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6/87)

***

리케도르안의 성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황성에서 돌아오자마자, 피로한 몸을 뉘이는 대신 모든 이들을 불렀다. 십분 뒤 리케도르안의 집무실에 프란시아, 르나그 그리고 제이르와 리케도르안까지 한데 모였다.

“언니, 어떻게 됐어?”

프란시아는 황성에서 있었던 일의 결과가 궁금한지 얼굴에서 호기심을 지우지 못한 채 물었다.

“잘 해결됐어.”

나는 웃으며 그리 대답하고는 돌연 반문했다.

“프란시아, 혹시 장미들의 기원에 대해 알아?”

“응? 기원? 뭘 말하는 거야?”

“그냥. 장미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처음으로 기원에 대해 들었다.”

“아하.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역사는 내 분야는 아니지만 음, 되게 오래전부터 아닌가?”

그녀의 말을 들어선 프란시아는 황제가 알고 있던 기원에 대해 잘 모르는 기색이었다. 르나그나 리케도르안을 보아도 그러했다.

‘황실이 독점했던 정보였나?’

하기야 그쪽은 아예 시초 유령이 달라붙어 있는 입장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거야 원. 갈수록 내 주변이 비범하다 못해 비정상적인 존재들의 집합소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까 참을만 했다.

“우선 할 이야기가 있어. 티아라를 가져온 건은 잘 해결되긴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평화롭게 캄브라캄에 들어갈 입장권을 받았단 얘기고.”

나는 프란시아뿐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 마지막으로 리케도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가지 고비가 남았어요.”

“어떤 고비입니까?”

“우리, 한곳에 쳐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도뮬릿의 근거지야.”

내 말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담담히 내 말을 기다릴 뿐. 물론 리케도르안은 슬쩍 미간을 찌푸리긴 했다.

나는 지역명을 말했다.

“내 수호신이 그곳에 갇혀 있어요. 캄브라캄에 가기 전에 반드시 데려와야 해요.”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희미한 노랫소리. 아마도 나는 나의 수호신을 만나야 완전해질 것이다. 도뮬릿에 쳐들어가는 일도 일이지만. 나는 다음으로 중요한 안건을 꺼냈다.

“그리고 한 가지 청이 있는데.”

나는 한사람씩 차례로 쳐다봤다.

“우리, 장미제전을 일으키죠.”

“……네?”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르나그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빠르게 깜빡였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이십니까?”

“말 그대로예요.”

나는 씩 웃으며 집무실 책상을 짚었다.

“다들, 날 두고 한번 싸워볼래요?”

물론 진심은 아니었고, 심각해진 분위기를 잠시 풀어보고자 한 농이었다. 나는 좀처럼 하지 않던 손을 펼쳐 톡톡 내 뺨을 두드렸다.

“상품은 내 사랑인데.”

“……언제 일으키면 됩니까?”

“네?”

내가 반문하기 무섭게 누군가 끼어들었다.

“언니.”

프란시아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에 난 얼떨떨하게 응? 하고 고개를 돌렸다. 프란시아가 심각한 얼굴 그대로 말했다.

“그런 건 들어오자마자 말을 해줬어야지.”

한 손엔 언제 든 것인지 모를 거대한 망치를 손에 든 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본 곳엔……. 리케도르안이 울먹이는 얼굴로 서 있었다.

“……제 자리는 제가 지키면 되나요? 이아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검을 빼든 채. 나는 숨을 삼켰다.

……거, 농담도 못 하겠네요. 선생님들.

2장. 항상 옆에 있고 싶어요

칸탈라의 대성당.

추정하기로 약 200년 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성당이다. 도시 이름을 따와 그대로 칸탈라의 대성당이라 불린다. 오래된 성당을 둔 도시답게 도시 또한 아주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했다. 하나 인류사에서 오랫동안 대 인구를 품어온 도시이나 모든 것이 쇠락의 길을 걷듯 예전과 같은 영락을 누리는 곳은 아니었다.

이 도시는 도뮬릿 영지와 사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곳, 다시 말해 도뮬릿 영향 하에 있는 도시다.

정확히는 스체루텐과 판테스 사이에 있는 도시. 여기서 판테스는 내가 도뮬릿 저택으로 돌아갔을 적 제이르가 폭발을 일으킨 도시이기도 했다.

“성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더는 종교가 힘을 발휘하는 곳은 아니에요.”

