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으로 돌아간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숨을 내쉬었다.
휴. 위험했어.
리케도르안의 외모는 사람의 가학심을 자극한다고 할까. 아슬아슬한 경계를 자꾸 쿡쿡 찔러보곤 했다.
아니, 다 자라지 않은 외모가 저 정도인데 성장한 뒤엔 어떻게 되는 걸까? 더 크기 전에 만난 게 천만다행인 것 같다.
“위험했다고. 왜 손가락을 놓아주지 않은 거야?”
자제심이 없었다면 뺨도 부벼보고 깍지도 껴보고. 별 난리 브루스를 췄을 것 같다. 브루스만 췄을까? 나는 야릇한 감각을 떠올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 속 난리 브루스 안에 차마 말을 못할 것 같은 일도 있단 말이지….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 참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이게 다 이 소설이 19금이었던 탓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라.”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했다. 저 종이는 오빠가 주로 보내는 편지지인데? 종이를 들어 올린 나는 곧 이게 약과 함께 왔었던 편지란 걸 알았다.
급하게 나가다가 떨어트린 건가?
언제나처럼 단정한 글씨였다.
「사랑스러운 내 여동생. ……어디 아파?」
그래. 여전히 단정하고 우아했으나, 다른 날과 다르게 정갈한 글씨가 어딘가 급해 보였다.
「늘, 너를 걱정해. 언제나. 네가 보고 싶거든.」
시선은 곧 마지막 구절에 머물렀다.
「내가 갈까?」
3장. 숨바꼭질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 온다고?
뭐.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내 가족이니 오빠란 사람이 찾아와도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여기는 르나그가 지배하는 곳이고, 그 르나그가 체이서와 손잡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방문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역시 이아나의 집안이 악당 수하 집안이라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왜냐 보통은 귀족 죄수의 가족들이 방문을 잘 하지 않았다. 보안이 철저하기도 했으나 귀족들이 보통 이곳의 관리자, 철혈 후작 르나그를 꺼린단다.
이 거대한 감방을 이끌어가는 잔혹하고 냉정한 성격과 결핍된 인성 때문이라나. 이건 같은 죄수 동기들에게 들은 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배하는 곳에 친히 온다고 하니 모종의 관계가 있을 거라는 가설에 힘이 실린달까.
‘물론 갑작스러운 말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빠가 찾아오는 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별 감흥 없다고 해야 하나. 아, 얼굴이 궁금하긴 하다. 지금까지 이것저것 보내줬으니. 따지고 보면 나는 이 오빠란 사람이 ‘이아나’에게 가진 생각을 잘 모르겠다.
“어떤 사이였을까.”
듣기로 나는 오빠와 아빠의 죄를 대신해서 잡혀 온 거라는데, 대체로 이곳에서 가족 대신 잡혀 온 이들은 자신을 집어넣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 날 여기 넣은 동생놈을 고자로 만들어버릴 거예요! 아주 그냥 대를 잇지 못하게 할 거야!>
자기 동생을 씹어대는 옆방 샐리만 봐도 그랬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처지인 또 다른 죄수는 체념하기도 했다. 분노와 체념. 이처럼 그들이 보이는 태도는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나야 시작이 감방이어서 별생각 없었지만.
“흐음. 나한테 미안해서 잘해주는 건가?”
이로 추론해보면 이것저것 많이 보내주는 오빠는 내게 미안해서 이러나 싶기도 하다. 나야 이런 물질적인 보상이 땡큐고 잘 이용해먹고 있어서 좋지만 말이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려나?
‘아무튼 이 편지는 날 걱정하는 거겠지?’
단정한 글씨가 조금 흐트러진 것만 봐도 그랬다.
그래도 가족이긴 한가 보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오빠’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 얼굴을 닮았다면 괜찮은 미남이겠는데.”
거울 속의 나는 연한 분홍빛 머리칼을 하고 연한색 눈동자에 순진한 인상이었다. 아주 순한 인상. 길 가다가 옥장판 사실래요? 하면 어머나! 따뜻해요? 하고 살 것 같달까.
