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 1화 (15/87)

1장. 내 정체가 뭐…라고요?

“……화가 났다고?”

화가 났다니. 내가 말로 꺼냈지만 해놓고서도 의아한 반응이었다. 화가 나? 왜 화가 난 거지? 어느 부분에서?

난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다. 사실은 화가 난 게 아닌 건가? 내가 착각한 거고?

그렇다고 하기엔 이 편지는 유별나게 단출했다. ‘오빠’의 편지는 늘 나에 관한 안부로 가득했기에 나는 실상 이처럼 짧은 내용을 받아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물어본 것에서 뭐가 문제였던 거지.

“그래. 가문.”

그저 가문에 대해 물었는데, 이게 화가 날 일인 건가?

일단 편지를 내려놓았다. 스스로 눈치가 아주 없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왜인지 추리를 하려 해도 조각 하나가 덜렁 빠진 느낌이다.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없으니, 그럴 거다. 오빠와 편지, 그리고 가문. 이 연결고리를 알 수 없달까.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내 풀네임을 모르니 말이다.

“하, 아무리 고민해봐야 뭐하나. …답을 모르니.”

결국 고민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침대로 몸을 푹 파묻고는 고개만 돌려 후 한숨을 쉬었다. 뭐 많은 것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굉장히 피로한 기분이었다.

아니, 정신이 충분히 괴로웠어, 노동을 했다고. 조금 전 리케도르안이 변한 모습을 보며, 간수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정신없이 사방을 경계하던 기분을 떠올렸다. 그래. 이 피로는 리케도르안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모습. 나는 천천히 손을 가슴에 얹었다. 쿵쿵. 놀라 뛰는 가슴이 아직도 뛰고 있었다.

“……괜히 사람 엄한 생각하게 한단 말이지.”

조금 전 모습을 생각할수록 손끝에 땀이 이는 기분이었다.

말했지만 그는 얼굴만 보아서는 깨끗하고 청아한 어린 성자의 느낌이고, 이는 성장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눈 밑만 발긋 달아올랐다 생각해보라.

거기다 옷은 잔뜩 흐트러져서는 피부가 하얘서 붉음이 더욱 잘 비치는 데다 그 모습으로 웃는단 말이야.

나는 눈을 감았다.

후.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일단…… 좀 쉬자.”

하늘님. 저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에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누운 채로 멍하니 눈만 감고 싶은 기분이었다.

엄한 걸 잊고 싶기도 하고 복잡한 건 잊고 싶기도 했다.

워낙에 삶의 모토가 복잡한 인생 편하게 살자 주의였고. 실제로 하고 싶은 건 하고 못하는 건 알아서 포기하자는 모토 아래 살아왔기도 했고. 아무튼 간에 잠시 모든 걸 잊고 싶었던 탓에 나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이어 늘어진 미역처럼 푹 퍼지고 말았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평소처럼 오빠의 편지에 답장하는 것을 잊은 채로.

***

이튿날.

“우리 이야기 좀 해요.”

내가 다시 리케도르안의 얼굴을 볼 용기를 얻는 데는 정확히 12시간 하고도 8시간이 더 걸렸다. 사실 며칠 더 묵히고 찾아가려 했지만 그랬다간 더욱더 얼굴을 보기 머쓱해질 것 같아서 말이지.

‘용건도 있고.’

원래 난 게으르지만 한번 결심한 것은 후딱 해치우자는 주의로 비록 그 결심을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렇게 찾아갈 추진력은 있다, 이거다.

“으르릉?”

그리고 다시 찾아간 리케도르안은 사람도 아니고 성장도 아닌 ‘짐승 모드’였다.

요즘 그의 짐승의 말을 하는 쪽, 이성이 있는 쪽, 그리고 성장한 모습까지 일명 삼중인격, 각각의 모습을 임의로 세 가지로 나눠서 부르고 있었는데 현재 이쪽은 왕왕! 말고는 말을 못 하는 것이. 짐승이란 명칭이 딱이었다.

“저기, 그 모습 말고 다른 모습 없어요? 나오라고 해봐요.”

“캬르릉!”

“그래요. 기왕이면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쪽요.”

“캬오? 왕! 왕!”

“……말을 말아야지.”

나는 난감하게 바닥을 응시했다. 정확히 현재 짐승의 탈을 쓴 저 모습의 남자주인공을. 분명 저 짐승의 언어를 하는 쪽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뵈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보다 저 모습이 남자주인공이라니. 내 세상에서는 몇 세기쯤 이른 남자주인공이 아닐까?

