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월서 도착
“요아야, 괜찮은 게냐?!”
허연한이 황급히 목운요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기님이 배를 차서 그래요. 괜찮아요.”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허연한은 속상한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손수건을 꺼내 목운요의 땀을 닦아 주었다.
한편, 열세에 몰린 혁련저는 약이 바짝 올랐다.
“이 멍청한 놈들, 저 몇 놈들을 못 이겨 쩔쩔매느냐? 모조리 죽여라!”
그사이 호위 무사 하나가 황제의 성지를 가지고 강성으로 달려가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강성의 병사들은 곧장 말을 몰아 나섰다.
강성의 동태를 살피던 북강의 척후병이 황급히 혁련저에게 아뢰었다.
“저하, 강성에서 지원군을 보냈습니다. 어서 철수하셔야겠습니다.”
하지만 목운요가 탄 마차가 지척에 있는 마당에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성공이 코앞이다. 지금은 안 돼. 돌격하라! 월왕비를 생포하는 자에게 황금과 초원 천 리를 하사하겠다!”
재물 앞에 장사 없다고, 혁련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북강의 병사들이 더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이에 호위 무사들이 주춤하기 시작했고, 그중 한 명의 팔이 잘려 나가면서 방어막에 빈틈이 생겼다.
북강 병사들은 그 틈을 놓칠세라 목운요의 마차를 향해 내달렸다.
한데 그때!
쉬웅-
어디선가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마차에 근접한 북강 병사의 등에 박혔다. 화살에 맞은 병사는 그대로 픽 쓰러졌다.
강성의 지원군 중 최전방에서 선 병사가 보름달 같은 긴 활을 손에 걸고 화살을 날린 것이다. 그가 날리는 화살은 북강 병사들의 몸에 정확하게 꽂혔다.
그제야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혁련저가 말을 몰아 퇴각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당도한 강성 지원군들이 목운요의 마차를 겹겹이 에워쌌고, 장군이 앞으로 나와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소인, 온한 군주를 뵈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황실과 월왕이 대치하는 국면이라 월왕비에 대한 눈초리가 따가울 수 있었다. 그래서 성지에 월왕비 대신 온한 군주라는 칭호를 적어 넣은 것이었다. 덕분에 장군도 그녀를 깍듯이 받들고 있었다.
사서가 마차 문을 열자 목운요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을 드러냈다.
“장군,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할 일을 한 것뿐이옵니다. 그리고 모두 궁술의 귀재인 청오의 공입니다. 청오가 없었다면 북강 놈들이 마마의 마차를 공격했을 것입니다.”
청오?
목운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소청오…….
갑옷으로 무장한 소청오는 변함없이 준수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난날의 온화하고 기품 넘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굳세고 냉철한 사내의 기운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소인 소청오, 군주께 인사드립니다.”
마음이 복잡해진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네. 도와주어 고맙소.”
얼굴이 창백한 목운요는 보는 사람의 연민을 유발했다. 하지만 검고 맑은 눈빛만큼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성에 드시어 좀 쉬시지요.”
그에 마차가 막 움직이려는데, 누군가 다급히 말을 몰고 다가왔다.
강성의 병사들이 얼른 경계를 강화했다.
“누구냐!”
“비 마마십니까?”
말에서 뛰어내린 우의가 황급히 마차로 달려왔다. 그 뒤를 따르는 월서의 병사들은 여기저기 피범벅이었다. 오는 길에 후퇴하던 혁련저 일당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우의? 사야의 상태는 어떠하신가!”
목운요는 우의를 보자마자 월왕의 상태부터 물었다.
“비 마마를 뵈옵니다.”
우의는 격한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전하께서 위중하십니다. 마마, 어서 서둘러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목운요가 출발 명령을 내리려는데, 갑자기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힌 그녀가 손으로 마차를 짚은 채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마마!”
소청오가 걱정스레 말했다.
“군에 의원이 있습니다. 그자를 불러오겠습니다.”
금세 도착한 의원은 목운요를 진맥하고는 놀라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회임하신 지 여덟 달이면 곧 산달인데, 어찌 이리 멀리 나오셨습니까? 조산기가 있으니 당장 쉬셔야 합니다.”
우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허연한이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먼저 강성으로 가서 하루를 쉰 뒤 움직이자꾸나.”
우의가 목운요의 눈치를 살폈다. 입을 살짝 벌렸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차마 말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목운요가 허연한의 손을 잡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우의에게 몇 마디만 물을게요.”
“요아야…….”
애가 타는 허연한을 뒤로하고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령이 알아냈겠지? 사야께서 중독되신 게 무슨 독이냐?”
“선령의 말로는 독이 아니라 독충이라고 합니다.”
“독충이라 하였느냐?”
목운요는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숨을 쉬기 힘들었다.
“증상은?”
“독에 중독되신 후 마마께서 챙겨 주신 해독제를 바로 드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혼절해 계시고, 비녀에 찔린 상처도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검게 변한 상처에서 피만 계속 흐릅니다.”
