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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뒤의 응접실은 평소와 같이 평화로웠다. 아니, 평소보다는 조금 들뜬 분위기랄까.
다들 모레 행사를 크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곤 하는 아저씨와 샐리는 한곳에 함께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뭐야, 이아나. 늦었네?”
“응, 좀 늦었지.”
나는 재잘재잘 말을 거는 샐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어쩐 일로 둘이 있어요?”
샐리와 아저씨가 친한 편이긴 하나 샐리는 평소 친한 다른 여성 죄수를 두엇씩 데리고 함께 다니는 편이었다.
“둘 다 오늘은 피곤하다고 수감실에 먼저 갔어. 뭐.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일찍 자러 간 거지.”
샐리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바깥에서처럼 피부를 챙길 수가 없으니 잠이라도 일찍 자려는 거야. 아마 젊은 청년 몇몇 분도 자러 가셨을걸?”
“왜?”
“관리해야지. 관리. 피부는 남녀 할 것 없는 미인의 조건 아니겠니.”
샐리의 장난기 가득한 어투에 나도 웃어 버렸다.
“흐음, 젊은 영식들의 마음을 추측해 보자면. 그것보다는 먼저 자러 간 레이디들의 환심을 사고 싶은 흑심에 가깝지 않나?”
“뭐. 겸사겸사죠.”
나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그대로 두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주섬주섬 뭔갈 펼치는 내게 시선을 주었다.
“그게 뭔가?”
“글쎄요. 이게 뭘까요?”
나는 씩 웃었다.
내 말에 남작 아저씨는 하던 대화를 멈추고 유심히 손수건을 보았다.
“이건 손수건 같은데…….”
“문양이 있네요? 가문 문양인 듯한데.”
뚫어져라 관찰하던 아저씨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설마, 이아나. 이건 지난번에 낸 문제의 정답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낸 문제라 하면 당연히 내 가문이 어디냐는 질문이었는데. 뭐 나는 아직도 정답을 모르니까.
곧 알게 되겠지만.
오빠가 남긴 손수건에 있는 것이라면 당연하겠지만 내 가문 문양일 터. 이것이 어디의 것인지는 이들이 알려 줄 것이다. 상식적으로 굳이 다른 가문의 것을 가지고 다니거나 남에게 주진 않을 테니까. 맞을 것이다.
“이건 아인테의 문장 아닌가?”
“어머, 그러네요. 본 적 있어요!”
샐리가 짝짝 박수를 쳤다.
“뭐야, 이아나. 아인테의 사람이었어? 여기에 대해서 말은 많이 들었지만. 몰랐네, 정말!”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며 내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면서.
아인테. 그러고 보니 이전에 샐리랑 남작 아저씨가 내 가문을 추측하면서 나왔던 후보 중의 하나였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동쪽의 대가문이랬지. 평야 지대를 기반으로 대백작이 된 가문이라고?
내 가문 후보를 추리는 대화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황금문이 있는 곳 아닌가요?”
“그렇지. 이것 참 놀랍군.”
남작 아저씨는 턱을 짚으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장을 만나러 갈 정도니 보통 가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만만찮은 가문이었군.”
하나 그러면서도 아저씨는 찝찝함이라고 할지 무언가 개운치 못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마음에 걸린 사람처럼. 나만 그리 느낀 건 아닌지 샐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남작님.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아니. 뭐 별다른 건 아니고.”
그는 턱밑을 살짝 긁었다.
“느낌이지만, 이아나는 뭔가…… 더 대단한 정체가 있을 것 같았단 말이지. 다른 건 아니고 내 감이 그렇게 이야기했었달까.”
“아니, 아인테도 대단한 가문이잖아요?”
“아니, 그렇긴 한데.”
영, 개운한 얼굴을 하지 못하는 아저씨였다. 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저씨의 감이란 건 사기꾼의 감 아니에요?”
그러자 아저씨가 코를 찡그렸다.
“예끼. 사기꾼의 감은 무시할 것이 절대 못 된단 말일세. 이걸로 내 목숨을 얼마나 구한 줄 아는가?”
그는 짧게 제 업적들을 나열했다. 대체로 들켜서 죽을 뻔하다 가까스로 속이고 살아난, 뭐 그의 범죄 스토리였다.
“저기요, 남작님. 보통 사람은 한번 죽었다 살아났을 때 멈춘다구요.”
샐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그 감이 뭔가 더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달세. 이상하네. 감이 떨어졌나.”
