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40/87)

***

-짹짹짹.

나는 본래 새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려면 아주 과거의 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이전의 세계에서 아침마다 비둘기 소리에 잠을 설쳤던 탓이 컸다.

그러나 이 세계의 새소리는 둔탁하고 불쾌하던 비둘기 소리와 다르게 꾀꼬리의 것처럼 맑고 경쾌했다.

<……새소리 좋다.>

그래서 무심코 그리 얘기했다. 그랬던 것뿐인데. 체이서는 다음 날, 대륙에서 가장 맑은 소리를 내는 새를 구해왔다. 새장의 새는 싫다고 했더니, 정원에 새의 생태지를 만들어 새둥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둥지를 튼 지, 3년째.

어느 날부터 새소리는 아침마다 맑은 알람이 되었고, 또 아퀼라가 카나리아 비슷한 새로 나타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짹짹짹.

맑은 소리를 들으며 눈을 비볐다. 영 잠이 깨지 않았다. 눈을 제대로 뜨면 검은 카나리아가 보였다.

“……아퀼라.”

저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아퀼라가 짹짹 울었다. 아침 알람과 함께 나를 찾아오는 것이 취미인 수호신이었다.

창밖에도 아퀼라의 울음소리와 같은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보니 10시쯤 됐으려나. 난 일어나려다 말고 이불을 들어 올렸다.

‘얜 왜 여기 자고 있어.’

아, 어제 내내 울다가 잠들었지. 허벅지 안쪽에 푸딩이 꼬옥 붙어 색색 잠들어 있었다. 어쩐지 다리 사이가 따끈하다 싶더라니, 몸을 돌돌 만 푸딩은 회색이 아닌 하얀빛 도는 은빛털을 한 고양이 모습이었다.

이유는 모르나 쉬르멜라에 다녀온 뒤부터 줄곧 고양이 모습을 유지하더라고.

‘……내가 이쪽을 더 마음에 들어 한 걸 눈치챈 것 같기도 하고.’

동물들은 감이 빠르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카나리아 모습을 한 아퀼라도 그렇고 얘들은 가만 보면 참 미워할 수 없게 행동하는 것 같다.

리케도르안을 만난 뒤로 3일이 흘렀다. 3일 동안 무엇이 달라진고 하면, 무려 3일을 내내 울어대는 푸딩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고…….

“좋은 아침이야, 이아나.”

내 방에 또아리를 튼 짐승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리라.

“잘 잤어?”

저기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꼰 체이서는 엄밀히 말하자면 짐승은 아니라 영장류 사람과겠지만 하는 짓이 짐승과 다름없으면 짐승이지 뭐.

“……오늘도 내 방에서 밤새운 거야?”

체이서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긍정의 의미이리라.

당황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젠 당황스럽지 않고 익숙한 일이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나온 지 벌써 3일째였으니까.

정확히는 리케도르안을 만난 쉬르멜라에서 돌아온 뒤부터였다.

같은 방을 쓴다지만 내 방은 지나치게 넓었다. 저 악당이 아끼디아끼는 여동생에게 준 것이니 좀 좋을까. 아무튼 같은 방이라 해도 거의 다른 공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거리가 머니까.

아마도 그는 방 끝 즈음에 있을 소파에서 잠들었을 거다. 참 궁상맞아 보이는데, 저 남자가 하니까 그것도 화보가 되더라.

첫날엔 뭔 소파 화보인 줄 알았다.

‘미친놈인 줄 알았지. 아니, 이미 미친 자이긴 한데.’

물론 말했듯 소파 화보 운운한 건 첫날의 일로, 이때는 나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날로 돌아가 회상하자면, 막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여기서 더 깊이 감금되는 건가, 최악의 상황도 가정했다.

……발목 족쇄, 쇠사슬 세트 다음엔 뭘까. 온몸을 꽁꽁 묶어둘까? 아니면 라푼젤이라도 되려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고생했어, 이아나.>

하나 예상과는 다르게 체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면서.

<푹 쉬어, 내 동생.>

거기다 이리 말하는 얼굴은 몹시도 기분 좋아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도 너무 피곤하네.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응?>

다음 순간, 그대로 내 방 소파에 쓰러져 우아한 각도로 나를 올려다봤을 때도.