“그리되신 지 얼마나 되었지?”
“스무닷새입니다.”
순간 눈앞이 하얘지며 가슴이 조여 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어머니, 당장 출발해야 해요. 닷새면 사야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습니다.”
“닷새요?”
우의는 걱정이 앞섰다. 강성에서 월서까지 밤낮없이 내달려도 사흘이 걸렸다.
목운요가 두어 번 심호흡을 하고는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아가, 어미 말 잘 들어야 한다. 이제 아버지를 구하러 갈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야 한다. 알겠니?”
그녀는 세 차례나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안정됐는지 배의 통증도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 이어 혹시 모를 조산에 대비해 챙겨온 유산 방지 약을 한 알 삼키고는 결연하게 소리쳤다.
“우의, 쉬지 말고 월서로 달리게.”
“요아야!”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허연한이 호통을 쳤다.
“죽으려고 이러는 것이야?”
“어머니, 저는 죽지 않아요. 사야와 함께 살아 있을 거예요.”
목운요가 허연한의 손을 힘껏 잡았다. 말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금 조금 무리해도 아이는 무사할 거예요.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사야는 죽고 말아요.”
“널 정말 어쩌면 좋으니…….”
허연한은 속이 터졌지만 하얗게 질린 목운요의 얼굴을 보니 차마 모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가자꾸나. 앞으로 월왕이 널 섭섭하게 하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게다!”
목운요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우의를 바라보았다.
“출발하게.”
“……네.”
우의가 눈시울을 붉히며, 목운요에게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러고는 즉시 말에 올라타 사람들을 인솔해 월서 방향으로 내달렸다.
한편, 마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청오의 눈빛은 미세하게 떨렸다.
군대에서 고생을 하며, 마음에 자라난 계수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목운요의 얼굴을 보자 시들어 가던 월계꽃이 다시 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강성의 장군은 목운요 일행이 사라져 가는 걸 보면서 감탄했다.
“월왕과 월왕비의 정이 두텁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제 보니 진짜로군. 월왕비는 정말이지 탄복할 만한 여인일세.”
그때, 소청오가 무슨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장군, 우리 강성도 황실 대군을 지원하라는 명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하네. 얼마 전에 성지가 도착했어.”
“저도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나 자네는 내가 가장 아끼는 궁수일세. 그냥 강성에 있게.”
“장군, 전 월서로 가고 싶습니다.”
“자네…….”
장군이 미간을 좁혔다.
“청오, 자네 출신이 평범치 않다는 걸 아네. 한데 이리 갑자기 월서로 가겠다는 건 설마하니…… 저 여인 때문인가?”
소청오가 고개를 숙인 채 곧은 자세로 청했다.
“허락해 주십시오.”
“자네 정말…… 하나같이 이건 뭐, 말을 말아야지. 가고 싶으면 가게. 가서 완전히 마음을 접는 것도 방법이지.”
“감사합니다, 장군.”
* * *
사흘 뒤, 목운요가 드디어 월서 대군의 주둔지에 도착했다.
우의가 병사들을 시켜 길 위의 눈을 치워 놓은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산달이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월왕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목운요를 보고 크게 감복한 병사들은 험한 길이 나올 때마다 마차를 들어 올리고 지나갔다. 마차가 흔들려 월왕비와 아기 군주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월서의 군영에 도착한 목운요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지경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제일 먼저 나와 목운요를 반긴 선령은 그녀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맥부터 짚었다.
“이럴 수가. 천천히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쩌자고 이 지경까지……!”
“태아가 건강하도록 침부터 놔 줘.”
선령은 화를 꾹 참고, 사서와 사화를 시켜 목운요를 막사 안으로 부축해 가도록 했다. 그리고 금침을 꺼내 목운요에게 놓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한 목운요는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아가야, 이제 아버지에게 도착했단다. 이 어미가 아버지를 구할 때까지만 버텨 주렴. 그러고 나면 너도 편히 쉴 수 있단다.’
침을 뺀 선령은 다시 한번 목운요의 맥을 짚어 확인했다. 다행히 많이 안정돼 있었다.
“사야는?”
선령은 걱정이 심통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제하며 대답했다.
“아직은 살아 있지만 위태위태해.”
“독충에 당하고 한 달이 넘으면 정말 가망이 없어. 이제 이틀 남았어.”
목운요가 힘겹게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영아, 날 좀 도와줘.”
“선령이라고 불러. 갑자기 영아라고 부르니 징그럽다. 몸은 좀 괜찮아?”
“난 괜찮으니 걱정 마.”
“정말 무모하다. 월왕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야? 월왕이 잘못되면 새 남편을 구하면 될 것을. 몸을 이리 혹사하니 내가 다 화가 나서 미치겠다.”
선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화난 티를 냈다.
“가자. 얼른 월왕부터 구해야 네가 쉴 것 아니야.”
목운요가 몸을 일으켰다. 역시나 심호흡이 뒤따랐다.
“고마워.”
“네가 건강해지면 그때 따질 테니까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