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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나!”
나는 꾸벅꾸벅 졸다 말고 화들짝 놀랐다.
“괜찮나?”
“네? 네에. 네에…….”
병든 닭처럼 거꾸러진 고개를 바로 세웠더니, 눈앞에 팔라디스 남작 아저씨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샐리도 함께였다.
“허어……. 왜 그리 맥을 못 추고 있나?”
“그러게. 얘 오늘 아침부터 이 상태였다니까요. 이아나, 어디 아파?”
“아냐아냐. 아니에요…….”
흐아암. 나는 길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프진 않았다. 다만 피로가 파도처럼 넘실넘실 대며 어깨를 꾹 짓누르고 있었다.
르나그는 내게 아침 식사까지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꾸역꾸역 시간에 맞춰서 일어났다.
호의는 고맙지만 본디 편의란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받지 않는 게 좋다. 이것에 익숙해지면 사라져버렸을 때 무인도에 덜컥 떨어진 것처럼 무방비해지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엔 이미 많은 편의를 받기는 했으나 나는 늘 내게 주어진 것들, ‘편의’나 오빠의 ‘선물’ 같은 것을 가벼운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 이용하는 것에서 그쳤다. 리케도르안을 한 번 보기 위해 한스에게 술과 담배를 몰래 건넸던 것처럼.
그 이상은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여겼으니까.
……이미 오밤중에 나가고, 또 그걸 들킨 시점에서 망한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조금 우울해 보이는 얼굴인데. 무슨 일 있는가?”
“아, 혹시 그거 아닐까요? 편지.”
“편지?”
“요즘 통 이아나가 편지를 보는 걸 못 봤어요. 얘, 이아나 최근에 네 오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어? 그래서 우울해서 그래?”
그러고 보니 마지막 편지를 보낸 뒤로 며칠이 흘렀던가? 항상 편지의 답장은 꼬박꼬박 날아오는 편이었다.
‘이번엔 유난히 답장이 늦네…….’
뭐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지난번에도 한 번 늦었었고. 사실 매번 하루, 이틀 안에 답장이 날아오는 쪽이 이상했으니까.
“별건 아니에요. 그냥 잠을 좀 못 자서 피곤해서 그래요.”
나는 기지개를 쭉 켜고는 그대로 의자에 파묻힐 듯이 늘어졌다. 점심 먹은 지 막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잠이 솔솔 쏟아졌다.
내게 무어라 말을 걸려던 남작 아저씨와 샐리는 곧 나를 내버려 두고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응접실 겸 귀족가의 살롱처럼 꾸며진 휴게실은 오늘도 휴식하는 귀족 죄수로 복닥거렸다.
가만, 오늘따라 유달리 사람이 더 많고…… 시끄러운 느낌인데.
나는 가물가물 감기려던 눈을 천천히 키웠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평소보다 많았다. 거기다 커다란 응접실 중심에 무리 지어선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눈을 가늘게 좁히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잘 모르겠으니 남작 아저씨에게 물어야겠다. 입술을 떼는 순간이었다.
“맙소사!”
찢어질 듯 날카로운 음성에 시선이 절로 움직였다. 소란스럽던 응접실이 일시에 고요해졌다.
나뿐 아니라 모여 있던 이들 모두가 한 남자 죄수를 향했다. 중년 남자는 시선이 몰리거나 말거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그의 손에는 자그만 편지가 들렸다. 전보에 가까운 크기였다.
“번톤 미술관이 폭발했다는군! 폭탄 테러라고…….”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건 나뿐 아니라 다른 귀족 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그 사고로 도뮬릿 가주가 치명상을 입었다는데…….”
“뭐요?”
그리고 남자의 말에 쥐죽은 듯 고요했던 응접실이 폭발하듯이 터져나갔다. 하나같이 경악과 충격에 사로잡힌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뮬릿가. 이곳은 리케도르안이 속한 헤르님 가문과 함께 이 제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 중 하나였다. 두 가문은 지독한 원수지간이었으나, 동시에 공존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가문이었다.
그런 가문의 가주가 ‘사고’로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군.”
그 가주는 다름 아닌 이 책 속의 최종 흑막이자 악당, 체이서의 부친이었다.