<쉬고 가도 돼?>

꽃받침하며 물었을 땐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이지 싶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남자는 화사한 얼굴로 말의 어색함을 타파해버렸다. 흡사 ‘라면 먹고 갈래?’를 반대로 말한 듯한 유혹이었다. 물론 나는 이 인간이 미친 걸까 하는 눈으로 보았지만.

한편으로 이상하긴 했다.

그 후로도 내 방에서 밤을 보낸 그는 딱 거기까지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왜, 화낼 상황에서 그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무섭다고들 하지 않나. 딱 그런 짝이었다. 성질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리케도르안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어디 탑에 갇힐 생각까지 했던 것치고는 매우 이상한 결과였다. 일단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기기로 했지만…… 조금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리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날은 냬 모기 떠러지는 날인 줄 알아찌.>

도뮬릿으로 돌아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나, 후다닥 달려온 마쉬멜이 말했다.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다행히 그대로네요.>

<아가씨 때문이자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안심했다. 나를 도와준 게 들켰을 테니 정말 이 사람을 못 보는 건 아닌가 염려했었다. 나는 그의 손발, 특히나 손가락과 발가락이 10개 다 무사한지 확인했고, 마쉬멜은 그걸 또 확인하냐고 화를 냈다.

나름 우리만의 화해 방식이었다.

어쨌거나 체이서는 심지어 나를 데려간 마쉬멜에게도 성질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데.

이건 나와 조그만 흑마법사님을 더욱더 공포로 밀어 넣었다.

아. 정정한다. 나 말고 조그만 흑마법사님의 공포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나는 공포라기보단 염려에 가까웠다.

……내가 이 사람을 오래 볼 수 있을까, 하고.

<그러니까 그런 걱쩡하지 말라고! 아가씨가 하면 현씰같다고!>

아무튼 간에 그렇게 공포의 날이 흐르고 흘러 지금이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자연스럽게 내방을 어슬렁거리는 남자에게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떼어냈다.

‘뭔 사람이 자다 일어났는데도 흐트러진 기색이 없냐.’

보통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좀 추해지는 법 아닌가. 책 속 주인공들은 역시 주인공들이라 그런지 추해지는 법이 없었다.

이전의 리케도르안도…….

<가지 마.>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멈칫했다. 입술을 달싹였다.

이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하지 말자.’

가까이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내 지척에 가만히 서 있는 체이서가 있었다.

“왜?”

왜 사람을 빤히 보는 거지. 할 말이 있으면 하지 않고서.

“그냥.”

체이서는 잠깐 귀를 매만지며 느긋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의 머리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를 갔나 했더니, 세수라도 하고 온 건가. 조금 전에 흐트러진 모습 하나 없다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가까이서 본 까만 머리칼은 조금 부스스했다.

다만 이마저 색다른 느낌으로 소화할 뿐이지.

단추도 풀지 않고 자는 건가? 불편하게. 오늘도 그의 단추는 숨 막힐 정도로 끝까지 매어진 채, 금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를 안 내나 싶어서?”

이어서 나온 체이서의 질문에 나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싶은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 내가 왜? 오히려 내야 할 건 저쪽 아닌가.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막 말을 이으려 하는데, 그보다 체이서의 손이 빨랐다. 체이서는 턱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더니, 자연스럽게 제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쓰다듬어줘.”

“……갑자기 왜 이래?”

“그렇지만, 넌.”

체이서가 허리를 한참 기울인 채로 날 올려보았다.

“이런 걸 좋아하잖아?”

체이서가 간드러지게 눈을 휘었다.

“멍.”

“…….”

나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허, 숨을 참았다.

그리고 참지 않고 그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야, 아파. 아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니라고 했지. 전부터 이상한 오해를 해서는. 잊을 만하면 그는 개목걸이며 관련한 도구를 가져오곤 했다. 채찍을 가져왔던 날엔 참지 못하고 그대로 던져버렸다.

그래도 이 인간은 좋다며 싱글싱글 웃었지만.