신전과 종교 전문가답게 프란시아가 나서서 설명했다.

“근처에 있는 도시들이 죄 자유도시, 즉 범죄 도시들이잖아요? 자연스럽게 물든 거죠.”

“거기도 범죄가 만연해?”

“만연……까지는 아닌데. 음. 범죄보다는 부정부패의 도시지. 더는 종교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대가리에 앉아 성심을 버리고 현실을 택해 향락을 좇는 곳이니까?”

“음……. 설명 고마워.”

“뭘.”

아무래도 칸탈라에 대한 프란시아의 감상은 영 좋지 않은 듯 이어지는 예시와 설명이 적나라했다.

“신전에 관한 검은 돈은 저기와 연관 있더라. 신전에서도 골치 아프게 여기는 곳이야.”

하기야. 프란시아의 입에서 나오는 사항만 해도 그리 느껴질 법한 것들뿐이었다. 체이서가 어째서 이 도시와 대성당을 고른 것인지 알만했다.

정리하자면 범죄 도시나 다름없다는 얘긴데. 사실 이런 곳은 체이서의 주영역이다. 그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이자, 활동하기 제일 편한 곳. 그가 초대한 무대에서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칸탈라의 대성당 수용인원이 장난 아닌데…….”

애석하게도 이런 곳을 골랐더라도 대응해서 가야 하는 처지였다. 더군다나 황제를 알현한 지 이틀이 지난 지금 이미 우리는 칸탈라 근처의 도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준비를 마치자마자 떠나온 것이었다.

사실 장미들은 하나같이 내가 헤르님에 남아 있길 바랐지만 내가 직접 가는 것이 체이서의 조건이었기에 어찌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호신을 찾는 데는 내가 필요하니까.’

나는 황무지 저 너머를 바라봤다.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작은 울림소리. 헤르님 성에서는 아주 멀다 싶던 소리가 가까워진 것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내 수호신은 저 도시에 있다. 적어도 체이서가 거짓 함정을 판 것은 아니란 소리다. 물론 그 남자의 뜻을 더욱 알 수 없었지만.

“이 근처에 헤르님 영역에 속하는 도시가 있어서 다행이네.”

“그렇지.”

리케도르안과 체이서는 땅따먹기 게임을 하듯 서로의 영향력을 겨루었기에 드넓은 제국 땅 내에 각기 이들에게 속한 도시가 여기저기 나눠져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도뮬릿 영지 근처의 도시라 해서 전부가 체이서 손에 있는 것은 아니란 것.

주둔지로 삼은 도시에 정예가 모인 상태에서 우리는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점검이라 해 봐야 준비한 작전을 되새기는 것에 가까웠지만.

특히나 이 중에서 마법사, 그들을 이끄는 제이르는 가장 바빴다. 리케도르안과 르나그, 각 우두머리의 명에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일 마법 도구를 빠르게 구해내고 만드느라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고 싶은데. 이게 맞는 거겠지.’

-당연하다, 냥!

내 생각을 듣던 푸딩이 옆에서 냥냥, 울었다. 그때였다. 막 성기사 하나가 주변으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저…… 성녀님, 성하께서!”

“아, 언니 잠시만.”

한창 칸탈라에 대해 설명하던 프란시아가 내게 손을 휙휙 흔들고는 자신을 부른 기사에게로 다가가 함께 자리를 비웠다.

사라지는 그녀의 옆얼굴은 한 단체를 이끄는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내게 방긋방긋 맑게 웃던 얼굴은 어디 가고, 어른스럽고 차분한 분위기, 황제와는 다른 위엄마저 흘러나왔다.

“아직 어린 것 같다가도…… 저렇게 보면 어른이네.”

“흰 장미 말입니까?”

“네. 프란시아요.”

나는 옆에 서 있던 르나그를 보며 살짝 미소했다.

프란시아가 성기사에게로 간 탓에 내 옆에는 리케도르안과 르나그가 각기 서 있었다.

“황무지가 정말 크네요.”

목적지인 칸탈라와 우리가 지금 머무는 도시 간에는 거대한 황무지가 있었다. 오래전 전쟁이 있었다던 이곳에서는 당시의 독을 사용한 무기 때문에 어떤 농사도 힘든 불모지가 되었고. 지금도 이렇게 버려진 땅으로 남아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에요.”