거기에다가 속눈썹이 무척 길고 풍성해서 사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끔뻑, 감았다가 뜨이는 눈 사이로 연한 자색 눈동자가 보였다. 붉은 기가 살짝 섞여서 오묘한 색이었다.
솔직하게 내게 잘해주는 간수들 및 동료 죄수들의 행동에는 외모 덕도 조금 있지 않나 싶다.
예쁘긴 예뻐.
그럼 오빠도 미남이려나. 아마도 오빠 또한 나와 비슷한 색을 지녔을 거다. 남매이니.
“좋아, 위험인물 중에 분홍 머리칼은 없었단 말이지.”
그리고 책 속 주요인물 중 나와 같은 분홍 머리색은 없었다. 이아나가 주연과는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겼다.
책상 서랍을 연 나는 편지를 편지 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서랍 속엔 가지런히 정돈된 편지가 가득했다. 이 편지 대부분이 텅 빈 편지지이지만.
빳빳하게 펴진 편지들을 보다가 슬쩍 웃고는 서랍을 닫았다. 그러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어휴, 약 바르는 것도 일이었네.”
문득, 손가락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게 무엇 때문인지 떠올리곤 눈을 꾹 감았다.
***
며칠 뒤, 한동안 내리던 비가 멎고 다시 화창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이 다시 갰지만, 땅이 질퍽해서 아직 산책은 무리였다. 이 나라는 이렇게 간헐적 우기가 반복된다나? 그래서 오늘은 응접실 행이었다.
“이게 마지막 우기일지도 모른다네. 아가씨.”
언제나처럼 설명하기 좋아하는 남작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끄덕였다. 그러고는 응접실을 쭉 돌아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묘하게 들뜬 느낌인데.’
아닌 게 아니라 다른 날보다 조금 소란스러웠다. 정확히는 남자 죄수 말고 여자 죄수들 쪽이 말이다.
“꺄하하하, 정말?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여성 죄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방 오른쪽 소파 구역을 한가득 채운 채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보통 때는 들리지 않던 꺄르르, 웃음마저 터져 나왔다.
아무리 평화로운 감방이라도 감방은 감방. 여기 갇힌 것만으로 우울해하는 이가 있었다. 이런 이들 때문이 아니라도 대체로 감옥이란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특히나 여인들은 죄를 지은 사람보다는 대신 온 이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고. 오히려 평온한 나나 화를 표출하는 샐리가 드문 타입이었다.
“오늘따라 꽤 어수선하네요.”
하나 그 샐리마저 오늘은 얼굴을 붉히며 가주인 동생을 까는 대신 신나게 대화하고 있다. 그것도 볼을 살짝 붉혀가면서.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일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한 일은 테이블에 놓인 쿠키를 주머니에 몰래 한가득 담는 것이었다.
응접실 쿠키가 식사 시간에 나오는 것보다 맛있단 말이지.
오늘 응접실에 온 건 이거 때문이었다. 몰래 주머니에 담는다고 했지만 사실 이 정도는 간수도 귀엽게 봐주는 정도라 거리낌 없이 당당했다.
“어딜 가나?”
“신나는 모험이요?”
나는 남작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향한 곳은 리케도르안의 감방이었다.
끼익. 이제는 숨소리처럼 익숙해진 감방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스.”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한스에게 인사와 담배를 건네고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꿉꿉한 냄새도 더는 숨 막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치만 여전히 조금 괴롭긴 한데, 다음엔 ‘오빠’에게 방향제를 가져다 달라고 해볼까.
“왕?”
“안녕.”
리케도르안이 고개를 들었다.
“왕!”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끙끙대는 그를 향해서 얼른 걸어가던 나는 잠깐 멈칫했다.
……조금 컸나?
묘하게 그가 전보다 크게 보였다. 많이는 아니고 미묘한 차이이긴 한데. 그를 본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되는 시점인데, 이 짧은 시간 안에 크기도 하나?
“잘못 본 건가.”
고개를 갸웃한 나는 리케도르안 앞에 쪼그려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들이미는 그의 턱밑을 간지럽혀 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간식은 쿠키야. 쿠키 좋아하지?”
포장지를 뜯어내자 리케도르안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박고 먹었다. 얼마나 허겁지겁 먹던지 몇 개는 바닥으로 흘러내린 것도 있었다.