“정말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손을 탈탈 털어, 그의 머리에서 묻어나온 물기를 털어냈다.

체이서는 허공에서 흔들리는 손끝을 잡았다. 그 손을 제 입으로 가져와 촉, 입술을 묻었다.

“손에 아직 묻었다.”

그가 손끝에 남아 있는 물기를 입으로 훔쳤다. 부드러운 감촉에 흠칫 떨면, 붉은 눈이 농홍하게 반으로 접어졌다.

“핥아도 돼?”

“안 돼.”

“흐응, 이쪽도 취향이 아니구나.”

체이서가 고개를 기울였다. 살갗 하나 보이지 않는 단추를 이렇게 잠근 상태인데도 이렇게 선정적일 수 있나 싶었다.

“그럼 뭘 좋아할까.”

잘했냐는 듯이 쳐다보는 남자를 보며 기가 차지도 않았다.

숨 쉬듯 자연스럽네.

“나야말로 네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어. 이아나.”

“왜?”

체이서는 손에 뺨을 비비며, 내가 말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덧붙였다.

“억지로 데려왔으니까.”

억지로 데려와?

나는 3일 전 쉬르멜라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던 거 아니야? 그걸 내가 방해했잖아.”

너무나도 체이서답지 않은 말이었다. 하나 나를 다시 올려다보는 붉은 눈은 의문에 잠겨 있었다. 꿍꿍이를 숨긴 건지도 모른다.

“화 안 내?”

“……안 내.”

“왜? 강제로 송환당해서 기분 나쁠 것 같은데.”

보통이라면 그렇겠지.

나는 체이서의 손에서 손을 빼냈다.

“안 내. 낼 생각도 없어.”

나는 손을 쥐었다가 펴며 담담하게 읊조렸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

마쉬멜이 그토록 공포에 떠는 동안 나는 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어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난 말해도 소용없는 짓은 안 해.”

무심하듯 심드렁한 나의 대꾸에 체이서가 눈썹을 살짝 휘었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가 마쉬멜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다면 막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도 알겠지. 이건 애정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라는 걸.

아하,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죽는 게 싫으니까?”

“…….”

“사랑스러운 내 동생, 넌 항상 내 검을 막았지.”

이미 돌아버린 인간에게는 하소연도 분노도 소용없다. 그에게 감정적인 호소가 가능했다면 이전의 수많은 이들은 머나먼 탄광에 노예로 끌려가지 않았으리라. 그들이 그토록 울부짖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인간이었다.

“참 이상하지.”

체이서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붉은 눈에 놀랄 법도 하지만, 이젠 낯설 일도 아니었다.

“……미움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뚝. 그에게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촉촉이 젖은 시선이 나를 훑었다.

“이를 어쩌면 좋아.”

체이서가 잠시간 미소를 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곧 다시 끌어올렸다.

“이젠, 그러기 싫으니.”

그러나 끌어올려지기 무섭게 그는 고개를 푹 숙여 피식 웃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참았던 의문을 꺼냈다.

“이번에야말로 꽁꽁 묶여서 어디 탑에라도 보내질 줄 알았는데.”

“안 해.”

그가 장난스레 미소했다.

“미움받기 싫다니까?”

우리 사이에서 진지함은 채 몇 분도 가지 못했다. 이는 언제나 체이서가 의도한 바였다.

“그리고.”

체이서가 고개를 숙여, 목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떼어내 손목 안쪽에 촉 입을 맞추고는 놓아주었다.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나긋하고도 다정히 웃는 낯에는 번들거리는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

“뿌리쳤으니까.”

그는 그리 말하고는 내 귀에, 좋은 하루 보내. 하고 속삭였다.

내일 오후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늘 밤, 혹은 새벽에도 나타나겠지. 도둑잠을 청하러.

이는 심드렁하게 네 몸만 힘들지, 하고 말 생각이지만…….

나는 체이서가 닫고 간 문을 빤히 쳐다봤다. 그가 남긴 말을 곱씹으며.

뿌리치다…….

설마.

……리케도르안의 손을 뿌리친 걸 말하는 건가?