우리는 이런 황무지가 잘 보이는 언덕에 서 있었고. 바람이 길게 불었다. 머리카락과 함께 옷자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바람에서는 모래 냄새가 났다.

“그러고 보면 리케도르안과 르나그, 그리고 프란시아는 항상 서로를 장미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사실 체이서까지 포함이겠지만 나는 굳이 그 남자까지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이 정확히 대공 각하, 발테이즈 후작님, 성녀님 등 직위를 부르는 것과 차별된다고 할까.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느끼니, 그건 아마 서로를 의식한다는 증거일 겁니다.”

“그래요?”

“네. 경쟁 관계이니까요.”

앞은 르나그, 뒤는 리케도르안의 대답이었다. 어째…… 대답도 경쟁적으로 하는 두 남자를 보며 나는 난감하게 웃음을 흘렸다.

무슨 말인진 알겠다. 시선을 살짝 내리면 아줄르와 푸딩이 나란히 제 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호신…….”

수호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장미와 수호신은 아주 비슷하다더니 이들의 관계도 장미들의 관계와 비슷했다. 아줄르와 푸딩은 서로 건드리지만 않으면 소 닭 보듯이 서로를 방관하거나 무시했지만.

칼리스토는 푸딩과 마주하기만 하면 으르릉대며 투탁투닥 다퉜다. 마치 프란시아와 리케도르안의 관계처럼. 지금도 그랬다.

캬앙!

하아아악!

“이런, 푸딩!”

난 얼른 칼리스토를 잡아서 안았다. 다른 뜻은 없고 칼리스토가 바로 옆에 있어서였다. 프란시아가 잠시 자리를 비우며 칼리스토를 여기 두고 갔는데, 이틈을 타 곧바로 또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운 것이다.

-인간!

푸딩은 숫제 충격에 사로잡힌 얼굴로 칼리스토를 안은 나를 보았다.

-그 곰을 안은 거냐, 곰을 안은 거냐!

“아니……. 더 옆에 있어서. 칼리스토?”

캬웅! 칼리스토가 보란 듯이 내 품에 안겼다. ……어째. 이 얼굴, 리케도르안을 약 올리는 프란시아의 표정이랑 똑같은데. 문제는 아기곰의 애교가 살인적이게 귀엽다는 점이었다.

하아아악!

-인간, 네가 쓰다듬었냐, 냥! 그럴 수 있냐! 인간!

“어…….”

그때, 품속의 칼리스토가 빛으로 산화했다. 아마 제 장미에게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깔끔하게 놀릴 걸 모두 놀리는 것까지…… 딱 프란시아였다.

웃음소리가 들려 옆을 바라보니, 르나그가 살짝 웃고 있었다.

“이아나 양, 이런 말씀 조금 당혹스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내게 속 깊은 마음을 고백한 뒤로 그는 웃음이 잦아졌는데, 이런 모습은 이따금 속이 후련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후련하군요.”

물론. 이번엔 진짜 후련해서 웃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는 푸딩이와 리케도르안을 동일시하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칼리스토와 흰 장미를 응원하는 바입니다.”

“어, 네?”

“적의 적은 동지라지요.”

“……그렇게 되나요?”

“그렇지요. 공통의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 르나그. 그 공통의 적이 당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상관없습니다.”

르나그가 고개를 숙여 칼리스토가 사라져 어정쩡하게 허공에 들린 내 손을 살짝 붙잡았다. 그러고는 손등에 정중하게 입을 맞췄다.

“제가 당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르나그는 그리 말하고는 제 말에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슬쩍 눈 밑을 붉혔다가 얼른 손을 놓아주었다. 리케도르안이 수줍어하면서도 제가 하는 말들엔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다면, 르나그는 가끔 제가 한 말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곤 했다.

지금처럼.

“후작님! 어디 계십니까!”

마침 제이르 쪽에서 르나그를 불렀다. 제이르 휘하에는 발테이즈 후작가에서 온 마법사들도 있었기에 그도 그곳에서 의견을 나누곤 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아, 네.”

그렇게 르나그가 폭탄을 떨어트리고 간 자리.

나는 남겨진 장미와 수호신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소리 내어 웃음을 흘렸다. 각기 한쪽을 노려보는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푸딩이는 프란시아 쪽을, 리케도르안은 르나그 쪽을 말이다.

나는 웃다 말고 리케도르안에게 한 걸음 다가가,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았다. 리케도르안이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리케도르안.”

“네?”

