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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15화 (415/442)

415화 연극을 펼치다

목운요의 아랫배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선령이 손을 뻗어서는 그녀의 배를 콕콕 찔러 봤다.

“내가 아이의 의모가 되어도 될까?”

적적하던 참에 마실이나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쁜 소식이 그녀를 반겼다.

목운요는 경황이 없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 상황이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정말 회임을 했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이 주가 더 지나면 너도 짚어 낼 수 있을 거야. 그보다 어서 대답부터 해. 나 의모가 되고 싶어.”

선령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목운요의 아이를 돌봐 주면서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좋아.”

목운요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목이 간질간질했다.

금란이 내온 차를 한 입 마시려는데, 선령이 황급히 찻잔을 멀리 옮겨 두었다.

“그 차는 성질이 차서 마시면 안 돼. 몸을 따뜻하게 하는 과일 차를 만들어 줄게. 불선루 차도 훌륭하지만 내가 만드는 것만 못할 거야.”

“고마워.”

목운요가 여전히 놀라움이 섞인 표정으로 제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실감이 안 나.”

불과 며칠 전, 월왕과 아이가 생길 때를 상상하며 웃음꽃을 피웠었다. 그런데 그 상상이 진짜 현실이 되었다.

곁에 서 있던 금란과 금교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 전에는 얘기를 듣고 놀라 차를 담아 오던 쟁반을 그만 떨어뜨릴 뻔했다. 두 사람은 혹시 태중의 아이에게 해라도 될까 봐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한데 그때, 선령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방 안을 서성거렸다.

“운요, 계획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목운요도 배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긍정을 표했다.

“그래야겠어. 금란, 사야는 어디 계시죠?”

아이를 가진 걸 알게 된 이상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실수로 아이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폐하의 부름을 받고 입궁하셨습니다. 궁에 전갈을 넣을까요?”

“아니에요. 연회가 끝나고 나서 말씀드려야겠네요.”

오늘의 연회는 내전(內殿, 왕비가 거처하는 궁)에서 열리는지라 회임 소식을 들은 월왕이 혹여 찾아온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초조하게 오가던 선령이 별안간 걸음을 뚝 멈추더니 금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내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금란의 팔을 잡아챘다.

“금란, 네 옷 좀 한번 입어 보자꾸나.”

금란은 바들바들 떨었다.

선령은 평소에도 금란과 금교를 놀려 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장난이 심할 때는 약을 먹이려고 덤빌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웃으면서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이 옷은 왜……. 설마 비 마마를 모시고 궁궐에 가시려고요?”

선령이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역시 총명해. 운요가 회임을 해서 분말로 된 호신용 약을 지니고 다니면 안 되잖니. 혹시 모르니 내가 데리고 가는 게 마음이 놓이겠어. 감히 누가 운요를 해하려고 하면 내가 깔끔하게 처리해 주마.”

금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바로 새 옷으로 가져다드릴게요.”

목운요도 마다하지 않았다. 선령이 곁에 있으면 확실히 안전에 대한 걱정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선령은 물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비녀에 독약을 바르고, 귀걸이에 독을 숨긴 선령이 손톱, 팔찌, 허리띠, 옷소매, 치맛자락, 신발 할 것 없이 몸 곳곳에 빠짐없이 약을 챙겨 넣은 것이다.

가히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 금란과 금교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독침을 꽃신에 끼워 넣은 선령이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제 됐군. 어디 한번 가 볼까!”

북강이고 뭐고, 감히 허튼수작을 부리면 일단 독으로 쓰러뜨리고 보겠다는 기세였다.

선령이 너무 들떠 있는 게 염려됐는지 목운요는 황급히 그녀를 잡아 세우며 당부했다.

“잊지 마.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게 아니야. 오늘 내가 하는 건 연극이니 일을 그르치면 절대 안 돼.”

선령은 가슴팍을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나만 믿어!”

* * *

목운요가 선령과 함께 마차에서 내리자 온 시선이 쏠렸다.

궁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금 부인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황급히 다가왔다.

“요아야, 몸은 좀 괜찮느냐?”

목운요가 걱정돼 몇 번이나 월왕부로 갔지만 번번이 되돌아와야 했던 그녀였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목운요는 금 부인의 손을 부여잡았다. 처지가 어려울 때 진정한 벗을 가릴 수 있다더니, 금 부인은 거짓 없이 제 편에 서 있었다. 그녀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의모님, 염려 마세요. 전 괜찮답니다.”

“그럼 됐다. 그래도 계속 조심해야 한다. 잘 알지?”

금 부인이 목운요의 아랫배로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기쁨과 걱정이 한데 섞여 있었다.

“명심할게요.”

목운요가 금 부인의 손을 힘껏 잡았다가 놓았다. 그리고 선령과 함께 소양궁 안으로 들어갔다.

