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소!”
출소하는 과정은 어처구니없이 간단했다.
그냥 내 짐을 모조리 쏟아 넣은 가방을 하나 들고 쭐래쭐래 정문을 통과하면 그만이라나.
“길도 간단하고.”
거기다 나는 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연장된 3개월 동안 미리 짐을 부쳐두거나 전부 정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거 너무 간단한 거 아니야?”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이 맑기도 하네.”
너무나도 푸른 하늘이었다. 여름임을 생각하면 더울 법도 하지만 이 지역은 그렇게 온도가 많이 오르지 않는 곳이라나.
나를 안내한 간수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나 또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것 같았다.
왜 놀라는 거지?
처음 보는 얼굴의 간수긴 했다. 아니다. 간수랑은 조금 다른 옷을 입은 것도 같은데.
뭐 어때.
나는 자꾸만 떠오르는 눈물범벅의 얼굴을 지워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지금은 잠시 자유를 즐기자.
‘자유!’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죄수 같지 않은 죄수 생활을 했다 해도 어쨌거나 감금 생활이었다.
드디어 찾게 된 자유가 반갑기만 했다. 좋아,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단 말이지.
나는 싱긋, 기분 좋게 웃으며 손에 쥔 것을 펼쳤다. 내 손에서 팔랑팔랑 흔들리는 것은 자그만 편지였다.
유려한 필체로 적힌.
「그날, 널 데리러 갈게.」
오빠의 편지였다. 출소날 나를 데리러 오겠다나. 유난이다 싶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디에 있는 거지?”
나온 것은 좋은데 워낙 문 앞이 넓어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무의식 중에 한곳으로 시선을 향할 때였다.
휘이이잉.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 꽃향기가 스며 있었다. 봄도 아니건만 마치 봄에 활짝 핀 정원에 있는 양 진하고 유혹적인 향기였다.
이곳은 여름에 꽃이 피나?
머리카락이 거세게 흩날린 까닭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머리칼을 들어 올려 앞을 향할 때였다.
눈앞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이아나.”
언젠가 들어본 달콤한 봄볕 같은 음성이 귀를 파고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부셔.
눈부신 역광 때문에 눈을 절로 찡그렸다. 눈앞에 아주 커다란 남자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곧 역광이 지나가며, 눈앞에 커다란 무언가 들이밀어졌다.
꽃?
아니, 아주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그것도 내 품에 다 안지도 못할 아주 커다란 꽃다발. 향기에 푹 파묻혀 질식할 정도로 무거워 보이고 커다랬다. 꽃다발 가득 장미다. 그것도 보기 드문 주황색 장미.
“와아…….”
향기의 정체는 이거였던가? 이제는 꽃다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더 위로 들어 올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네.
그런 나를 눈치챈 것인지 꽃다발이 느리게 내려간다. 마침내 꽃이 모두 내려갔을 때.
처음 보는 남자가 부드러이 웃고 있었다.
“어서 와, 꽃처럼 사랑스러운 내 동생.”
목 기저 안을 둥둥 울리듯 낮고도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보듬듯 아주 다정한 목소리.
그러나 나는 그 황홀한 목소리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눈을 크게 깜빡였다.
……자, 잠시만.
눈앞에서 눈을 살짝 덮을 듯 긴 앞머리가 흔들렸다. 칠흑처럼 새카만 머리칼이었다.
반은 올리고 반은 내린 멋들어진 모양이었지만 내가 관심을 둔 것은 그쪽이 아니었다.
손끝이 마구 떨렸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오롯이 나를 응시하며 나긋나긋하게 휘어진다.
흑발, 붉은 눈동자.
“나 대신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지?”
검은 재규어같이 늘씬한 실루엣을 자랑하는 남자가 커다란 몸을 기울였다.
“너만을 기다렸어.”
귓가로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음성이 깊숙이 스몄다. 마치 안쪽에 새겨지듯이.
아니지, 아니겠지?
손끝에서 시작한 진동이 어깨까지 이어졌다. 나는 얼른 원피스를 꾹 쥐었다.
<이상하네…….>
아닐 거야.
<분명…… 그 집안엔 딸 하나뿐이라고 했는데.>
아인테. 내 가문은 그쪽이라 했는데.
