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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30화 (430/442)

430화 혁련저의 습격

풀 죽은 두 사람에게 선령이 쓴소리를 더했다.

“월왕비께서는 회임하신 몸이라 이동하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어요. 눈까지 내려 길에서 발이 묶였을 겁니다. 절반쯤 왔으면 다행이지. 마차가 다닐 수 있게 여기 병사들을 시켜서 길에 쌓인 눈이나 치우도록 하세요. 그런 다음 마마를 모신 마차를 찾아 호위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북강 놈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고요. 월왕비께 해로운 짓을 할까 무섭습니다.”

북강이라는 말에 우의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걱정 마시지요. 북강이 마마께 마수를 뻗치면 내 목숨을 걸고 지킬 터이니.”

고개를 끄덕이던 선령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사제 소익이 황급히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챘다.

우항과 우의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목까지 붉어진 선령이 눈을 치켜뜨고 툴툴거렸다.

“뭘 봅니까? 잠도 자지 않고 오느라 피곤하여 휘청거리는 사람 부축한 건데, 뭐가 잘못됐어요?”

우의가 고개를 절로 떨구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묵을 곳을 안내해 드리죠.”

선령과 소익의 처소를 안내해 준 우의는 그 즉시 병사들에게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목운요의 마중을 나가도록 지시했다.

소익이 선령을 침상에 내려놓고는 순수한 눈빛으로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에 선령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뭘 그렇게 봐? 나 힘들어 죽는 거 구경하는 거야? 어서 가서 씻을 물이나 가져와.”

민망함에 못된 말을 뱉어 버린 선령은 이내 제 말을 후회했다. 사실 그에게 이런 잔심부름을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험한 길을 달리며 함께 고생해 준 소익의 노고에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도 소익은 활짝 웃으며 행복해했다.

“좋아요. 얼른 가서 따뜻한 물을 받아 올게요. 제 안마 솜씨가 또 기가 막히죠. 어때요? 받아 볼래요?”

“어서 물이나 가져와.”

“네, 지금 가요.”

소익이 나가자 선령이 침상에 철퍼덕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믿어 보자. 그리고 실패하면 마음을 접는 거야. 운요도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사람을 찾았잖아. 어쩌면 이번에는 해낼지도 모르는 일이야.

* * *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북강.

북강 왕 혁련엽은 얼어 죽은 백성과 가축들에 관한 상주서를 읽고 있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그의 근심을 무겁게 했다.

혁련담과 혁련저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전하, 이제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대력조에서 식량을 조달할 방법이 없는 겁니까?”

“장삿길이 끊겼네. 대력조 쪽에는 이상한 낌새가 없느냐?”

북강 왕이 혁련담에게 물었다.

“근래에는 날이 추워 월서와 황실의 충돌이 잠잠합니다. 월왕은 무슨 약으로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한 달이 되면 더 살지 못하고 명을 다할 것입니다.”

“어찌 그리 장담하는가?”

“월왕이 중독된 건 평범한 독이 아닙니다. 독충입니다. 남려의 독충은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졌지만 우연히 남려 부족민을 구했다가 독충을 얻었습니다. 그 부족민도 해독법을 모르더군요. 그러니 다른 사람은 더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일세. 월왕만 사라진다면 소원이 없겠어.”

“다만 월왕비가 월서로 향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월왕비를 납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혁련담의 제안이었다.

“월왕비라…….”

북강 왕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월왕이 아직 살아 있으니 월왕비를 협박하면 식량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만일을 대비해서 병사들을 충분히 보내게.”

“알겠습니다.”

* * *

한편, 큰 눈이 내리던 익주는 나흘 만에 드디어 맑은 하늘을 드러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목운요는 옷을 겹겹이 껴입었지만 그래도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허연한은 목운요의 손을 꼭 쥔 채 손난로를 그녀의 배에 올려놓았다.

“요아, 안색이 안 좋아. 좀 쉬었다 가자꾸나.”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요. 사야가 걱정돼 미칠 지경이에요.”

그에 허연한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단호한 목운요를 설득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결국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밤을 지낼 준비물을 미리 챙겨 두어 다행이었다.

밤은 더 깊어져 주변에 적막이 깔렸다. 그런데 난데없는 늑대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불안한 마음에 뒤척이던 허연한이 옆으로 돌아누운 목운요를 깨워 보았다.

“요아야?”

목운요에게선 반응이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은 허연한이 얼른 딸아이의 이마에 손을 댔다. 손이 델 것처럼 뜨거웠다.

놀란 그녀가 사서를 불러 약을 준비하려는데, 마차 밖에서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점차 가까워졌다.

“사서, 무슨 일이냐?”

“부인, 늑대 무리입니다. 두 분은 마차 안에 계세요. 소인들이 가 보겠습니다.”

허연한은 목운요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물로 수건을 적신 뒤 목운요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요아야……. 이 어미를 놀라게 하지 말거라.”