3장. 푸른 장미

“오늘도 살아 있군요.”

안녕하세요, 마시멜로 씨. 차분한 내 인사에 조그만 흑마법사님은 답하려다 말고 이어지는 말에서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그러케! 말하지! 말래찌!”

볼이 오동통한 아이인 채로 화를 내봐야 무섭지는 않았다. 나는 움츠리는 대신 그의 옆으로 다가가 쪼그려 눈높이를 맞추고 피식 웃었다.

“기뻐서 그렇죠, 기뻐서. 오늘도 볼 수 있다는 기쁨?”

“이익!”

“농이에요, 농.”

“아가씨가, 말하며는 농땀이 아닌 것 가따꼬!”

이미 체이서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나도 그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그만 흑마법사님은 걱정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나는 농담을 흘려보내고, 가냘픈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사실 그에겐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나는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돌아온 순간 마쉬멜을 가장 걱정했다. 자꾸 이런 농을 건네는 것은 이런 미안함을 대신한 것이기도 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말아요. 여차하면 그 검 앞에 뛰어들어줄게.”

나는 토닥이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돌아오면 그러려고 했어요.”

그럴 일은 없었지만. 물론 당연하겠지만 저 검의 주체는 체이서다.

“내가 죽겠다 나설 각오도 할 테니까. 걱정 마요. 살려줄게.”

마쉬멜은 읽던 논문도 내려놓고 어느새 묘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난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아가씨눈, 쩡이 있는 곤지. 없는 곤지. 알다가도 모르게써.”

무슨 말인지. 나처럼 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어딨다고? 농같이 건넸더니, 양심 없는 소리 말라는 타박이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저 마법 좀 가르쳐주세요.”

나는 적당히 웃음으로 흘리며, 본론을 꺼냈다. 마쉬멜은 뜻밖이란 얼굴이었다.

“언젠 괌심 없다며?”

“사람 마음은 갈대에요. 원래.”

체이서는 내게 많은 걸 가르쳤다. 가르치는 주체, 그러니까 선생님은 눈앞의 마쉬멜이었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문제는 뭐든 간에 내가 의욕이 딱히 없었단 거다.

2년 전 즈음 그렇게 그만두게 된 것 중엔 흑마법도 있었다.당시 빠르게 관둬서 잘은 모르지만 흑마법이란 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더라고? 이번에 얼굴을 감쪽같이 바꿔준 것도 그렇고.

“대마법사가 될까 봐요.”

“아가씨, 혹씨 수명이 240년쯤 돼?”

“왜요, 그때까지 살아야 가능해요?”

“그로치.”

보편적으로 알려진 마법과는 다르게 뒷공작 혹은 은밀한 일들, 그리고 생명연구에 관한 것도 흑마법에 속했다.

“그래요, 농이고. 이제 와 열정이 불타는 건 아니고요. 단지 이 친구 때문에.”

나는 손에 있던 고양이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3년이 지났다고 제법 커져서 이젠 꽤 묵직했다.

“이곤…….”

모습이 다르지만 한눈에 알아본 듯했다.

“불근 쟝미의 뚜호신 아닝가?”

“맞아요.”

마쉬멜 또한 푸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기야 설표의 모습이 워낙에 특이해 모를 리가 없었을 거다. 거기다 마쉬멜은 푸딩을 누가 어떻게 데려왔는지도 아는 눈치였었다. 알려주진 않았지만.

곧이어 마쉬멜은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군데 왜 이러케 뿌리 난 거지?”

“뿔 말이죠?”

나는 흘끗 푸딩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몰라요.”

푸딩은 울음소리 한 번 안 내고 얌전히 내게 안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뾰족한 것이 한눈에도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저 조그만 흑마법사님에게도 보일 정도인가 보다.

“3일째예요. 이러는 게.”

사실 푸딩이 이 상태가 된 건 벌써 3일째 되는 일이다. 리케도르안과 헤어진 날부터 계속 저랬다. 저러기만 했나. 밤마다는 웨옹웨옹 구슬피 울어대서 무슨 나라 잃은 백성인 줄 알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울음소리만 내니 나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 주제에 잠은 내가 잠들었다 싶으면 내 품에 파고들어서 잤다. 아침이 되면 다리 사이나 팔 사이에서 발견되었으니까.

