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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28화 (428/442)

428화 날아든 비보

뜰로 나오자 선령이 그들을 맞았다.

선령은 목운요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저려 왔다.

원체 여린 체구라 평소에도 사람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목운요였다. 그런데 지금은 배까지 잔뜩 불러 있으니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고 넘어질 것만 같았다.

선령이 얼른 다가가 금교를 대신해 목운요의 손을 잡아 부축했다.

“사람 놀라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앞으로 산책하려거든 하인들을 더 데리고 나와. 적어도 사방에서 지키고 있어야 해.”

목운요가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요란 떨지 않아도 돼. 지나친 걱정이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가볍게 티격태격하며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행궁 정문이었다.

선령은 목운요의 겉옷을 꼭 여며 주었다.

“바람이 세게 부니 이만 돌아가자.”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 돌아서려는데 누군가가 말을 타고 행궁으로 급하게 오는 게 보였다.

“장공주 전하께 드릴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월왕 전하의 상태가 위급합니다. 서둘러 아뢰어 주십시오!”

목운요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은 어느새 사색이 돼 있었다.

“금란, 어서 가서 저자를 데려와요.”

“마마…….”

“어서.”

“……네.”

쉬지 않고 달려온 듯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내는 똑바로 서지도 못하였다. 행궁 안으로 들어와서는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였다. 얼굴은 핏기 없이 누렇게 떠 있었고, 입술도 쩍쩍 갈라지고 터져 피가 흘렀다.

“비 마마, 서신……. 월왕 전하의 서신입니다…….”

목운요가 황급히 다가가 서신을 받았다.

서신이 무사히 목운요에게 가자 긴장이 풀렸는지 사내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선령이 그의 맥을 확인했다.

“너무 무리했나 봐. 기력이 다해서 그러니 좀 쉬면 괜찮을 거…….”

“비 마마!”

금란과 금교가 놀라 소리치며, 얼른 목운요를 부축했다.

목운요가 창백해진 얼굴로 가슴을 부여잡은 것이다. 그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혀끝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무언가 사달이 났음을 직감한 선령이 서신을 빼앗아 확인했다.

“허기, 그 요망한 것이……!”

다리 힘이 풀린 목운요는 금란과 금교 덕에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 가야겠어요.”

“운요, 염려 마. 내가 당장 월서로 가서 월왕을 구할 테니.”

선령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목운요를 보며 제 일처럼 마음이 초조해졌다. 산달이 가까운 시점이었다. 이런 때에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조산의 위험이 있었다.

목운요는 금란의 팔을 꼭 붙잡은 채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그제야 좀 나아졌는지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외할머니께 가요.”

금란과 금교는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저 목운요를 부축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사이 소식을 들은 장공주와 허연한이 버선발로 달려와 목운요를 끌어안았다.

“요아,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진정하려무나.”

목운요가 핏기 없는 얼굴을 들어 올렸다. 눈가에 눈물의 흔적은 없었다.

“외할머니, 사야께서 허기의 계략 때문에 독에 당해 혼절해 계십니다. 제가 가야 해요.”

심각한 표정의 장공주는 섣부른 대답 대신 선령에게 서신을 건네받아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아, 우항과 우의가 이리 서신까지 보내온 걸 보니 군월의 상태가 심각한 것 같구나. 이 서신이 오는 동안에도 병세가 악화됐을 게야. 네가 월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허연한이 황급히 장공주를 불렀다. 지금의 목운요에게는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장공주는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을 꿋꿋이 이어 갔다.

“회임한 지 벌써 일곱 달이 됐어. 월서로 가다가 배 속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목운요는 순간 다리 힘이 풀려 그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장공주는 가슴이 아팠지만 애써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모질기는 해도 그녀의 말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무작정 월서로 갔다가 월왕의 부고라도 들으면 목운요는 버텨 낼 수 없으리라.

금란과 금교는 허연한과 함께 목운요를 부축해 일으켰다. 걱정되는 마음에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

장공주의 의중을 알아차린 선령이 목운요를 달랬다.

“운요, 내가 지금 월서로 갈게. 월왕 전하의 숨이 남아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 낸다고 약조하마.”

목운요를 바라보는 장공주의 가슴이 한없이 저미어 왔다. 허기가 이런 짓을 벌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목운요는 넋이 나가 버렸다. 그저 제 배만 힘없이 어루만졌다.

그런데 잠시 뒤, 목운요가 몸을 곧추세웠다.

“외할머니, 죄송합니다.”

결연한 눈빛이었다.

장공주는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목운요의 결심을 돌리지 못했다. 이 아이는 기어이 월서로 떠날 작정이었다.

“요아, 너…….”

“외할머니.”