“설마, 아들인 체이서 경이…….”
“예끼! 이 사람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남자의 친구인 듯 턱수염을 가진 남성이 얼른 편지를 든 남자의 입을 가로막았다. 나는 홀로 차분했다. 흐음, 체이서의 악명이 여기까지 퍼진 건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딱 봐도 쉬쉬 몸을 사리는 것이 분명했다. 하기야 이 안에 체이서랑 가까운 가문이 있을지 누가 알겠어.
“허어……. 이것 참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군.”
침착하게 말을 하려 하는 남작 아저씨의 얼굴도 굳어진 지 오래였다. 그만큼 큰일이긴 했다. 거대한 가문의 수장이 죽었다는 것은, 곧 조그만 나라나 마찬가지인 그 가문의 권력구도가 바뀐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나는 뺨을 긁적이며 잠시 창문을 응시했다. 튀지 않게 함께 놀란 척하면서. 이 순간에 차분하거나 혹은 무심한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터였다.
흐음……. 일어날 일이 일어났구나.
이건 원작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였다. 악당 체이서는 유서 깊은 미술관에 폭탄 테러를 일으킨다.
이 일로 사고를 가장해 부친을 자리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도뮬릿 가주의 자리를 쥐게 되는데. 다만, 가주 자리를 쥔 뒤에도 그에게 불만을 가진 내부 세력을 제거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
결국 몇 년 뒤 원작이 시작할 때쯤에 강력한 공작이 된 그가 등장하게 된다. 사실 여기서 죽기 직전인 도뮬릿 가주가 불쌍하다기엔 어폐가 있었다. 그는 체이서보다 더한 악인인 데다……. 체이서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그의 부친은 어린 그를 무수히 학대했으니까.
“이제 도뮬릿 경이 공작위를 계승하는 건가?”
결국 두 남자주인공이 여주인공에 이끌린 건 둘 모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지만.
“이건 엄청난 일이야. 이아나, 권력의 판도가 바뀔 거라고.”
“그래요?”
“설마하니 체이서 경이 악수를 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허어, 이것 참!”
어쨌거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구나. 내 세상은 멈춘 것 같은데, 바깥은 팽팽 잘 돌아가고 있구나 느꼈다.
나는 가십에 사로잡혀 열심히 추측을 떠들어대는 이들에게 흥미를 잃었다.
모두가 체이서가 범인이다, 아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짓을 할 리가 없다. 도뮬릿 가문에도 치명적이다! 하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추측해봐야 범인은 체이서라니까요? 나야 언제든 출소해 조용히 노닥거리며 사는 게 목표고 꿈인 사람이니. 딱히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나는 경악에 사로잡힌 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 계단으로 향했다. 지하실 앞에는 낯선 간수가 있었으나 아무렇지 않게 길을 터 주었다.
“이아나 양이시지요? 윗선에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는 상급 간수 루빈입니다.”
그는 내가 올 줄 알았다는 태도였다. 아마도 르나그가 명했을 터였다. 나는 단 하루 만에 일을 처리한 르나그의 솜씨에 그저 감탄했다.
“되도록 이아나 양이 하고 싶으신 일은 모두 들어드리라 명 받았습니다만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으음……. 산책요?”
나의 말에 간수는 철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곧 지하 감방에 간수 몇이 더 나타났고 나는 그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물론 옆에는 리케도르안이 함께였다. 전과 다른 이들이 잔뜩 있어서인지, 주눅 든 리케도르안은 내 옆에서 옷자락을 꾹 잡고 놓지 않았다.
짐승의 본능인 건지, 상급 기사의 기세를 알아본 눈치였다.
“떨지 말아요. 저 사람들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네.”
이렇게 말해도 리케도르안의 반응을 익히 이해했다. 그에게 새로운 간수란 그에게 강제로 구속구와 쇠사슬을 채우고, 억압하는 등.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을 테니.
정원으로 나간 나는 일부러 볕이 가장 좋으면서도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리케도르안은 사람이 줄어들자 조금은 안심한 얼굴이었다.
나는 주변에 있던 간수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부탁했다.