나는 책상 위에 푸딩을 내려놓고 뺨을 꼬집어 쭉쭉 당겼다.

“그만하고 말 좀 해봐.”

푸딩이 샐쭉 나를 노려봤다.

“말을 안 하면 어떻게 알아.”

나는 그리 말하고는 조금 머뭇거리며 이어 물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하루 이틀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사흘째 이러니, 조금 염려되기도 했다. 내가 한참 쳐다보자, 푸딩의 샐쭉 올라간 눈이 슬쩍 내려간 것 같았다. 이내 푸딩의 손 방망이가 퍽퍽 나를 두드렸다.

아프진 않은데…… 기분은 묘했다. 왜 난 두들겨 맞는 거지.

-진짜, 걱정한 거 맞냐, 냥! 맞느냔 말이다!

“아, 아파. 그럼 진짜로 걱정하지, 가짜 걱정도 해?”

-인간, 너는 정이 없다! 없어!

“나는 항상 사랑과 정이 넘치는데…….”

“그곤 아니다.”

마쉬멜이 대화에 난입했다. 아마 푸딩의 목소린 들리지 않을 테고 내 말에 반박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떻게 이 몸을 쉽게 버릴 수 있냐, 냥! 무정하다! 무정해! 냉혈한! 파림치한!

“……파렴치한이겠지.”

내가 뭘 했다고. 조금 억울해졌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그냥…… 보내려고 했냐, 냥?

시간이 흐를수록 푸딩의 어휘력은 놀랍도록 증가했다. 아직도 어린아이 목소리고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것과 같았다.

3년이 지난 지금 저런 말을 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배운 것은 말뿐이 아니었다. 푸딩은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 감정을 이해했다.

-인사도 안 하고서?

때로는 나보다도 더 민감한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나로서는 푸딩의 말에 충실했던 것에 불과했다.

3년 전 내게 자신이 돌아가지 않으면 리케도르안이 죽을지 모르며, 푸딩도 사라진다고 했으니까.

나는 리케도르안이 죽길 바라지 않았으며, 어느새 정이 든 이 제멋대로에 어리광쟁이 똥괭이가 사라지길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역으로 내 충실한 노력이 푸딩에게는 차갑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감정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른은 아이의 세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푸딩에게도 해당될까 생각했다. 세상에 갓 태어나 한 몸과 같은 이와 떨어진 아기 수호신.

처음 만나 정을 준 사람……. 그리고 억지로 저를 떨어트리려는 사람이 나라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분명 푸딩의 이야기를 한 건데, 왜 가슴이 아픈지. 어른거리는 은발을 지워냈다.

“미안해.”

나는 인정과 수긍이 빨랐다. 진심을 담아 사과하자 푸딩이 슬그머니 다가와 제 머리를 비볐다. 그러고는 혀로 내 손을 싹싹 핥았다.

-……알면 됐다. 이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겨라. 냥.

푸딩이 내게 몸을 파고들더니 작게 속삭였다.

-곧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뭐?”

간과할 수 없는 말에 황급히 말을 꺼내려 했으나 마쉬멜이 불쑥 끼어드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그럼 흑마봅은 저 쑤호신 때무네?”

“네? 아, 네……. 물어볼 거도 있고, 겸사겸사.”

그리 대답하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푸딩을 번쩍 들어 올려 방 한구석으로 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사라진다니.”

나는 푸딩에게만 거의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흘끗 마쉬멜을 보니 관심 없는 듯 다시 논문을 보고 있었다.

내 기행이 익숙하다는 태도였다.

-말 그대로다, 냥…….

푸딩은 혼나는 아이처럼 발을 그러모으고 우물쭈물했다.

“무슨, 너. 분명 나랑 약속했지? 넌 아무런 이상 없을 거라고 했어.”

하얀 고양이가 움찔했다.

“그렇게 말하고서 탈이 나면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도.”

짐승의 푸르른 눈동자가 어찌할 줄 모르고 허공을 정처 없이 헤맸다.

