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복도 지지리도 없지. 왜 우리 도련님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냔 말이야!”
교 마마가 다시 한번 탄식하고는 받은 돈을 들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주방에는 교 마마 외에도 식모와 하급 여종, 어멈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식모가 물었다.
“여양이 무슨 일로 온 거래요?”
교 마마는 그저 웃으며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여한이랑 점심밥을 제대로 못 먹었으니 먹을 것 좀 더 챙겨달라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식모의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 돈을 받은 식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입으로는 툴툴거리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됐네요, 점심밥을 제대로 못 먹기는 무슨. 오늘 셋째 도련님이 아내를 맞이한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듣자 하니 소박맞은 여인을 도련님에게 갖다 붙인 거라던데.”
그렇게 말한 건 하급 여종, 소초였다. 그녀는 아궁이 앞에서 거무데데한 얼굴을 들더니 킬킬 웃었다. 황씨 성을 가진 어멈이 재빨리 말을 보탰다.
“뭐라 하려면 원래 정혼했던 엽씨 가문 둘째 아가씨가 새신랑을 꼬셔서 달아난 걸 뭐라 해야지.”
그러자 소초가 눈짓을 하더니 답을 뻔히 알고 있는 질문을 했다.
“그 집 둘째 아가씨는 왜 도망간 거래요?”
“우리 가문 서자랑 장씨 가문 적자를 같이 둬 봐라. 나라도 장씨 가문 적자랑 도망가지!”
그 말에 모두들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들은 이 이야기를 오늘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지치지도 않는지 말하고 또 말하며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살았다. 마치 우스갯소리를 한마디라도 더 하면 상이라도 하나 더 받는 듯 말이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상을 바라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말이 주인마님 귀에 들어가면 사례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그녀는 집을 비운 참이었다.
“장가 공자님은 왜 귀하디귀한 적장녀를 마다하고 서출 여식과 도망을 간 거야? 엽가 큰아가씨가 엄청 못생긴 건 아닐까?”
“쯧쯧, 신랑이 도망까지 간 걸 보면 모르니? 엄청난 추녀일 게 분명하지!”
듣고 있던 교 마마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렇지만 진짜 추녀라고 해도 셋째 도련님을 원하지는 않았겠지.”
“누가 아니래요! 장씨 가문 적자에게 시집갈 수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집안에 떠밀리듯 왔으니, 거기다 서자잖아요. 누구라도 원치 않을 테죠. 저라면 내일 친정에 인사드리러 가서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그럴 리가? 이미 시집은 왔잖아?”
“이게 무슨 시집온 거니. 신랑 신부가 시부모님께 절도 올리지 않았잖아. 그리고 홍옥이 말로는 셋째 공자님이 난죽거로 쫓겨나셨다더라. 진짜인지 아닌지 우리 내기할래?”
교 마마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주운환이 불쌍하고 가여워,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커다란 찬합에 밥과 찬거리를 넣은 후 주방을 나서 서쪽 뜰로 향했다. 엽씨 가문 큰아가씨라는 작자가 어떤 사람인지 당장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길을 따라 곧장 서쪽으로 걸어가다가 구름다리 하나를 지나면 뜰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궁명헌이었다. 교 마마가 뜰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문 후였다. 그런데도 방 안을 제외하면 앞뜰에는 등 하나만 켜져 있을 뿐이었다.
낯선 여종 둘이 앞뜰에서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상의하고 있는 모습이 교 마마의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두 여종은 열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한 여종은 호리호리한 몸에 복숭아 꽃잎을 닮은 눈과 작고 뾰족한 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쪽은 영리하고 성깔 있어 보였다. 다른 한쪽은 그보다 키가 좀 작았는데, 둥글고 큰 눈에 동그란 얼굴형을 가지고 있어 온화하고 선량해 보였다.
‘이리 추측해 봐야 무슨 소용이람. 저 여종들은 분명 엽씨 가문 큰아가씨가 데려온 아이들이겠지.’
속으로 한숨을 쉰 교 마마가 웃는 얼굴로 다가가 예의를 차렸다.
“두 분, 이건 저희 도련님께서 보내 드리라고 분부하신 겁니다. 큰아가씨께서는 어디 계시죠?”
추길과 혜연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서니, 얼굴형이 동그란 어멈 하나가 어느새 가까이에 와 있었다. 혜연이 대답했다.
“저희 아가씨께서는 쉬고 계십니다.”
소문만 무성한 엽씨 아가씨를 볼 수 없게 되어 교 마마는 낙담했다.
“아가씨께서 쉬고 계시다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이 집 하인인 교씨라고 합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분부하십시오.”
교씨가 자신들을 정중히 대하자, 셋째 공자를 가로막았던 자신의 무례함을 떠올린 추길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새빨개졌다.
“감사합니다.”