물수건의 효과인지 목운요가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떴다.

“어머니…….”

“깨어났구나. 몸은 좀 어떠니?”

목운요는 몸을 살짝 움직여 보았다. 그런데 돌이 제 몸 위를 굴러가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잠시 뒤, 마차 밖에서 나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은 그녀가 가슴을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금란이 얼른 타구(唾具, 가래나 침을 뱉는 그릇)를 대령했다.

“마마, 괜찮으세요?”

“밖에 무슨 일이 난 거죠?”

“늑대가 나타났어요. 사서와 사화, 그리고 호위 무사들이 처치하고 있습니다.”

들짐승은 원래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폭설로 산에서 먹잇감을 구할 수 없게 된 늑대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사람을 공격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지 말라 전해요. 마차를 움직여 최대한 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에요.”

목운요는 통증이 심한지 이마를 찌푸렸다.

“이마가 불덩이다. 어서 쉴 곳을 찾아야겠구나.”

“어머니, 별일 아니에요. 약을 먹으면 나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이내 마차가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대략 반 시진쯤 이동한 뒤에야 늑대 떼를 따돌릴 수 있었다.

사서가 목운요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마마, 아뢰옵니다. 호위 무사 하나가 경상을 입어 약을 처방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무사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 다음에 도착하는 성에서 잠시 쉬자꾸나.”

“네.”

* * *

성에 도착한 목운요는 허연한이 고집을 부리는 통에 하루를 온전히 쉰 뒤에야 여정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여정도 눈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목운요의 건강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맥이 안정적으로 잡혀 마음이 놓였다. 태중의 아이도 말썽 없이 어미의 여정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여드레가 지나, 마차는 다시 길에 멈춰 섰다.

금란과 금교는 끓인 물을 목운요에게 가져왔다.

“마마, 닷새 뒤면 옥계성에 도착할 겁니다.”

며칠 새 쌓인 눈이 많이 녹아 있었다. 이전에 비하면 이동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목운요는 허연한의 부축을 받고 마차에서 내려 잠시 걸었다. 옥계성이 코앞이라는 말에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그래, 곧 도착하겠네요.”

살며시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의 눈이 날려 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목운요가 손을 뻗어 보았다. 눈은 손에 닿자마자 녹아 버렸다. 그 청량한 느낌에 목운요의 표정이 밝게 피었다.

그때였다.

“누구냐!”

그림자 호위 유구가 별안간 소리를 치며 목운요의 앞을 막아섰다.

호위 무사들도 즉각 경계 태세를 취했다.

길옆의 숲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혁련저 무리였다. 외투로 몸을 감싸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목운요를 본 혁련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월왕비, 드디어 나타났군. 오래 기다렸다.”

그에 목운요가 혁련저의 얼굴과 옷차림을 쓱 확인하고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북강의 둘째 왕자 혁련저가 아닌가? 겁도 없이 대력조의 땅에서 매복을 한 것이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렷다.”

목운요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자 혁련저는 더 자극적인 말을 내뱉었다.

“네 소문은 누누이 들었다. 사내도 울고 갈 여장부라고? 오늘 직접 보니 과연 헛소리는 아니구나. 북강 철기군 앞에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여인네들하고는 확실히 달라, 하하하. 북강에 잡혀가더라도 노예로 삼지 말라고 내 잊지 않고 전하께 아뢰어 주마.”

“무엄하다!”

사서가 호통을 내질렀다.

“네놈이 감히 월왕비 마마를 모욕하는 게냐?”

“흥, 여기 앞뒤 분간 못 하고 까부는 계집이 또 있구나. 너 같은 것들은 수도 없이 봤다. 주인 대신 나서려거든 네 분수부터 파악하거라. 뭐 하느냐, 공격하라!”

혁련저의 명령에 북강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사서와 사화는 목운요를 마차에 태운 뒤 검을 차고 그 곁을 지켰다.

호위 무사들은 과연 무공이 뛰어났다. 떼로 달려드는 북강의 병사들이 그들의 검 끝에 휙휙 나가떨어졌다.

그에 혁련저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강성과 멀지 않은 곳이라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자칫하다가는 강성의 군대가 지원 사격을 할 위험이 있었다. 그랬다가는 목운요 납치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었다.

“활을 쏴라! 월왕비만 남기고 모조리 죽여도 좋다.”

목운요가 눈에 힘을 줬다.

“사서, 독을 써.”

“네.”

바람이 부는 방향을 파악한 사서가 곧장 독 가루를 불어 날렸다.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그녀는 독 가루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앞에 있던 궁수들이 순식간에 고꾸라졌다.

한데 놀란 말이 정신없이 울어 대며 이리저리 날뛰었고, 그 바람에 마차가 덜컹거려 중심을 잃은 목운요가 마차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순간 배의 통증을 느낀 그녀가 인상을 쓰며 신음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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