-이, 인간. 화났느냐, 냥……? 붉은 장미 후계자는 무사할 거다, 냥. 이젠 이 몸이 없어도 된다고, 그럴 것 같았다……. 정말이다 냥!

“난 리케도르안의 이야기만을 말한 게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너도 무사해야 해. 푸딩.”

웨옹웨옹 애옹!

푸딩이 급작스럽게 울었다. 하나 나는 울음의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퍽. 이 짐승이 갑자기 박치기하며 뛰어든 탓에 배에 거센 충격을 받았으니까.

쿨럭. ……이 똥괭이가.

-인간, 인간, 인간!

“쿨럭, 왜.”

-역시, 위대한 이 몸이 인간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냥!

“그래……. 지금 나 널 혼내고 있는 거거든?”

마구 몸을 비비는 걸로 모자라 배까지 벌러덩 내민 이 똥괭이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고양이는 죄다 요물이라더니.

“……주인이나 짐승이나.”

-뭐라고, 냥?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어떡할 거야. 이 똥괭이야.”

나는 배의 털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이 망할 설표가 마음대로 사고를 쳐?

-그거 말인데…… 냥. 이 몸이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냥.

“허, 해결은 생각해보고 사고를 치셨다?”

-엣헴, 이 몸은 멀리까지 내다보느니라!

“까불지.”

내가 째릿 내려다보자 푸딩은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배를 내밀며 만져달라는 자세 말이다.

-이, 일단 날 쓰다듬으며 진정해라, 인간! 쓰다듬어라! 냥!

……그래. 사양하지 않으마. 일단 쓰다듬으며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의 안정은 금방 찾아왔다. 나는 조금 시간을 두고 그래서 방법이 뭔데, 하고 물었다.

-인간, 이 몸과 계약하자, 냥!

“뭐?”

나는 쓰다듬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대번에 이해가 되는 말이 아니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붉은 장미의 수호신이라며? 이런 의미를 담아 이야기하자, 푸딩이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아무나 못 한다, 냥.

“그렇겠지.”

-그런데 인간, 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터무니없이 허황된 이야기로 들렸다. 리케도르안은 붉은 장미의 후계자고, 푸딩은 그와 한 몸 같은 수호신이었다. 상식적으로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넌 할 수 있을 것 같다니까, 냥?

“반박은 차치하고서…… 근거는 있어?”

푸딩은 잠깐 입을 꾹 다물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인간, 넌 가진 영혼이 뭔가 이상하다. 냥.

푸딩은 이유는 모르겠다며, 자신의 감이라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냥.

짐승의 감이면 딱히 틀리진 않을 것 같은데.

‘아, 빙의해서인가?’

이 몸은 원래 내 몸이 아니었다. 푸딩이 이런 걸 말하면 납득은 되는데…… 어디까지나 여지가 있다는 거다. 나는 빠르게 계산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있으니.

“무슨 말인진 모르겠는데…… 그 ‘계약’인지 뭔지 하면 넌 사라지지 않는 거야?”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그렇다, 냥.

확신에 찬 목소리에 얘도 어느 정도 나름의 근거는 있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조금 망설여졌다. 이대로 내가 푸딩을 계속 맡는 게 맞는 걸까? 계약을 하면 꼼짝없이 함께 있는 걸 텐데.

<……다시 만나자고 했잖아.>

푸딩을 쓰다듬으려던 손이 멈췄다. 머리는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다 외치고 있었지만…….

그렇다면 이 자그만 수호신님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테니까.

나는 작게 웃었다.

참 희한하네. 나는 당신의 흔적을 영영 지울 수 없나 봐.

이윽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결정을 내렸다.

“그래, 하자.”

푸딩이 내게 머리를 내밀어 손에 부비적 비볐다. 놀랍게도 계약의 과정은 그것이 전부였다.

마음이 묶이는 게 중요하다나.

-인간, 이제 너는 나와 머릿속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냥!

정말? 들린다고?

-들린다, 냥!

진짜였다. 머리로 이야기하다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럼 체이서는 이렇게 소통하는 건가?

-그럴 거다, 냥!