“……한쪽은 저 세상 숙맥에, 다른 한쪽은 말이 안 통하는 짐승이라니.”

거기다 남은 한쪽은 다른 의미로 말이 안 통하는 짐승이다. 로맨스 소설 남주라면 자고로 말부터 통해야지. 말로 여주인공을 꼬시는 게 일이잖아! 대화를 할 수 없어, 대화를!

나는 쪼그려 앉은 채로 폭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나온 보람이 없다. 이거다.

“그래… 다른 얘기나 하죠. 그래도 요즘은 상처가 별로 없네요.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야 이야기하지만 리케도르안은 늘 상처가 많았다. 이는 본인이 쇠사슬에 묶인 채로 날뛰어서기도 했고 한 번씩 찾아오는 부친이 학대를 일삼아서이기도 했다.

또 하나는 뒤늦게 안 거지만… 간수 중 하나가 때려서이기도 했다. 이마저도 리케도르안에게 들어서야 알게 된 거다. 처음에 듣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맞았다고요? 누가? 어떤 인간이요?>

다른 사람도 아닌 간수가 때렸다는 말에 기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간수는 내가 이 감방에 나타나기도 전에 다른 이유로 잘렸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맞아야 한대요. 그래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리케도르안은 자신을 때리는 것이 왜 나쁜 것인지, 왜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아무리 이야기를 위한 시련이라고는 하지만 눈앞의 사람이 상처를 입고 낑낑대는 건 아무리 나라도 두고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난번엔 그를 위해 약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거기도 했고.

“에휴. 오늘은 중요한 걸 물으러 온 건데.”

나는 갸웃.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 저 귀여운 멍멍이가 무슨 탓이겠나, 내가 타이밍을 못 맞춘 거지.

하지만 이래서야 대답은 듣기 어렵겠구나 싶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머리를 휘적휘적 젓는데, 손등으로 차갑고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슬그머니 머리를 들자, 찰그랑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짐승 모드인 리케도르안이 내 손등에 제 얼굴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키잉…….”

그는 마치 갯과 짐승이 그러하듯이 제 얼굴을 마구 내 손등에 비볐다. 흡사 만져달라고 하는 듯이. 목 안쪽에서 그릉그릉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청아한 음성과 어우러져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 거야? 나는 그가 물기라도 할까 봐 손을 빼내려 했다.

덥석.

그러나 나보다 리케도르안이 더 빨랐다. 그는 짐승 같은 감각으로 나를 붙잡고는 제게로 가져왔다. 꽉 잡힌 손은 놓아질 줄 몰랐다.

“끄응.”

나는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습의 리케도르안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짖기, 물기, 빨기였으니…… 그중에서도 단연 많이 하는 짓은 ‘물기’로, 눈에 보이는 건 입에 물고 보았다. 가엾은 내 손이 희생양이 되기 전에 얼른 경고했다.

“너 물면 안 돼.”

“아르르?”

“네가 사람이지, 짐승이니? 송곳니 넣어. 어서.”

“캬웅?”

나름대로 정이 들었다 이건지, 그가 이빨을 집어넣었다. 심지어 마치 자신이 잘했냐는 듯 눈을 반짝이면서 붉은빛 입술을 앙다물고 순진하게 깜빡이기까지 했다.

“안 돼. 나 오늘 먹을 거 없어.”

예쁘게 봐도 줄 간식이 없단다. 말을 하기 무섭게 리케도르안의 시선이 도르륵 아래로 굴렸다. 짧지만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보낸 거라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야 잠깐만, 그거 먹는 거 아니…….”

앙. 리케도르안이 내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잘했느냐는 듯이 무구한 푸른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물지 말라는 말을 물지는 않되 먹는 건 된단 말로 해석한듯했다. 아이고, 골이야.

“이봐요, 먹지 마. 지지. 지지라…… 읏.”

혀가 손가락을 휘감은 말캉한 감각에 눈을 살짝 찌푸릴 때였다.

“아…….”

리케도르안의 손이 내 손을 붙잡고 천천히 제 입에서 내 손을 떼어냈다. 슬그머니 눈을 들면 이성이 돌아온 침착한 그의 눈동자가 보였다.

이내 침으로 흥건한 내 손을 보며 눈이 속절없이 마구 흔들렸지만. 이성이 돌아왔단 증거였다.

“저, 그…….”

“그?”

“미, 미안해요.”