“우리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못 해봤다. 그렇죠.”

리케도르안의 눈이 내게로 돌아왔다. 그는 언제 노려봤냐는 듯이 퍽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귀를 슬그머니 물들였다. 서로 마음을 고백했는데, 당장 중요한 임무가 앞이니 마음 놓고 꽁냥꽁냥 해볼 새가 없긴 했다.

“일단 당신의 생명과 관계된 일이잖아요. 서운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요. 응?”

“……서운하진 않았어요.”

“정말?”

리케도르안이 내 품에 파고들었다. 거대한 짐승이 안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어 그가 작게 속삭였다.

“……조금은 했던 것 같기도.”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하게 된다면요.”

“데이트 말인가요, 이아나?”

“응. 데이트요. 어디로 가고 싶어요?”

그러자 내 목에 얼굴을 비비던 그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순간이지만 그에게 짐승의 귀와 꼬리가 있었다면 쫑긋 섰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푸른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곧 뽀얗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결혼?”

“……그건 데이트가 아니잖아요.”

뭘 그리 상큼하게 말하세요. 이 사람아.

“종일 당신 옆에 있는 거요.”

“그건 지금도 그렇잖아요?”

“내일도요.”

“그럴 거예요.”

“다음 하루도요.”

“…….”

리케도르안이 내 목에 얼굴을 다시 묻었다.

“다음 하루도. 그다음 하루도. 언제나요. 이아나.”

그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귀로 흘러들어왔다.

“항상, 언제든 옆에 있고 싶어요.”

“……그건 결혼이네요.”

태연히 끄덕이는 내 얼굴에 리케도르안이 작은 바람 소리를 내며 목에 키스를 남겼다.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이 웃는 것 같았다. 그는 웃음 끝에 입술을 열었다.

“이아나,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나는 어느새 리케도르안의 등을 타고 올라와 저도 쓰다듬어 달라며 캬옹캬옹, 우는 푸딩이를 보았다.

“무엇인가요?”

그는 말을 고르는 것인지 잠시 침묵했다. 목에서 날 것에 가까운 숨이 느껴진다. 짬이 난 틈을 타 질투 많은 3세 수호신님을 쓰다듬고서야 말이 흘러나왔다.

“최후의 싸움에서, 흑장미를 어찌할 건가요?”

나는 쓰다듬다 말고 멈칫했다.

“……어찌할 거냐니요?”

“싸움에는 필히 검을 꽂아 넣을 순간이 와요. 이아나.”

이윽고 마침내 마주한 리케도르안의 시선은 분노도 울분도 없이 고요했다.

“죽일 건가요?”

그저 내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듯이.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미 내 안에서 정해져 있던 답이지만 혀끝으로 말이 쉬이 나가지 못했다. 단순히 답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태도에서 이상한 것을 느껴서였다. 내가 바라면 죽여주겠다고?

“죽인다면 누가요?”

리케도르안이 눈을 깜빡였다. 의문이 섞인 시선이 반문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찌를 건가요?”

“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흘러나온 대답은 대답이라기보다는 짐승이 잘 훈련된 성과처럼 보인다.

“당신이 바란다면요.”

자신의 가치관과 옳고 그름은 상관없다는 듯이.

“명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죽더라도 지킬 거예요.”

나는 여기서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수줍어하는 그가 좋다. 내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가 좋다. 그러나 이건 동등하게 사랑하는 연인보다는…….

“이봐요, 리케도르안.”

그가 체이서에게 원한이 있음을 알지 않는가. 그 원한을 지우라, 용서하라, 복수가 낳는 것은 없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 분명 그가 가진 증오를 알진데 내게 결정을 미루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건 정확했다.

침묵이 성에처럼 입술 끝에 달라붙었다. 이런 고요 속으로 바람이 불었다.

“내게 죽이겠느냐 물었죠? 내가 만약 그러고 싶다고 하면. 피는 당신의 손에 묻겠네요.”

난 이리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왜죠?”

“그건 당신이…… 바라니까.”

“날 사랑한다고 해서, 내게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아요.”

그대로 그의 손을 잡아당겨 그가 내게 숙이도록 만들었다. 내 입술로 삐딱한 미소가 스몄다.

“눈치 보지 말아요.”

잠시 파르르 떨리던 푸른 눈이 날 향했다. 날 납치했을 때의 그를 보자면, 그는 타인에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방에서 내가 당신에게 누누이 가르친 건 자유 같은데. 왜 스스로 목줄을 메려 할까.”