머릿속을 다 읽히다니, 이건 좀 그렇긴 한데……. 생각해보니 별생각 안 하고 살긴 했다.

-아, 인간. 그리고 네 몸 어딘가에는 장미 문양이 새겨졌을 것이다! 이 몸과 계약했다는 증거이니라, 냥!

……뭐? 설마, 그거 색깔이…….

-붉은 장미이다, 냥!

나는 황급히 손과 팔을 봤다. 치마를 들쳐 다리도 봤다. 그러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기 마쉬멜이 있어 보지 못한 곳도 있으니 따로 봐야 할 성싶었다.

나는 허, 숨을 짧게 내쉬며, 이 똥괭이의 머리를 꽁 때렸다.

“이런 건 빨리빨리 말하란 말이야.”

아프진 않지만 얼떨떨한지, 푸딩이 웅냥냥냥, 애옹, 울었다.

이래서 계약할 때는 계약서를 보고 또 보란 말이 있지. 미리 조항을 듣지 않은 내 잘못이었지만……. 부디 엉뚱한 곳에 있지 않길 바랐다.

‘모르고 있다가 체이서에게 들켰으면 어쩔 뻔했어.’

샤워라도 하면서 꼼꼼히 확인해야겠다 결심했다.

“이야기는 끈난 거냐?”

“네, 뭐.”

나는 탁자 위에 푸딩을 내려놓고 푹신한 소파에 널브러졌다. 마쉬멜은 그런 나를 보며 혀를 쯧 차더니, 손을 휘저었다.

검은빛이 휘릭 맴도나 싶더니 담요가 저절로 날아와 다리에 덮였다.

“무슨 얘길 한 고냐, 아가씨? 막 성을 내뉸 것 같던데.”

“저 똥괭이가 성질을 건드려서요.”

“건두릴 성질이 있나? 아가씨는 임꼐점이 높다, 아니 옶지 않나.”

왜 사람을 부처 취급하는 거지. 사람이 화를 안 낼 리가 있나. 효율적으로 사는 거지. 화를 내도 소용없는 일에는 나만 진을 뺄 뿐이니. 굳이 언급하지 않는 주의랄까.

“성질은 없긴요, 어처구니없는 소릴 해서 쥐어박았지.”

“아까 몸을 마구 뒤지뎐데, 치마도 들츄고.”

“쟤가 벌레 있다고 뻥쳤어요.”

“아하…….”

그러자 마쉬멜이 푸딩을 조금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졸지에 애도 안 할 장난을 친 고양이가 된 수호신이 성을 냈다.

-억울하다, 냥!

조용히 하세요, 사기 친 수호신님. 문신이 몸에 생길 줄 알았으면 난 더 신중했지.

……뭐. 결국엔 했겠지만.

“뭐, 아무튼 간에 마쉬멜 씨, 흑마법 가르쳐줄 수 있어요?”

계약이 가능하다는 것이 영 찝찝했다. 갑자기 풀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머릿속으로 푸딩이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사람은 언제나 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흑마법 이론이라도 뒤적이며, 이 수호신님을 잘 키워볼 방법을 찾아보거나 공부해볼 요량이었다.

“가루쳐 주는 건 오렵지 않댜만.”

마쉬멜이 고개를 기울였다.

“근데 아가씨, 배울 시간 없을 톈뎨?”

“네? 왜요?”

마쉬멜이 몰랐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왜냐니, 곧 황꿍 연회잖아.”

“아. 그거.”

나는 눈을 끔뻑이며 기억 한자락을 들췄다.

뭐였더라, 아.

이 나라 법도 상 20살이 넘은 영식, 영애는 반드시 황실이 주최한 연회에 1번 이상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 참여할 경우 무조건 데뷔당트 연회를 첫 연회로 삼아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해낸 나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거 갈 수 있을까요?”

이전까진 당연히 간다고 생각했던 거였는데, 지금은 미지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쉬르멜라로 가서 거하게 사고를 치고 오지 않았던가. 체이서 관점에서 말이다.

그는 무어라 하거나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나가는 건 또 별개의 일이지 싶었다.

“그렇게 사고 치고는 힘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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