그들은 난색을 보이면서도 거리를 벌려주었다. 아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거리였다. 아울러 나를 배려하려는 듯 간수들은 등을 돌려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덕분에 편히 리케도르안에게 말을 걸었다.
“힘들어요?”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리케도르안이 살며시 눈을 들어 올렸다.
“……괜찮아요. 아니, 좋아요…….”
“좋다니요? 아, 날이 좋죠?”
“아니, 아니요.”
리케도르안이 내 소매 끝을 꾹 붙들었다. 이제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는 것이 꽤 자연스러웠다. 역시 그의 눈동자는 볕 아래 보니 더욱 푸르고 어여뻤다.
“다, 당신이 옆에 있어서…… 좋은 거예요.”
조금 더듬는가 싶던 그의 음성은 뒤로 갈수록 차분해졌다. 또박또박 말하다 못해 여유가 스미며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잘못 느낀 건가?
그사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간수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들끼리 내기라도 한 걸까, 우리에게서 좀 더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리케도르안 쪽을 응시했다.
……역시, 잘못 느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리케도르안의 몸을 보며 낭패감을 느꼈다. 어느새 커다래진 그가 내 손을 지지대 삼아 고개를 늘어트리고 있었으니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른한 눈이 그대로 접혔다.
“주인님 말고…… 이아나. 였지?”
“이번엔 제대로 기억해서 좋은데. 대체.”
이번엔 뭐에 꽂혀서 이렇게 변한 건데?
왜 커진 거냐고!
쿵쿵, 내 심장이 뛰었다. 설레서는 아니었다. 조마조마했기 때문이었다.
변모한 리케도르안의 몸은 수줍음 모드와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났다. 간수들이 꽤 떨어지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이 와중에 그와 나 사이에도 긴장감이 뚝뚝 떨어졌다.
“나 만나서 안 기뻐요?”
“지금 기쁜 걸 따질 때예요?”
이 모습을 들켰다간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알 수 없다.
일단 내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무조건 들키겠지. 그리고 리케도르안에게도 덩달아 화가 미칠 것이다. 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게 깨물면 아프던데.”
가늘고 유려한 손가락이 툭, 입술에 닿았다. 나는 낯선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아프더라고.”
그가 눈을 느슨하게 휘어 반원을 만들고는 휙, 고개를 기울였다. 그 상태로 여전히 앞니가 파고든 내 입술을 바라보다 툭 던졌다.
“내가 대신 깨물어줄까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아니면 핥아요?”
“조용히 안 할래요?”
나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복합적인 기분이 들었다. 개 울음 할 줄 안다고 진짜 개소리를 하면 안 되지. 이 사람아.
“……되겠어요?”
난 뚱하게 받아쳤지만 언제든 몸을 뒤로 물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필 감방에서처럼 그를 벽에 구속하는 사슬이 없는 정원이었으니까.
정원에서 갑자기 훼까닥 할 줄 알았냐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소리를 높이거나 그를 밀어내기엔 뒤에는…… 간수들이 있었다. 절대 들켜선 안 됐다.
철그렁.
철썩 심장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크게 들리는 소리. 그의 팔목을 감싼 쇠사슬의 소리였다. 섬세한 그의 손이 내 손끝을 붙잡았다가 놓았다.
커다란 손이 간지럽히듯 내 손끝을 타고 올라가 손바닥에 안착했다. 그러고는 살살 문지른다. 엄지가 느슨하게 손바닥을 문지르는 야릇한 감각에 나는 숨을 잠시 참았다. 흡, 이 급한 순간에 무슨 짓이야…….
“기분 좋아요? 나는 이아나가 이렇게 만져주면 좋던데.”
“……내, 내가 언제 이렇게 만졌어.”
“왜, 내가 공을 주워오면…… 이렇게 만져줬잖아요?”
뭐야. 짐승 모드일 때 기억을 가지고 있어? 처음 변모했을 땐 자기 모습을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는데……. 새로운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왜 그가 조금씩 더 달라지는 것 같지?
그사이에 그의 몸이 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하게는 그의 상체가 기울어지며 나를 향했다.
“왜, 지금은 안 만져줘요? 나 미워?”