“……당신이 주는 거라면 목줄마저도 좋아요.”

“스스로 생각조차 못하는 복종을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해요? 왜 내 의지로 결정한 일에 당신이 피를 묻히죠?”

“이아나…….”

“내 말 끝나지 않았어.”

나직하고도 태연한 말에 리케도르안이 움찔했다. 나는 그가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제멋대로 굴어도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나는 리케도르안을 사랑한 것이지, 이 비이성적인 관계에 얽힌 장미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설사 우리가 장미란 지독한 연으로 얽혔더라도 나는 한쪽이 굴복하고 복종하는 사랑이 아닌 동등한 사랑을 하고 싶다.

“날 사랑한 건 푸른 장미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의 의지라고 말했잖아요.”

겉모습이 멀쩡한 어른이 되었더라도 이 순간 복종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당신이 왜 이러는지 안다.

사랑하니까 의지마저 지워내는 모습이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모습. 이렇게밖에 될 수 없던 이유를 안다.

“이제 와 당신의 의지를 내려놓지 말아요.”

나는 그의 뺨을 붙잡았다.

“내게 하고 싶은 걸 말해도 돼요.”

“그게 이아나가 싫어하는 것이라면 어떡해요?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죠?”

그가 울 것처럼 얼굴을 흐렸다.

“물론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을 놓지 않고 사랑할 거지만…… 이아나. 나는 이따금 두려워요. 어느 날 당신이 날 멀리할까 봐. 다른 사람 쳐다보지 말았으면 하는 욕심이 들어요.”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마음이 비로소 터져 나온 것 같았다.

“……당신, 질투해요?”

“네. 아주 많이요.”

귀를 절절히 울리는 울림으로 알 수 있었다.

“……알려주세요, 이아나. 이런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해요?”

그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온몸으로 사랑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욕심인 거 알아요. 제발, 저만 사랑해주세요.”

얼떨떨하게 그를 보던 나는 황급히 끄덕였다.

“그럴게요. 이미 그러고 있잖아요. 울지 말아요. 응?”

“흡, 손……. 오 초 이상 잡지 말아요…….”

“응, 그럴게. 또요?”

“눈도, 흡……. 십 초 이상…….”

“알았어요. 마주치지 않도록 해볼게요.”

“팔 초…….”

“어……. 그래요. 팔 초요? 세어 본 적은 없지만……. 그것도 노력해볼게.”

눈앞의 남자는 길을 잃은 아이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 손을 놓치지 않으려 꾹 잡았다. 사랑하는 이를 앞두고도 애정을 갈망하는 것은 역시나 이 기형적인 관계의 폐해라 느꼈다.

그럼에도 티를 내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걸 한다고 해서 당신을 싫어하게 될 만큼 내 감정은 가볍지 않아요. 날 뭘로 아는 거예요?”

나는 이것이 서툰 질투라고 안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눈물을 닦아주며 할 말은 했다.

“왜 갑자기 자신감을 잃었어요?”

“갑자기가 아니라.”

“그런 모습마저 좋아해요.”

“…….”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역시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그의 뺨을 매만지며 까치발을 들었다. 입술이 가볍게 스쳤다.

“이런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여기니까. 사랑인가 봐요. 불안해 말아요.”

커다란 짐승이 낑낑대는 것 같았다. 하기야 짐승을 키우며 멘탈 케어할 일이 없겠나.

“눈도 덜 마주치고, 손도 덜 잡아볼게요.”

“걸음도…….”

“걸음도?”

“세 걸음 이상…….”

“푸흡.”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이 질투를 어떻게 참았어요?”

“……당신의 장미 정원을 보더라도 곁에 있고 싶다고 한 건 나니까요. 그렇지만 이제 참지 말라 말했으니까.”

“그래요. 내가 말했지.”

나는 안겨 오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커다란 강아지 취급하는 내가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유쾌하게 느껴졌다.

“이것만 생각해줘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은 감방에 있지 않아요.”

이어 입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내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실례지만, 이아나 양.”

나는 막 입을 떼다 말고 시선을 돌렸다.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르나그였다. 그는 우리 사이에 묵직하게 가라앉은 공기를 느낀 것인지 난감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법사 제이르가 당신을 보길 청했습니다만…….”

르나그의 눈매가 옆으로 느릿하게 굴렀다.