혜연은 얼른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것과 잠자리 문제로 고민하던 차였는데 주 공자가 이렇듯 알아서 사람을 보내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요와 이불 두 채씩만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교 마마는 알겠다며 문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것으로 보이는 이불 두 채를 안고 돌아왔다. 혜연은 재차 감사를 표하며 교 마마에게 은화 두 냥을 쥐여 주었다. 이에 깜짝 놀란 교 마마가 몇 번이고 사양을 했지만 혜연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교 마마는 더 이상 거절하기도 어려워 결국 은화를 받고 돌아섰다.
그녀가 돌아가자 혜연은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셋째 공자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네.”
“우리 아가씨께 비위를 맞추는 거 아니니? 그리고 이런 호의를 받게 되면 떠날 때 더 난감해질 뿐이야.”
추길이 창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니면 우리 아가씨가 정말 주씨 집안에 시집가시게 두려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다. 혜연도 그런 일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아니지! 우리가 뭐 그렇게 큰 호의를 받은 건 아니잖아. 그리고 사례로 내가 은화 두 냥이나 쥐여 줬으니까 괜찮아.”
추길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떡하지? 지금 그쪽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도 없고, 하인 한 명도 보내질 않으니…….”
너무 급하게 나온 데다 신부 맞이 행렬이 걸음을 재촉하는 바람에 혼수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할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엽연채가 집에서 데려온 거라곤 추길과 혜연, 두 여종뿐이었다.
“마님 상태도 안 좋아 보였는데. 노태야老太爺(집안의 큰어른)께서는 설명을 제대로 해 주시는 성격이 아니시고, 세자世子(집안을 잇는 후계자)께서도…….”
혜연이 말하는 ‘세자’란 엽연채의 아버지 엽승덕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엽승덕의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둘째 아가씨와 새신… 아니, 장박원의 일도 있잖아. 지금 집안 꼴이 말도 아닐 거야. 현재로선 그저 상황을 봐 가면서 그때그때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지, 뭐. 일단 오늘 저녁은 우리가 아가씨를 잘 모시고, 내일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추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곧 음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엽연채는 나한상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잠시 눈짓을 주고받더니 그녀를 깨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후 대충 요기를 한 그들은 입고 있는 옷차림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이른 아침,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질 무렵의 궁명헌은 맑고 상쾌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교 마마는 사람도 환경도 낯설 엽연채와 여종들이 염려되어 서둘러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왼손에는 물통, 오른손에는 정갈한 세수 용품을 들고 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발견한 추길이 얼른 걸어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일어나 있던 엽연채가 말소리에 문밖을 힐끔 쳐다보니 웬 어멈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냐?”
혜연이 대답했다.
“교 마마입니다. 어젯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침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아가씨께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기에 깨우지 않았어요.”
그 소리를 들은 교 마마가 얼른 앞으로 걸어와 예를 올렸다.
“아가씨를 뵈옵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엽연채가 교 마마 쪽으로 걸어 나왔다.
고개를 든 교 마마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가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희고 얇은 적삼은 그녀의 굴곡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복숭아꽃같이 뽀얀 얼굴은 막 잠에서 깨어서인지 몽롱하고 무방비했다. 그 소녀는 가느다란 팔로 문틀에 기대어 일어서더니 계단 앞으로 나와 섰다.
교씨는 같은 여인임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서 이런 절세가인이 나타났단 말인가!
‘신랑이 도망갈 정도면 대체 얼마나 못생긴 걸까.’ 하고 염려했는데, 엽씨 가문 큰아가씨가 이렇게나 빼어난 미색을 지녔을 줄이야. 장씨 가문 공자는 눈뜬장님이란 말인가? 아니고서야 대체 왜 이런 미인을 거절했을까?
외모만 놓고 보면 셋째 도련님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러나 이 아가씨는 잠시 이곳에서 비바람을 피하는 것일 뿐, 오래 머물지는 않을 테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엽연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공자님과 마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공자님은 어디 계신가요? 가서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교 마마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이 아가씨는 뜻하지 않게 이런 곳에 와서 서자에게 의탁하고 있는 처지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을 텐데 이리도 침착하다니!’
거기다 답례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거만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인품을 논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지만, 지금 하는 행동만 봐도 그녀가 은혜와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아가씨,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셋째 도련님께서는 날이 밝자마자 출타하셨습니다. 마님과 다른 두 도련님, 아가씨들은 모두 어제 상성常城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고요. 그러니 아가씨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엽연채는 미소를 지었다. 공교롭게도 안주인을 비롯한 주씨 일가가 모두 집을 비운 때에 혼사가 진행된 모양이었다. 이에 주운환은 자신도 외출함으로써 그녀가 자유롭게 행동하여 친정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었다.
“아가씨, 댁에서 아가씨를 모셔오라고 마차를 보내왔습니다.”
추길이 격양된 목소리로 고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 소리를 들은 혜연 역시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엽연채는 조금 난감했다. 두 여종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은 전생에 혼인을 한 번 했었기에 예법을 알고 있었다.
신부가 친정으로 돌아갈 때는 시댁에서 준비해 준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게 정해진 법이었다. 친정에서 마차를 보내 데려가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엽연채는 깊게 따지고 들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