하나 눈앞의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반듯한 이마, 희게 도드라진 콧날, 미세한 주름 하나마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금욕적이리만치 깔끔히 매어진 크라바트와 오묘하게 휘어진 유혹하듯 매혹적인 눈매까지.
신이 심혈을 기울인 조각인 듯, 완벽하게 만들어진 미남이 나만을 위해 웃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흑발, 붉은 눈에 사람을 매혹할 듯 끝내주는 미남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체이서.”
“응.”
그가 달콤하게 웃었다.
“출소, 축하해. 내 동생.”
땡땡땡, 종이 쳤다. 진실이란 화살이 더할 나위 없이 핵심을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기다렸어. 내 이아나.”
내가 악당의 여동생이었다니!
***
“집으로 갈까?”
그가 유순히 눈을 접으며 내 손등에 입을 맞춘 순간, 당장 감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냥 죄수할게! 죄수복 돌려줘! 돌려달라고!
그러나 손쓸 틈 없이 잡힌 이 손처럼 상황 또한 내가 속절없이 흘러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다각다각, 무려 8마리의 말이 모는 마차에 타고 있었다.
“네가 불편할까 봐, 더 좋은 마차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그가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조촐해.”
쓸데없이 듣기 좋은 음성에 침울함이 섞이자 정신없는 와중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쁜 인간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머리는 이와 반대로 나는 황당한 심정이었다.
……아니, 8마리 말이 모는 마차가 조촐하면 성대한 건 어떤 건데? 묻고 싶었지만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감이지만 물었다간 더 엄청난 대답을 들을 것 같았으니까.
후, 속으로 깊게 심호흡했다.
일단 진정하자.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 핏줄이 엮인 호랑이 굴은 어떡하지. 피를 토해내고 나갈 수 있는 건가.
자꾸만 쓸데없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내가 정신없다는 증거였다.
나는 천천히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어쩐지 뭔가 찝찝하다 싶었어.’
<아인테 백작 부인은 남방 사람이지. 피부가 살짝 까무잡잡한 편이야. 그리고 딸도 자신을 닮았다고 말하곤 했네. 그러니 아인테도 아니야.>
자신 있게 말하던 남작 아저씨의 말.
<제 어머니의 지인분이 약간이지만 연이 있다는 게 생각났거든요? 근데 그때 분명…… 그 집안엔 딸 하나뿐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샐리의 말.
<느낌이지만, 이아나는 뭔가…… 더 대단한 정체가 있을 것 같았단 말이지.>
<아저씨의 감이란 건 사기꾼의 감 아니에요?>
<예끼. 사기꾼의 감은 무시할 것이 절대 못 된단 말일세. 이걸로 내 목숨을 얼마나 구한 줄 아는가?>
그리고 다시, 그 대단한 남작 아저씨의 사기꾼으로서의 감까지.
이 시간부로 그 아저씨를 프로 사기꾼이라 인정하기로 했다. 그때 의심을 해 봤어야 했어.
그래. 이아나 아인테라니. 이름부터가 좀 언밸런스했다고.
얼굴을 마구 흔들고 비비고 오바쌈바든 쌈장에 머리를 넣든 나를 마구 때리고 싶었다.
하나 후회해 봐야 뭘 하나. 이미 떠난 기차, 떠난 애인, 떠난 힐링 라이프였다.
나는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한숨을 푹 내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 앞에서 뚫어질 듯 쳐다보는 남자가 있었으니까.
체이서 루브 도뮬릿.
제국의 흑장미, 그리고 헤르님과 좌웅을 겨루는 대가문 공작.
……그리고 책 속 최고 악당.
그 악당이 눈동자를 느릿하게 굴리더니 내게 다 줄 듯이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필요한 것 있어?”
“……어?”
그는 긴 다리를 꼰 채 한 팔은 의자 팔걸이에 걸고 고개를 괴고 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각도가 예술이다 싶었다.
“네게 뭐가 필요할지 줄곧 고민하고 있었어.”
그가 고개를 갸웃 까딱였다.
“흠, 중간에 마차를 바꿔 줄까?”
마차? 마차가 여기서 왜 나와?
“역시 말은 스무 마리가 모는…….”
“아니, 아니아니.”