“혹 제가 방해한 것입니까?”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장미라 신체능력이 좋은 이이니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아뇨. 방해는 아니고요.”

어차피 한번은 해야 할 말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대답하려던 순간에 이번엔 누군가 내 어깨를 톡 잡았다.

“언니!”

양어깨로 꾹 누르는 무게가 느껴졌다. 보드라운 향기로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있었다.

“뭐야, 뭐야. 무슨 재미난 이야기 중이었어?”

“아…… 프란시아.”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더니 멈칫했다.

“어라, 나 잘못 끼어들었어?”

“아니야.”

프란시아의 어깨에 매달린 칼리스토를 보고 있으려니 비장함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음을 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를 물끄러미 보던 리케도르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바닥을 보였다.

“이아나, 조금 전의 이야기는 반만 잊어주세요.”

“반만요?”

“……전부 잊어달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렇다고 잊지 말아달라고 하기엔…….”

그는 손등에 입술을 묻으면서도 하아, 숨을 내쉬었다.

“질투 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제이르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가씨, 잠깐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왜 저리 급하게 부르는 거지? 일단 고개를 끄덕였는데, 끄덕이고서야 제이르가 있는 거리에선 보이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럼 리케도르안 다시 이야기해요. 그 기준 말이에요.”

“네.”

리케도르안이 청아하게 미소했다. 흰 뺨을 붉게 물들인 얼굴을 보다 걸음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등을 돌리려 한 순간 리케도르안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그의 고개가 홱 반대로 돌아간다. 리케도르안뿐만 아니었다.

“이아나 양!”

가장 가까이에 있던 르나그가 나를 잡아당겼다.

쾅!

거대한 몸이 나를 감싸 안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나는 나를 안은 품에서 눈을 크게 깜빡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시야가 휙 뒤집어지는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르나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곳의 풍경이 보였다. 나와 꽤 거리가 떨어져 있던 막 지어진 막사 하나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땅이 움푹 파인 채였다.

“……흑마법입니다.”

르나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에 흠칫 어깨를 굳혔다.

“이건 아마도…….”

흑마법과 도뮬릿. 누군지 모를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이동 거리를 무시한 이 마법은 도뮬릿 공작 최측근의 특기입니다.”

르나그는 흘끗 구멍을 바라보고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임시로 하루만 머물기 위해 임시거처를 세운 곳이었다. 곳곳에서 신음과 수습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기사들은 태연했다. 대처 또한 빨랐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낯설게 느끼는 이방인은 나 하나 뿐인 것 같았다. 모든 모습을 담담하게 보다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건.”

나는 부상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서 눈을 떼어낼 수 없었다.

“선전포고군요.”

부드럽지만 단호한 선고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한때 내가 몸을 담았으며 정을 주었던 이와 진정 적이 되었단 것을. 어쩌면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체이서, 그 남자가 나를 너무나 쉬이 놓아주었기에 착각했던 걸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리리라고.

내가 이상했던 거다. 그 남자는 책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쯤은 아무렇게 사라지게 만든 악당이었는데. 나만 안온하게 잘 살아 있다면, 모든 것이 상관없다는 듯이 구는 남자였지 않나.

거사 일, 단 하루 전.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한참 동안 뺨 위에 손을 얹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제 와 새삼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저, 내가 다소 안이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곧 고개를 들었다.

“손 좀 잡아줄래요?”

르나그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 리케도르안이 다녀갔고, 프란시아가 다녀갔다. 나는 얼른 수습해달라는 말을 돌려주었던 것 같다.

“빨리 진정시켜줘, 모두를.”

내 단호한 말에 그들은 얼른 제 진영을 챙겼고. 전권을 헤르님에 넘긴 르나그만이 내 옆에 남아있었다. 나는 툭툭 무릎을 털었다.

“갈까요?”

“예.”

르나그와 함께 자리를 떠나 제이르에게로 향했다.

모든 이들이 수습하느라 바쁜지라, 제이르가 이끄는 마법사들도 바빴다. 하나 제이르만은 수습 현장에서 나와 내게 얼른 달려왔다. 막 완성한 도구의 보호 마법을 시험해 보고자 불렀다나.

“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많이 놀라셨지요!”

“괜찮아요. 나와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으니까.”

그래.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나는 입술을 비틀어 끌어올렸다.

“일단 후… 여기. 여기로 잠시 서 주십시오.”

