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카를로스(1)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궁은 냉궁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여름의 더위는 그나마 나았다. 겨울의 추위는 살을 에어, 어린 아이의 몸으로 그 나날들을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카를로스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비참한 날들은 그때일 줄 알았다.
그 생각은 정확히 틀렸다. 카를로스는 지금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카를로스가 떨어진 나락은 더럽고 냄새나고 좁고 추웠다. 여름의 더운 날조차도 햇빛 한 점 들지 않아 실내에서 싸늘함을 느낄 정도였다.
옷이라고는 넝마같이 해진 것이 전부였으니 더 그럴지도 몰랐다. 적어도 4황자 시절에는 겪지 않았던 일이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그리고 카를로스는 그곳에서 노역해야만 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신경질적인 사내의 목소리에 다들 움직이기 바빴다.
무거운 돌을, 무언가가 깨진 조각들을, 더러운 오물들을 옮겨야만 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진 첫날, 카를로스는 당연히도 그것을 견디지 않았다. 그는 제게 주어진 노역을 거부했다.
그는 황태자였다. 이딴 일들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마음 한 편으로는 무슨 대가가 돌아올지 불안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무 가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물도 밥도 관심도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카를로스는 고통 속에서도 이쯤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 버린다면 더는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먹여라.”
“치워…!”
그러나 카를로스는 죽을 수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이 그의 입 안으로 형용할 수 없는 액체를 들이부었다.
액체라고 해야 할지 고체라고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마구잡이로 갈린 듯한 액체에 씹다 뱉은 듯한 고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이 목구멍을 열고 꾸역꾸역 들이닥쳤다.
“우웨엑…!”
인간이 먹을 만한 형상이 아니었다. 그러니 처음 그것이 입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카를로스는 곧바로 바닥에 그것들을 모조리 토해냈다.
그러자 다음부터 그들은 카를로스의 입을 막고 토사물까지도 삼키게 만들었다. 속이 니글거리고 기분이 말로 다 못 할 만큼 더러웠다.
그딴 식으로 그들은 카를로스를 살려 놨다. 단언컨대 그곳에서 노역하는 다른 이들이 먹는 것만 못했다.
삶은 감자, 뭉친 주먹밥 따위였어도 적어도 다른 자들이 배급받는 음식은 음식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으니까.
저항해도 소용없었다. 참 악질적이게도, 그의 손목과 발목은 힘줄이 끊겼던 전적이 있음에도 발버둥을 칠 수 있을 만큼은 멀쩡했다.
그저 이전처럼 압도적인 무력으로 자신을 제압하는 다수를 상대할 수 없을 뿐이었다.
“베를리아…!”
카를로스는 이를 갈았다. 발버둥을 치고 또 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를 더욱 큰 절망과 좌절로 내던졌다.
그 사실에 숨이 턱턱 막혔다. 카를로스는 대답하지 않을 상대를 향해 분노를 불태웠다.
그래서 카를로스는 숨을 끊기로 했다. 도저히 이딴 곳에서 버틸 수 없었다. 죽느니만 못했다.
“당장 포션을 가져와라!”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카를로스는 죽을 수 없었다. 포션이 그를 치유했기 때문이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카를로스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히 낫지도 못했다. 그는 죽음을 시도한 대가로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죽을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계속해서 시달렸다.
“차라리, 죽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고통에 잠식된 채로 카를로스는 그렇게 울부짖었다.
온몸을 난도질하는 열기에 들끓을 때는 의식을 잃고 빌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당연하게도 살아났을 때, 두 번 죽을 생각 따위 하지 못했다. 끝나지 않는 고통은 말 그대로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
그 다음부터 카를로스는 노역하는 척을 했다. 물론 틈을 노린 거짓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도망칠 예정이었다.
“그 잘나신 황태자님도 이곳에 떨어지니 거지꼴인 게, 우리와 다를 바 없구먼.”
카를로스의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질 나쁜 목소리로 킬킬거렸다. 그의 누런 이빨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이곳에 따뜻한 물이 나올 리가 없었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물은 살이 아리도록 시렸다.
그러니 꾸준히 씻는 이들이 대체로 드물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지워질까 의심이 갈 만큼 묻은 검댕들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 순간 카를로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4황자 시절에는 적어도 스스로 물을 데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불가했고 카를로스도 손끝이 쩍쩍 갈라질 만큼 차가운 물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 탓에 카를로스의 머리에는 기름기가 돌고 있었다. 이전에 시종들이 향유로 관리해 주었던 그런 윤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리저리 뭉쳐 지저분해 보였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멀쩡해 보였으나, 카를로스가 그동안 얼마나 위생적이고 깔끔한 생활을 영위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닥쳐…!”