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스무 마리? 말이 왜 스무 마리나 필요해? 마차 하나에?
“필요 없어.”
“그래?”
악당 오빠가 빙그르르 웃었다. 웃음만큼 끝내주게 잘생긴 인간이었다.
“그럼 뚜껑을 열어 줄까?”
……마차 뚜껑을 왜 열어. 스포츠카니?
“추워.”
“아, 맞아. 넌 추위를 잘 탔지. 미안해.”
미안하다고? 눈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남자가 순순히 사과를 하는 캐릭터가 아닌데.
“여름이라 생각을 못 했네. 그럼 심심하지 않게 기사들을 옆에 달리게 해 줄까?”
“……기사가 옆에서 왜 달려?”
“음, 곡예라도 시킬까.”
“곡예?”
“거꾸로 말을 탄다거나?”
……기사들한테 왜 그래.
나는 을의 심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체이서에게 내가 갑질 당한 것처럼 억하심정을 느꼈다.
“하지 마. 기사들 괜히 괴롭히는 짓 같은데.”
“넌 예전에도 그런 말을 했지.”
그에 나는 깨달았다. 이전의 ‘이아나’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된 ‘이아나’의 올곧은 정신이 반가웠다.
아니었다면 저 남자랑 남매라길래 불쌍한 기사의 곡예를 보며 깔깔 웃는 악당 남매를 상상했을 거다. ……싸운 것도 쟤가 개념 없는 소리 해서 아니야?
“하긴 넌 뭘 보여 주든 잘 웃지 않았지.”
“그런 걸 보고 웃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맞아, 그 말도 했어.”
체이서가 기쁘다는 듯 미소했다. 동시에 ‘이아나’의 정상인 설은 내 안에서 더욱 사실이 되었다.
그가 눈을 접었다.
“아, 그럼 불이라도 뿜게 시킬까?”
“……그냥 가자.”
나는 다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체이서와 이 남자와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아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성격이 달라 보였으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책 속 최대 악당, 그리고 서브남인 체이서는 웃는 얼굴로 칼을 꽂아 넣을 수 있는 반쯤 미친 인간이자 냉혹한 악당이었다.
“이건 아니야? 그럼 뭐가 필요해?”
이렇게 다정한 체하는 얼굴로 푼수같이 구는 남자가 아니라.
“……필요 없어. 아무것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기에 나온 건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었다.
여기서 뭐가 필요하겠느냐고.
흘끗 마차 안을 보면 바닥을 가득 채운 꽃이 있었다. 그가 조금 전에 내게 준 것이었다.
거기다 곳곳에 쿠션이 가득하다. 의자는 또 어찌나 편하고 넓은지, 과장하자면 이대로 드러누워도 되겠다 싶었다.
“그렇구나.”
악당 오빠가 슬쩍 눈을 내리떴다. 눈동자가 내려가며, 검고 긴 속눈썹이 그윽하게 깜빡였다.
말했지만 그는 남녀노소 누구든 홀릴 것 같은 외양의 소유자였다. 신이 너는 한평생 유혹을 취미 삼아 살아 보거라, 하고 빚어 놓은 것처럼.
그의 느슨한 깜빡임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더럽게 잘생겼네.
문제는 이 남자가 마치 버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내리깔았다는 거였다.
적응이 안 돼, 안 된다고.
“그럼 뭐가 필요한 거야?”
“……없어.”
“없어?”
난 천천히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별로이긴 한 것 같다.”
그가 매끈한 얼굴과 잘 어우러진 황홀한 음성으로 작게 속삭였다.
뭐가 별로라는 거지?
“기사에게 곡예를 시켰더니, 네가 기사에게만 시선을 주었다면. 글쎄…….”
그가 시무룩한 얼굴을 한 채로 제 턱을 살살 문질렀다.
반만 내린 머리카락이 마차의 진동에 살랑 흔들거렸다. 머리카락 끝에 오묘하게 휜 붉은 눈동자가 자리했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겠다.”
그가 턱을 문지르며, 천천히 말했다. 고심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했다.
“어렵네. 뭐든 좋은 걸 주고 싶은데. 넌 이번에도 필요 없다고 하니.”
이전의 이아나가 거절만은 참 칼 같았나 보다.