“뭘 하는 거죠?”

“도구의 시험운행을 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작전 일시가 바뀔지 모르니까요.”

제이르의 말은 타당했다. 저쪽에서 친히 선전포고까지 해준 이상 더는 여유가 없다 봐도 좋았다. 나는 내 팔에 마법 도구를 채우는 제이르를 보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르나그가 제이르의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거, 내가 채워도 되겠나?”

“네? 아……. 음, 어. 예.”

제이르가 어물어물 눈치를 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사실 나름 능글맞은 대마법사님은 현직 간수장의 눈치를 보는 편이었다. 뻔뻔하게 나올 것 같았는데. 하긴 감방에서 만났을 때도 르나그 하면 학을 떼던 제이르였다. 그렇게 도구를 건네받은 르나그가 내 팔에 채우기 시작했다. 팔찌 형태로 여러 개의 팔찌를 겹쳐 차는 식이다.

“……조금 전에 많이 놀라셨습니까?”

“아. 조금요.”

나는 피식 웃으며 수긍했다. 르나그는 염려 어린 눈이었다.

“보통 수성 전에는 이런 일이 있기도 한지라……. 이아나 양에게는 낯선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요?”

“미리 이야기라도 드릴 것을 그랬습니다…. 제 실책입니다.”

“에이, 왜 르나그 잘못인가요.”

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눈을 돌렸다.

“그런 마법을 던진 사람 잘못이지.”

창문 밖, 정확하게는 칸탈라가 있는 쪽이었다. 그대로 그에게로 다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시킨 사람도요.”

르나그는 말없이 팔찌를 다시 채웠다. 끈으로 만들어진 팔찌는 중앙에 보석이 달려 있고 끝에 체인을 채우는 형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이르가 감방에서도 팔찌를 줬지?

“음, 르나그.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요.”

그는 내 팔을 거의 힘도 느껴지지 않게 잡고, 섬세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러자 한창 집중하던 긴 속눈썹이 그대로 올라간다. 나는 더는 이 눈매를 보며 움찔 떨지 않았다.

“불편하셨습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나는 내 손목을 잡은 손을 툭 건드렸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붙잡고 계시기에.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아…….”

“생각보다 튼튼하답니다.”

이를 증명하듯이 나는 손을 몇 번 쥐었다가 펴 보였다. 그러다 그를 보는데, 르나그의 귀가 보란 듯이 물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대체 왜? 나름 르나그를 오래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제가, 그……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당장 놓으라고 윽박지른 것도 아닌데 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그런 것이 아니란 내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진정했지만, 놀라는 모습도 차분해서 인상적이었다.

“다 됐습니다.”

“아, 고마워요.”

그렇게 오해가 풀리고 르나그는 내 손에 모든 팔찌를 채웠다.

“이거, 손을 뻗으며 외치면 된다고 했었나요?”

“예. 듣기론 급할 땐 그대로 찢어도 된다고 하더군요.”

조금 전에 튼튼하다고 자부한 것이 무색하게 난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제가 찢을 수 있을까요?”

“아, 네.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의 힘에도 뜯어지게끔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거라면야 안심이다. 나는 찰랑 흔들리는 팔찌를 보다 고개를 들었다.

“르나그, 당신은 언제 돌아가나요?”

그 순간 르나그의 눈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곧 돌아갑니다.”

“내 생각엔 당신이 더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가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장 거사를 앞두고, 르나그는 할 일이 있었다. 내가 줄기를 짜고 세부적인 것은 세 장미가 채워준 계획.

“당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요.”

곧 있을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건 리케도르안도 프란시아도 아닌 바로 이 남자였다.

“알고 계시죠? 이건 시간 싸움이에요. 반드시, 황궁으로 가서 ‘장미제전’을 청하세요.”

리케도르안이나 프란시아의 역할이 가벼운 건 아니었다. 그보다도 이 남자가 할 일이 이 배의 키를 잡고 있다는 것이지.

“……물론입니다.”

그는 부드럽고 차분한 기색을 잃지 않으며 단단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완수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언제나 진지하기 짝이 없는 이 남자의 낯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언제고 당신이 엮인 일엔 걱정한 적이 없는걸요.”

진심을 가득 담은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뜨던 그가 곧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부드러이 웃는 것도 같았다.

“……제 존재의의를 찾아 기쁩니다. 이쪽은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하며…… 다시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네. 행운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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