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어미를 찾아온 아이
* * *
황제가 남쪽 지역 시찰을 마치고 궁으로 복귀하자 얼마 뒤 목운요 일행도 서릉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궁으로 돌아온 월왕 때문에 조정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월왕은 아무 말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었지만, 그 서릿발 같은 기세에 언관들은 순한 양이 되었다.
사실 관원들은 한 사람에게 두 사람 몫의 일을 요구하는 황제에게 불만이 상당했다.
근래 들어 대력조는 하운방과 불선루의 발전에 기대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 가게가 흥할수록 관원들의 발바닥에도 불이 났다.
그 힘듦을 황제에게 대거리를 하는 언관들을 보며 풀었는데, 갑자기 월왕이 웬 말이냔 말이다.
문득 수명이 줄어드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관원들은 당장이라도 낙향 상주서를 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편, 황후 민방화는 목운요의 손을 부여잡고 감격을 표했다.
“월왕비, 맥을 제대로 짚은 게 맞지?”
황후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꿈이 이뤄졌지만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목운요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제 의술을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맥이 아주 뚜렷합니다. 이미 석 달은 되셨습니다. 태의는 아무런 귀띔이 없던가요?”
“몸이 특별히 불편하지 않아 태의를 부르지 않은 지 꽤 되었어.”
황후의 웃는 얼굴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오랜 시간의 기대와 속상함이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매일 밤 기도했었다. 그 기도를 들은 아이가 이제야 놀이를 마치고 어미를 찾아오려는 것일까.
황후가 눈물을 그칠 줄 모르자, 목운요가 얼른 다가가 그녀를 달래었다.
“마마, 기쁜 일입니다. 그만 우시고, 어서 폐하께 아뢰시어요. 아주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여봐라, 당장 폐하를 뵈러 가야겠다.”
황후가 다급하게 눈물을 닦았다.
그녀의 곁에 있던 상궁도 제 일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고는 황후에게 말했다.
“마마, 폐하께서 조회를 하실 시간입니다. 조금 뒤에 가시는 게 어떠하십니까?”
황후가 미간을 좁혔다.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지금 당장 가야겠다.”
그녀가 괴로워하던 시간 내내 곁에서 위로가 되어 준 황제였다. 회임할 가능성이 없는 걸 알면서도 한 달 중 절반은 그녀의 처소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한마음으로 아이가 오길 간절히 소망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은 황제와 가장 먼저 나누어야 했다.
지난 삼 년간 궁으로 들어온 비빈들이 꽤 있었지만, 그 누구도 민방화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회임을 한 비빈들이 은근슬쩍 도발했으나, 아이도 낳지 못하고 제 목숨만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민방화를 오래 지켜보던 비빈들은 그녀가 황제의 사랑을 등에 업고 위세나 부리는 황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황후가 먼저 목숨 줄을 쥐고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유일하게 공주를 출산한 후궁을 각별히 챙기기도 했다.
한편, 황후의 회임 소식은 삽시간에 조당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관원들이 저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감상하던 황제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조회를 황급히 마치고 용교의(龍交椅, 임금이 앉는 의자)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황후의 처소가 있는 궁으로 향했다.
“황후, 회임을 하였다고요?”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그러다, 울면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 목운요의 말이 떠올라 눈물을 막아 보려 얼른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런 경사가 있나. 정말 잘되었소!”
황제의 눈가에도 눈물이 비쳤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놓고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해 늘 한이 되었다. 게다가 황위 다툼까지 겹쳐 황후에게 납치에, 유산까지 겪게 했다.
지금 그에게 소망은 단 하나였다. 그저 황후가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기를,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황제가 도착한 뒤, 제 처소로 돌아온 목운요는 깜박 잊은 일이 떠올랐다.
“이런…….”
월왕이 목운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아, 왜 그러느냐?”
“황후 마마께서 회임하신 걸 폐하께 아뢰어야 했는데 깜박했습니다.”
목운요가 난처해하며 눈을 깜박거렸다.
“이미 들으신 것 아닌가? 조회를 급히 끝내고 나가셨다고 하던데. 관원들이 폐하가 체통도 지키지 않는다고 구시렁대더군.”
목운요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말로 표현 못 할 기쁜 표정을 지었다.
“거짓이 아니라 실제로 회임을 하셨단 말이에요. 가임초는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임신의 맥이 잡혔습니다. 그것도 이미 석 달이나 되었어요.”
월왕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후 마마의 몸 상태로는 아이를 잉태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지요. 한데 천지신명께서 기적을 선물하셨나 봅니다.”
목운요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폐하께서 꼭 황후 마마와 아이를 지키셔야 할 텐데…….”
잠시 침묵하던 월왕이 별안간 껄껄 웃었다.
“요아, 일단 폐하께는 비밀로 하자꾸나.”