“난 짐작하는 데 익숙하고.”
그가 해사하게 웃었다. 재차 휘어지는 눈꼬리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자아냈다.
“괜찮아. 너니까. 이런 것도 즐거워.”
무척이나 다정한 음성인데 어째 이 음성에 긴장을 도통 풀리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일단 생각을 좀 내려놓자.
어차피 내가 이 남자의 여동생이라면 지금부터 계속 봐야 할 얼굴이었다. 이미 이렇게 된 거라면 계속 스트레스받아 뭐 하겠어.
그래. 일단 좀 자자.
“필요한 게 생각났어.”
그가 반짝 눈을 들어 올렸다. 홍옥같이 붉디붉은 눈동자가 흡사 조명받은 보석처럼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가늘게 휜 눈 끝이 흰 눈처럼 하얗게 보였다. 금욕적으로 입은 몸과 다르게 야살스러운 눈이었다.
착각이 아니라 그의 얼굴은 과자를 앞둔 아이와 같았다.
순진무구하단 건 아닌데 기대에 가득한 얼굴.
……강아지 하나를 버리고 왔는데, 왜 더 커다란 짐승을 마주한 기분이지.
“뭔데?”
“잠.”
“……잠?”
나는 끄덕였다. 그래, 잠. 일단 어제 마지막이랍시고 뜬눈으로 지새운 몸을 좀 눕혀야겠다.
그는 어째서인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마저 몹시도 귀족적이었다. 여러모로 귀엽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잘 못 잤어.”
“……혹시 침대가 불편했어?”
“그런 건 아니고.”
“누가 괴롭혔어?”
“그것도 아니야.”
여기서 잘못 얘기했다간 마차를 돌릴 것 같은 기분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피곤해서.”
저 남자. 큰 키도 그렇고, 저 떡 벌어지는 어깨나 덩치도 그렇고.
조금 전에 꽃다발을 건넬 때도 그림자가 나를 덮었지. 날렵한 실루엣을 보면 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단단해 보이는 체격이었다.
“……잠이라.”
그는 턱을 잡고 다시 고민에 잠겼다. 턱을 잡는 건 고민에 빠질 때 버릇인 듯했다.
그가 이내 손뼉을 쳤다.
“무릎베개를 해 줄까?”
뭐? 나는 잠시 얘 뭐 잘못 먹었나 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황당함이 앞섰다. 하지만 가만있어 봐.
……얘네가 이런 걸 하던 남매였을 수도 있잖아.
줄곧 체이서의 편지가 얼마나 다정했던가. 그리고 감방에서 잠시 만났을 때의 말이나 행동도 얼마나 살가웠는지.
혼돈이 왔다.
이런 건 숨김없이 물어봐야지. 어떡해.
“우리가 그런 걸 하던 사이였어?”
나는 순전히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 그러나 체이서는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그는 웃던 눈을 살짝 떴다.
“열 번 찍으면 한 번은 다를지도 모르잖아. 나무도 그렇게 찍어 보는데.”
“……보통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포기해.”
“너무해.”
그가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굴을 부여잡았다.
“잘래.”
사실 이전의 이아나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지 못했다. 오빠란 사람을 만나면 살살 파헤쳐 볼 생각이었는데, 의욕이 사라졌다.
그가 이상하다 생각하면? 그래, 생각하라고 하자. 본래 사람이 빵에 한 번쯤 다녀오면 인생관도 바뀌고 가치관도 바뀌지 않겠나.
괜히 교도소 다녀오고 갱생한 사람의 수기가 있는 게 아니듯이.
물론 반대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여기 편승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속 편한 생각인가 싶었지만 이미 눈앞의 ‘오빠’가 체이서란 사실만으로도 과부하였다.
“응, 잘 자. 이아나.”
체이서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얼굴을 풀고, 턱을 괸 채 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아하고도 고혹적이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눈을 감았다.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체이서가 창문을 여는 것이 보였다.
“……마차를 느리게 몰도록.”
자고 나면 좀 달라지길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이젠 좋은 꿈 꾸길.”
눈이 감기기 직전 잠시지만 체이서의 얼굴이 그대로 멈칫한 것도 같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던 듯 기억에서 스르륵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