“어, 잠깐만!”
그의 얼굴이 바닥으로 향하는 것을 본 나는 황급히 그의 머리를 잡았다.
……아니, 잠깐만.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걸 먹으면 안 되지.
“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성은 지키자!
나는 끙끙대는 그의 이마를 잡고서 말했다.
“안 돼. 기다려.”
리케도르안의 눈이 흔들렸다.
“낑, 끙끙.”
“쓰읍, 안 돼. 빌어도 안 돼.”
“낑낑!”
“귀여운 척해도 안 돼. 돌아가.”
이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데 떨어진 걸 주워먹겠다는 거야? 나는 언제 청소한 건지 모를 때 낀 바닥을 보고 기함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위생관념 없는 시대라도 이건 아니다.
“자, 새것 줄게, 이거 먹어. 왜 바닥에 떨어진 걸 먹으려고 해, 응?”
“왕왕!”
“……이제 그만 사람의 말을 할 생각이 없니?”
가만 보면 대부분의 말을 이해하고, 알아들으면서 말은 못 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쿠키의 반쯤 먹어치운 그를 바라보았다. 이어 쿠키 말고도 주섬주섬 챙겨온 것을 펼쳤다.
“자자, 여기 한번 볼래? 짜잔. 이게 뭐게!”
최근 내가 리케도르안을 데리고 시도하는 것은 바로 이거였다.
“책이야, 책.”
감방 내에 작은 서고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림이 간간이 있는 동화책이었다. 어째서 감방에 서고씩이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작 아저씨 말로는 고상한 귀족의 취미는 대다수 독서라나?
그런 것치고는 아무도 안 읽던데.
아무튼 귀족 죄수 한정 복지만은 끝내주는 곳이라, 이러니 감방에서 눈을 뜨고도 평온하게 보내는 거지만.
“자. 생각해보니 당신요, 듣기가 되는데 말하기가 안 되는 건 말이 안 돼요.”
“왕?”
“응. 그 개소리 말고 사람 소리요.”
생각해보면 책 속 리케도르안은 분명 짐승일 때도 사람의 말을 했단 말이지. 그럼 여주인공을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배우거나 단련했다는 소리다.
적어도 그 시기가 나와 만났을 때는 아닌 것 같지만.
어차피 사람 말을 하는 거라면, 조금 빨리 배워도 상관없지 않겠어?
“그래도 당신 사람인데 계속 개처럼… 아니 어감이 이상하다. 강아지같이 이러면 되겠어요? 아니, 핥지 말고.”
“왕왕왕!”
“……기다려!”
착.
아니. 왜 이것만 잘 듣는 건데.
나는 끙 한숨을 쉬다가 책을 바라봤다. 그래 읽어주다 보면 달라질지도 모르지. 어차피 출소 전까지는 남는 게 시간이었다.
“자, 들어봐요. 아니. 부산스럽게 돌지 말고. 당신 꼬리도 없잖아. 앉아!”
착.
“……잘했어요. 그 상태로 들읍시다.”
꼬리도 없으면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건 대체 뭐를 표현하고 싶은 걸까. 갈수록 그의 행동이 눈에 잘 읽히는데, 하아, 이런 능력은 필요 없다고.
“이건 별이고, 이건 달. 그리고 저건 해. 우리 간단한 것부터 해봐요. 자, 달.”
“왕!”
“……해.”
“왕왕!”
“……당신 의지가 없는 거지?”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잡아서 쭉 늘렸다. 그가 잡힌 채로 끙끙거렸다.
함께 산책하며 알게 된 건데 내게 경계를 푼 그는 더는 이빨을 드러내거나 날을 세우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눈빛은 사나운 편이지만 이것도 보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할까. 이렇게 꼬집어도 물진 않더라?
“컹컹, 말고 별!”
“아르르르?”
“아니. 개소리 말고 사람 말이요!”
몇 번 시도했지만, 왕왕 아니면 컹컹. 거기서 거기인 짐승의 소리를 듣고는 책을 내려놓았다. 포기한 건 아니었다. 단어 책 대신에 좀 더 이야기가 많은 동화책을 펼쳤다.