목운요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사야, 왜 이리 짓궂으십니까? 폐하께서는 영군릉의 아이를 몰래 데려올 궁리를 하시는데, 나중에 황후 마마께서 정말 출산을 하시면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
“그럼 아이 낳기 전에 말하면 되지 않느냐. 폐하를 골려 줄 절호의 기회다.”
월왕이 음흉하게 웃었다.
목운요가 딸아이를 낳을 때 자신이 기절한 일을 어떻게 듣고는 보름 가까이 서신을 보내 놀려 댔던 황제였다.
월왕은 이제 그 복수를 단단히 할 참이었다.
당시 상황이 떠오른 목운요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야, 폐하께서 놀리신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신 것이에요?”
월왕이 손을 뻗어 목운요를 품으로 잡아끌었다.
“그 일은 어서 잊어버리거라. 명령이다.”
목운요가 더 활짝 웃음꽃을 피워 냈다.
“알겠어요. 이미 기억나지 않습니다. 전혀요.”
“이제 거짓말도 하느냐?”
* * *
월왕이 황제를 골탕 먹일 생각에 들떠 있는 동안, 궁 안은 무척이나 시끄러워졌다.
황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새 궁궐을 지으라고 난리를 부렸다.
그에 호부 상서는 돈주머니를 꼭 움켜쥐고 열지 않았고, 내무사는 그들을 상대로 입도 뻥긋하지 못하였다.
어디 황제와 맞서 싸우며 연마한 관원들의 전투력을 당해 낼 재간이 있겠는가! 그래서 내무사 관리들은 누가 대신 나서 주지는 않을까 하며 눈치만 살폈다.
궁궐 사안도 해결 나지 않는 판에, 황제는 전국에 인재를 구하는 방을 내다 붙이라고 안달이었다. 이 역시 황후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선생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중요한 일이었지만 언관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비빈들도 황제의 성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황제가 비빈들을 죄다 잡아다 냉궁에 가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비빈의 가족들은 황후 자리를 넘보더라도 황후가 아이를 출산하고 난 뒤로 미루라는 걱정 섞인 말을 몰래 전하기도 했다.
* * *
한편 태의는 매일 황후의 진맥을 확인했다.
그럴수록 황후의 불안은 더 깊어졌다. 심지어 임신을 한 것이 거짓인 것만 같다며, 밤에도 걸핏하면 깨어나 울며 과거에 이미 유산한 아이를 찾았다.
너무 걱정이 된 황제는 결국 목운요를 궁으로 불러 황후의 건강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목운요가 곁에 있으니 황후의 상태가 거짓말처럼 호전되었다. 이에 황제는 고마운 마음에 월왕에게 하사품을 연일 보냈고, 그걸 보는 내무사와 호부 관리들은 줄어드는 국고 걱정에 마음이 졸아들었다.
황제는 이제 아무 문제 없겠구나 하고 마음을 놓았다.
하나 임신 아홉 달째가 되던 어느 날, 황후가 배의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했다.
목운요가 얼른 맥을 짚어 보니 곧 아이가 나올 것 같았다.
아이가 나오게 생겼다는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황제는 다급히 월왕을 찾았다.
“월왕, 얼른 의견을 좀 내 보게. 황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해. 한데 영군릉의 첩실은 아직 잠잠하지 않나.”
월왕이 그제야 사실을 고하였다.
“폐하, 황후 마마께서는 정말 아이를 가지셨습니다. 그 첩실의 아이는 이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무슨 소린가? 아직도 농담이 나오나? 얼른 아이를 구해 와야 한단 말일세!”
“폐하, 농담이 아닙니다. 월왕비가 그랬어요. 황후 마마께 가임초를 드린 적이 없다고요. 정말로 회임을 하신 겁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황제가 제 뺨을 세게 후려쳤다.
“아프군. 자네 말이 참말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황제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순간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돌려 산방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는 산방 앞에서 궁녀들에게 가로막혔다.
“폐하, 산파가 황자님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들어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황제의 얼굴에는 이제 핏기조차 없었다. 목소리도 잔뜩 갈라져 다른 사람의 음성처럼 들렸다.
“황후, 자네……. 아이고, 짐이 어떻게 도우면 좋단 말이오. 짐은 아이를 낳을 줄 모르는데. 이를 어쩐다…….”
그 시각, 산방 안에서는 산파가 안간힘을 짜내는 황후를 북돋웠다. 황후가 잠시 숨을 고르자 산파의 재촉하는 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마마, 조금만 힘을 내시옵소서. 황자님의 머리가 보입니다.”
“아악-”
황후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산방에서 나는 소리에 황제는 후들대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대는 그를 월왕이 재빨리 부축했다.
그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월왕의 옷깃을 붙들었다.
일국 황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월왕, 황자가 울었네. 그렇지?”
“맞습니다.”
그런데 산방이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마마, 다시 힘을 주시옵소서. 황자님이 한 분이 아닙니다. 또 한 분이 나오려 합니다!”
-교여독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