연회에 참가한 부인과 소저들은 쉴 새 없이 목운요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목운요는 그런 시선에도 흔들림 없이 평온한 자태로 걸음을 옮겼다.

목운요가 막 자리에 앉자 내관이 목소리를 높여 황후의 도착을 알렸다.

“황후 마마 납시오.”

붉은빛의 대례복을 입은 민방화가 궁녀들의 보필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걸어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예를 표했다.

“황후 마마를 뵈옵니다.”

“그만들 앉게. 오늘 자네들을 부른 건 함께 칠석을 축하하고 즐기자는 뜻일세. 그러니 어려워 말고 편히들 있게나.”

민방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부인이 바로 아첨의 말을 올렸다.

“황후 마마, 과연 천하 여인의 귀감이십니다. 마마께서 베푸는 연회에 초대받다니, 조상 대대로 공덕을 쌓았나 봅니다.”

“맞습니다. 마마의 복이 저희에게도 깃들 것 같습니다.”

소양궁 안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황후의 얼굴에도 기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한마디씩 소감을 말하자 황후가 목운요 쪽을 바라봤다.

“월왕비, 오늘 입은 옷도 아주 예쁘구나. 직접 지은 겐가?”

일순 적막이 흘렀다. 사람들은 일제히 목운요를 쳐다봤다. 목운요가 정말 임신을 한 건지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목운요는 고운 빛깔의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널따란 소양궁 안에서 그녀의 미색을 따라갈 여인은 없어 보였다.

“이 옷은 월왕부의 자수공이 지은 것입니다. 본래 하운방의 총관이었으나 하운방이 조정에 상납되면서 지금은 월왕부와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습니다.”

황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의중을 알 수 없는 투로 말했다.

“월왕부의 자수공이라면 그 재주가 천하제일일 테지. 황궁의 자수공보다도 훨씬 뛰어날 것이야.”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제가 천하의 주인이니 황궁의 사람과 물건도 천하제일이어야 했다. 그런데 황후는 월왕부 자수공의 실력을 더 치켜세웠다. 이는 분명 다른 의도가 깔린 말이었다.

하지만 목운요는 동요하지 않았다.

“언뜻 보면 정교해 보이지만 실은 부족한 솜씨입니다. 마마께서 과찬을 하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보다 월왕비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좀 괜찮은가?”

“심려를 끼쳐 드렸군요. 날이 더워 입맛이 좀 없었을 뿐, 별일 아닙니다.”

“그럼 안심이네. 밖에 온갖 뜬소문이 나돌지만 본인만 떳떳하다면 그깟 소문이 대수겠는가?”

“맞습니다. 소문은 지혜로운 자의 입에서 그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연회에 참석하신 부인과 소저들께서도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은 믿지 않으실 겁니다.”

황후가 실소를 흘리고는 곁에 있는 상궁에게 지시했다.

“연회를 시작하지.”

“네.”

황후와 월왕비의 대화가 끝나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의 말속에는 월왕부에 대한 불만이 묻어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월왕의 권력을 두려워하는 황제가 정녕 그 권력을 빼앗으려는 것일까?

이후 연회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상에 오른 각양각색의 요리들도 먹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쏘가리 요리가 나오자 목운요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황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월왕비, 왜 그러나? 혹여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은 겐가?”

“마마, 소인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우욱…….”

목운요가 손수건으로 얼른 입을 가렸다. 하지만 헛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눈도 벌겋게 충혈됐다.

황후가 순간 인상을 썼다.

“월왕비의 상태가 좋지 않구나. 태의를 불러와야겠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목운요는 황급히 황후를 말렸다. 그런데 너무 과민한 반응처럼 보였다.

“날이 더워서 속이 안 좋은 것뿐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월왕비의 속이 안 좋다니 쏘가리를 당장 물리거라.”

소양궁에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목운요의 상태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발칙한 월왕비, 입덧이 분명한데 속이 안 좋다고 거짓말을 하는군.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어떻게 하실는지…….

* * *

한편, 태화전에서도 황제가 주최하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칠석은 여인의 기념일이지만, 황후를 총애하는 황제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같은 날 연회를 잡은 것이었다.

자리에 참석한 월왕은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황제가 이따금 말을 붙여도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연회의 분위기가 흥겹게 고조되고 있는데, 북강 사신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폐하, 대력조의 칠석에는 독특한 풍습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여인들이 달을 보고 바늘에 실을 꿴다고 하던데, 직접 구경해 보고 싶습니다.”

황제가 껄껄 웃었다.

“좋소. 짐도 마침 황후에게 가 보고 싶던 참이오. 서립, 짐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곧 갈 터이니 준비하라고 황후에게 이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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