얼굴이 성큼 가까워진다. 한 번은 볕 아래서 원작 속 그를 보고 싶다고, 그땐 깜깜하고 음습한 감방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와장창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성장한 리케도르안은 깨끗하고 청초한 미인이었다. 그냥 미남이라 치부하기엔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른하게 내려와 끔뻑이는 눈이 졸음이 쏟아지는 한낮의 오후처럼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렇게……. 만져줬잖아. 응?”
리케도르안이 천천히 내 손을 들어 올리곤 자신의 얼굴 앞에서 뒤집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묻었다.
간질간질.
“하지마.”
긴 속눈썹이 손마디 사이에 스쳤다. 나비 날개가 우심실을 긁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의 붉은빛 입술이 손끝을 가볍게 머금었다. 리케도르안이 마치 짐승이 장난치듯 내 손가락을 살짝 깨물고는 뱉어냈다.
“입술 안 되면, 손은?”
내게 얼굴을 묻은 채, 나를 향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모습은 오싹 소름이 돋을 만치 관음적이었다.
쿵!
정원에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아나 양?”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떻게든 내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대로 숨을 꾹 참았다. 달려온 간수들이 내게 도달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수들을 쳐다봤다. 방금의 쿵 소리는 내가 벤치에서 리케도르안을 힘껏 밀쳐내 떨어트린 소리였다.
아차 싶어 리케도르안을 바라보면 그는 거짓말처럼 원래 몸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막고 숨을 고르다가,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저,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혹시 이 죄수는 저 대신 감방으로 인도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 아, 예, 그러겠습니다.”
“감사해요.”
다행스럽게도 리케도르안은 딴지를 걸 상태가 아니었다.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추측하자면 그는 모습이 변모할 때마다 이런 부작용을 겪는 듯했다.
그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이내 등을 돌렸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내 감방으로 향했다. 중간에 아는 간수들이 인사를 건넸으나 제대로 화답할 시간조차 없었다.
아니, 무슨 정신으로 손을 흔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쾅.
감방 문을 닫고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숨은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뒤에야 간신히 진정되었다.
일단 냉수, 냉수가 필요해.
사람은 너무 큰 자극은 오히려 고통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기쁨, 슬픔, 혹은 쾌락이든 즐거움이든. 극에 달하면 모자라니만 못하단 거지. 나의 경우는 필요 이상의 것을 본 탓에 찾아온 후유증이었다.
다시 말해 리케도르안이 느긋한 성격의 내게 너무 큰 자극을 안겼고, 덕분에 나는 필요 이상으로 잘생긴 미남이 때때로 현기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이 충격은 단순히 그가 잘생겨서만은 아니었다.
“후…… 이제야 살 것 같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벽을 뚫어버릴 듯이 강렬하게 응시했다. 이쯤 되면 한번 진지하게 파헤쳐봐야 할 것 같다. 리케도르안의 상태 말이다. 계속 저 상태로는 둘 수는 없지 않나?
이 순간 책임감을 느끼는 건…… 내가 그에게 성장 마법을 건네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이르는 리케도르안을 위한 마법이라 했지만, 볼수록 이 마법은 이상했다.
‘……아무래도 제이르를 한 번 더 찾아봐야겠어.’
엄밀히 따지면 제이르와의 만남은 언제나 제이르가 먼저 다가온 거였다. 그렇기에 내가 접촉하기 위해선 방법이 필요할 터, 나는 그와 접선할 방도를 생각하며 천천히 등을 뗐다.
그러고는 멈춰 섰다.
책상 위에 못 보던 편지가 존재했다.
편지?
“……오빠가 보낸 거잖아?”
아침에는 없던 건데. 유려하고도 부드러운 필체를 바라보다가 얼른 봉투를 열었다.
예상대로 오빠의 편지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이냐 물었었지?”
이 편지에는 그 답이 들어 있을까? 기대되는걸. 잠깐 리케도르안을 잊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열었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크게 깜빡였다.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편지의 내용은 상당히 단출했다.
「누가 널 괴롭히니?」
꼭, 화나기라도 한 것처럼.
<2권에서 계속>
감방에서 남자주인공을 만났습니다 1권
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