中門을 말함) 앞에서 멈춰 섰다.

엽연채 일행이 마차에서 내려 수화문을 넘자 청석판靑石版이 깔린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 펼쳐졌다. 호숫가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널찍한 뜰이 하나 나왔는데, 이곳이 바로 온씨가 기거하는 영귀원榮貴院이었다.

사람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여종 하나가 얼른 주렴을 걷어 올린 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온씨에게 고했다.

“큰아가씨께서 돌아오셨어요!”

내실로 들어서자 탕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엽연채가 침상으로 올라가니 삼십 대로 보이는 고운 부인이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엽연채와 온씨는 외모가 꽤 닮은 편이었다. 눈 주위가 검푸른색을 띤 데다 안색까지 창백해, 온씨는 몹시 수척해 보였다. 눈시울이 붉어진 엽연채가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전생에서 어머니는 장박원과 엽이채 때문에 화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당시 중병에 걸려 있던 엽연채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때조차 친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온씨를 보니 엽연채는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채야!”

온씨는 엽연채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를 위로했다.

“내 새끼. 고생 많았다. 울지 마! 울지 마렴! 이 어미가 널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놓을 테니까! 우리가 손해 볼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야.”

어제 그 잘난 사위가 서녀인 조카딸과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온씨는 머리 위에 날벼락이 치는 듯했다. 그녀는 분통함을 못 이겨 혼절했다가 한밤중에 깨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의 딸이 손씨의 꼬드김에 넘어가 주씨 가문에 시집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그대로 눈을 뒤집고 또 다시 까무러쳤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이 밝은 후였다. 온씨는 변변치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몸져눕다니!

“주씨 집안 사람들이… 혹 널 난처하게 하지는 않았느냐?”

온씨가 초조한 목소리로 묻고서 엽연채를 잡아당겨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안색도 좋고 무탈해 보이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뇨, 주 백작께서는 유순한 분이시더라고요. 그리고 어제 절 데려가신 후 바로 나가셨어요. 마침 그 댁 부인과 공자, 소저들도 다른 혼례식에 참석하느라 부인 친정댁으로 갔기에, 셋째 공자님밖에 안 계셨고요. 다른 식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으니 저한테 눈치 줄 사람도 없었죠.”

“내 말은… 그 셋째 공자라는 사람이 널…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냐는 뜻이란다.”

이 말을 꺼낸 온씨는 안색이 한층 창백해졌다. 어제저녁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이 일을 처리했다면 절대로 딸이 집 밖에서 지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보내 우선 딸부터 주씨 가문에서 데려왔을 테니까.

엽연채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니?”

온씨는 딸이 부끄러워서 난처한 일을 겪고도 말하지 못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마님, 걱정 마세요. 아가씨께서는 아무 탈 없이 잘 계셨습니다.”

추길이 보증하자 혜연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온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짜로 안도했다. 엽연채도 그녀를 안심시켰다.

“공자님은 좋은 분이셨습니다. 군자였어요. 절 방 안으로 데려다준 후 바로 밖으로 나가셨어요. 그러곤 어멈을 시켜 먹을거리와 침구도 챙겨 주셨고요.”

온씨는 엽연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 맹추야, 너에게 잘해 준 건 너에게서 얻을 게 있어서 그런 거란다!”

추길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엽연채는 입을 삐죽거렸다.

“마님, 아가씨.”

이때 여종 하나가 쭈뼛쭈뼛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둘째 아가씨와 장 공자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온씨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 찾아냈구나……. 그 망할 년! 어서 내 옷을 갈아입혀 주거라.”

“어머니, 어머닌 쉬고 계셔요. 제가 가 보면 돼요.”

엽연채는 온씨의 핏기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된다. 내 오늘 그 망할 계집의 숨통을 끊어 놓지 않으면 내 성이 온씨가 아니다!”

온씨가 노발대발하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손씨 그 비열한 인간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알겠어요. 같이 가요, 어머니.”

엽연채는 어머니가 화를 참다가 도리어 더 병세가 나빠질까 걱정되어 더는 그녀를 만류하지 않았다. 엽연채는 온씨를 부축해 일으킨 후 화장대 앞에 앉혔다. 채 마마가 지시를 내리자 누구는 물을 길어 오고, 누구는 주인의 머리를 빗기고, 누구는 의복을 들고 오는 등 바삐 움직였다.

엽연채는 바깥으로 나가 소식을 전한 여종을 불렀다.

“언제 찾았느냐?”

푸른 옷을 입은 여종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밖에서 정원을 가꾸는 하인이 말하기로는 어제 그 두 사람을 찾으러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두 사람이 서둘러 돌아오는 모습을 봤답니다. 얼른 두 사람을 포박해 돌아오려는데 성문이 닫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성 밖의 객줏집에서 하루 쉰 후, 오늘 아침에서야 데리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둘이 서둘러 돌아왔다고?’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다. 이만 가 보거라.”

여종이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물러갔다. 온씨는 그새 이미 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온씨는 상서로운 구름 문양이 수놓아진 배자와 갈색 마면군馬面裙(치마 네 장을 겹쳐 만든 치마로, 명청 시대 한족 여인들이 즐겨 입던 하의)을 입었고, 머리는 가볍게 한쪽으로 말아 올린 후 비취 장식을 꽂았다.

온씨의 안색은 심히 창백했지만 시간이 지체될까 염려되어 매괴로玫瑰露(매괴, 즉 장미에서 즙을 추출해 만든 화장품)와 입술연지만 바르고 서둘러 문밖을 나섰다.

문밖에는 작은 가마가 대기하고 있었다. 엽연채는 어머니를 부축해 가마를 태워 드린 후 자신은 채 마마와 함께 걸어갔다. 그렇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뜰 밖을 나서 정청正廳(집안의 중심부에 자리한 대청)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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