목운요의 눈빛은 맑았다. 하지만 슬픈 감정만은 가려지지 않았다.

“선령을 먼저 월서로 보내서 사야를 구하도록 할 거예요. 저는 호위들을 충분히 대동하여 천천히 갈게요. 식사도 빠뜨리지 않을 거고요. 아이의 존재를 매 순간순간 느끼고 있어요. 그러니 월서로 가도록 허락해 주세요.”

“밤낮없이 가도 열흘은 더 걸린단다. 배가 그리 불렀는데 월서에 도착해 혹여 출산이라도 하면, 그때는 어쩌려고 그러느냐. 나와 네 어미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 게야?”

허연한이 목운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아야, 네가 월왕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는 걸 잘 안다. 하나 아이를 생각해야지. 월서는 날씨가 험한 곳이다. 혹여 그곳에서 아이라도 낳으면…….”

“어머니, 이 아이만큼 사야도 제게는 소중해요. 누구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그리고 사야는 꿋꿋이 살아서 절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아직 우리의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보지 못했어요. 저를 한평생 아껴 준다는 약조도 지키지 못했다고요. 그러니 이렇게 죽을 리가 없어요.”

허연한은 그만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목운요가 이번에는 장공주에게 사정했다.

“외할머니, 사야가 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보셨잖아요. 이렇게 저버리시면 안 되잖아요.”

장공주는 힘겹게 입을 뗐다.

“선령이 있지 않니…….”

“선령의 의술이 뛰어나지만 저도 못지않습니다.”

“요아…….”

“이 아이도 어미가 아비를 구하러 가는 걸 알 테니 힘이 되면 힘이 됐지, 절 떠나지 않을 거예요. 혹여, 사야를 구하지 못한다면 이 아이가…… 아비의 관과 위패를 모시지 않겠어요?”

커다란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에 장공주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래……. 널 어찌 말리겠느냐. 가거라. 대신 네 말대로 선령부터 먼저 보내고, 너는 충분히 채비를 한 뒤 떠나야 한다. 난 폐하를 뵙고 성지를 부탁드려 보마. 혹여 도움이 필요하면 인근 병사들이 월서까지 보호를 해 줄 게다.”

“그럴게요.”

목운요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천 마디 말로도 전하지 못할 고마움을 이 절로 다 하려는 듯,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장공주가 손을 뻗어 목운요를 일으켜 세웠다. 창백한 목운요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녀의 눈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바보 같은 녀석. 정말 후회가 되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널 군월에게 시집보내지 않았을 터인데…….”

“외할머니…….”

목운요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너무도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는 월왕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비 없이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그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나와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네 몸과 아이를 건강히 지켜야 해. 어서 떠날 채비를 하거라. 빠짐없이 준비해. 나는 황궁에 가 보련다.”

“네.”

그사이 선령은 이미 여러 환약과 약재를 준비해 짊어지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목운요의 뺨으로 손을 뻗은 그녀가 말했다.

“네가 월서에 도착할 때쯤이면 월왕은 다 나아서 날아다닐 거야. 그러니 기운 차려. 내 수양아들이 슬퍼한다.”

목운요는 선령의 손을 꼭 잡았다.

“조심해. 그리고 부탁할게.”

“나만 믿어!”

선령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말에 올라타서는 빠른 속도로 산길을 따라 내달렸다.

선령의 사제도 목운요와 눈빛을 주고받고는 그 뒤를 따라 말을 몰았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목운요는 제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냉철한 눈빛으로 말했다.

“금교, 진 총관님은 돌아오셨나요?”

“네. 서릉에 계십니다.”

“잘됐네요. 불선루의 모든 일꾼들을 조사해서 북강과 관련이 있는 자들을 몽땅 찾아 내게 보고하라고 해요. 그리고 북강과 대력조의 장삿길을 끊으라고 해요. 특히 식량과 소금 길을. 곧 혹한이 올 거예요. 초원이 황량해질 터이니 식량과 소금이 끊기면 제아무리 북강이라도 버티지 못하겠죠. 곧 우리에게 얌전히 고개를 조아리게 될 거예요.”

“네.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금란은 가서 배와 마차를 대기시키라고 해요.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안전한 것이어야 해요. 아이를 지키기로 외할머니와 약조를 했으니.”

“네, 마마.”

두 사람이 물러난 뒤,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아 있던 목운요가 한쪽에 둔 상자에서 의복을 꺼냈다.

“사야, 그리 갖고 싶다 하던 의복을 다 지었어요. 그러니 사야께서도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먼저 이승을 떠나면 매일 무덤에 찾아가 원망할 거예요. 그뿐인 줄 아세요? 우리 아이에게 새 아비를 찾아 줄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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