그래. 듣기라도 계속 들으면 언젠가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소녀는 마침내 저주에 걸린 왕자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흘끗 리케도르안을 응시했다. 웬일인지 그는 얌전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난 고개를 갸웃했다. 신기하네. 조금 전엔 몇 분 이상을 가만히 못 있더니.
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 시선을 돌렸다.
“왕자님은 용에게 물려 한쪽 얼굴이 새까맣고 옷은 불에 활활 타고 있었어요. 소녀는 왕자님에게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어요. 왕자님은 다시 물었어요. ‘아픈 게 뭔가요?’”
동화는 전형적인 내용이었다. 왕자님이 탑에 갇히고 용사님이 구하러 오는 내용. 보통은 공주님이 탑에 갇히던데 왕자님이 갇힌 것이 조금 달랐지만.
사실 눈의 여왕같이 주인공이 남자친구를 구하러 가는 내용이 취향이라 더 좋았다.
“‘저는 아픈 게 뭔지 몰라요.’ 왕자님의 말에 소녀는 울상을 지었습니다. ‘지금 왕자님이 느끼고 계신 거요. 뜨겁고 따끔따끔한 것. 전부 아프다는 거예요.’ 소녀는 왕자님을 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왕자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나쁜 용을 무찔러야 했지요.”
소녀는 결국 지혜와 현명함을 무기로 용을 무찔렀다.
용이 쓰러지고 왕자를 구출한 소녀가 왕자의 손을 잡는 순간 거짓말처럼 저주가 풀렸다…….
마지막을 읽는 순간 나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쪽도 탑에 갇힌 왕자님이네.
감방이긴 하지만.
“그럼 이쪽은 몰락 귀족 아가씨가 주인공인가.”
여주 언니는 아주아주 밝은 주홍색 머리칼을 가졌다.
리케도르안은 이를 두고 태양 같다 표현하곤 했는데, 퍽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뜨거운 관계에도 걸맞은 표현이기도 했지.
다른 이야기지만 여주 언니 진짜진짜 이쁘다던데.
“저주에서 풀려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비슷하겠다.”
리케도르안은 어느새 얌전함이 해제되고 내게 마구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이 덩치로 밀면 내 몸이 형편없이 밀린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리케도르안은 마른 듯 보여도 탄탄했다.
나도 만져보고 알았지만.
“그만 밀어. 넘어진다.”
넘어지지 않으려 한 팔로 몸을 지탱하고 그의 힘에 따라 살짝 허리를 뒤로 젖혔다. 이제 그는 내 손을 가져다 킁킁 냄새를 맡았다.
내 손에서 쿠키 냄새라도 나나. 은실 같은 그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있잖아. 감방에 오빠가 온대. 나한테 오빠가 있거든.”
뺨을 부비던 리케도르안이 슬쩍 눈을 들어 올렸다. 오늘은 이성을 되찾는 시간이 늦네. 하지만 변하는 시간은 언제나 들쭉날쭉이었다.
“오빠의 얼굴이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 봐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해.”
“…….”
오빠가 감방으로 온다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이후로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한번 해본 소리인가 싶기는 하지만. 이미 한 번쯤 보고 싶은 호기심이 치켜든 뒤였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기울여 리케도르안을 보곤 살짝 웃었다.
“네가 사람 말을 조금만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짐승일 때의 모습이랑도 말을 해보고 싶은데, 어려우려나.
“사실 너를 보러 와서 조금 덜하긴 한데. 이전까지 여긴 조금 지루했거든.”
감방은 생각 이상으로 규칙적이고 약간은 강박적인 곳이었다.
나는 손을 보드라운 그의 뺨에서 머리칼로 쓸어 올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내가 이쪽에 온 지 5개월이 조금 넘었나.
“난 언제 출소할 수 있으려나….”
나는 그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보자.”
그러고는 그의 손에 남은 쿠키를 쥐여 주고 등을 돌렸다.
툭.
마지막 순간 쿠키가 뚝 땅에 떨어진 것 같았지만, 잘못 본 것이려니 했다.
그가 먹을 것을 땅에 버릴 리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