카를로스는 그 사실 섞인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하루 종일 노역을 하는데 먹는 음식이 허접한 것은 둘째 치고 그 양조차 미량했으니 노역장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라 있었다.
그에 반해 카를로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에서 한 손안에 꼽히는 기사였으므로, 아무리 그의 육체가 전과 같지 않더라도 사내가 그를 이길 길은 없었다.
사내는 피떡이 되었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점차 카를로스로부터 뒷걸음을 쳤다.
카를로스는 그 속에서 저열한 고양을 느꼈다. 감히 주제에 자신을 내리깔아보던 시선들이 이제 더는 그러지 못할 테니까!
“비켜, 비켜!”
그러나 그곳을 관리하는 감시인들이 달려온 순간 카를로스의 착각은 와장창 깨어졌다.
“이거 놔! 다 죽여 버릴 테다! 네깟 것들이 내게 감히!”
자신을 붙잡으려는 자들에게 카를로스는 반항했다.
허약한 사내 하나를 때려눕히고 나니 마치 자신의 신체가 이전과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는 호기롭게 저를 제압하려는 자들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하게도 그 결과는 처참했다. 감시인들은 손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채찍과 몽둥이로 카를로스를 난도질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여기 던져 놓은 자가, 너희를 가만히 둘 것 같으냐!”
그 속에서 본능적으로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한 카를로스가 소리쳤다. 그러자 순간 감시인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이놈 뭐라는 거야?”
“네놈이 여기 떨어진 것을 보면 모르겠나?”
“넌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카를로스는 이곳의 이들이 자신을 폭행하지는 않으리라고 여겼다.
첫날, 자신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감시자들은 제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를로스의 추측은 처참히 어긋났다. 베를리아의 존재는 이곳에서 조금도 그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사는 것. 그게 베를리아가 카를로스에게 바란 유일한 점이었으니까.
카를로스는 또 다시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그는 몰매를 맞고 벌거벗겨진 채로 거꾸로 나무에 매달리게 되었다.
지나가는 자들이 모두 카를로스를 비웃고 침을 내뱉었다. 물론, 그보다 더한 짓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도, 그 무엇도 그곳에서 카를로스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도망쳐야 해.’
며칠간 물을 마시지 못한 목이 쩍쩍 갈라졌다. 겨우 나무에서 내려졌을 때, 카를로스는 바닥을 기며 생각했다.
나무에 매달려서 타인에 의해 오물을 뒤집어쓰던 순간은 카를로스를 치에 떨게 했다.
그는 매일매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모욕을 당했다.
카를로스는 자신이 자연사로 죽는 순간까지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아니, 죽어서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카를로스의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메리쉬와 그의 목숨은 묶여 있었다. 베를리아가 자신의 연인이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카를로스는 숨이 턱 막혀 왔다.
그는 죽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꼴로 바닥을 기든 간에, 베를리아는 자신을 어떻게든 살려 놓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안 돼…! 이딴 곳에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어!’
카를로스는 끝나지 않을 생을 강제로 연명 당하면서 이런 곳에서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때마침… 그에게 단비 같은 동아줄이 내려왔다.
“이 봐, 형씨. 며칠 전에 보니 솜씨가 쓸 만하던데.”
카를로스에게 말을 걸어온 상대는 이 노역장에서 드물게 체격이 건장한 자였다.
그는 한눈에 봐도 질이 나빠 보였다. 두 눈에 비열한 기색이 가득했고 입가에는 저열한 웃음이 띄워져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카를로스가 경멸하며 절대로 말 따위 섞지 않았을 부류였다.
“우리가 솜씨 좋은 자들을 모아서… 일을 하나 해 볼까 하는데, 어때?”
그러나 카를로스는 그 사내의 말을 외면하지 못한 채 홀린 듯 듣고 있었다.
사내가 말하는 ‘일’이라는 게 어쩐지 그 역시 바라는 무언가일 것만 같았다.
“…무슨 일?”
그래서 카를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그의 안에서 미약한 희망이 차올랐다.
“형씨, 혹시 우리를 감시하는 자 중에… 한 명 정도는 어찌 처리할 수 있겠소?”
사내가 물었다. 그간 카를로스가 감시자들에게 꼼짝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떼로 몰려든 탓이었다. 단 한 명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할 수 있다.”
카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적 건장한 사내가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이런 것을 묻는 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이건 기회였다. 놓쳐서는 안 될 유일한 기회.
“좋아, 우리는 여기를 탈출할 거요.”
사내의 말에 카를로스의 두 눈이 빛났다. 역시나…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이 기회를 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