“그런 거죠. 제 패션 감각이 죽어 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샐리가 제 죄수복 상의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죄수복 완전 구려.”
이런 옷만 입다가 나가면 이미 드레스 보는 안목은 관짝에 들어간 뒤일 거라고 투덜대면서.
“내 패션 감이 이런데 아저씨 감이라고 잘 살아 있을 것 같아요? 포기해.”
“으윽.”
두 사람은 나란히 한 방씩 주고받으며 그들만의 대화를 이끌어 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손수건에 눈을 주었다.
아인테라.
그게 내 가문 이름이란 말이지.
머리를 뒤져 보았지만 들은 기억은 없었다. 책 속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단 얘기다.
여기가 체이서의 부하 가문이라.
역시 모르겠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것대로 기억도 못 할 만큼 비중이 없단 얘기도 되니까. 이것도 정보에 가깝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아나 아인테.
으음. 내 이름이 이렇구나.
하지만 왜일까. 뭔가 꺼림하다고 할까.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인가 모르게 이름이 착 달라붙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 가문을 기억 못 하는 것에서 무슨 성이든 낯선 건 똑같을 텐데 본능적으로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조금 든달지.
그저 낯설어서 그러려니 하려 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오래 못 가 샐리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 이아나, 그 손수건은 받은 거니?”
“네? 아, 응.”
대화를 하다 말고 샐리가 눈을 작게 찡그렸다.
“오, 그 매번 편지를 보내는 오빠에게서 말이지?”
“네.”
샐리가 잠깐 침묵하는 사이 아저씨가 물었고 나는 끄덕였다.
“이상하네…….”
샐리의 목소리에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의문이 짙게 깔려 있었다.
“뭐가 말인가?”
“아, 아뇨. 아인테 가문에 대해서 말인데…….”
샐리가 흘끗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움직였다.
“제 어머니의 지인분이 약간이지만 연이 있다는 게 생각났거든요? 근데 그때 분명…… 그 집안엔 딸 하나뿐이라고 했는데.”
나는 멈칫했다.
“이아나는 오빠가 있으니까. 제가 잘못 알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저희가 지난번에 이야기했을 때 아인테 백작 부인은 남방계 분이셔서 제했었잖아요.”
“그랬었지?”
“음, 역시 잘못 알았나 봐요.”
샐리가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홰홰 흔들었다. 그녀는 괜히 분위기를 가라앉힌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에이, 아니에요.”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 찝찝함을 느꼈다.
정말 여기가 내 가문이 맞을까?
하나 우리가 더는 이야기 나눌 일은 없었다. 타이밍 좋게 저녁 휴식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리케도르안에게 가야 하는데…….”
나는 잠깐 아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오빠 때문에 정신이 없었네.”
그러나 이미 그에게 가기엔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어느새 시간은 어둑어둑한 밤이었고, 그럼에도 가려 하자, 계단 보수를 위해 기다려 달라는 말이 돌아왔다.
“계단 보수요?”
“예, 간수 하나가 실수해서 횃불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불이 날 뻔했습니다.”
이곳의 횃대는 철을 쓰곤 했다. 떨어트려서 계단 모서리 하나가 박살이 났다나.
“그럼 지하 감방에 있는 죄수는요?”
“아, 괜찮습니다. 계단 통로에서만 일어난 일이어서요.”
오히려 연기와 그을음이 바깥으로 나와서 문제였다나. 탄 자리가 엉망이라 간수 외에는 지나갈 수 없단다.
“혹시 그게 오늘 일어난 일인가요?”
“예? 예. 그렇습니다.”
시간을 들어보니, 내가 예정대로 리케도르안을 만났더라면 충분히 볼 수 있었을 시간이었다. 나는 괜스레 입술을 깨물었다. 헤르님 대공의 방문 소식부터 제이르의 연락, 오빠의 일까지. 이미 놓쳐 버린 타이밍이었다.
“금방 끝날 겁니다.”
리케도르안을 생각하니, 다시 그가 끔찍한 상처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모습이 떠올라서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더는 안 돼.’
절로 주먹이 쥐였다.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 해. 헤르님 대공은 이곳까지 오는 데 4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오늘은 아니고, 사흘 뒤에나 온다는 말. 이 시간 내에 제이르와 접선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좋아, 어떻게든 접선할 방법을 찾자.’
그가 준 팔찌가 내게 있으니 뭐든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