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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판치는악녀님 (111)화 (111/148)

111화. 교만의 끝(2)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다음날이면 나는 살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살려져 있었다.

‘또 허튼 짓을 했어.’

눈을 뜨면 불만스럽게 찡그려진 카를로스의 얼굴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황궁의 어느 방 안에 갇혀 버렸다.

‘자꾸 번거롭게 만들지 마, 베릴.’

카를로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저 그의 말 그대로 번거로운 일을 대하듯이.

‘네 죽음조차도 내 거야, 베릴.’

그렇게 말하는 카를로스는 웃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설마…. 네가, 날, 살렸어?’

어떻게? 의문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진실의 여부를 묻는 목소리조차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네가 부정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까지- 너를 사랑했던 나날들 전부를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네가 죽을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그제야 매번 나를 되살리는 것이 카를로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말을 이루지 못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아아… 아아악! 카를로스 에덴버!’

너를 죽이고 싶었다. 진실로, 생에 처음으로- 대단히 너의 불행을 바랐다.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이성을 잃은 채로 네게 뛰어들어 목을 졸랐다. 그러나 내 발악은 단 하나도 소용없었다.

에를니아가 준 힘으로 강해진 네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끝없이 죽으려고만 했던 나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착하게 굴어, 베릴. 그러면 내 옆에 있게 해 줄 테니까.’

너의 손이 끈적하게 네 뺨을 매만졌다. 너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망가진 나를 아주 황홀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던 남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 손, 이…손, 치워.’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네가 두려웠다. 무엇이든 네 뜻대로 해내고야 마는 네가 내게 보이는 감정이 무서웠다.

‘너는 내 황비가 될 거야, 베릴.’

카를로스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몸이 경직됐다.

‘치워, 치우라고…!’

스스로가 듣기에도 형편없는 목소리였다. 네게 닿는 모든 것이 소름 끼쳤다.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듯 끔찍한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내 후계는 나와 앤지의 아이가 되겠지만- 네 아이도 너도 사랑해 줄 테니 걱정 마.’

아무리 카를로스를 밀어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속삭임이 나를 어느 때보다 죽음에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살려 줘.

살기 위해 죽고 싶었다. 그대로 나는 또 다시 내 생을 놓아 버렸다.

***

이번에야말로 죽기를 바랐는데. 나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날이 갈수록 죽고 싶었다.

‘베릴.’

창문 하나 없어 날이 가는 것조차 알 수 없던 방 안에 숨어들어온 리리카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완벽히 미쳐 버렸을 것이다.

‘리리…?’

처음에는 내 눈앞에 나타난 당신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완전한 지옥 속에 갇혀 있었으니까.

메리쉬가 죽어 버리고 카를로스를 끊임없이 증오하며 스스로를 놔 버리게 되는 그런 지옥에.

‘미안해요, 늦어서. 내가… 내가.’

리리카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따라가니, 그제야 앙상하게 마른 내 팔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가 된 카를로스의 권력은 역대 어떤 황제보다도 강력했다. 성검과 에를니아를 등에 엎은 그는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리리카는 이제야 막 교황이 되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카를로스가 매번 그를 교황의 사생아라는 점으로 공격하고 있었으니, 더욱 힘들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리리카가 나를 찾아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황궁에 숨어드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만 했을 테니까.

‘왜… 왜, 이제, 이제 왔어요… 왜….’

그런데도 내 입에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말은 원망이었다. 투정이었다.

리리카가 얼마 만에 나를 찾아낸 건지도 모르면서- 이곳에 갇혀 있는 시간이 너무나 억겁 같아서, 그래서… 나는 그렇게라도 내가 얼마나 죽을 것 같았는지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내가 미안해요….’

그런 나를 리리카는 끝없이 달래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황궁을 벗어났다.

***

‘흐으…흑, 흐으윽…’

그러나 겨우 카를로스를 벗어나고도 나는 편안해지지 못했다.

‘베릴, 일어나요, 베릴…!’

밤이면 밤마다 잠이 들어서도 울었고 그런 나를 리리카가 깨워 주는 일상이 반복됐다. 단 하루의 평온조차 없었다.

‘리리, 멜이… 멜이….’

리리카가 그렇게 나를 깨워 주면 나는 또 한참을 그에게 매달려 울었다. 매번 꿈속에서 메리쉬가 나타났다. 그는 꿈에서조차 항상 나를 위해 죽었다.

카를로스에 대한 증오는 날이 갈수록 내 안에서 진득하고 더럽게 엉겨들었다. 나는 종종 내 안에 있는 흑마법을 견디지 못하고 폭주했고, 그럴 때마다… 에르젠타샤를 만났던 기억을 회복했다.