빨개진 그의 얼굴이 가까스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그에게 붙잡힌 손가락과 빼곡히 붉은색으로 차오른 뺨을 보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왜요, 더 물고 있지 그랬어요.”

“그런…….”

괜히 심술 맞은 농을 던지고는 나는 내 손을 가져왔다. 손수건에 손을 닦는 동안 리케도르안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나는 손을 닦는 데 열중해 아주 잠깐 그에게서 눈을 떼었을 뿐이었다.

한데.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찰그랑, 쇠사슬이 달린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리케도르안의 모습이 보였다.

“한 번 더 물어도 돼? 정말?”

아니, 사람이 왜 휙휙 바뀌는 건데?

“……언제 바뀐 거예요?”

예고는 좀 하면 어때요. 하는 말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다. 그러나 지난 경험으로 깨달은바 이쪽은 이런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말이 제대로 통하는 건 이성이 있는 쪽밖에 없었다.

현재 눈에 보이는 성장한 버전, 이쪽은 사람 말은 하는데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본능만 남은 쪽이라 해야 하나 위험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밀었다.

“저기요.”

분명 이 몸은 땀이 없는 체질인 것 같았는데, 식은땀이 턱 끝에 대롱 매달린 기분이다. 나를 나른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솜털이 오소소 돋는 것 같았으니까.

“왜 쫓아와?”

“네가 물러나니까?”

“댁이 짐승이야? 일단 쫓고 보게?”

“이아나가 원하면 할래.”

“…….”

“짐승.”

성장한 탓에 팔과 다리도 길어져 이미 이 거리는 그의 사정거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막 물러나려는 내 진로를 조심스럽게 막았다.

“왜 피하는 거야? 나 미워?”

“……저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나쁜 사람 같잖아?”

그 얼굴로 보는데 어떻게 그렇다고 말해?

“대체 인격은 왜 바뀐 건데?”

“바뀌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닌데… 마음의 준비라도 좀 하자. 전엔 시간이라도 두고 바뀌었잖아.”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느슨하게 기울어지는 머리를 따라 흘러내린 머리칼이 이마를 살짝 덮었다. 그 사이로 어른스럽게 길어진 눈매가 천천히 깜빡였다.

“모르겠어, 주인님만 생각하면 어지럽더니…… 이 상태이던걸.”

“난 주인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응. 알아. 넌 이아나.”

그가 내 발목을 잡은 채 한쪽 무릎을 굽혔다. 다행인 것은 그의 팔다리가 길어졌으나 쇠사슬의 길이는 여전한 탓에 아주 자유롭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주인님이라 하면 더 좋은 반응을 보여주잖아.”

새하얀 손끝이 내 뺨을 살짝 스쳤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푸른 눈이 코앞에서 느껴졌다.

“지금처럼.”

나른한 웃음과 함께 그의 눈 밑이 발긋 달아올랐다.

“아니야?”

“하 이봐요, 보자 보자 하니까. 왜 반말해? 말 잘라먹지 마.”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나를 향해 뺨을 물들인 미남은 나로서도 꽤나 견디기 힘든 시각적인 충격이었다. 독수리에게 콱 붙들린 병아리인 양 잠시 멈칫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대로 두고 봐선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쪽은 별로야?”

“……별로라기보다는…… 잠깐만, 왜 자꾸 다가오는 건데? 거기 있어. 쇠사슬도 팽팽해지잖아.”

“그렇지만 다가가고 싶은 걸.”

“또 말 짧아지지.”

괜히 할 말이 없어 짧아진 그의 어투를 탓했지만. 리케도르안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느슨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나는 다가오려는 그의 손을 허공에서 잡아챘다. 손끝이 차가웠다.

“빨개진 거 안 보여? 아프잖아, 거기 있어.”

주목할 만한 것은 어째서 저 옷이 찢어지지 않았냐는 건데. 이건 평소에 리케도르안이 제 몸보다 훨씬 큰 옷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덕에 지금 모습으로도 여전히 조금 헐렁한 셔츠였고, 사이로 흰 살갗이 보이는 위험한 광경을 연출했다.

“안 가?”

내가 애써 눈을 떼어내려는 틈을 타 그의 손이 슬금 올라왔다. 리케도르안의 손은 밀어내는 내 손을 떼어내고 그대로 다시 잡아 살짝 깍지를 꼈다.

“……피하지 마.”

“내가 언제 피했다고.”