그러니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첫 번째 죽음에서 돌아온 내가, 두 번째 삶에서 멍청하게 굴지만 않았더라면 메리쉬는 죽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원래 죽을 운명이 아니었으니까!

‘리리, 리리… 나만 아니었으면 멜은 살아 있었을 거야, 내가 처음부터 카를로스 에덴버를 멀리했더라면… 아니, 돌아오자마자 그를 죽였더라면…!’

나는 미쳐갔다. 범람하는 진실이 담긴 기억들과 그 사이에 섞여든 나의 과오는 내 목을 조르고 내 숨을 막았다.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네가 죽었다, 멜.

‘베릴, 정신 차려요. 우리 이제 다시 거처를 옮겨야….’

교황까지 됐던 리리카였으나 그 사이에 그는 수배된 신세가 되어 있었다. 에를니아가 카를로스를 통하여 ‘교황이 내 신녀를 훔쳐갔다.’는 신탁을 내린 것이 그 원인이었다.

기억을 되찾은 나는 카를로스가 끊임없이 나를 되살릴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에를니아가 나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카를로스로 인해 에를니아를 향한 사람들의 신앙심이 깊어졌다지만, 나의 신이 말한 신들의 시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에를니아는 그 공백을 나로 채우고자 했던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 리리.’

그 신이나, 그 힘을 받은 핏줄이나 참으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에를니아에게도 카를로스에게도 나는 ‘도구’이자 그들의 ‘소유물’이었다. 구역질이 났다.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싸움은 내가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내가 사라져야만 리리카를 향한 추적 또한 끝날 수 있었다.

‘베릴!’

‘내가 죽어야 끝나.’

사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첫 번째 삶에서, 모두가 나의 잘못이라고 했기에 나는 나만 달라지면 전부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고 나는 기회를 놓쳤다.

나는 지쳐 있었다. 이 끊임없는 불행과 지긋한 삶에.

‘나로는… 나로는 안 돼요?’

리리카가 내 발치에 무릎 꿇은 채로 말했다.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미안해.’

그러나 나는 리리카를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그에게 솔직해졌다.

‘나는 여전히… 멜을 사랑해, 리리.’

나를 위해 두 번의 생 모두를 바친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어떻게 지울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런 방법은 몰랐다.

나는 여전히 나를 위해 산 메리쉬가, 나만을 위해 산 메리쉬가, 나로 인해 죽은 메리쉬가- 사무치게 그리웠고 사무치게 아팠다.

‘다른 건 바라지 않을게요, 살아만 줘요. 제발-.’

‘네가 사랑한 사람이 나 같은 게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리리카에게 줄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내 대답에 리리카는 울었다. 아주 많이 울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애써 웃어 주었다. 죽음의 앞에서조차 초라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

에를니아가 자꾸만 나를 되살리려고 하는 시점에서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내가 에를니아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

‘아아악!’

‘으아악…! 도망쳐!’

‘꺄아아악! 황제 폐하, 폐하를…!’

에를니아는 나를 제 신녀로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강대한 힘을 드러내길 원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신앙심이 더더욱 깊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 계획을 완전히 망쳐 버릴 작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앙’이 되어 나타났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대낮에, 수도의 한복판에.

내 힘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질려 도망쳤다. 네멘 리들턴이 새긴 저주의 낙인은 이미 내 몸을 점령한 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애초에 완전히 말라 버린 몸은 흑마법, 아니 에르젠타샤의 힘을 견딜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 몸이 안에서부터 망가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울컥- 속에서 비릿한 것이 치솟았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내가 어떤 ‘재앙’이 될 수 있는지 알려야만 했다. 그래야만 죽을 수 있을 테니까.

‘이게 무슨 짓이야, 베를리아 리들턴!’

그리고 드디어 내 앞에 네가 나타났다. 카를로스 에덴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게, 이토록이나 증오하는 상대가.

‘에르젠타샤께서 말씀하시길- 에를니아와 너는 가짜라고 하셨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그래서 에를니아가 나를 죽일 수밖에 없도록.

‘당장 입 닥쳐…!’

그런데 그런 나를 막아선 것은 에를니아가 아니라 카를로스였다. 그의 얼굴이 경악에 차 있었다.

나는 어차피 죽을 예정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가둘 수도, 억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카를로스가 두렵지 않았다.

‘에를니아는 유일신이 되기 위하여 한 짓을 이 대륙의 누구도 모르고 있….’

‘닥치라고!’

카를로스 에덴버가 내 말을 뚝 끊어 버렸다. 일부러 다른 이들이 내 말을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의 목소리가 아주 커다랬다. 내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다급하게 흘러나온 카를로스의 외침을 통해 한 가지 진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너도 에를니아가 한 짓을 알고 있었어, 카를로스 에덴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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