그가 손을 잡은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법도 한데, 나른한 얼굴을 하고서도 조심스러운 몸짓이라서 그런지 불쾌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피하잖아.”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가 한계까지 다가온 탓이었다.

“안 갈게.”

“……정말?”

나는 숨을 참으며, 살짝 끄덕였다.

“그래. 그럴 테니까 그만 멈춰요. 당신, 이거 아프잖아. 보는 내가 아프다고.”

내 손끝이 가리킨 것은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이었다. 거의 그의 품 안에 잡아먹힐 듯 갇혀 있었으나 더 당겨졌다간 그가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이미 살갗이 터질 듯 빨갰으니까. 그만하라는 의미로 내가 족쇄가 채워진 손목을 톡 건드리자 그가 그 손마저 잡아 왔다. 졸지에 양손 모두가 잡혔다. 리케도르안이 그대로 천천히 상체를 숙이더니, 내 손끝을 가볍게 입에 물었다. 아주 이제 버릇이 된 것 같았다.

“이아나, 무엇이 궁금해?”

“……읏, 궁금하냐니.”

“내게 묻고 싶던 것이 있다면서요.”

그가 춥, 내 손가락을 물었다 놓으며 눈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조금 전 내가 짐승 모드인 그에게 대고 ‘뭘 물으러 온 건데.’ 하고 말을 던졌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눈을 크게 깜빡였다. 아, 이쪽도 짐승일 때를 기억하지?

“기억해?”

“조금씩 나는 것 같아.”

분명 지난번에는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 세 모드 아니, 세 인격이 점차 서로를 기억하는 것인가 싶었다. 사람의 말을 못 하는 짐승 모습은 의사소통이 불가하니 제외하고.

이러다 어느 날 하나로 합쳐지는 걸까?

“그럼요, 당신 모든 기억이 난다는 거지? 다른 모습일 때도?”

“그런 것 같은데. 한데 이아나, 다른 모습이라니…… 왜 그렇게 묻는 거야? 이쪽도 나고 저쪽도 난데.”

아무래도 그는 성장하면 머리마저 살쩍 길어지는 듯, 유백색을 띤 은발이 눈 위를 스쳤다. 어린 모습에서는 눈이 잘 보였지만, 이쪽은 머리카락에 눈이 가렸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그가 잡고 있던 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어느 쪽이 제일 좋아?”

“어느 쪽?”

“이아나가 좋아하는 쪽으로 맞추면.”

그는 깍지를 낀 손에 살짝 입을 맞췄다.

“날 더 좋아해주나 싶어서.”

그러고는 이빨 끝으로 내 손끝을 살짝 깨물었다.

“……읏, 깨물지 마.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

애써 대답을 피하려 타박을 주었지만 그는 대꾸 대신 느릿하게 눈을 들어 올렸다. 대답을 들려달라는 무언의 행위 같았다.

“그럼 원래 하려던 질문이 뭐였는데?”

“그럼 당신…….”

나는 숨을 삼켰다.

“제이르를 알아?”

제이르. 내게 리케도르안에게 마법을 걸어달라며 부탁했던 대공 가 소속 마법사였다.

과연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건지, 리케도르안의 눈이 잠시 커졌다.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잖아. 주인님.”

“누가 네 주인이야? 그것도 대답할 테니 그전에 먼저 대답해줘. 당신 분명…….”

내가 무어라 입술을 열었을 때였다. 쿵쿵. 누군가 돌벽을 울렸다.

“이아나 양, 식사 시간입니다!”

저 밖에서 들리는 음성은 간수의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리케도르안을 새로 맡게 된 상급 간수이기도 했다.

저이와는 인사를 나눌만큼 친분이 쌓였지만 딱딱한 성격 탓에 적어도 시간을 더 달라는 부탁은 어려울 듯했다. 나는 아쉬운 듯이 리케도르안을 바라보다가 손을 빼냈다.

“밥 먹고 다시 올게요.”

“정말?”

의외로 그는 순순히 나를 놓아주었다.

“그 약속은 지켜지는 약속이야?”

“……왜 묻는 건지 몰라도 난 약속은 항상 지켜.”

나는 잠깐 눈을 깜빡이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에 눌린 조그만 먼지를 떼어냈다. 그리고 리케도르안을 그대로 둔 채로 등을 돌렸다.

“다시 온다고 할 때마다 돌아왔어요.”

“응.”

왜인지, 약조 운운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씁쓸해 보였다는 생각을 하며.

“꼭 다시 와야 해. 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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